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6,33).
제2절 때가 찼을 때의 기도
2598기도의 드라마는,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말씀’안에서 우리에게 완전히 드러났다.복음서 안에서 주님의 증인들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들을 통하여 그분의 기도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은,모세가 불타는 떨기에 다가가듯 거룩하신 주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곧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우리에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주시는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들어 주시는지를 깨닫도록 힘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다
2599동정녀의 아들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또한 당신께서 지니신 인간 심성에 따라 기도하는 법을 배우셨다.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게서 마련하신“큰일”들을 모두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묵상하시던 당신 어머니에게서 기도문을 배우셨다.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과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당신 동포들이 기도할 때 썼던 말과 운율에 젖어 기도를 배우셨다.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벌써 열두 살 때“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2,49)라고 암시하셨듯이,좀 더 신비로운 원천에서 솟아 나온 기도였다.바로 여기에서 때가 차 드리신 기도의 새로움이 드러나기 시작한다.곧,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기대하시던 자녀다운 기도를,마침내 사람이 되신 외아들께서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사람들을 위하여 바치신 것이다.
2600루카 복음은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 성령의 작용과 기도의 의미를 강조한다.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이행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앞두고 기도하신다.당신의 세례와 영광스러운 변모때에 성부께서 당신에 대해 증언해 주시기에 앞서,그리고 당신의 수난을 통해 성부께서 세우신 사랑의 계획을 성취하시기에 앞서 먼저 기도하신다.사도들이 부여받은 임무를 시작하려던 결정적인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먼저 기도하신다.곧,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부르시기 전에,베드로가 당신을“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기 전에, 또한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신앙이 약해지지 않도록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다.성부께서 성취하라고 명하신 구원 활동을 펼치시기에 앞서 예수님께서 드리는 기도는,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지니신 뜻을 겸손과 신뢰로써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의 뜻에 맡겨 드리는 기도이다.
2601“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주님,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루카11,1).그리스도의 제자는 기도하시는 스승을 보면서,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그러므로 그는 기도하시는 스승에게서 기도를 배울 수 있는 것이다.하느님의 자녀들은 성자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고 들음으로써 성부께 기도드리는 것을 배우게 된다.
2602예수님께서는 되도록 밤에,홀로,산으로 물러가셔서 자주 기도하셨다.예수님께서는,강생하심으로써 인류를 완전히 떠맡으셨기 때문에,기도에서도 사람들을 떠맡고 계시며, 당신 자신을 성부께 바침으로써 그들을 또한 성부께 봉헌하신다.“육체를 취하신”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간적인 기도를 통하여,“당신의 형제들”이 겪는 모든 일에 참여하신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나약함에서 해방시키려고 그들의 나약함을 함께 겪으셨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일들은 그분께서 ‘은밀하게 드리시던’기도의 가시적인 표현이다.
2603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드리셨던 두 편의 기도를 아주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그런데 이 두 기도는 각각 감사로 시작된다.첫 째 기도에서,예수님께서는 성부를, 하늘 나라의 신비를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철부지 어린이들”(참행복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분으로 고백하시며,성부를 그러한 분으로 알아 뵙고 성부께 찬미를 드리신다.“그렇습니다,아버지!”하고 예수님께서 외치신 감탄사는 그분의 깊은 마음속을 드러내며,성부의 뜻에 순종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다.이 외침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신 말씀을 반향하는 것이요,또한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시던 중에 성부께 드리신 말씀의 전조가 되는 것이다.예수님의 모든 기도는 그분께서 인간으로서 지니신 충만한 사랑의 마음으로 성부의 “심오한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의로 집약된다.
2604둘째 기도는 성 요한 복음사가가 라자로의 부활 사건전에 기술하고 있다.그 사건은 감사의 기도로 시작된다.“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이 말씀에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예수님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예수님께서는 곧 이렇게 덧붙이신다.“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청하고 계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이처럼 감사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선물을 받으시기 전에,예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 선물을 통해 당신 자신도 함께 주시는 분과 일치하시는 것이다.베풀어진 선물보다도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이 더 소중하다.선사하시는 성부께서 곧 ‘보화’이시며,성부의 아들의 마음은 그분 안에 있다.선물은 “곁들여”주어지는 것이다.
2606죄와 죽음의 노예가 된 인류가 지니온 모든 시대의 온갖 고뇌,그리고 구원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청원과 전구는 강생하신 말씀의 이 ‘큰 소리’속에 합류된다.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이를 받아들이시고,모든 희망을 뛰어넘어,당신 아드님을 부활시킴으로써 그것들을 모두 들어 주신다.이렇게 해서 창조와 구원의 경륜을 통해 기도의 드라마가 전개되고 완성된다.시편집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드라마의 열쇠를 우리에게 제공한다.영원한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눈앞에 두고,성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너는 내 아들,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나에게 청하여라.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땅 끝까지 너의 소유하리라”(시편2,7-8)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발췌
주님,당신의 손으로 저 사내들에게서,
세상살이를 제 몫으로 삼는 사내들에게서 저를 구해주소서.
당신께서 숨겨놓으신 벌로 그들의 배를 채우시어
아들들도 배불리고
나머지는 자기네 어린것들에게 물려주게 하소서.
(시편17,14)
의롭지 못한 이들은 하느님의 계획과 지혜에 따라 벌을 받을 것이다(타르수스의 디오도루스).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그릇된 종류의 유산을 남기기 때문이다(예루살렘의 헤시키우스).“세상살이를 제 몫으로 삼는 사내들”의 특징은 그들이 단지 동물처럼 살고 죽는다는 것이다(피터 럭크만).모든 동물은 세 가지 동물적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데 그것은 자기 보호,자기 번식,자기만족이다.그들은 일반적으로 부유하며 많은 유산을 남기지만 영원한 보상과 복들은 놓쳐버린다.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어리석은 자야,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12,20-21)라고 말씀하셨다.
시편 17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17편은 극심한 곤경에 처한 무죄한 사람이 하느님께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다.시인은 부정을 행하지 않았는데도 부당하게 고소를 당하여 자신의 무죄를 천명한다.그는 주님의 계명의 길을 충실히 걸어왔다.그런데 원수들은 그를 에워싸고 그를 넘어뜨리려고 노려본다.그러나 시인은 하느님만 바라보며 하느님 자애의 기적과 보호를 요청한다.시인에게 하느님은 올바르시고(2절)‘당신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시며 당신 날개 그늘에 숨겨주시는 분이다’(8절).그는 이승에서 보상을 바라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하느님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14-15절).또한 원수들이 파괴되고 자신은 하느님 현존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 기도한다.이 시편은 우리에게 어떤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느님의 자애와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기도하도록 이끈다.그러면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만족하게 될 것이다.(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시편1-41편/전봉순 著)
시방 여릿여릿한 햇빛이
골고루 은혜롭게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있는데,
따져보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무궁무진한 값진 이 선물을
그대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은 절실하건만
내가 바치기 전에
그대는 벌써 그것을 받고 있는데
어쩔 수가 없구나.
다만 그 좋은 것을 받고도
그저 그렇거니
잘 모르고 있으니
이 답답함을 어디 가서 말할 거나
(햇빛의 선물/박재삼)
“뜨거운 햇빛 내리는 8월에‘햇빛의 선물’을 생각합니다.피하려고만 하고 도망다니는 여름햇빛.그햇빛이 선물이듯이 익숙한 마주침,반복되는 일상,짜증과 화,무력감,어제오늘의 자질한 실패,그리고 어쩌면 남에게 말 못 하고 고민하고 있을 마음속 걱정거리도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 그 또한 선물입니다.크고 화려하고 값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작게 마주치는 것들이 모두 선물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햇살이, 어떤 바람이,어떤 비가,어떤 손길이 나를 키웠는지,어떤 고난이 나를 단련시키고 성장하게 만들었는지,마지막까지 지녀야 할 가장 소중한 선물인지 돌아봐야 할 시간입니다. 성하 盛夏의 계절,무더위 한창인 한 여름에 햇살을 선물로 받고 쓴 글입니다.내가 바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선물을 받은 당신,힘내시길 빌어봅니다.”(본문73,75쪽 발췌)
무더운 날씨,
내가 건강해야
행복하다고 하니
끝까지 살아 남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