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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 자유 기타사진 스크랩 산행 ▶ 지리산 `반야봉` - 아내와 함께 비를 맞으며 맞으며...
제우스 추천 0 조회 131 06.07.18 15:47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 언제 : 2006년 7월 15(토)   <06년도 제 27차 산행>

■ 어디로 : 성삼재 ↔ 노고단(1507M) ↔ 돼지령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1732M)

                <왕복 약 16.5KM, 필자기준 약7시간소요>

 

■ 반야봉(般若峰) - 해발 1,732m로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인 반야봉은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뻗어 나가는 높은 능선으로 이어지는 동북방 약 8㎞지점 지리산권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산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 600m 거리에 있는 반야봉의 북봉은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이 상록 원시림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반야봉 남쪽 중턱 경사진 고원은 철쭉 군락지로 5월 하순경이면 아름다운

철쭉잔치가 벌어진다. 신라시대에는 정상에(上佛廟)와 '하불묘'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반야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절벽 아래에 '묘향대'가 있는데 이곳은 옛부터 불도들이

수도하는 유서깊은 선암으로 유명하다.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女神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仙桃聖母)또는 마고(麻古)할미, 노고(老姑)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든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을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고 전한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般若)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般若峰)'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般若 .범어 Prajna] - 분별이나 망상을 떠나 깨달음과 참모습을 환히 아는 지혜.

                               즉,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밝은 지혜.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큰 사진이 뜹니다.>

 

▲ 09:50   '천은사 매표소' - 광주 동광주 ic에서 1시간여 만에 도착. 입장료 6,400원(2명)

 

▲ 10:18  주차를 하자 말자 쏟아지는 장대비....비...비...

 

▲ 10:33  다행인지 불행인지(?) 10여분이 지나자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 10:40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드디어 '입산'을 한다.

 

 

 

그런 날이 있다                

 

                                         東山 / 金一洙


살다보면 문득 떠나고픈 날이 있다
떠나고 보면 보고픈 얼굴이 있고
가슴 뭉클한 그리움이 태산같이 누워있어
태연한척 침묵하던 상념의 날도 있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날
진한 커피 한 잔 마시며
텅 빈 가슴 채워줄
땀내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픈 날이 있다

매미 소리가
나뭇가지를 흔들어 깨우고
따가운 햇살이 나뭇잎에 입맞춤 할 때
유년시절 이사 간 옆집 친구를
만나고픈 날이 있다

가끔은 가슴에 묻어나는 어린 사연하나
하늘거리는 바람꽃 따라
잊혀진 내 작은 삶에
물음표를 달고픈 날이 있다

 

 

▲ '코재 전망대' - 구름에 덮힌 화엄사 계곡을 바라보는 아내

▲ 큰까치수영(큰까치수염) -

 

▲ 뱀무

 

 

 

▲ 11:25  노고단 대피소

 

▲ 큰달맞이꽃 -

 

▲ 11:40  노고단 정상 출입문 - 호우로 인해 출입금지.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북쪽으로 심원계곡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크나큰 봉우리

다. 노고단 산자락의 끝에 천년 고찰 화엄사가 자리해 한층 위엄을 갖추었다.

 성삼재를 넘는 관광도로가 열린 후 한층 가까워진 노고단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로 떠올랐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으로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고산 휴양

지로 알려졌다. 신라의 화랑이 이곳에서 심신 수련을 했고, 일제시대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나 건립하고 이 곳에서 여름을 났다. 6·25동란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돌로 지

은 담벼락과 집터가 남아 있다. 노고단 산장에서 10분 오르면 여성의 둔부처럼 솟구친 반야봉과 아스

라이 천왕봉이 보인다.

 노고단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과 운해, 한여름의 원추리 군락이 유명하다. 또 석양 무렵에 하늘을

가득채운 고추잠자리떼도 장관이다. 산행다운 산행을 하고 싶다면 화엄사에서 노고단을 올라 성삼재

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내려오거나, 산길을 걷고 싶은데 자신이 없는 경우 성삼재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 노고단에서 화엄사로 내려올 수 있다.이도저도 싫다면 성삼재에서 노고단 산장까지 가서 1시간

코스인 산책로를 따라 둘러보고 내려와도 된다.

 

▲ 11:47  '반야봉' 예서 5.5KM구나...자욱한 구름사이로 가만히 발을 내딛어본다.

             빗줄기가 간간히 뿌려대는 지리산의 우중산행이 이제 시작된다.

             돌아설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삶의 길처럼...결코 돌아서지 못하는 입산이다.

             '반야(般若)' 당신을 만나서 나도 깊은 '깨달음'을 이루리라...다짐하며.

 

▲ 기린초

 

 

반야 (般若) 란 ?

 범어로 "프라즈냐"(Prajna) 라고 하며 팔리 어로는 "판냐"(panna)라고 한다.
"반야"는 바로 팔리 어 "판냐"의 음역어로서 '마하'와 같이 그 발음만 따서 옮긴 또 다른 예 이다.

 이 또한 마하 에서와 같이 '반야"라는 의미를 중국말로 옮기기에 적당한 단어가 없었으므로 그

의미가 퇴색됨을 우려해 따로 번역하지 않고 "반야"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야" 또한 우리 범부의 '사량(思量)'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일 것이다.

 "
반야"를 굳이 번역한다면 '지혜(智慧)'라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최고의 지혜 즉 깨달음에 이르신 "부처님"의 밝은

지혜를 의미한다. 그러니 부처가 아닌 범부중생으로서 어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단어 이겠는가.

 

▲ 싸리꽃

 

▲ 노루오줌


'지혜'와 비슷한 단어로 '지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지식은 지혜와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우리들이 계산하고 암기하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지식'이라 한다면

'지혜'는 이러한 범부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초월하는 것이다.

"반야"의 지혜는 머리를 굴려 생각하고 분별하는 일련의 행위에 대해서 오히려 버리고 비울 것을

강조한다. 인간의 생각에서 오는 지식은 오히려 우리의 정신세계를 복잡하고 혼란하게 만든다.

 

▲ 지리터리풀 - 지리산에서만 볼 수 있다는 여러해살이풀.


이러한 '지식'은 업(業)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지식들을 모두 비우고 놓아버려야 한다.
방하착(放下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의 맑은 불성(佛性) 본래면목 자리에 모두를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세간의 지식을 부여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식들이 '머리 굴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 원추리

 

▲ 물레나물


일반적으로 지혜라고 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수가 있다.

첫째, '관조반야(觀照般若)'인데 이것은 일체의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정견(正見)하는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제법(諸法)의 실상 즉,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고정된 바 없이 비춰

보는 지혜'를 말한다.

2500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젊은 청년이 오랜 수행 끝에 성취한 깨달음의 지혜가 바로

'관조반야'인 것이다. 싯다르타는 어떤 신(神)과도 같은 절대적 존재에게서 깨달음을 받은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도움으로 깨닫게 된 것도 아니다. 오직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아 현실 세계의

모습을 여실히 깨달은 것이니 이 지혜를 '관조반야'라 하는 것이다.

 

▲ 막...샤워를 하고 비누냄새 솔솔 풍기며 우리를 맞이하는 '지리터리풀'

 

둘째, '실상반야(實相般若)'이다. 실상반야는 제법의 실상 그 자체를 말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의 모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세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자가 보이는 현실 세계와 우주가 하나 될때 이것이 바로 '실상반야'인 것입니다.

이러한 '실상반야'를 우리가 바르게 깨달아 바르게 비추어 보게 되면 이것이 바로 '관조반야(觀照般

若)'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일체의 모든 존재에 불성이 있고 법신 부처님이 두루 편만(遍滿)해 계신

다고 할 때 바로 이것은 '실상반야'의 모습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방편반야(方便般若)'이다. 이것은 '문자반야(文字般若)'라고도 불리는 것으로서 이상의

'실상반야'와 '관조반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일체의 모든 경전을 의미한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반야"는 아니지만 "반야"지혜를 이끌어 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방편이 되는

것이므로 "반야"라고 한다.

이러한 문자반야 즉 경전이 없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많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불법을 공부하는 모든 이에게 나침반과 같고 뗏목과 같은 수단으로 쓰여 깨달음 즉 반야에 이르는

중요한 방편이 되어 주므로 '방편반야'라고 하는 것이다.

이상 삼종의 반야는 "부처"님의 지혜인 깨달음의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한 세 가지 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흔히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라고 일컫는 것은 진리의 당체(當體)인 실상반야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13:28   노루목 - 반야봉을 향해 더 높은 구름속으로...들어간다.



 이 실상반야에 이르기 위해서 실상반야를 체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계를 밟아가야 한다.
무조건 수행만 한다고 해서 반야를 체득하는 것도 아니요 반대로 "부처"님 경전을 읽기만 하고 실천

하지 않는다면 팔만대장경을 줄줄이 꿰어도 헛고생에 불과할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전을 읽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방편반야 즉 문자반야 이다. 이렇게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 나오는 것이 바로

'방편반야'의 지혜인 것이다.

이렇게 방편반야로 공부를 한 뒤에는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 실천이 바로 관조반야 이다.

'관조반야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편견 고정관념 없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는 실천 수행법' 이다.

 

▲ 일월비비추.

 

젊은 싯다르타가 깨달은 "부처"님이 되신 것 또한 바로 관조반야에 의해서인 것이다.
이렇게 방편반야로 "부처"님의 법을 이해하고 그 후 관조반야를 실천했을 때 나타나는 진리의 실상이

바로 실상반야인 것이다.

이 세 가지 반야는 불교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신.해.행.증(信解行證)의 길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신(信)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라고 할까.

믿는다는 것은 모든 불교 수행의 기본이 되는 밑거름 이다.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절을 하고 매일 절에 나와 불공을 드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 일체의 괴로운

경계를 '방하착'하며 비우는 실천을 행하는 이들이 열심히 수행 정진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포기하는

이유가 바로 믿음의 결여 때문인 것이다.바른 믿음이 없기에 의심을 가지고 수행을 하게 되니 이렇게

의심을 가지고 하는 수행에 어떤 힘이 붙을 수 있겠는가.

 

▲ 돌양지꽃 - 반야봉 오르는 가파른 언덕배기 바위틈새에...사이사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물안개는 꽃 사이로 그렇게 빠져나간다. 내마음에 그리움만 남겨두고서...


믿음이 밑바탕이 되면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힘써 배워야 할 차례 이다.
이것이 바로 '해(解) 즉, 올바른 이해' 이다.
경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실천 행이 뒤따라 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실천 행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해'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수행은 열심히 하는 사람도 경전을 읽고 강의를 듣고, 불법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 꿀풀.


이런 생각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부처"님도 2500년 전 당시 제자들을 교화하고 전법 하실 때

'법을 설함으로써 가르침을 전달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굳은 믿음을 가지고 불법을 배워 실천 수행을 하게 되었을 때 행[行]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증(證)'인 것이다. '증' 이란 작은 의미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수행을 하였을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크고 작은 깨달음을 의미한다.

불법을 생활화하는 가운데 환희심을 느끼고 나름대로 증을 경험하게 되는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의 작은 깨달음은 우리들에게 보다 굳은 신심(信)을 가져다 준다.

그렇게 되었을 때 다시금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해 지는 것이다.
이리하여 신, 해, 행, 증 이후엔  또다시 신, 해, 행, 증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보다 큰 의미에서의 증은 당연히 "부처"님의 크나큰 반야지혜를 증득하는 것이다.
 우리들 생활수행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상 속에서의 작은 깨침 깨침의 조각들이 모두
'증' 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증' 은 또다시 굳은 믿음(信)을 가져다주고 다시금 신.해.행.증

할 수 있는 수행력과 불퇴전의 가행정진을 불러온다.

 이렇게 신 해 행 증의 수행이 계속 되어질 때 결국 "부처"님께서 증득하셨던 밝은 깨침의

반야지혜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이 ‘해, 행, 증’의 단계가 바로 방편반야[解] 관조반야[行] 실상반야[證]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 일월비비추.

 


'반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 힘은 '평등 절대 무념(無念) 무분별(無分別) 비움'의 경지일 뿐 아니라 반드시 상대의 차별 현상을

관조(觀照)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현명함이나 지식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참모습에 대한 눈뜸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반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문제에서부터 지금 이곳 우리의 사회에서 생겨나는 모든 문제 해결이 반야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 동자꽃


 인생살이의 자질구레한 문제에서부터 인간 저마다 개인적인 문제, 사회, 환경, 정치, 경제, 노사문제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문제 등 그 어떤 문제라도 '반야의 지혜'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없다.

'반야의 지혜'는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선입견 편견 고정된 관념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안목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야는 "부처"님이나 산 속에서 정진하는 스님들만이 얻을 수 있는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인 지혜가 아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서 바로 지금 이 곳에서 반야의 지혜를 구체적으로 획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14: 09  '반야'를 만나...다.


 '반야의 성취'는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일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행복을

성취하는 길이고 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한 것이

다.

 반야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살은 열반을 얻으며

중생은 당면한 문제와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14:46   35분여의 달콤 나른한 휴식을 끝내고 이제 반야와 '이별'을 준비한다.

              오늘은 비구름을 뚫고 오느라...지치고 힘들어...

              반야의 얼굴 한번 제대로 못보고 속살 한번 못만지고 돌아서지만...다음을 기약하자. 우리. 

 

▲ 이질풀. - 이질과 설사에 효과가 있다.

 


- 반야심경 * 산 스크리스트 * 원문해석 -

하나...


성스러운 관자재 보오디쌋뜨와는 심오한 지혜를 완성하려고 할 때
존재에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가 있음을 진실로 관조하였으며 이들 속에서
구성요소는 그 본성에 있어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진실로 깨달았느니라.

 

▲ 눈길 머무는곳 그 어디든지 지천으로 피어있는 '지리터리풀'


둘...


오! 샤아리뿌뜨라(Śāriputra) 여 !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으며 실체가 없는 것이야말로 바로 물질적 현상이니라.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서 있는 것은 아니니라.
또 물질적 현상은 실체가 없는 것을 떠나서 물질적 현상이 아니니라. 이리하여 무릇 물질적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실체가 없느니라.
무릇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물질적 현상이니라.

이와 마찬가지로 감각도 표상도 의지도 인식도 모두 실체가 없느니라.

 

 

셋...


오! 샤아리뿌뜨라 Śāriputra 여!
이 세상에서의 모든 존재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 특성이니라.
생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워진 것도 아니고 더러움을 여윈 것도 아니며,

 줄어드는 일도 없고 늘어나는 일도 없느니라.

 

▲ 일월비비추.


넷....


그러므로 오! 샤아리뿌뜨라 Śāriputra 여!
실체가 없다는 입장에서는 물질적 현상도 없고 감각도 없으며, 표상도 없고, 의지도 없으며

인식도 없느니라. 눈도 귀도 코도 혀도 촉각도 의식도 없고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촉각의

대상도 의식의 대상도 없느니라.

안식의 영역에서부터 의식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없느니라.
깨달음이 없으면 미혹도 없고 깨달음이 없어지는 일이 없으면 미혹이 없어지는 일도 없느니라.
이리하여 마침내 늙음도 죽음도 없고 나아가 늙음과 죽음이 없어지는 일도 없느니라.
괴로움도 괴로움의 원인도 괴로움의 소멸도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도 없느니라.
아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느니라.

 

▲ 일월비비추.

 


다섯...


그러므로 얻는다는 것이 없으므로 구도자는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이

안주하느니라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그릇된 생각을 여의어 완전한 깨달음에 들어가느니라.
과거 미래 현재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은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시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셨느니라.

 

 

 


여섯...


그러므로 사람은 지혜를 완성시키는 위대한 진언, 위대한 깨달음의 진언, 위없이 높은 진언,
견줄 수 없는 진언은 모든 괴로움을 가라앉히는 것이며 속임이 없으므로 진실하다.고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지혜를 완성하려면 다음과 같은 진언을 외워야하느니라.

가떼에 Gate 가떼에 Gate 빠아라가떼에 Pāragate
빠아라쌍가떼에 Pārasaṃgate 보오디 Bodhi
쓰와아하아 Svāhā

 

▲ 떠나는 발길을 붙잡는듯 '일월비비추'가 하늘 하늘 눈물로 마중한다.

 

 

▲ 산수국

▲ 16:45    5시간만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짙은 안개로 인해 지리의 넓은품은 구경도 못했지만...산길따라 끊임없이 피어있는

              수많은 야생화와 눈맞추느라, 입맞추느라...지금도 어질어질 하구나.

 

▲ 17:34   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우산을 쓰고 하산하는 노고단 탐방객 모습.

 

 

▲ 약 7시간 20분 주차장 이용했는데...주차비가 9,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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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사찰 '천은사'를 들렸다 왔다.

    오락가락하는 비...그 사이로 잠깐 얼굴만 내밀고 눈도장만 찍어두고서.

 

남방제일선찰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절은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펼쳐지고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워낙 광대한 지리산자락이라 교통이 불편하였으나 지금은 노고단에 이르는 지방도로가 절앞까지 이어져 있고 화엄사까지 직통하는 도로가 놓여 있어 어렵지 않게 절을 찾을 수 있습니다.산문과 일주문을 지나 독특하고 운치 가득한 수홍문을 건너 절을 찾는 즐거움은 아주 특별합니다. 지리산의 빼어난 산수와 풍광 그리고 그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만나는 것은 더 없는 보람일 것입니다.


             - '천은사' 홈페이지에서 퍼옴 -

 

▲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덕운선사가 처음 세운 절로서 '감로사' 또는 '천은사'라 하였다.

    임진왜란때 불에 타 버렸으나 조선 광해군 2년(1610년)에 혜정선사가 다시 지었다.

    숙종 2년(1676년)에 또 불에 탔고 그 이듬해 또 절을 지었으나 영조 49년(1773년)에 불에 탔다.

    영조 51년(1775년)에 혜암선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절에는 감로천(甘露泉)이라는 샘이 있어 '감로사'라 하였으나 샘물이 숨어 나오지 않자 조선

  숙종 4년(1677년)부터 '천은사'라고 불리었다 한다.

 

절 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바뀌었다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렸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한다."

 

    이 곳에는 보물 1점(극락보전아미타후불탱화)와 지방문화재 2점(금동불감, 극락보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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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군 광의면 대전리 들녘에서 바라본 구름에 덮힌 '성삼재' 모습.

 

 

 

 아내와 함께 비를 맞으며 맞으며 지리산 '반야봉'엘 다녀왔다.

 아내도 첨이고...나도 첨이다.

 '노루목'에서 항상 스쳐 지나기만 했던 '반야봉'...오늘 그 촉촉한 당신품에 안기니.

 

 자욱한 구름이 앞을가려 여기가 시방 어디인지...도통 분간마저 어렵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하고 두려움 하나 없는것은 비를 피해 달려온 따뜻한 당신 품이기에.

 고통과 고난의 험한길 올라 올라...반야의 지혜를 깨닫는 성스러운 곳이기에.

 

  멀리서 떨어져 바라보면 산 정상에 위엄스레 자리잡고 앉아있는 '구름'도

  그 속으로 들어가면...사람 마음처럼 알 수 없는 '원망'으로 맴돈다.

  한없이 이어지는 산이랑을 헤일 수 없으니 그게 원망스럽고...

  스쳐지나는 낯선 산님과의 '인연'을 그냥 흘러보내니 그것도 원망스럽고...

  앞서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 그거 또한 원망스럽다.

 

  그러나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다 했던가.

  하루종일 땅바닥만 쳐다보고 산길을 걸었더니...그 많은 야생화를 가슴에 담아오지 않았나.

  질퍽한 지리 능선 그 백리길에 이런 화원이 있다는거...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눈이 멀지않아 다행이지.

 

 '지리터리풀' 그 예쁜 속살 비에 다 젖어 촉촉한 그리움으로 내가슴에 묻히고

 '일월비비추' 불쑥 쏟아난 작은키에 늘씬한 몸, 적당한 꽃망울 이고 앉아 하염없이 하늘거린다.

 '원추리' '동자꽃' ''뱀무' '큰달맞이꽃' '물레나물''이질풀' '큰까치수영' '기린초'....

 그리고 또...뭐가 있더라. 아! '노루오줌'과 바위틈에 바짝 업드려 앙증맞게 피어있던 '돌양지꽃'

 

  숲속이 어두워 담아오지 못한 야생화, 빗줄기 때문에 그냥 스쳐간 야생화.

  길가 가로수처럼 그 많은 꽃들을 누가 다 피어냈을까.

  하늘정원...천상화원이 여기일까. 싶었다.

 

  내 아내도, 그래서 오늘은...예쁜 야생화가 되었다.

  이젠 항상 나를 앞질러 가는 아내의 예쁜 뒷모습은...비에 젖은 머리 모습이

  '달맞이꽃'을 닮은듯 하다.

 

  2006.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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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18 16:49

    첫댓글 지리에 아름다운 야생화 즐감 하고갑니다.

  • 06.07.18 23:46

    아름답고 부럽습니다.^^*

  • 06.07.19 07:03

    내 아내도, 그래서 오늘은...예쁜 야생화가 되었다. 이젠 항상 나를 앞질러 가는 아내의 예쁜 뒷모습은...비에 젖은 머리 모습이 '달맞이꽃'을 닮은듯 하다. 사랑과 행복이 묻어 남니다.

  • 06.07.19 07:47

    글,사진,야생화 즐감했습니다.

  • 06.07.19 16:39

    두 분이 오롯이 산행을 하셨군요. 글, 사진, 잘 감상하고 갑니다.

  • 06.07.19 18:07

    야생화 라고 하지만 너무 예뻐요 그리고 유진이 딸래미δ로 바꿨답니다.

  • 06.07.19 21:28

    좋은글과 사진 감사하고 많이 배워 갑니다.

  • 06.07.20 13:37

    즐감하고 갑니다.

  • 06.07.20 17:25

    사진 잘 보았읍니다.부럽습니다.

  • 06.07.21 00:04

    그 어떤 시보다 더 아름다운 글과 사진들....잔잔한 맘으로 잘 감상했습니다....산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시는 산꾼 여러분들이 넘 존경스럽습니다...산을 못타는 행락파인 제 입장에서...ㅎㅎ

  • 06.07.26 17:22

    들꽃도아름다운대 더아름다운건 제우스님 부부네요 저도 행님처럼 하고 싶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06.07.31 11:22

    대단하십니다..정말...행복한 모습 보기 좋네요~~

  • 06.08.03 13:43

    좋은 글과 그 많은 야생화에 좋은 정보까지 덤으로 담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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