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立夏 /강연호
이팝나무 꽃 피면 여름이 온 줄알아라
설마 이팝나무ㅜ 꽃을 보고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지는 말자 고픔에도 예의가 있다
고픔이 성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그저 그렇게만 말해도 될 것 같다
이팝나무 꽃피면 마음 고픈 줄 알아라
새로 도로가 나고 가로수들이 심어지고
그때 무심히 지나쳤던 어린 나무들이
오늘 저렇게 한꺼번에 꽃 피워 제 명함을 들어민다
저요 저요, 고른 잇속을 하얗게 하얗게 드러내며
이팝나무를 이팝나무로 알린다
겨울 내내 창백한 얼굴은 불쑥불쑥 방안에
들이밀어 적잖이 당황시키던 햇살도
낮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들어올 생각조차 않는다
노슥할 만큼 날이 풀렸다는 것이냐
문득 나도 집으로 가는 길을 놓치고 싶다
시절 다 갔는데, 아직도 간간 마음의 눈곱
언제 다 뗄래!
저기 오늘밤도 잠들지 못할 주요소가
까칠한 불빛을 깜빡깜빡 대신 쓰다듬는다
어둠이 지루하게 번지는 저녁
이팝나무 꽃 피면 꽃그늘 아래 가출한줄 알아라
입하(立夏) /서당 이기호
산장의 논배미에서
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꿈틀된다
철새는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아내는 볼가심*으로
쑥 버무림 부침개 저냐*
마련의 분주 하구나
나들이 가지 말라 한다
외양간 처야 하고
광 방 정돈 하고
농기구 찾아 챙겨두고
할 일이 많다 한다
출출하다 말 하소
잘 드시어야
여름지이 하시니 그러지라.
*볼가심 : 적은 음식으로 시장기나 면하는 음식.
*저냐 : 물고기나 쇠고기 붙이를 얇게 저민 뒤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씌워서 번철에 지진 것.
오늘은 입하(入夏) 중 /김영천
어깨에 떨어진
꽃잎을 툴툴 털고 일어서니
우루루 돋아난 새잎들이
모든 길이 된다
가고 오는 것들
늘 감회롭긴 하나
꽃 진 자리마다
저 푸른 하늘
오늘은 미리 봄을 여의고
새로운 소망처럼
네 안에
불쑥 들어와 설까
그 허당 안에
눈물 같이
동그랗게
나를 맺는다
봄날 입하 /이문재
초록이 번창하고 있다.
초록이 초록에게 번져
초록이 초록에게 지는 것이다.
입하다.
늦은 봄이 넌지시
초여름의 안쪽으로 한 발
들여놓은 것이 아니다.
여름이 우뚝 서는 것이다.
아니다.
늦어도 많이 늦은
떠났어도 벌써 떠났어야 하는
늦은 봄이 모르는 척
여름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다.
초록이 초록에게 져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제대로 죽어야 죽는다.
죽은 것은 언제나 죽어 있어야 죽음이다.
죽어서 죽는 것은 기적이다.
초록에서 초록으로
이별이 발생한다.
이토록 신랄하고 적나라하지 않다면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오늘 여기 입하
지금 여기 이렇게 눈부시다.
입하 /김문철
내는
봄이 오는 소리를
내는
봄이 가는 소리를
듣지 못하여
立夏
이때부터 여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 5월 5일경이다
밤새
비 오고,
바람 불고 세상 흔들어
무엇인가 하였지요
요란스럽게 여름이 오는지라
내
여름이 오는 소리를
들었지요
너는 장미꽃 피어나면
여름이 오는 것이라고,
내는 이팝나무 피어나면
여름이 온다고 말하고 싶다
입하 /최백규
목련 그늘 옆에서 네가 허묘를 파고 있다
착한 아이야 여기 몸을 가지런하게 벗어두고 떠났구나
어린 가지에 걸린 낮달이 해지듯
나는 시름없이 누워 피가 도는 입술을 문 채 앞으로 식어갈 바람 따위를 헤아려 본다
슬하의 산등성이가 뼈와 살을 털고 흰 영혼을 몰아쉴 때까지
백지를 넘기며 싯푸른 목탄 냄새나 맡고 싶다
좋은 날마저 하품하듯 마르고
툭 하니 돌을 골라내는 손을 보면 헛웃음이 샌다
잔풀 아래서 함부로 헤집어지는 일을 열사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새끼를 치는 고라니가 처서 즈음을 건너다 보고
그 깊은 눈동자 뒤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다
돌아가자 목이 잠기고 안색이 흐릿하니까
정말로 목련나무가 마냥 져버렸으니까 우리 인제 그만 모두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자
이곳은 내륙인데 여러 물새가 새의 모양을 하고 해안선 너머로 터뜨려진다?
숨이 따뜻한 너와 지상에서 만나 아름다웠다
입하 /곽효환
담장너머 다시 꽃이 피었다 지고
산너머 봄이 머물다 가면
손톱끝에 봉선화 꽃물
대롱대롱 매달려
아스라이 져 가는데
노을빛 고운 저녁무렵
바람을 타고
작은 그리움이 큰 그리움을 부른다.
작은 슬픔이 깊은 슬픔을 부른다.
그리고 혹은 그렇게
여름이 왔다....
입하(立夏) /박신규
총상화서로 번진 파국,
땀내 찌르는 미련처럼
자욱하다 아까시 찔레 향기
변심한 너의 꽃결 냄새
세상 망가졌다, 죽겠다
쓴다 마지막 편지
하이고메 정신 나갔는갑서야
고향집 담을 넘어오는 미영이 어메 탄식,
찔레 가고 아까시아 지는디
깨도 안 숭구고……
다 가고 지는 봄날에는
깨를 심어야 한다
정신 나간 편지를 찢고
봄비 긋는다
입하(立夏) /박성우
새너디 할매가 마늘밭 풀을 맨다
일자도 장소도 틀림없이
지난해와 똑같은 날, 똑같은 밭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미숫가루 한 그릇 타드리고
쑥떡 한 덩어리 얻어먹는데,
해 지기 전에 비가 칠 것 같다는
한 소식 전해 주신다
이런 날 모종이 잘된단다
그래요?
부랴부랴 읍내 종묘상 다녀와서
고추 모종을 한다
가지 모종을 한다
수박 모종을 한다
호박 모종 심는다
단호박 모종도 단단히 한다
어라, 진짜네?
해 지기 전 비가 쳐서
강변에 매어 놓은 염소 먼저 들인다
굵은 비 아까워서
물외 모종 심는다
참외 모종 심는다
토마토 모종 심는다
빗방울도 방울방울
방울토마토와 같이 심는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저녁 무렵 입하 비가
마늘쫑 뽑는 소리처럼 온다
입하와 소만 /이성하
바람조차 푸르다
해뜨면 나비 날아들고
산마다 소나무꽃 송화 가루
으아리 꽃향기 날고,
들에는 노란 아제비 꽃
여름기운 일어서는 곳
뻐꾸기 뻐뻐꾹
구슬피 울어대면
오솔길에 홀로 누운
언니 생각이 나
가슴은 눈물범벅
진달래 한 묶음 꺾어드니
무수한 풀빛 위에
초여름 산들 빛이
내려와 날개 펴들고
한줄기 바람에
채우고 여물어가니
땅의 세월이나 사람의 세월
다른 것이 없네
저 만치 물러나 앉은
바다의 기억들도
푸르게 싱싱한 오월
예스러운 자리
그곳에 가면
깨끗한 자아를 만나
입하 소만의 푸른 그늘아래
풍요의 삶을 노래하고 싶다
봄과 여름 사이 /이채
겨울은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천사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신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입하 /김이상
비가 내리니
곡우 임하가 생각난다
솟은 건 모두가
시멘트의 위용뿐이지만
자잘한 쇠뜨기의 마디마디에서
냉정했던 희말라야 삼목(杉木)의
연하디 연한 바람에서도
빌딩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생명이 인다.
풀들도
잎새들도
모두들 하늘을 향하지만
캄캄한 땅속
펄럭이는 아우성에
자꾸만 작아지는 나의 그림자
빗소리에 여름 서는 소리가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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