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己, 정재+정관의 잘못된 만남? feat... 기토탁임
甲辛, 丙癸, 壬己는 정재+정관의 만남인데 왜 사이가 원만치 않을까?
乙목이 정관인 庚금을 만나면 乙庚합이 된다.
丁화는 정관인 壬수를 만나면 丁壬합이 된다.
癸수와 戊토의 만나면 戊癸합, 己토는 甲목을 만나 甲己합, 辛금은 丙화를 만나면 丙辛합이 된다.
위를 보듯이 정재와 정관은 음양합을 이루면서 좋은 협력관계를 가진다.
그런데 甲목이 정관인 辛금을 만나는 辛甲
丙화가 정관인 癸수를 만나는 丙癸
壬수가 정관인 己토를 만나는 壬己는 왜 관계가 원만치 않을까?
이는 양간과 음간의 본질적인 차이로 인한 것이다.
양간은 강한 에너지이고 氣의 모습이니 식상과 재성을 반기고 반면에 음간은 그 에너지의 구체화이며 質의 형태이니 관성과, 인성을 반기는 속성이 있다.
양간인 丙화는 정재인 음간인 辛금을 만나서 정재 辛금과 합을 하면서 辛금 정재를 지키고 보호하며 관리하는
것을 반기고, 음간인 辛금인 정관인 丙화를 만나서 보호를 받고 관리를 받으니 둘의 사이가 좋은 것이다.
하지만 丙화가 癸수를 만나면 양간이 관성을 만나니 마득치 않고, 계수 정관도 양간인 병화를 컨트롤하고 관리
보호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범죄자의 위협을 받는 시민에게 경찰이 출동했는데, 경찰이 오히려 겁을 먹고
몸을 사리고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시민도 사실은 유단자라서 범죄자와 맞서 싸우려는데, 오히려
옆의 경찰이 걸리적거리니 난감하다. 고서에서는 흑운차일(黑雲遮日)이라고 했는데 구름이 태양을 가린다는 의미이다.
壬수가 정관인 己토를 만났을 때, 많이들 알고있는 기토탁임(己土濁壬)이 된다. 기토가 임수의 물을 흐른다는
의미인데, 마치 위의 흑운차일처럼 방해가 됨을 의미한다. 이처럼 양간은 식재를 만나면 좋아하고 그 뜻을
펼치려는데, 음간이 정관으로 와서 꼬장 꼬장 간섭하고 통제하려하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한 음간도 강한 양간을
관리하고 통제하려하니 진땀을 흘려야하니 어려움이 있다. 이는 용의 영역인 십신의 정관+정재의 모습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체의 영역인 음양오행의 양간과 음간의 고유성향을 잘 이해해야 제대로 된 감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음간은 생하고 조력을 좋아하니 관성으로써의 역할이 버겁다.
양간은 극하는 것을 좋아하니 자신을 어설프게 통제하려는 음간의 정관이 가소롭게 보일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사이가 원만치 않은 것이다. 甲목에게 辛금 정관도 이와 같은데 마치 양간 丙화 여자가 음간 癸수 남자를 만나서 살때의 모습처럼 불협화음이 존재할 수 있다.
한편 戊토와 乙목, 庚금과 丁화는 양간이 음간의 정관을 만났지만 사이가 괜찮거나 혹은 좋은 편이다.
토는 존재하는 이유는 생명인 목을 키우기 위함이고 양간이지만 자기 색깔이 뚜렷하지 않으니 乙목을
과묵하게 받아들인다. 乙목 역시 습토인 己토가 더 좋지만 생존력이 좋으니 척박한 戊토에서 살아갈수 있다.
마치 사막에서도 선인장이 자라듯, 도로가에서 풀이 자라듯이 말이다. 천간의 癸수 정재가 乙목을 조력하면
더 좋을 것이니 사막같이 뜨거운 열토에 비가 내리는 모습이고 오아시스가 펼쳐진 모습과도 같다.
庚금은 가을의 응축된 기운이며, 구체적인 형체를 갖추지 않은 미완성의 모습이라 丁화의 제련을 반긴다.
쓰임이 생기려면 구체적인 형체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을 丁화가 정관의 모습으로 도와주기 때문이다.
丁화 덕분에 庚금은 사회성이 생기고, 자신의 쓰임을 인식하게 된다. 경금은 양간이지만 음운동의 시작이니
관성도 반긴다. 경금일간이 직장생활, 조직생활을 잘하는 이유는 그러하다.
물론 위의 설명은 단식이니 사주의 전체의 모습을 살펴야한다.
丙화가 지지에 근이 있어 강하다면 위의 불편한 관계가 나오지만 약하다면 癸수 정관의 간섭과 통제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甲목은 辛금 정관의 통제가 가소롭지만, 신유술 가을에 태어난 약한 甲목이라면 辛금이 더이상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壬수도 마찬가지인데, 사주명리학에서 단식판단이 아닌 전체적인 세력의 구조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것이이러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