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5일 오후 김포공항 국제1청사. 입국장엔 일본어 안내문과 현수막을 든 여행사 직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속속 입국하는 일본인 관광객들과 이들을 맞는 여행사 직원들로 청사 안은 북적거렸다. 전광판엔 나리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지에서 날아오는 비행기 도착 예정시각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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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공항 국제청사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맞고 있는 여행사 직원들. 일본어로 쓴 안내문들이 보인다. |
올해 한국을 방문하게 될 일본인 관광객은 약 240만명. 하루 7000명 꼴이다. IMF 이후 한국의 원화 절상과 일본의 장기적 경제불황으로 한국은 일본의 최고 관광지로 떠올랐다. 한국이 주말을 이용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경제적인 해외여행 코스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미 지난 7월 말까지 138만5000명의 일본인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에서 만난 세일여행사의 모리타(46) 과장은 “세일여행사만 1년에 10만명 넘게 일본인 관광객을 맞는다”면서 “한국은 가깝고 싸서 쇼핑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온다”고 말했다. “일본 TV에도 자주 한국 안내 방송이 나와 친근감을 준다. 일본에선 한국을 다루는 여행잡지가 많아 상세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 일본인 관광객들은 한국에 와서 무엇을 보며, 어떤 느낌을 갖고 돌아가는 것일까.
한국관광공사의 분석에 따르면 과거 일본관광객들은 노년층을 중심으로 명승지나 관광지 위주의 패키지 관광을 즐겼지만 지금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주말을 이용해 자유롭게 개별적으로 관광과 쇼핑을 즐기고 있다.
●개성 관광 풀리면 일본인 유치에 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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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 지하상가에서 안경을 고르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들. 명동 지하상가의 주고객들이다. |
체류 기간도 이틀에서 사흘(평균 2.8일) 정도로 연장됨에 따라 서울 도심의 쇼핑관광도 크게 늘었다. TV,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 충분한 사전 정보를 얻고 온다는 점도 예전과 다르다. 예전처럼 퇴폐적인 관광이나, 여행사와 업소 간에 담합이 이루어지는 관광이 아니라 손님들이 직접 자유롭게 찾아다니는 관광이 느는 추세다. 서울 중심의 명승지 관광도 전주, 경주, 판문점, 임진각, 통일 전망대 등으로 다변화ㆍ지방화되는 추세. 한 여행사 관계자는 “시사적인 흐름에 민감한 관광상품의 성격상 요즘은 비무장지대 등 남북관계와 관련된 여행상품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며 “이북의 개성 관광이 풀리면 일본인 유치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젊은 여성 관광객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도 눈에 띠는 변화다.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는 젊은 여성 직장인들의 증가’라는 게 여행업계와 관광공사의 일치된 설명이다. 일본보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품목을 갖춘 점이 젊은 여성을 사로잡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젊은 여성들이 주도하는 일본인 관광의 단골 코스는 백화점, 명동과 동대문의 의류상가, 면세점을 들 수 있다. 식도락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갈비와 냉면 등 한국의 먹거리에도 큰 흥미를 나타낸다.
명동, 동대문 등 상가에서는 손에 지도를 들고서 삼삼오오 쇼핑을 즐기는 일본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명동 지하상가에서 만난 다나카 사토에(20ㆍ여)씨와 미키 가쿠(19)씨는 “주말을 이용해 왔다”며 “올림픽 공원, 동대문, 남대문 등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한국 관광에 관한 가이드북이 많이 나와있어 한국이 익숙하다”는 이들은 “맛있는 곳이 많아 마음에 든다. 한국 문화를 더 알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곳 상인 신희준씨는 “구찌 등 명품 브랜드를 선호한다. 한국보다 일본인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명동에서는 안경, 옷 뿐 아니라 구두 가방 등 피혁제품 등도 인기다. 인삼 등 건강 관련 제품, 보석 등도 일본인 관광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토쿄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타테 노마야(28), 히라사와 타마키(27), 야스노 유키에(28)씨는 “가방, 화장품, 향수, 도자기”를 구입했다며 “이제 면세점에 갔다가 삼계탕을 먹으러 갈 것”이라고 했다. “값이 싸서 좋다”는 히라사와씨는 “처음 왔지만 주변에 한국을 다녀간 친구들이 무척 많다”고 말했다.
명동 지하상가의 점포들엔 한국어보다 일본어를 더 크게 쓴 간판이 달린 곳이 적지 않다. 아예 일본어 간판을 내건 곳도 있다. ‘일본인 환영’, ‘일본인 우대’ 등으로 시작되는 일본어 광고 문구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명동의 상인들은 일본어를 배우지 않고서는 장사하기 어렵다”는 게 안경점을 운영하는 이정익씨의 이야기다. “7대 3 정도로 압도적으로 일본인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롯데백화점 지하 식품매장도 대표적인 쇼핑 명소다. 김치, 김, 젓갈 3총사는 식품매장의 효자상품. 올 1월부터 8월까지 일본인들에게만 53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백화점측은 일본어에 능숙한 ‘아줌마 부대’를 매장에 배치해 일본인 관광객을 맞고 있다. 김치매장에서 일하는 김재순씨는 “식품매장의 80%가 일본 손님이다. 총각에서 아줌마까지 다양한 일본인 손님들이 찾는다. 친척에게 줄 선물로 인기”라고 설명했다. 코베에서 왔다는 마쓰오카 히로에(25ㆍ여)씨는 “싸고 맛있다. 아삭아삭한 게 일본 김치와 색다르다. 여러 다양한 김치들을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소위 ‘에스떼’라고 하는 미용도 관심거리다. 서울 강남의 일본인 여성 전용 에스떼 업소를 운영하는 이정란 사장은 “젊은 직장인 여성들이 찾아와 때밀이 마사지, 발 마사지, 얼굴 팩, 화장 등 서비스를 모두 한꺼번에 받는다. 가격은 7만~8만원대다”고 이야기했다. 하루에 70명 가량의 일본 여성손님을 받는다는 이씨는 “서울에 일본인 전용 에스떼 업소가 25개 정도 된다. 일본보다 싸고 서비스가 다양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일본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관광 코스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발 마사지 등 인기 급증
‘조선통신사’ 프로그램을 내놓은 아주투어스인터내셔날의 박상일 부장은 “3박 4일 동안 조선과 일본 사이의 통신사들이 다녔던 여정을 되짚으면서 역사적, 문화적 현장을 배우는 코스”라고 소개했다. 중앙박물관에서 조선 통신사관련 유물을 보고 슬라이드를 곁들인 강의를 들으면서 시작하는 코스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정동극장에서의 국악공연, 경남 밀양과 부산에서의 유물 관람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아직 이런 테마 문화 여행이 많이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 대한 문화시장 개방도 일본인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8월 26, 27일 일본 듀오 ‘차게 & 아스카’의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내한 공연에는 일본인 팬 6000여명이 몰려와 성황을 이뤘다.‘난타’ 등 한국의 문화 공연도 일본인 관광객을 끄는 요인. 관광업계는 앞으로도 일본인 연예인의 국내 공연을 유치할 계획이다.
‘비무장지대’ 관광상품을 내놓은 동방여행사의 홍완표 대리는 “판문점, 땅굴, 통일전망대 등 안보 상품,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 상품, 영화 ‘쉬리’의 촬영 현장이나 ‘난타’ 등 문화 관광 상품이 예전에 비해 다변화되었다는 게 요즘 일본인 관광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본인 관광객의 증가가 잠깐 동안 ‘반짝’하는 특수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홍콩 등 다른 관광지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서 생긴 반사이익인데다가 체류기간도 짧아 예전만큼 큰 재미는 못본다”는 것이다. 덤핑 혐의로 고발된 여행사들도 종종 있을 정도로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사간에 과다 출혈경쟁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다른 여행사하고 맞춰야 하기 때문에 우리만 제 가격을 받을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싸게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싼 값으로 여행객을 유치한 여행사는 자신들이 소개한 업소에 바가지 요금을 매기게 되고, 덤핑 여행의 폐해는 따라서 고스란히 일본 관광객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호텔 객실 수도 모자라고 다양한 연령층을 겨냥한 관광 상품도 아직은 부족한 상태다.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을 잘 맞을 수 있는 기본 인프라부터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늘어나는 일본인 관광객의 수만큼 관광 인프라의 질도 높여야 한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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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체험 코스
나환자촌 방문ㆍ전통 악기 강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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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고등학교 수학여행도 경복궁 등 명승지 관광 일변도에서 탈피, 맹아원, 나환자촌, 임진각, 판문점 등 다채로운 체험과 역사 교육의 장으로 바뀌는 추세다. 수학여행도 최근의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프로그램의 다변화에 맞추어 여러가지로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들른 일본의 수학여행 연인원은 4만2000명 정도. “정동극장에서 한국의 전통 악기를 직접 배워본다거나 명동 등 시내를 가이드 없이 쇼핑해 보고 한국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보는 등 체험 학습위주로 프로그램이 짜여있다”는 게 한국관광공사측의 설명이다.
아오모리현의 쇼후주쿠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다카야 요시에군은 “나병환자촌과 맹아원을 들렀다”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과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앞을 못보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은 잊지 못할 것”이라는 다카야군은 “임진각에 들러 한국과 일본의 다른 처지를 새삼 느끼기도 했다”며 한국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나가노현의 시노노이아사히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도코로 히로유키군은 경주의 나사레원(한국에 정착한 일본인 여성을 위한 시설)을 다녀왔다면서 “자신의 슬픔을 오히려 묻어두고 우리를 따스하게 받아준 할머니들과의 만남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교실에서의 배움만으로는 알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을 했다”는 도코로군은 “막연하게 머리 속에만 있던 한국 땅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고도 말했다.
전북 군산에서 홈스테이를 했다는 아이치현의 세이조 고등학교 2학년 하가 쇼오고군은 “홈스테이를 통해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 문화에 대해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기뻐했다. “한국 친구들의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과 열의에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는 쇼오고군은 “한국에 비해 일본이 국제화에 뒤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얻었다”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이종도 주간부 기자 cantor@chosun.com*)
첫댓글 교수님 이렇게 하는거 맞나여?ㅠ
그래..잘 했네... 봐 찾으면 보이잖아..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