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공부하는 후배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짧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화를 쓰고 싶은데 말이에요. 도대체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어요."
짧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화라...정말 힘든 일입니다. 요즘 여러 편의 옛 동화를 읽고 있는데요. 짧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동화 한 편을 여기에 올립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안데르센의 '공주와 완두콩'입니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강렬한 풍자가 숨어 있는데, 그냥 읽기에는 아주 참한 공주와 왕자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뜯어 읽어보았습니다. '진짜 공주님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왕자'라는 첫마디부터 예사롭지가 않더군요. 공주나 왕자의 지위에 얼마나 거짓과 위선이 많았으면, '진짜 공주님'을 찾아야했을까요? 특히 '보세요. 이건 진짜 이야기랍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 권력, 지위, 사회적 평가 등의 허상을 단번에 뒤틀어 보여주는 안데르센만의 화법이 느껴집니다. 그녀가 '진짜 공주였다'가 아니라 '진짜 공주라고 믿었다'는 표현에도 그의 날카로운 유머가 들어 있지요. 스무 장의 이불 밑에 깔린 완두콩 한 일이라니. 정말 강렬하지 않나요?
공주와 완두콩
진짜 공주님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공주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공주들이야 이 세상 어딜 가도 많지만 진짜 공주인지 아닌지 그것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답니다.
결국 왕자는, 공주를 찾지 못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왕자는 몹시 슬펐답니다. 진짜 공주와 결혼하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날 저녁, 무시무시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습니다. 장대 같은 비도 쏟아졌지요. 정말 무시무시했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성문을 두드렸습니다. 늙은 왕이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지요.
문 앞에는 한 공주가 서 있었답니다. 비에 흠뻑 젖은 공주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카락과 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빗물은 구두부리로 들어갔다가 뒤축으로 다시 나오고 있었어요. 그녀는 자기가 진짜공주라고 말했답니다.
'그래? 그거야 우리가 알아 낼 수 있지.'
늙은 왕비는 생각했지요. 그러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답니다. 왕비는 곧 침실로 들어가서 이불을 다 걷어 내고 완두콩 한 알을 놓았지요. 그 위로는 스무 장의 솜이불을 깔았습니다.
그날 밤 공주는 그 침대에서 자게 되었답니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그녀에게 잘 잤느냐고 물었어요.
"오, 정말 무서웠어요. 밤새도록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했어요. 침대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예요. 침대 밑에 무엇인가 딱딱한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온몸이 멍이 들었답니다. 정말 끔찍했어요."
사람들은 그녀가 진짜 공주라고 생각했답니다. 스무 장의 이불을 통해서도 한 알의 완두콩을 느꼈다면 그건 공주님이 틀림없으니까요. 진짜 공주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렇게 예민할 수 있겠어요.
왕자는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답니다. 그녀가 진짜 공주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완두콩은 미술 전시실로 옮겨졌답니다. 누가 훔쳐가지 않는 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말이지요.
보세요, 이건 진짜 이야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