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ktikos 프락티코스】의 가르침 '본문 (6-33장)
여덟 가지 생각들에 관하여
6. 모든 생각들을 포함하는 발생론적 생각들은 모두 여덟 가지이다. 첫째는 탐식, 둘째는 음욕, 셋째는 탐욕, 넷째는 근심, 다섯째는 분노, 여섯째는 아케디아, 일곱째는 헛된 영광, 여덟째는 교만이다. 이 모든 생각들이 영혼을 괴롭히느냐 괴롭히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 능력밖에 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이 영혼 안에서 머물러 있느냐 머물러 있지 않느냐, 욕정들을 일으키느냐 일으키지 않느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7. 탐식에 대한 생각은 위, 간, 비장, 수종과 오랜 질병, 생존 수단들의 결핍, 그리고 의사의 부재(不在)를 수도승에게 묘사하면서 그로 하여금 금욕적 수행을 즉시 포기하도록 유혹한다. 또한 자주 그에게 이 고통에 떨어진 어떤 형제들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이따금 이러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에게 자신들의 불행을 드러내고 그들이 금욕적 수행으로 인해 그렇게 되어버린 것처럼 이야기 하도록 설득한다.
8. 음욕의 악령은 다양한 육체의 욕망을 자극하며, 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더욱 강하게 공격한다. 이는 그들이 그러한 고행을 통해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느끼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중단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악령은 불순한 종류의 수행으로 영혼을 굴복시키고 영혼을 더럽히며, 마치 눈에 보이는 그 실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영혼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듣게 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9. 탐욕은 긴 노년과 손노동에의 무능력, 미래의 굶주림, 닥치게 될 질병들, 궁핍의 고통,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생필품을 받는데서 오는 수치심을 제시한다.
10. 근심은 때때로 갈망하는 것들을 얻지 못한데서 온다. 그것은 이따금 분노를 동반한다. 그것이 욕구의 결핍에서 생겨날 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발생한다. 먼저 어떤 생각들은 영혼을 가정과 부모에 대한 기억이나 혹은 이전의 삶에 대한 기억에로 이끈다. 이제 이런 생각들은 영혼이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따르며, 아직 본성상 단지 정신적인 쾌락들에 자신을 내어맡기는 것을 보게 될 때, 영혼을 사로잡아 슬픔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는 영혼이 탐닉해 있던 이러한 생각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데서 오는 결과이다. 사실 그들은 영혼의 현재 삶의 방식 때문에 실재할 수 없다. 그래서 비참해진 그 불행한 영혼은 과거에 대한 생각들에 사로잡히면 사로잡힐수록 그만큼 더 의기소침해진다.
11. 분노는 가장 격렬한 욕정이다. 그것은 사실 우리에게 불의를 행했거나 불의를 행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거스른 흥분과 영혼의 동요라 불린다. 그것은 영혼을 하루 종일 성나게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동안 우리를 슬프게 한 사람의 얼굴을 우리에게 떠올리면서 정신을 빼앗는다. 이따금 오래 지속되고 격노로 바뀌면서 밤에 동요와 체력소모, 창백함과 위험한 야수들의 습격을 야기한다. 격노에서 나오는 이 네 가지 결과들은 아마도 많은 생각들을 동반하여 나타난다.
12. ‘정오의 악령’(시편 91,6b 참조)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아케디아’(ἀκηδια)의 악령은 모든 악령들 가운데 가장 사악한 놈이다. 그는 제4시(오전 10시)경 수도승을 공격하여 제8시(오후 2시)까지 그의 영혼을 포위한다. 먼저 그는 마치 태양이 느리게 움직이거나 혹은 멈추어버린 것처럼, 그리고 하루가 50시간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 다음 그는 수도승으로 하여금 눈을 계속해서 창문을 향하도록, 독방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도록, 제9시(오후 3시)가 가까웠는지 알기 위해 태양을 주시하도록, 그리고 형제들 가운데 누군가가 오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도록 강요한다. 그런 다음 다시 수도승에게 그가 머무는 장소와 그가 하고 있는 똑같은 종류의 생활, 그리고 손노동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형제들 가운데 사랑이 거의 사라졌고, 자신을 위로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일 이 시기에 누군가 그를 슬프게 한다면, 악령은 이 역시 그러한 염증을 증가하는 기회로 사용한다. 그 다음 악령은 필요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또 덜 힘들면서도 더 이익이 많은 노동을 할 수 있는 다른 장소들에 대한 갈망을 그 수도승 안에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사실상 성서에서 하느님은 모든 곳에서 경배될 수 있다(요한 4,21-24 참조)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장소에 달려있지 않다고 그를 부추긴다. 악령은 또한 이러한 생각들에 부모와 이전의 생활방식에 대한 기억을 결부시킨다. 그는 수도승의 머릿속에 인생은 오래 지속되고 영적 수행들은 매우 수고스럽다는 생각을 불어넣는다. 한마디로 악령은 수도승으로 하여금 자기 독방을 떠나 소위 경기장(1고린 9,24 참조)에서 달아나게 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이놈을 따라올 악령은 아무도 없다. 반면 영혼이 승리하면 영혼 안에 평화의 상태와 형언할 수 없는 기쁨(1베드 1,8 참조)이 일어난다.
13. 헛된 영광에 대한 생각은 덕스러운 사람에게 쉽게 숨어 있는 매우 미묘한 생각이다. 이것은 자신의 투쟁을 공적으로 드러내기를 갈망하고 사람들로부터 오는 영광을 추구하게 한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울부짖는 악령들과 치유된 여성들과 그의 겉옷을 만지는 군중을 상상하게 한다. 또한 그에게 사제직을 예언하고, 그를 만나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만일 그가 그들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릇된 길로 빠져 포로가 될 것인지를 그에게 보여준다. 그가 이런 식으로 헛된 희망에 사로잡힐 때, 그 악령은 사라지고 그의 희망에 반대되는 생각들을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교만이나 근심의 악령으로부터 오는 유혹들에 그를 내어준다. 때때로 그가 포로가 되고 거룩한 사제가 되기 직전에 그를 음욕의 악령에게 역시 넘긴다.
14. 교만의 악령은 영혼을 가장 심한 타락으로 이끄는 자이다. 실제로 이 악령은 영혼에게 하느님의 도우심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고, 그 자신이 선행들의 원인이라고 믿게 한다. 그리고 형제들 중 아무도 자신의 이러한 면모를 몰라주기 때문에 그들을 어리석은 자들로 간주하며 그들을 거슬러 거만을 떨게 한다. 분노와 근심이 이 악령에 뒤따라온다. 그리고 악령들 중 마지막은 정신 착란으로서 이것은 허공에 있는 악령들의 무리를 보는 것이다.
여덟 가지 생각들을 거슬러
15. 독서와 밤샘, 그리고 기도는 산만한 정신을 안정시킨다. 굶주림과 수고와 고독은 불붙은 갈망을 잠재운다. 시편낭송과 인내와 자비는 흥분한 영혼을 진정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수행들은 적절한 때와 적당한 정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극단적으로 행해지거나 혹은 정도 없이 행해진 것은 잠시 동안 밖에 지속되지 못한다. 잠시 지속되는 것들은 오히려 해롭고 무익하다.
16. 우리 영혼이 여러 다양한 음식을 갈망할 때, 빵과 물의 양을 감소할 것이다. 사실 포만함은 여러 다양한 음식을 갈망하며, 반대로 주림은 빵만으로 채우는 것을 복된 것으로 받아들인다.
17. 물의 제한된 섭취는 절제에 큰 도움을 준다. 기드온과 함께 미디안을 정복했던 삼백 명의 이스라엘인들이 이에 대해 너를 납득시킨다(판관 7,5-7 참조).
18. 삶과 죽음이 같은 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어떤 사람 안에 사랑과 재물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사랑은 재물의 파괴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 현세 생활 자체의 파괴자이기도 하다.
19. 모든 세속적 쾌락으로부터 도피하는 사람은 근심의 악령이 접근할 수 없는 망루(望樓)이다. 사실 근심은 실재하거나 바라는 쾌락의 결핍이다. 만일 우리가 지상 사물들 가운데 어떤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 적을 몰아내기는 불가능하다. 사실 그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되면 바로 거기에 올가미를 놓아 근심을 만든다.
20. 분노와 미움은 증오심을 키운다. 동정과 온유는 존재하는 증오심조차 감소시킨다.
21. 밤에 악령들이 다가와 영혼을 공포에 떨게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다음날의 전투에서 정신을 더 소심하게 하지 못하도록 해가 질 때까지 분노를 품고 있지 말라(에페 4,26 참조). 사실 무시무시한 환상들은 영혼의 동요로부터 자연적으로 생겨난다. 동요하는 영혼보다 정신을 더 도망자가 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2. 우리 영혼의 정념적인 부분이 번번이 변명을 하면서 몹시 동요될 때, 바로 그때 악령들은 우리가 근심의 원인들을 해결하기 보다는 동요를 피하도록 우리에게 고독이 아름답다고까지 속삭인다. 그러나 욕망적인 부분이 달구어질 때, 악령들은 반대로 우리를 사교적이 되게 하고, 우리가 거칠고 사납게 되도록 부추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육체의 욕망을 느끼는 중에 육체에 걸려 넘어지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순종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반대로 행할 필요가 있다.
23. 너를 슬프게 한 사람과 마음속으로 다투면서 너 자신을 분노에 대한 생각에 넘기지 마라. 또한 계속해서 쾌락을 꿈꾸면서 음욕에 대한 생각에 넘기지도 마라. 그것은 한쪽으로는 영혼을 어둡게 하며, 또 다른 쪽으로는 욕정을 불붙이도록 영혼을 초대한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너의 정신을 오염시킨다. 그리고 기도의 순간에 환상들에 사로잡히고 하느님께 순수한 기도를 바치지 못하면서 너는 즉시 아케디아의 악령에 떨어지게 된다. 이 악령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상태에서 나타나며, 하나의 개의 모습으로 새끼 사슴과도 같은 영혼을 갈기갈기 찢는다.
24. 정념적인 부분의 본성은 악령들과 교전하는 것이며, 어떠한 쾌락에 대해서도 거슬러 싸우는 것이다. 따라서 천사들은 영적인 쾌락과 그것에 따라오는 지복(至福)을 우리에게 제시하면서 악령들을 거슬러 우리의 정념적인 부분을 돌리도록 우리에게 권고한다. 반면에 악령들은 우리를 세속적인 욕망에로 유인하면서 정념적인 부분에게 본성을 거슬러 사람들과 다투도록 강요한다. 이는 인식에서 혼미해지고 쇠퇴한 정신으로 하여금 덕들의 반역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25. 너 자신을 살펴라(신명 15,9 참조). 이는 네가 형제들 중 누군가를 화나게 하여 떠나가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너 자신이 기도의 순간에 언제나 너에게 걸림돌이 될 근심의 악령으로 인해 네 삶에서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26. 선물은 화를 가라앉힌다. 이에 대해 야곱이 너를 납득시킨다. 그는 선물로써 사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 그를 만나러 왔던 에사오의 호의를 구하였다(창세 32,7 참조). 그러나 가난한 우리들은 식탁을 통하여 우리의 부족을 보충한다.
27. 우리가 ‘아케디아’의 악령에 떨어진다면, 그때 우리는 눈물과 더불어 우리 영혼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하나는 위로하는 부분이요, 다른 하나는 위로받는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좋은 희망을 심고(2데살 2,16 참조), 거룩한 다윗과 함께 “어찌하여 내가 이토록 낙심하는가? 어찌하여 이토록 불안해하는가?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나를 구해주신 분, 나의 하느님, 나는 그를 찬양하리라”(시편 42,5)고 노래한다.
28. 비록 꾸며대는 변명들이 그럴듯하다고 하더라도, 유혹의 순간에 독방을 떠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독방 안에 앉아 항구하게 있으면서 용기 있게 모든 공격자들, 특히 ‘아케디아’의 악령을 맞아들여 대항할 필요가 있다. 이 놈은 모든 공격자들 가운데 가장 고약하며, 무엇보다도 영혼을 가장 괴롭힌다. 사실 이런 싸움에서 도피하고,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정신에게 무능하고 비겁하며 겁쟁이가 되도록 가르친다.
29. 우리의 거룩하고 매우 실천적인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수도승은 마치 다음날 죽어야 하는 것처럼 늘 그렇게 준비할 필요가 있으며, 반대로 마치 여러 해 동안 육체와 동거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육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실제로 전자는 ‘아케디아’의 생각들을 잘라내고, 수도승을 보다 열심하게 하며, 후자는 그의 육체를 건강하게 지켜주고 언제나 한결같은 고행을 유지시킨다.”
30. 헛된 영광에 대한 생각을 피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네가 행하는 바 자체가 너에게 헛된 영광의 새로운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올바른 생각들에 반대하는 것은 언제나 악령들만이 아니라, 종종 우리가 빠지는 악습들 역시 그렇다.
31. 나는 헛된 영광의 악령이 거의 모든 악령들에 의해서 쫓긴다는 것과 자신을 추적하는 악령들이 몰락할 때, 넉살스럽게 접근하여 수도승의 눈앞에 그의 덕행의 위대함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32. 인식을 얻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모든 괘락을 그에게 제시하는 헛된 영광의 악령의 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사실 무엇이 영적 관상보다 더 큰 것을 그에게 약속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그 인식을 맛보지 않은 한, 하느님께 우리의 목표, 즉 우리가 그분에 대한 인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한다는 것을 보여드리면서 열심히 수행에 전념하자.
33. 너의 과거의 삶과 너의 옛 잘못들, 그리고 네가 고통 중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리스도의 자비를 통하여 ‘아파테이아’로 건너갔는지, 또한 네가 버리고 떠나온 세상이 얼마나 자주 심하게 너를 비참하게 하였는지를 기억하라. 이것을 또한 생각하라: 누가 너를 사막에서 보호하였는가? 누가 너를 거슬러 이를 드러내는 악령들을 몰아냈는가? 사실 이러한 생각들은 겸손을 낳고 교만의 악령을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