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전교 탑클래스에서 우열을 가리던 내 친구들이 말했다.
"네가 수학만 잘했으면 우리가 성적을 겨루고 말고 할 기회도 없었을텐데 ..."
정말 그랬다.
처음에는 석간신문을 돌려가며 번 돈으로 '수학1의 정석'이라든가 '공통수학'을 공부하는 새벽반 과외수업도 들어봤지만
중학교 때에 기초를 놓쳤던 나에게 고등학교 수학 과외수업은 애초부터 사치에 가까운 헛수고였다.
그런데도 졸업할 때 전교 4등이었으니 나의 수학에 대한 아쉬움이라든지 열등감은
정말이지 회복할 엄두도 안나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또 하나 힘들었던 것이 수학 못지 않은 수준의 영어였는데
고등학교 때에 중학교 영어참고서를 몰래 보면서 간신히 기초를 다잡아서 어느 정도 성적을 회복할 수 있었던 과목이다.
그래도 보고 읽는 수준이었지 영어를 정복했다거나 만족할 리는 없고
더구나 영어회화는 거의 단어를 간신히 열거해서 의사소통이 될둥 말둥 하는 중학생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정찬용 선생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에
영어공부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 같아 일 년에 몇 권 안 사보는 서점책을 사서 봤다.
영어공부에 대한 해답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정말로 집중해서 거의 하룻밤 사이에 다 읽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써졌는데
밤새서 읽은 그 책의 마무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 한마디였다.
"내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영어공부에 성공한 사람은 K양 뿐이다."
허무했다.
잔뜩 기대하고 읽은 책인데 결과는 작가 스스로 말하길 ... 방송대 졸업하기보다 성공확률이 낮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 책이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걸까?
정찬용선생이 직접 가르쳐도 확률이 낮았던 방법인데, 혼자 책을 보며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것일까?
영어에 목말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을 혹하게 했던 인기의 비결은
그 책의 제목인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라는 카피 멘트였고 광고효과는 적중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책은 학습 지침서가 아니라 소설이었고
정찬용 스스로 그 책에서 쓰기를 ... 그에게 배운 사람 중에 K양 단 한사람만 성공한 효과적이지 못한 방법이었다.
사실 그가 말하는 영어학습법은 " 절대로 학교에서 시험공부 위주로 하는 것처럼 하지말고"
귀로 듣고 익히는 실제생활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겠지만
그 방법도 본인의 말처럼 목숨걸고 매달리는 몇 사람에게만 통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책을 쓴 동기는 자신이 가르쳐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고무되어 썼다고 하던데 ...
헛웃음만 짓고 있는데 그의 소설이 시리즈로 나오고 유사 제목이 유행하면서 들불처럼 번졌다.
일본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중국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 심지어 '개와는 달리기 시합을 절대로 하지마라' ...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정찬용선생의 '정&피플'이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 광고방송을 한다
"더이상 속지말고 ... 영어를 정복하자..." ... !?
이 배신감은 도대체 뭐지?
'공부'라는 두 글자가 없으니 배신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말장난이고...
또 영어에 목마른 수많은 학생들이 저 카피에 '속아넘어가'겠지.
현대는 PR의 시대니까 법적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광고는 그냥 보고있기엔 너무나 화가나는 속임수 광고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자기들이 하라는대로 공부하면 모두 성공한다고 가르치겠지.
그건 세상의 모든 선생들이 빼지않고 말하는 거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거짓말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화나는 것은 정찬용선생이 본인의 저서에서 말했듯이 그의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베스트소설을 낸 사람의 방법이니까 하고 맹목적으로 따라오는 '어린'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이 화나는 일이다.
창작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수학1의 정석을 낸 홍성대 선생이 학원계의 재벌이 되거나
역시 카피라는 평을 듣고는 있지만 성문종합영어의 송성문씨가 그런다면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방법은 일반적이고 성공확률이 매우 높다)
정찬용씨가 '더이상 속지말라'는 카피를 쓰는 것은 그의 책을 읽은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없다.
영어공부에 목말라 하던 많은 사람들을 속인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라는 책의 '소설적인'의 개연성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그 책에서 직접 써서 말한 본인이 가르친 학생중에 성공한 사람이 한 사람뿐이라는 말이
그의 학습법에 문제가 있음을 증명한다.
그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영어에 목말라 하던 사람들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카피문구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였다.
'영어공부 때려쳐라'였던 원래의 제목을 순화해서 출판한 것이라는데
그의 주장은 "학교식 공부방법으로는 안되니까 절대로 그렇게 공부 하지마라"는 뜻이었다고 하지만
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거의 무작정 집중해서 많이 듣고, 우선 사전이나 책은 보지 마라였으니
정말로 한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와 비슷하고
미국인이 모국어인 영어를 배울 때와 비슷해 보이니
독자들에게는 그럴 듯 하게 설득력을 갖는 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인이 외국어를 배울 때 모국어를 배우듯이 하는 방법이라니 ... 웃음도 안나온다.
미국인이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울 때,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배운다는 건데 ...
엄마가 미국인이고, 형제가 미국인이고, 유치원 친구랑 선생님이 미국인이고, 어린이놀이터에서 노는 친구가 미국인인데
어떻게 전혀 그렇지 않은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하라는 말인가?
거기서 생기는 시간적 스트레스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는가?
천만번 양보해서 정씨가 말한 대로 실천해서 영어에 성공한다고 치자.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성공하기까지는 불필요하게 많은 희생과 양보가 있어야만 하고
그 희생을 보상받기에는 그 영어가 별로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어공부를 100점 받으려고 수학 국어 사탐 과탐을 모두 포기하는 시간적 희생이 필요한 방법이라면
어느 수험생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그가 말하는 '무한반복'은 공부의 기본 방법으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배우고 익히는 공자님의 방법(學→習)이 아니라 익힌 후에 배우라는 영절하식 공부는 말장난 속임수이다.
화성인의 목소리가 우주에서 날아왔다고 하자.
이걸 녹음해서 정찬용씨에게 가져가 영절하식 방법으로 수억번 듣고 해석하라고 하면 해낼까?
100년 동안 들어도 못할 것은 뻔한 일이다.
공부는 배운 다음에 익히는 것을 학습이라고 한다.
배우고 시간을 들여서 익히게 되었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냐만은
사전도 안보고 책도 안보고 뜻을 듣지도 말고 먼저 귀에 익을 때까지 익히고 나중에 책을 보라는 영절하식 영어공부는
인류사를 이어온 ... 아니 자연계의 모든 교육방법을 뒤집는 획기적인 ... 거짓말이요 말장난이다.
배우고 100시간을 들여 반복해 듣는 방법을 버리고
안 배우고 1,000시간을 들여 반복해 듣는 공부를 해보라. 결과는 어떻겠는가?
행여나 그가 영절하식 교육이 아닌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르친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더이상 속지말고 정앤피플에서 영어를 정복하자는 광고는 그의 저서만큼이나 황당한 거짓말이요 말장난으로 들린다.
내 일도 아니면서 화나는 이유는 그의 책의 허구성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어린 학생들은
그 거짓말에 또 속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이상 속지말고 정앤피플에서 ... 『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