섬김의 길, 부활의 진리, 영원한 생명
사도 13,26-33; 요한 14,1-6 / 2021.4.30.; 부활 제4주간 금요일; 이기우 신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사도 바오로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해석하여 들려준 강론에서 재해석의 근거로 삼은 사건은 예수 부활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부활 사건이 이스라엘이 오랜 세월 동안 지녀온 희망이 실현된 목표이며
성취이기도 함을 선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역사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였습니다.
비록 유다교 지도층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도리어 하느님께서는
이 죄악을 발판으로 삼으시어 당신의 구원 계시를 결정적으로 드러내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다교 지도층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버림받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만민에게 하느님의 빛을 전하라고 그분 백성으로 부름 받은 본래의
소명을 실현할 결정적 기회가 도래했으니, 이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바오로는 사울의 로마식 이름인데, 예수님께서 공생활 3년 동안
사도로 양성하신 제자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역사적 계시와
신앙의 신비를 밝히 깨우친 그의 영성이 돋보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애의 마지막 무렵에 부활 신앙의 정수(精髓)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정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입니다.
즉, 스승이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마치 종이 주인에게 하듯이 씻어주심으로써
섬김의 길에 대해 가르치셨고,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몇 차례나 발현하시어
공생활 동안 배운 가르침을 복습시켜 주심으로써 부활의 진리에 대해 상기시켜
주셨으며, 이 길을 걸을 힘과 이 진리를 증거할 기운을 얻을 수 있도록 당신 삶을
송두리째 내어 주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지금부터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이 진리가 서학(西學)과 천주교(天主敎)의 이름으로 실로
오묘한 섭리로 이 땅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 천문이나 수학, 지리나 기계 등 서양 문물을 소개하고 있는 실학(實學)에 대한
관심으로 천진암에 모인 선비들은 중국에 온 이태리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를 통해서 서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접한 대부분의 선비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이 책을 익히
보아온 이벽이 이들의 모임에 합류하면서부터 이 관심은 뜨거워졌습니다.
조선 사회를 지배했던 성리학이 공리공론만 일삼았던 것과는 달리 뚜렷이 구분되는
사상적 충격과 지적 자극을 주었고 이를 이벽이 해박하게 풀이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사상적 충격은 서학으로 알려진 천주학이
제시하고 있는 합리적 철학과 평등한 가치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우주와 사람을 창조하신 천주께서 존재하시고 따라서 이 천주께서
지어내신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므로 천주 앞에서 평등하다는
천지창조 교리와 천주 및 영혼의 존재 교리였습니다.
둘째는 사람들이 짓는 죄악에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천주께서는
독생성자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강생구속과 천국의 존재 교리였습니다.
셋째는 이분이 서로 사랑하라는 천국의 진리를 가르치셨는데
유다인들이 그분을 몰라보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그분은 다시 부활하셨다는 예수 부활 교리였습니다.
그리고 넷째는 모든 사람은 살아서 행한 대로 죽은 후에 심판을 받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은 상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진다는 상선벌악과 천당지옥 교리로서
새롭고 신비스런 지식을 알게 된 선비들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보면 서양 종교에 대한 신기한 지식을 접하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을 똑같이 본 다른 선비들 중에는
천주학을 비판하고 박해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둘째로 이 선비들이 받게 된 엄청난 지적 자극은 하느님에 관한 개념 덕분입니다.
강학회가 열리기 180년 전에 마테오 리치는 서학으로 알려진
이 종교를 한자로 ‘천주교(天主敎)’라고 번역하였는데,
그 까닭은 유학 경전에도 ‘상제’(上帝) 혹은 ‘천’(天)에 대해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선교사로서 중국에 도착하여
유학을 배운 때는 명나라 말기로서 이 당시에 유학의 사조는 송나라 때 시작된
성리학과 명나라 때 유행한 양명학이었지만 성리학과 양명학의 유학 사조는
전부 유물론적이고 관념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던 지적 체계였습니다.
그런데 학자요 선교사로서 마테오 리치는 상제야말로 인격신으로서 천주교가
믿는 천주 혹은 하느님과 같은 분임을 천주실의에서 논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벽과 다른 선비들도 이 ‘천’의 개념이 공자가 저술한 시경과 서경에
들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조선 사회가 성리학적 해석만을 정통으로
강요하는 분위기였던 탓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릴까봐 감히 주장하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천문과 수학과 지리와 기계 등 서양 문물을
한문으로 소개한 학자요 서양 선교사로서 마테오 리치가 입증한 학문적 권위 덕분에,
그가 천주실의에서 근거로 삼은 원시유학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있게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실상 공자의 ‘천’ 개념은 이보다 2천 년 앞선
단군의 사상이라는 것을 옛 기록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고,
이것이 서학보다 앞선 동학(東學)의 원류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선조들이 믿어온 하느님이 서양 선교사들이
전해 준 천주이심을 확인했고, 그 결과 이 선각자 선비들은 천주를
믿는 길에 있어서는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로부터 천주 존재와 영혼의 실체,
강생구속과 예수 부활, 상선벌악과 천당지옥 등 4대 교리를 통해 천주교가
전하는 진리를 알게 됨으로써, 막연한 학문적 관심으로부터
종교적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식에서 출발하여 믿음으로
나아가게 된 이 오묘한 섭리 또한 우리 겨레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시려는
예수 부활의 은총이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