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투게더의 집(고전12장 2-20)
출 처| 김삼환목사
교회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느냐?
좋은 교인이 되는 길은 무엇이냐? 교회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여기에 대해서 오리엔테이션을 잘 받아야 됩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 대학에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리엔테이션을 잘 받아야 합니다.
기계를, 물건을 사면 사용설명서를 잘 봐야 잘 다룰 수가 있듯이 교회생활의 오리엔테이션을 잘 받아야 합니다
.
교회생활의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교회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란 말이 교회란 뜻이지 않습니까?
‘에클레시아’란 말이 무엇입니까?
“함께 모인 우리 성도들”을 말합니다.
함께 모인 곳이라는 겁니다.
물방울이 모여서 강을 이루듯이 교회는 하나님의 택한 성도 한분, 한분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함께, 한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한 성령으로 거듭나고, 우리의 구주이신 한분 예수님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함을 얻습니다.
우리가 한 목적을 가지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것, 모든 일에 함께 하는 이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각각 제 곳으로 있어도 교회로 모이면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인 것입니다. 물방울이 골목에서도 오고, 산에서도 내려오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오면 하나의 저수지 안에 물이 되어서 모든 생명을 공급하는 것처럼 우리 교인은 일단 이 안에 들어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의 성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은 그 물줄기를 따라가면 됩니다.
하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좋은 교인이 되는 길이 무엇이냐?
어디든지 교회의 물줄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물에 뛰어들어서 헤엄치듯이 교회는 언제나 뛰어들어 와서 은혜의 헤엄을 치고, 말씀의 헤엄을 치고, 남선교회나 여선교회나 교회학교나 성가대에 열심히 참여하면 거기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숲입니다. 축복의 숲입니다.
이 숲에 그냥 들어오면 누구든지 그냥 복을 얻고,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20년 전에 러시아에 가니까 러시아의 공산주의 정치계 높은 분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할 때 몰랐습니다. 재물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 무리를 선동하다 보니까, 우리가 그 선동에 따라가면서 가다 보니까 공산주의가 되어버리고 나중에 나라가 망하게 된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주창하는 분들에게도 공산주의가 뭐냐고 물으면 분명하게 대답해 주는 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모스코바에서 대회를 해 가지고 모두 공산주의 교육을 시켜서 지방으로 내려 보냈지만 명확하게 공산주의를 설명하는 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공산주의를 통해 모두 다 잘 살게 하는 게 아니라 모두 다 거지가 되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다 거지에 맞춰서 평준화가 된 것입니다.
잘사는데 맞춰야 되는데 누구라도 잘 사는 것을 시기하고, 누구라도 잘 사는 것을 반대하니까 모두 거지가 다 돼버리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잘사는 것에 대해 배는 아파도 우리가 잘 살려고 목적을 두고 가야 합니다. 서울대학교 다니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은 초등학교 나와도 우리 자식은 서울대학 보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예 서울대학을 없이 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좋은 대학은 없애고, 초등학교만 두면 이 나라 학교가 다 좋은 학교가 되는 게 아닙니다.
대학도 경쟁 속에서 발전해야 되고, 기업도 발전해야 됩니다.
다만 경쟁 구도 속에서도 기업이 기업 본연의 역할을 잘 하도록 정부가 이끌어주고, 대학도 좋은 대학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합니다.
있는 사람은 전체의 10%밖에 없으니 있는 사람을 다 없이 하자’ 하면 그 90%가 같이 잘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돈 버는 은사를 받은 분이 돈을 벌게 마련이지 누구나 모두 다 돈을 다 잘 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멘도 안 하네.
운동 잘 하는 분을 없이 하면 경쟁 속에서 못하던 분이 잘하게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경쟁을 해서 잘하는 분이 잘하지, 못하던 분은 아무래도 못합니다.
여러분이 관중석에 있다가 경기장에서 직접 지금 농구한다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는 잘 하는 분을 박수해 주고 우리도 잘 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잘사는 분에게도 박수해 주고 우리도 잘 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배운 사람에게 박수해 주고 우리도 더 배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누가 자동차 좋은 차 타고 다니면 나도 이래 보면서 기분이 약간 그렇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잘 살아서 좋은 차 타도록 열심을 내야 우리 나라가 좋은 나라로 발전하는 것이지 그러면 우리나라가 다 똑같이 리어카만 타고 다니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잘살도록 만들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워 주신 목적은 우리가 다 하나님을 믿어 다 구원받고 다 잘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교회를 세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투게더(together)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은혜와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처음 만드신 곳이 에덴동산 아닙니까?
에덴동산은 나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주가 없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가난이 없습니다.
질병이 없습니다.
불행이 없습니다.
환난이 없습니다.
전쟁이 없습니다.
아픔이 전혀 없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이 세상의 모든 저주가 다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마귀가 들어오지 않습니까?
사탄이 들어와서 아담이브를 유혹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으로 부터 멀리하게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먹지 말아야 되는데 사탄의 꾀임에 빠져 먹어버립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본인 스스로가 죄와 손잡고 마귀와 손잡으면서 사탄의 영이 그 마음에 들어와서 눈빛이 달라지고, 얼굴이 달라집니다.
그 말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모든 행동이 다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불평불만 합니다.
책임전가 합니다.
불행한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데 “전부 너 때문이다”라고 책임전가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느냐? 너 왜 그것을 먹었냐?”
그러니까
“뭐요? 내가 어디 먹었습니까? 저 여자가 그랬습니다. 내가 어디 하나님 앞에 여자 만들어 달라고 그랬습니까? 왜 저런 여자를 내게 주어서 내가 범죄하게 만들었습니까? 저 여자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서로 하나 되어 행복하라고 주었던 아내인데, 그 아내 때문에 불행하게 되었다는 말은 말도 아닌 것입니다.
아내에게 또 물었습니다.
“이브야, 너는 왜 네가 먹고 남편에게 주었냐?”
그러니까
“뭐요? 내가 어디 그렇게 했습니까? 저 뱀이 나를 유혹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뱀에게 책임전가 하면 됩니까?
그렇게 자기를 변명한다고 하지만 그게 변명한다고 될 일입니까?
그렇게 해서 문제를 수습할 수 있습니까?
모두가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가정은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져버리면 어떻게 보면 눈이 더 밝아지고 더 똑똑해지고 더 잘살게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강퍅해 지고 불안해집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마음을 지배 하고 어두움의 영이 마음을 지배해서 마음이 캄캄해지는 것입니다. 입에는 감사보다는 원망불평이 막 쏟아져 나오고, 욕이 막 나옵니다. 책임전가 하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가인과 아벨은 그렇게 사랑스러운 인류 첫 형제 혈육, 에덴동산에 살던 복된 형제였지만 그들 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형이 동생을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어디에서 왔느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원수마귀를 물리치시고, 마귀와 사탄을 다 멸하시고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다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신 것이 교회입니다.
이전에는 보이는 동산, 에덴동산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영적인 에덴동산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함께 하는 새로운 제2의 동산, 이것이 바로 오늘의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나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놀랍게도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우리는 평안이 있고,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환난, 시험, 재난, 사고, 질병을 만나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늘 받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교인끼리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합니다.
도와줍니다.
이해합니다.
서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이제는 책임 전가 하는 삶이 아닙니다.
‘다 내 잘못이다’라고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모든 잘못은 나한테 있고, 잘하게 된 것은 당신 때문이라고 치하합니다.
모든 좋은 일에는 다 당신을 높이고, 집사님을 높이고, 장로님을 높입니다. 교인들 서로 서로 높여가면서 가정이나 교회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분쟁이 있는 곳은 언제나 사탄이 같이 합니다.
분열이 있고, 파괴가 있고, 나누어집니다.
서로 투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곳에는 언제나 배후에 사탄이 있습니다. 부부가 싸우면 그 가정에 사탄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면 내 마음 안에 사탄이 와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분열이 있고, 투쟁이 있고, 싸움이 있으면 교회 안에 사탄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기업 안에 분쟁이 있고 싸움이 있으면 기업 안에 사탄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보면 대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싸웁니다. 얼마 전에는 대기업에 있는 분도 형이 자살해 죽고, 동생하고 싸우다가 죽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지금 너무 이런 일들, 분열과 투쟁, 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학교도 폭력화되었습니다.
가정도 폭력화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왜 그렇게 싸웁니까?
온 나라가 싸움판입니다.
남북이 싸움합니다.
전 세계 중 남북이 분단된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는데 마치 허리 디스크에 걸린 것과 같이 남북이 지금 허리를 못 쓰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심지어 지역 간도 싸웁니다.
세대 간도 싸웁니다.
이념으로 싸웁니다. 정당들도 싸웁니다.
온 나라가 투우장같이 싸움판이 돼 버렸습니다.
가정폭력도 얼마나 심각한지 놀라지 마세요. 작년 1년에 부부간에 싸워서 죽은 분이 몇이었을까요?
남편을 죽이거나 아내를 죽인 사건으로 79명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통계에 잡힌 것만 그렇고, 통계 수치에 안 잡힌 것은 얼마나 많은지요. 병원에 입원해서 살아난 분까지 포함하면 수천 명입니다. 그 전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행했습니다. 100% 남자의 손에 여자가 죽었습니다. 이제는 1/3이 여자가 남자 죽이는 겁니다. 무섭습니다. 조심하세요. 우선 부엌에 칼이 있으니까 강퍅해 졌습니다.
전부 그렇게 나옵니다. 노인이 되어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할아버지가 죽었는데 그 할머니가 죽였습니다. 무서운 시대입니다. 지금은 그전 같지 않습니다. 서로 강퍅해 졌습니다.
이것은 간단합니다. 둘이 속상해 하다가 말 한 마디 때문에 본인들의 성격이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아셔야 됩니다. 내 성격이 일어나면 빨리 자동차 브레이크 밟듯이 멈추어야 합니다.
“사탄이 나를 지금 갖고 오는 노는 구나.” 생각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전에 저도 사탄이 저를 갖고 놀 때가 많았습니다.
사탄이 내 안에서 역사합니다.
내 마음이 미움으로만 가고 있으면 그것은 사탄입니다.
싸움으로만 가면 사탄입니다.
왜? 에덴동산을 파괴하는 것은 간단하니까요.
싸움하면 모든 동산,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서로가 함께하는 동산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행복의 동산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밖에 있는 세력과 싸우다, 어려움을 만나고 위기를 만나면서 발전합니다. 국가도 발전하고 개인도 발전합니다.
그러나 안에서 싸우면 안에도 지고 밖에도 집니다. 안과 밖이 다 망하는 겁니다.
가족들이 불경기를 만나 어려움을 당하면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 간에 싸우면 잘사는 것도 무너지고, 밖으로도 문을 닫고 안으로도 문 닫는 겁니다.
그래서 싸움은 집을 다 망치게 합니다.
싸움의 배후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탄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것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장, 12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특별히 계시록 13장 1절에 보면 바다로부터 큰 짐승이 나오는데 머리가 7이요, 뿔이 10이라고 묘사되는 짐승이 나옵니다. 이 짐승은 싸움을 합니다. 6절에 보면 입을 벌려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을 막 욕하고, 훼방하고, 달려듭니다. 지상에서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다 삼키려고 나섭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 짐승입니다.
이 짐승의 배후에는 뭐가 있다고 그랬습니까?
“용이 이 짐승에게 힘을 주더라”고 말합니다.
그 뒤에는 용, 마귀, 아주 사탄의 괴수가 계속 짐승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로 하여금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을 서로 혼란으로 빠지게 합니다. 나라끼리 일어나게 하고 권력끼리 일어나게 해서 너도 나도 싸움 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이었습니다. 마귀라 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짐승, 이 마귀의 용을 물리치시고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평화의 나라, 사랑의 나라, 서로 하나되는 투게더(together)의 축복을 내려주신 줄로 믿습니다. .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세계가 있는가하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샬롬(shalom)의 세계, 투게더 (together)의 세계가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새로운 에덴동산입니다.
예수 믿는 모든 여러분의 가정, 믿음의 가정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어서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가정, 새로운 피조물,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가정이 된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싸움과 분쟁과 분열’은 사탄의 ‘전매특허’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감사와 나눔’이 하나님의 나라의 ‘전매특허’인 것입니다.
교회 들어오면, 교인이 되면, 교회생활을 하면 투게더(together)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이 훈련을 받습니다. 계속 함께 하는 훈련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부 서로, 투게더(together)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는 서로 교제하며, 로마서 12장 10절에는 서로 앞장서서 존경하고, 서로입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는 서로 합심하고, 로마서 15장 7절에는 서로 받아들이고, 로마서 16장 16절에는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고, 고린도전서 11장 33절에는 서로 기다리고, 고린도전서 12장 25절은 서로를 위하여 같이 걱정해 주고, 갈라디아 5장 13절에는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해 주고, 요한복음 13장에는 서로 발을 씻겨주고, 예수님도 내가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라 하였습니다.
“서로 서로.” 서로 서로 선을 행하고, 서로 참아주고, 서로 순종하고, 서로 용서하고, 골로새 3장 13절, 에베소 5장 21절, 에베소 4장 32절, 에베소 4장 2절, 데살로니가 5장 15절, 히브리서 10장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야고보 5장 12절, 서로 병낫기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입니다. 교회는 전부 “서로가, 서로가” 입니다. 할렐루야!
에덴동산에 무너진 우리의 가정들, 우리의 인격,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습니다. 이 교회로 말미암아 새로운 에덴동산의 은혜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임한 줄로 믿습니다.
따라 하십시다.
“서로 사랑하자.” 할렐루야!
서로 함께 할 때 힘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발전합니다.
모든 발전은 함께 해야 오는 것입니다.
말 썰매 대회를 하는데 한 마리를 끌게 했더니 세계대회기록이 2천km를 끌었습니다. 두 마리가 합했더니 5500km를 끌고 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마리가 합하니 놀라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보다는 둘이 그렇게 힘이 있는 겁니다. 가정이 왜 축복입니까? 둘이 힘을 모으니까, 약점이 많지만 서로가 힘을 모으니 어마어마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고래도 멀리 3천km를 이동하지만 언제나 같이 간다고 합니다. 큰고래도 같이 갑니다. 무엇이든 같이 가야 되는 겁니다.
기러기도 멀리 대륙을 날아가지만 V자를 이루어서 같이 갑니다. 앞에 가던 기러기가 뒤로 와서 서고, 그 다음에는 또 앞으로 가면서 서로 돕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 마리가 힘을 주는 소리를 늘 지른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끼욱~ 힘내, 끼욱~ 힘내” 그러면서 간답니다. 그래 가지고 멀리 떠나는 길도 같이 가면서, 서로를 격려하면서 가는 겁니다. 그래야 멀리 갈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같이 가는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오른쪽에는 양을 두고 왼쪽에는 염소를 둔다.” 그리고 염소는 지옥간다라는 겁니다. 양은 나와 함께 낙원, 천국으로 가는 겁니다. 우리는 양떼입니다. 교회는 양떼입니다.
무리를 이루어 함께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예수님이 왜 염소를 이렇게 말했는지 몰랐지만 시골에서 염소를 많이 먹여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염소 먹이면 너무 속상합니다.
산에다가 메어놓고 저녁에 염소를 집으로 몰고 오려고 하면 두 마리인데도 잘 따라 오지 않습니다.
한 10미터 오다가는 “으~~”그러면서 딱 버팁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 없습니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릅니다. 잡아당기면 좀 오다가도 10미터도 더 못 옵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산에다가 아침에 가서 메어놓고 학교에 갔다 와서 저녁에 다시 데리고 올 때입니다.
아침에 산에 말뚝을 박아놓고 염소가 풀 뜯어먹도록 넓은 곳에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올라가면 염소가 자기를 맨 끈을 다 말뚝에다가 뺑뺑이 돌리고 돌려 가지고 요래가지고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얘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말을 안 듣습니다.
성격이 계속 신경질 나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애 먹일 수 없습니다.
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은 주인을 따라 같이 움직입니다.
주인이 따로 말도 안하고 끌어당기지 않아도 됩니다.
목자가 앞에 가면 양떼가 모두 다 따라 옵니다. 이스라엘 가보세요. 수백 마리가 무리 지어 가는 양떼를 수없이 여러 차례 봅니다.
양은 쭉 따라 갑니다.
그 뙤약볕이라고 해도 제자리에 딱 서면 머리를 전부 아래로 들어서 다 같이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이동할 때도 머리를 들고 따라 오는 양은 없습니다.
다 “아멘”하면서 따라 옵니다.
전부 그렇게 순종하니까 수백 마리 떼도 먹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목자라고 해도 수백 마리를 먹일 수 있습니다. 그게 양입니다. 그렇게 서로 함께 합니다. 더위와 추위를 서로 조절해 주는 겁니다.
염소는 한 겨울에는 둘이 같이 안 잡니다.
나눠 잡니다. 벌벌벌벌 떨면서도 나눠 잡니다.
왜? 둘이 따뜻하게 같이 하면 ‘저 마누라가 얼마나 따뜻하겠냐?’ 그게 싫습니다.
마누라 얼어 죽으라고 기어이 따로 떨어져 자는 겁니다.
참 성격이 희한하죠?
여름에는 어떻게 자냐?
남이 시원하게 자는 거너무 싫습니다. 안 됩니다.
그래서 그 더운데 꼭 그 털을, 밍크를 입고 둘이 같이 붙어 잡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염소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투게더(together)입니다.
우리는 양과 같이 밥을 먹어도 같이 먹습니다. 혼자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 같이 먹어야 됩니다. 같이 사랑하고, 모두 다 같이 손잡고 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도서 4장에 얼마나 좋은 말씀이 나옵니까?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금문교라든지 워싱턴브리지가 옛날에 지었는데도 철사 하나를 묶어가지고 큰 다리를 만들어서 수십만 대가 지나가게 만들지 않습니까?
큰 다리를 만드 세계의 모든 다리가 전부 철사로 묶어서 만든 겁니다.
하나로 묶어지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기는 겁니다.
혼자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묶어지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하더라도 가정을 망칠 때 “분열”을 시키는 겁니다.
부모 자녀 간에 분열시키고 형제간에 분열, 부부간에도 분열. 자꾸 분열하게 합니다.
행복은 아무 것 없어도 서로 하나만 되면 행복은 저절로 모든 찾아옵니다.
하나만 되면 세종대왕도 “아멘” 하면서 다 찾아오고 기쁨이 찾아오고 건강도 찾아옵니다. 아멘도 안 하네. 다 찾아옵니다.
교회도 분열하면, 사탄이 분열 시키면 끝입니다.
은혜로운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다 무너집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더라도 분열시키는 겁니다.
안에 들어가서 장로님과 장로님을 분열시키고 집사님과 장로님 분열시키고, 권사님과 권사님을 분열시킵니다.
요사이 목사하고 장로하고 얼마나 싸우는지 모릅니다. 너무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놀아나는 겁니다. 그 뒤에 짐승이, 마귀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배후에 용이 있습니다.
뒤에서 매일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 몇라운드 했냐?” “오늘 2라운드입니다.” “내일 3라운드 시켜라.” 계속 분열을 진행시키는 겁니다.
우리는 함께 할 때 힘이 나는 것입니다.
발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유럽을 보십시오.
수 믿는 나라들이 왜 잘 되느냐?
하나가 잘되는 겁니다.
로마는 전부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EU는 얼마나 그 큰 나라들, 20개국이 넘는 나라를 다 하나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한 화폐 만들고, 국경 다 없이 하고 한 의회 만들고 한 헌법 만들어 가지고 같이 가는 겁니다.
미국은 180개 이민 민족들이 모였는데도 전부 하나가 되었습니다.
큰 세계를 향하여 나가는 겁니다.
일본도 섬나라이지만 섬들이 하나가 되어서 얼마나 큰일 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만 이렇게 온 나라가 싸움판이 됐습니다.
우리나라 이번에 국회의원 된 분 중 필리핀 여성 한 분이 우리나라에 와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이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사람 중 이민 간 김용은 이번에 세계은행총재가 됐고, 유엔사무총장도 우리나라 사람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나가있는 분이 700만이나 되는데 우리가 어찌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이민 오신 분, 이곳에 사는 이주민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더 축복을 받은 자로서 큰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사랑해야 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외국분도 우리나라 와서 장사도 잘 하고 하면 좋은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온 중국 사람이 짜장면 장사가 안 되어서 다시 모두 돌아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짜장면 많이 사먹고 중국 사람도 같이 살자고 해야지요. 아멘.
따라 하세요.
“함께 가야 한다.”
서로 나누는 말은 하면 안 됩니다.
대립하는 말, 분열하는 말은 아예 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고,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나누고, 강남도 강북하고 또 나눕니다.
강남에서도 또 이쪽 강동하고 강남을 또 나누는 분이 있습니다.
웃기는 겁니다.
여기가 왜 강동입니까?
여기도 당당한 강남이지 무슨 강동입니까?
나누지 말자.
나누지 말자라는 겁니다.
소가 세 마리, 얼룩소, 검은 소, 흰 소가 함께 살았습니다.
천하에 그렇게 에덴동산 같이 평화롭게 살고 아무도 이 소를 대적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사자도 못 이깁니다. 아무도 소 세 마리 삼형제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여우 한 마리가 검은 소한테 가서 “저 흰소가 너 보고 사기꾼이라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화가 났습니다. 또 흰소한테 가가지고는 “검은소가 너보고 바람둥이라고 그러더라.” 뿔이 났습니다.
“지가 바람둥이면서...” 막 그쪽 욕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얼룩소한테 가서 “너는 네 아버지 때부터 너는 인간도 아니라고 그러더라. 물론 인간이 아니고 소지요, 소도 아니라고 하더라.” 라고 소근거렸습니다.
셋이 막 달려들어 싸움하기 시작합니다.
대판 싸우더니 조용해졌습니다. 다 죽어버렸습니다. 사자들이 와서 하나도 손 안 대고 그냥 와서 다 먹고 가는 겁니다.
안 됩니다.
여러분 가정에 투게더(together)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도 이런 식으로 나가면 잘 되는 역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프리카가 왜 못사는 나라가 되었을까요?
원인은 부족 간에 싸움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나라가 자원이 없나요?
석유가 얼마나 많이 나는데요.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석유가 많이 납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 중 나이지리아 대사 하신 분이 나오십니다. 세계 5대 석유 산유국입니다. 나이지리아가 OECD국가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 나라가 안 됩니다.
왜일까요?
서로 싸움하면 안 됩니다.
백인이든 흑인 이든지, 동양이든 서양이든지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서 하나 되고 투게더(together)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함께 가고, 포용하고, 안아 주고, 사랑해 주고, 품어주고, 용서해 주고, 이해해 주고, 감사하고,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받아야 잘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는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는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그랬습니다.
저도 이 말씀 듣고 다 고쳤습니다.
부부간에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기 전에 풀어야 됩니다.
밤에는 잠을 자야 되는 시간인데 평안한 잠을 위해서라도 서로 풀고 자야 됩니다.
“아이 러브 유(I love you.)” 하고 잠을 자야지 잠자는데 그런 증오심을 갖고 서로 섭섭하게 하면 건강에 나쁘죠. 마귀가 역사하지요.
얼마나 손해입니까?
“아아 러브 유(I love you.)”
언제 써먹으려고 사용하지도 않습니까?
아멘? 밤에 어두워지려고 그럴 때 “아이 러브 유(I love you.)” 해 봐요.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따라 하세요.
“아이 러브 유(I love you.)”
오늘 영어 좀 합시다. 투게더(together)!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겁니다.
저도 오늘 아침 나올 때 집사람한테 절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나오면서 “감사합니다.”
왜 내가 그랬을까요? 나 혼자 목회한다고 됩니까?
집사람이 아이들 잘 길렀고, 살림 잘 살고, 수고해 주니 목회 이만큼 잘한 것입니다.
만약 집사람이 집에서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면 내가 무슨 목회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가까이 와가지고 ‘쪽’ 그러니까 오늘 종일 설교가 잘되는 겁니다. 은혜가 되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도 집에 가셔서 모두 감사하다고 하세요.
서로에게 자존심이 무엇 때문에 필요합니까?
말로 서로 행복할 수 있다면 세상에 그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힘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세상인데요.
말 한마디만 잘하면 온 가정이 좋은데, 왜 그런 말 못합니까? 도대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잘 살려고 행복하려고 사는 세상인데 말 한마디, 몇 마디만 “그래 감사하다”
그러면 분위기 좋아지는 일은 왜 못합니까?
투게더(together)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이 이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삶이 다 그런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는 보면 교회도 고린도교회가 싸움을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회도 싸움이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너희끼리 기도하고 너희끼리 풀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생각하면서 교회 안에서 푸는 제도가 다 있습니다.
한전은 한전의 법이 있고, 농협은 농협 법, 군인은 군인의 법이 있고, 국회는 국회의 법이 있듯이 교회는 교회법이 다 재정되어 있습니다.
교인끼리 어려움이 있으면 교회가 어려움이 있으면 교회 안에서 풀어야지 그 법을 가지고 일반법정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경찰관 중 안 믿는 경찰관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사, 장로 앞에 놓고 “너 목사야?”하면서 자꾸 그 앞에 갖다 놓고 검사가 계속 다뤄보세요.
세상에 그렇게 창피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것이 다 밖으로 노출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가려지느냐 말입니다.
왜 일반법정으로 갑니까?
그렇게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쥐가 싸웠으면 쥐끼리 해결해야지 고양이 있는 데 가서 “고양이님, 이것 좀 손 좀 보세요.”
그러면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오늘 점심이 없었는데 잘됐다” 생각합니다.
고양이가 그거 얼마나 좋겠습니까?
토끼가 토끼끼리 싸울 수 있죠. 그러나 토끼끼리 해결해야지 토끼가 여우한테 가면 여우가 얼마나 좋아합니까? 비둘기가 비둘기끼리 해결해야지요.
오늘 한국 교회가 얼마나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은데요, 교회의 일을 왜 그렇게 해결하려 합니까?
오히려 교회 밖에 있는 분들이 전부 교회에게 찾아와서 수습을 해 달라고 이래야죠.
교회가 서로 싸우면 이 세상이 뭐가 되겠습니까?
우리 한국 교회가 싸워서 서로 헤어지던 해, 그 해 6.25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전 해이지 않습니까?
6.25사변은 교회가 대판 싸우면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우리 한국 교회 중 제일 큰 장로교가 싸움을 싸우면서 6.25 사변 일어났습니다. 6.25사변의 범죄는 한국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왔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대단히 싸울 것을 싸운 것도 아닙니다.
다 자기 명예심 가지고 시기심, 질투심 가지고 싸운 겁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우리는 교회도 평화로워야 되고 이 나라도 평화로워야 됩니다. 다 품어야 되고 수습해야 되고 안아줘야 됩니다.
용산참사의 경우, 정부도 해결 못하고 국무총리도 해결 못하고 다 달라 들어도 해결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우리 한국 교회, 저희들 찾아왔지 않습니까?
그 가족들이 우리 교회 다 나오지 않습니까?
와서 해결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해서 해결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런 것을 풀어나가야 됩니다.
고시원 참사가 일어나서 그 많은 사람이 죽고 아무도 해결 못할 때 그 가족들이 저에게 와서 장례식 집례를 해 달라고 왔습니다.
정부 손도 못 대고, 경찰하고 오지도 못하게 하는 문제였는데, 그래도 우리가 가서 다 수습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앞으로 이 나라를 화해시켜야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나아가 모두 이 세상을 화목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화목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했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모두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대판으로 싸우면 세상이 누구에게로 갑니까? 할렐루야!
우리는 안 싸워야 할 싸움은 절대로 싸우면 안 됩니다. 해가 되는 싸움이 있습니다. 그런 싸움은 싸우면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싸워야 할 싸움이 많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가 싸워야 할 적(敵)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화목하고 화평해야 되지만 교회도 싸워야 할 진짜 싸움이 있습니다.
교회가 감당할 싸움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이단과 싸워야죠.
이단이 얼마나 악랄합니까?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데 싸워야 됩니다.
작년에 동성연애법을 들고 나왔습니다.
작년에도 통과되는 것을 막았는데 지금 또 어떤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동성연애법은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국회와 맞서 싸워야 됩니다.
안 되는 겁니다.
그때 내가 싸우면 여러분도 뒤에 지원해 줘야지 나 하나만 싸우면 안됩니다.
국회의원하고 막 달려드는 데 말이지요. 무슨 동성연애입니까?
나라 망치는 일을 추진하면 안 되는 겁니다.
스쿠르 법도 안 되는 겁니다.
공산주의도 안 됩니다.
공산주의는 안 되는 겁니다.
아멘도 안 하네.
공산주의는 다 나라 망하게 하는 것인데 안 되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 자손들을 망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싸움을 교회가 싸워야지, 쓸데없는 일에 감정싸움 싸우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생명 걸고 싸울 일이 뭐 있습니까?
부부간에 싸울 일이 뭐 있습니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입니다.
어제 싸웠지만 하나도 안 싸운 것 같이 “아이 러브 유(I love you.)” 하고 함께 쇼핑 나가는 게 부부입니다.
과거에 백번 싸워도 부부싸움은 없는 겁니다. 한사람이 지나고 나면 그만인 겁니다. 저는 싸웠게 안싸웠게? 싸워도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부부싸움 없습니다. 저는 한번도 싸움한 기억이 안 납니다. (웃음)
여러분, 부부가 하나 되어 잘 살려하면 얼마나 고비 고비가 많습니까? 그 많은 고비에 대해 함께 힘을 모아야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둘이 싸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됩니다.
누가 도와주겠습니까?
도와주려고 부딪혔는데 그거 가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투게더(together)로 나가야 됩니다. 세계로 나아가려면 투게더(together)로 나가야 됩니다. 월드 투게더(World Together) 시대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끼리, 우리 안에 있는 작은 공동체도 하나가 못되면 어떻게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습니까? 온 세계를 품고 세계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려면 언제나 우리는 피스 메이커(peacemaker)로 살아야 합니다. 샬롬(Shalom)으로 살아야 합니다. 서로 도와주며 살고, 만나는 사람마다 손잡아 줍시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이해해 주고, 품어주고, 기도해 줍시다. 축복하고, 사랑해 주고 삽시다. 아멘도 안 하네. 오늘 옆에 분과 실습 해 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하며 포옹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최고입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훌륭합니다. 멋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큰 축복을 받으세요.
외국 사람은 만나면 모두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 합니다.
“갓 블레스 유(God bless you!).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저 어찌되었든 남이 잘못되기만 바라면 그게 다 자기 손해입니다. 오히려 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복을 빌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투게더(together)가 되어 우리나라가 복 받고, 남북이 다 축복받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한 주의 날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우리를 마귀에게 건지시고 우리가 예수님 믿어 하나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서로 기도해 주며, 서로 아끼며, 교회 생활 모두 서로 뛰어들어서 하나의 공동체의 물방울이 되어서 서로 감사하며 은혜의 물을 마시게 하여 주소서 모두 은혜의 숲에 와서 모두 하나 되고 이 숲에서 평안을 얻고, 기쁨을 얻고, 축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믿습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