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내리는 비가 많은 것들을 불러온다. 이리저리 만났던 사람들이 기억난다. 정확하게는 마주친 사람들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우발적인 마주침을 사후적으로 마치 필연인 양 응고시켜 버리기 일쑤다.
마주침(encounter)은 우연한 맞닥뜨림이다. 우연히 맞닥뜨린 풀 한 포기에도 취하고 우연히 맞닥뜨린 사랑에도 빠진다. 아무런 의도나 목적 없이 우연한 장소에서 마주치는 만남이 있다. 아무일 없이 간 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곤 결혼했다. 이걸 필연이라 할 이유는 없다. 모든 것의 시초는 우발적 마주침이다. 다만 사후적으로 필연으로 응고시킨 것뿐이다. 태초에 마주침이 있었다.
우리의 경험 대부분은 수동적 경험이다. 예기치 못한 우연한 마주침이 그렇다. 그 누군가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들뜬다. 기쁘다. 충만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사랑을 마주친거다. 마치 자동차 사고나듯. 사랑은 우발적 사건이다. 사건은 이미 벌어진 사태다. 거기엔 어떤 목적도 계획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목적과 계획이 들어선다면 그건 이미 사랑은 아니다. 유희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동적 사건이 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당신이 사랑했던 그 누군가를 만난 걸 기억해보면, 그 마주침은 그저 일어난 게 아니다. 움직이는 노선이 서로 다르지만, 어느 장소에서 둘은 교차한다. 둘 다 빨강 신호등 앞에서 멈추었다. 서로 다른 계열을 지나왔지만 두 계열이 마주치는 장소에 서 있다.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만남이 잠시 이루어졌다. 그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또 다른 마주침에 의해 중단되기까지.
빗줄기가 강해졌다. 빗줄기가 서로 마주치는 소리가 크다. 비가 수직 하강하는 것 같지만, 그중 어느 것은 비스듬히 하강한다. 이걸 ‘클리나멘’(Clinamen) 현상이라 하는데 예측할 수 없는 일탈이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 현상에서 자유를 읽는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읽은 시 한 편이 나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와의 마주침이 없었다면 사울은 바울이 될 수 없었다. 암브로시우스와의 마주침이 없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탕자의 생활을 청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억의 경쟁자를 뚫은 정자와 난자의 우발적 마주침이 없이 ‘나’란 존재는 탄생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이런 마주침이었는지 후회할 일이 아니다. 난 우연의 산물이다. 수억 마리 중 하나의 정자가 창문을 열고 들어가 난자가 깔아 놓은 양탄자에 살포시 착상한 우발적 사건이 나의 인생을 결정한다.
경제학자 김현철 교수는 인생 성취의 8할은 운이라 한다. “데이터가 말해준다. 태어난 나라에 따라 평생 소득의 50% 이상이 결정된다. 부모가 물려준 DNA가 30%, 자라난 환경이 10% 비율로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 운 좋게 대학에 간 것, 사소한 기적들⋯, 따지고 보면 노력과 집중할 힘조차 유전과 양육 환경에서 나온다. 순수한 내 능력과 노력은 제로에 가깝다.”(이코노미조선 2024.1.22.)
결국 인생은 예기치 못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이미 정해진 건 없다. 모든 게 우발이고 우연이다. 매일 걷던 길에서 우연한 죽음을 마주쳐야 하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한 줌의 바람에도 쓰러지는 필연성을 결여한 우연을 짊어지고 사는 우리들이다.
철학은 세계의 기원 혹은 목적과 본질 따위로 응고된 것을 깨는 것이다. 모두 순수한 우연의 효과일 뿐 세계 그 어디에도 영원한 필연은 없다.
오늘 아침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1918~1990)의 마주침의 철학을 생각한다. 세계를 관통하는 어휘는 우연, 우발, 빗나감, 일탈, 마주침 등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그 어떤 결정도 구조나 원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발적 마주침으로 인한 일탈의 자유가 그리운 오늘이다.
첫댓글 🙏🙏🙏
🙏🙏🙏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모든 게 우연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요.
콩 심었는데 팥이 날리는 없으니까요.
숨어있는 인과의 법칙을 우리가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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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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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