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미 있는 예배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신앙생활에 속합니다. 예수를 믿는 어린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신앙생활의 첫째 자리에 위치한 것이 예배 신앙입니다. 현대 교인들의 의식 중에 가장 위험한 흐름은 예배를 소홀하게 취급하고 예배 중심의 신앙생활에 대한 적극성이 약해지고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요소 중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주일을 정상적으로 지키는 것과 주일예배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헌신이 약화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나 성도들은 주일 회복과 예배 회복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주일예배에 빠지는 것은 사회의 흐름이고 세상의 문화이므로 이해해야 한다고 변명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배 신앙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세상의 흐름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말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 분별하록 하라"(롬12:2)
기독교인은 세상을 따르고 세대의 흐름에 적응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문화를 소비하는 부류, 메트 첸틀러). 오히려 어느 시대, 어떤 세상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 민감한 사람으로서 바른 신앙의 가치관을 세워가는 사람입니다. 그 가치관은 질서 있는 신앙을 만들어 냅니다. 무엇이 우선해야 할 신앙인가를 말해주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준을 세워줍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기준이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본성은 편하게 예수를 믿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모든 예배마다 열심히 참석하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소수의 직분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의 줌직이나 예비 중직들만을 위한 의무사항처럼 여깁니다. 예배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 사람들은 1년이 52주일을 모두 지킨다는 것은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간혹 주일을 범할 때는 친구들의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사회생활이 이 시대의 흐름과 문화라며 안일한 예배 문화를 선택합니다.
그런 세속적인 흐름은 어느새 교회 내부에도 깊숙하게 스며들어 주일을 지기지 않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목회자가 주일예배를 과하게 강조한다든지, 예배 참석을 너무 강요하면 교인들은 큰 부담을
느끼고 유쾌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한국 교회의 주일예배 참석률이 2천 년도에 들어서면서 50~60%에 머물게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며 앞으로도 매년 성
장률이 한 자리 숫자를 유지하기도 힘겨워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러한 잘못된 예배 의식과 흐름이 계속해서 나쁜 쪽으로 전염되어 가는 것을 차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명령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회복하고 새 부대를 만드는 예배 변혁이 절실하게필요합니다. 예배훈련학교에 참여하는 여러분은 또 한 명의 방관자(a Spectator)가 아니라 환경을 바꾸고 흐름을 바꾸는 선도자(an initiator)임을명심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신앙 회복과 예배 회복으로 다시 시작해야 될 책임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위치를 잊지말아야 힙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과 축복과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너무 많은 성도들이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그 아름다운 열매들을 경험하지도 못하고 손해 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포기하고 자신이 만든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다가 침몰하는 배(sinking ship)가 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의 파도를 타고 즐기는 것이지 파도 속에 침몰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는 파도 탈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두려움 속에서 바다에도 나가지 못하는 나약한 성도가 되도록 방치한다면 교회는 하나님 앞에 직무유기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르쳐야 될 최고의 가치는 예배 교육 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신을 알려주는 최고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최고의 정상에서도록 하려면 최고의 예배 훈련이 필요합니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 속에서 지켜야 될 최고의 말씀입니다.
롬 9:4-5,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둘째,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고 의 행위입니다.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셋째,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최고의 고백입니다.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처럼 예배는 성도가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않는가를 획인시켜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 훈련을 지속적이며 정기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배 훈련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도록 만드는 신앙 안전장치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나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공적인 예배가 어떻게 드려지고 어떤 예배자를 하나님이 원하시는가를 훈련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예배 훈련은 건강한 예배자를 만들어주고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잘 배워야 합니다. 예배 드릴 때마다 예배의 능력을 힘입는 강하고 참된 예배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예배 훈련의 목적은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어떤 이론이나 철학이나 신학보다 명확한 예배의 답이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려면 성경에서 제시하는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한 바른 정립이 필요하고 성경적 예배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성경의 예배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배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차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에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예배한다는 뜻은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무엇을 예배하고 있는지 예배의 의미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실제(reality)이지 이상(ideality)이 아닙니다. 상상하는 예배에서 이루어지는 성취의 예배가 목표입니다. 지식과 머리로 접근하는 예배에서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대화하는 예배
이사야 1:11-18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식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자의 대화(communication)입니다. 그 대화는 정신, 영혼, 마음, 감정, 내적 확신, 신체, 믿음, 이 모든 것을 찬양으로 고백으로 화답으로 응답으로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예배 속의 대화란 언어의 차원 그 이
상입니다. 말로 소리를 내는 것만이 대화가 아닙니다. 혀로써 표현하는 정도만이 아닙니다. 속삭임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 속에서의 대화란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헤아리는 예배자의 자기 표현(self-expression)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예배자들이 하나님과 대화를 자기중심적 표현(self-sentered expression)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대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의 원리가 작용합니다. 성경에서 대화의 예배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곳이 시편입니다.
시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이름을 송축하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예배란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다 그분 앞에 쏟아놓는 것입니다. 진실한 대화는 감추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일방적이며 불순하며 분노하는 분위기에 이끌려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를 송축하는 대화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배자의 대화가 단절되면 모두에게 괴롭고 지루하고 무의미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된 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을 이사야는 이사야 1장에서 말씀합니다.
대화가 단절된 예배자는 마음보다는 예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책임을 다했다고 스스로 위안합니다(사1:11). 대화가 없는 예배자는 예배의 형식만 충실하며 일방적인 예배 행위에 심취하며 자기 만족에 빠집니다(사1:13, 15). 이러한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을 괴롭히는 종교행위에 불과합니다(사1:11. 13). 그 결과 하나님의 중한 심판을 면할 길이 없게 됩니다(사1.7)
그래서 하나님은 진실한 대화를 원하십니다. 의미 없는 예배를 습관처럼드리는 것보다 우선할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의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1:18절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
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는 말씀은 잘못된 예배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비록 잘못된 예배의 삶을 살았을지라도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진실한 대화의 예배를 기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예배는 예배자의 반응 즉 응답으로 완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에 대한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반응을 하는것이 예배 응답입니다. 예배자의 모든 몸짓과 언어와 표현이 곧 예배 응답에필요한 대화에 포함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 중에 스랍들의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보면서“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사63)하며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며 응답을했습니다.
예배자의 무표정, 무반응, 무감각은 이미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단절된예배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어색하다면 문제가 있는 예배입니다.
대화가 살아있는 예배는 내적으로는구원을 경험하고 은혜를 받고 평안을 누리고 위로를 받고, 외적으로는 기쁨으로 입을 열고 손을 들고 춤을 추며 온몸으로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온 몸으로 대화하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속에서 밖으로 표현하십시오. 생명 있는 예배는 역동적이고 활동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일절 없는 가정이나 직장을 상상해보십시오. 숨이 막히고 탈출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침묵보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예배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봉사로 참여하는 예배
민수기 16:6-9
6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네 모든 무리는 향로를 가져다가7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 8모세 또 고라에게 이르되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밥 웨버(Bob Webber)는 "예배는 동사다(worship is a verb"라는 글에서 예배는 단순하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헌신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단순히 마음에 멈추지 않고행동으로 봉사까지 이어지는 것이 진정한 예배를 만들게 됩니다.
예배를 영어로 워십 서비스(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서비스란 봉사를 의미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자의 상호 봉사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예배자의 역할(worship role)이 있고 예배자의 게으름과 방관적 태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의 예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배의 섬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특권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35절에서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의 섬김은 제일 귀중한 사역이며 첫째되는 예배 사명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통해서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으려 한다면 우리는 귀중한 하나님의 특권을 잃은 자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자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옮겨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 다.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워하게 하자"(삼상13) 이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아시겠습니까?그들은 하나 님께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언약궤를 끌고 다니며 그 궤에다가 구원을 호소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패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빼앗기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삼상4:18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들의 실수가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게하는지 보여주 내용입니다.
회막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 봉사를 위하여 특별하게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봉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의 생사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의 예배 직무는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에 영향력을 줄 정도로 중요한 직무였습니다. 그들이 어떤모습으로 회막의 일들을 돌보고 예배를 위하여 어떻게 준비하고 봉사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대한 민수기 8장의 말씀은 큰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민 8:19,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라 큰일이며 하나님의 사역 중 큰 사역에 해당합니다.
민 16:9,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봉사의 예배는 작은 일이 아니라 큰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큰일이라 해서훌륭한 사람이나 특별한 사람만이 그 일을 감당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작은 부분이라도 최선을 다해 봉사의 예배를 드리면 큰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작지만 최선을 다해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예배로 부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각각 역할을 분담해서 봉사하고 협력하여 하나 되는 예배 공동체가 될 때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사가 사라진 예배는 목회자 혼자만 수고하게 되고 결국 다양성이나 역동성이 결여된 예배를 드리는 요인이 됩니다. 예배 인도자만 예배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예배의 질과 폭과 깊이에서 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예배 형태가 목회자 중심이었다면 이제 협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하는 교회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봉사자들이 예배에 많이 참여하는 협력과 봉사의 교회라는것입니다.
이제는 구경하는 예배(seeing worship)에서 봉사하는 예배(servingworship)로 바꾸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가장 먼저사역할 영역은 예배 봉사입니다. 예배를 위하여 맡겨진 봉사의 크기로 사역을 평가하거나 소홀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예배를 영광되게 하기위하여 힘을 모아 봉사하는 교회가 될 때 예배 역사는 훨씬 더 강력합니다. 예배는 봉사하는 일꾼들의 열매입니다.
- 참조 : '예배훈련학교' / 21C 목회연구소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