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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여행기 스크랩 몽골 기행산문 7 - 초이르는 밤기차를 보낸다
몽랑 추천 0 조회 52 10.11.18 18: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초이르는 밤기차를 보낸다

 

 


                                                                                                                                    박태일


동쪽 사막으로 들어서는 첫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초이르, 빼어난 관광지도 없고 특출한 산업도 번성하지 않은 곳, 그러면서 고비숨베르라는 이름으로 떨어져 나와 자유무역지대를 내세우고 있는 행정지역 소재지다. 그 초이르 걸음은 내 여행 일정에서 늘 뒤로 밀려 있었다. 기차로 동쪽 사막을 두 차례 오가는 걸음에 지나치며 역머리를 살필 수 있었던 게 모두다. 도시 안쪽을 둘러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면서 초이르는 나에게 동쪽 사막으로 들어가는 첫 도시라는 머리 속 그림으로만 굳었다.


몽골도 십이월이면 매운 겨울로 들어선다. 그 십이월 하루 나는 초이르를 둘러보기로 했다. 초이르를 보지 않고 몽골을 떠난다면 실내등을 켜둔 채 아침에 집을 나선 뒤 하루 내내 길거리에서 겪는 것과 같은 불편한 느낌을 남길 것 같았던 까닭이다. 울랑바아타르에서 초이르로 가는 걸음에는 두 길이 있다. 기차를 타는 길과 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하는 길이다. 기차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만 밤 늦은 시각에 초이르에 이른다. 그러니 첫 걸음인 사람은 불편하고 시간도 다섯 시간쯤 걸린다. 잘 닦인 아스팔트 포장길을 이용하는 찻길은 세 시간 남짓이면 닿인다. 정기 버스가 있어 나랑뜨올 시장 동쪽 정류소에서 떠난다.


나는 1시에 떠난다는 그 버스를 탈 요량으로 점심을 일찍 먹고 나랑뜨올 시장 동쪽에 붙어 있는 시외버스정류소로 나갔다. 버스가 나와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초이르로 간다는  택시가 한 대 손을 부르고 있었다. 이미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어 나까지 세 세람, 한두 사람만 더 타면 곧 출발할 수 있을 터였다. 자리에 앉아 얼마 기다리지 않아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 둘이 함께 차에 올랐다. 모두 다섯 사람. 12시 50분에 택시는 초이르로 향했다. 그 사이 정기 버스도 와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안은 아직 한산했다. 겨울에는 하루에 한 차례만 떠나는데 내가 알고 있었던 1시가 아니라 3시에 떠난단다. 일찌감치 택시를 잘 잡은 셈이다.   


얼마 가지 않아 택시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멀리 나가는 몽골의 여느 차들이 그렇듯이 거기서 차삯을 거둔다. 6000 투그릭. 다섯 명이 탔으니 기사는 30000 투그릭을 손에 쥔다. 초이르까지 220킬로 남짓, 그 가운데서 16000 투그릭은 기름값으로 낸다. 통행료도 500 투그릭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기사 손에는 많아야 14500투그릭이 남는다. 차량 소모에 따른 경상비를 생각하면 그에게 득이 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차는 기름을 넣은 뒤 이내 날라이흐까지 한 달음에 닿았다. 울랑바아타르를 벗어나자 마자 눈이 녹지 않은 산야가 펼쳐지고 차가운 공기는 차 안에서도 느껴졌다. 동쪽 능선 아래로 노천 탄광 도시 날라이흐가 멀리 아름답다. 능선 길 오른쪽으로는 날라이흐 공동묘지가 눈 속에 갇혀 있었다. 흰 눈빛에 잿빛 비석들이 더욱 추웠다.


바가항가이를 지나서부터 바깥 풍경이 따뜻해졌다. 황갈색 풀이 말라 붙은 반사막 들과 산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울랑바아타르 기점 87킬로미터였다. 어느새 눈은 깡그리 녹고 없었다. 차창 밖으로 매가 자주 눈에 뜨였다. 아스팔트 길에 앉거나 세로로 세운 이정표 꼭대기에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들판 이저 곳 높은 흙망울 같은 데 앉아서 요지부동인 매도 있었다. 차를 겁내지도 않는다. 날짐승 우두머리에 드는 놈답게 당당하다. 가끔 참새떼가 바삐 날아다닌다. 매와 참새 사이에 살고 죽는 요란한 먹이 사슬이 하루내내 마련될 들판은 조용했다. 작은 마을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들길이다. 2시가 넘어서야 울랑바아타르와 초이르 사이 가운데쯤 되는 곳인 바양이라는 솜(읍)을 지났다. 따뜻해 보이는 바깥 풍경과 달리 바람은 차갑다. 누렇게 마른 풀이 창망하게 펼쳐진 들을 야생 염소인 젤이 멀리서 뛰어다닌다. 못가로 몰려 왔다가는 또 다른 쪽으로 달아난다. 한결같이 겁 많고 조심성 많은 놈다운 행동거지였다.


차가 어느새 룬박을 지났다. 초이르를 17킬로미터 앞둔 마을이다. 낮은 아파트가 서너 동 보이고, 그 곁을 에워싼 판잣집들이 보였다. 한때 몽골을 대표하는 군사비행장이었던 도시다. 러시아 군용 격납고가 열 개 가까이 스산하게 들판 한 쪽에 버려져 있었다. 멀리서도 아파트 창문이 깨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사람이 살지 않고 버려진 도시가 되어버렸다. 러시아군이 머물 때는 번성했던 곳이다. 그들이 떠난  빈 자리를 메울 만한 산업이 빈 상태. 비록 수출자유지역을 내세웠지만 황량한 반사막 한가운데에 무엇으로 돈과 사람을 모을 수 있을 것인가. 룬박 왼쪽으로는 바양탈이라는 이름 그대로 끝 모르게 좋은 들이 펼쳐져 있었다. 




초이르의 비닐꽃




초이르에 이른 시각이 4시였다. 울랑바아타르에서 죽 달려온 포장 국도는 얼마쯤 남쪽으로 더 내려가다 그친다. 그런 다음 사인샨드를 거쳐 중국 국경까지 철길과 나란히 거칠고 긴 비포장 길로 이어진다. 초이르 시가지는 그 국도에서 벗어난 오른쪽에 치우쳐 있었다. 국도와 철길 사이에 시가지가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기사는 같이 타고 온 사람들을 편리한 곳마다 내려 준다. 나는 초이르역에 내렸다. 미리 예약해 두었던 어르트 호텔, 곧 초이르역에서 꾸리는 호텔은 역사와 거의 붙어 있었다. 규모가 꽤 큰 단층 호텔이었다. 만들어진 지가 오랜 탓인지 이모저모 낡은 표시가 역력했지만 손질이 잘 되어 깨끗했다. 사영업자가 꾸리는 일반 호텔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침대가 두 개 놓인 방을 얻었다. 두 사람이 쓰면 한 사람에 5000 투그릭을 받는데 나 혼자 방 하나를 쓰는 데는 하룻밤에 7000 투그릭을 받는다.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초이르는 반사막 도시다. 바닥은 먼지와 흙모래가 함께 만든 잿빛 길이다. 차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바퀴 자국이 뚜렷했다. 높은 건물도 거의 없다. 역 가까이 2층짜리 아파트 건물이 서너 동, 시가지 남쪽에 4층짜리 건물 한 곳이 모두다. 도시 가운데 솟아 있는 붉은 벽돌로 만든 급수탑이 제일 높다. 그 아래로 몇 개의 굴뚝이 솟았다. 나머지는 모두 나무 판잣집들이다. 들에 터잡은 도시답게 띄엄띄엄 너비를 맞추어 앉힌 나무집은 지은 지 꽤나 된 듯 모두 낡은 분위기였다. 세월이 묵히지 않았다면 따거운 사막 햇살에 바랜 탓이리라. 해가 천천히 내려 서기 시작하는 분위기는 시가지를 더욱 가라앉히고 있었다. 동쪽에 커다랗게 떠 있는 낮달도 저녁이 가까워오는 지라 더욱 뚜렷했다. 낮달과 해가 한 하늘에서 제 모습을 한껏 드러내고 있는 모습도 사막에서 겪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집집이 벌써부터 저녁 준비를 하는지 연기가 매캐하게 시가지를 덮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마음도 잰 걸음을  치리라.


시가지를 한 바퀴 돌 요량에 남쪽 철길을 따라 걸어 갔다. 끝자리에서 동쪽으로 다시 걸음을 바꾸었다. 그리 크지 않는 도시라 20분 남짓 걸으니 벌써 시가지 동쪽 끝자락이 보였다. 한 아이가 어둑어둑한 시가지를 벗어나 낮은 들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마 들 어느 곳에 그의 게르 집이 있을 것이다. 가방을 맨 모습이 학생이다. 일행도 없이 걸어가는 그 위로 달이 높다. 시가지 동쪽 끝자리에서부터 낮은 들판은 멀리 30킬로미터 바깥 초이르 산까지 펼쳐져 있다. 노을은 점점 무겁게 가라 앉는다. 사막 노을은 어디에서 보는 것보다 붉다. 해 지는 서쪽뿐 아니라, 햇살이 남은 동쪽 하늘까지 온데 붉은 노을이다. 누군가 하늘에 금비늘을 마구 깎아 흩뿌렸다. 5시 무렵  금방 둘레가 어둑했다. 


그 흐릿한 시가지 가장자리로 어슴프레 반짝이며 살아 나는 놈들이 있었다. 폐비닐 꽃이다. 이저리 철조망에 걸려 핀 놈, 흙바닥에 반쯤 허리를 파묻고 있는 놈, 날아다니고 굴러다니는 놈. 비닐꽃은 메마른 잿빛 사막 도시 초이르에서 유일하게 울긋불긋 다채로운 빛깔을 자랑한다. 어느새 자본주의 상품 소비에 한껏 맛들인 사람들은 이 사막 한가운데를 쓰레기 더미로 덧칠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북쪽 들머리에 있는 쓰레기장이래야 주거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그냥 내버리도록 만들어진 형국이다. 딱히 쓰레기장이라 이름 붙일 것도 없다. 해 내내 동토가 긴 탓인가. 아니면 풀밭을 지키기 위한 유목의 지혜인가. 무덤이고 쓰레기장이고 땅을 깊게 파지 않는 몽골 사람의 오랜 버릇이 비닐꽃을 활짝 피게 만드는 원인인지 모른다. 그냥 버려둔 쓰레기 비닐 봉지는 개나 다른 들짐승이 와서 뒤적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비닐은 벗겨지고 찢어져 봉우리를 맺고 꽃을 피운다. 도시를 덮는다. 긴 철조망에 가 붙어 핀 비닐꽃은 줄지어 더욱 참혹했다. 마른 날씨와 바람 많은 사막에서 번성하는 비닐 꽃잎은 장차 풀을 더럽히고 집짐승의 혀와 몸을 더럽힐 것이다. 초이르 사람들이 그런 쓰레기밭의 심각함을 헤아리자면 아직 시일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당장 챙겨야 할 하루만도 너무나 팍팍한 탓이리라. 


호텔 쪽으로 걸어오면서 저녁 먹을 곳을 찾았다. 흙모래에 발이 빠지는 곳도 있다. 가끔 지나치는 사람의 걸음이 더욱 빨라 보인다. 역 가까이 ‘맛 있는 보츠’라 작은 간판을 내건 식당으로 들어간다. 몽골 사람 두엇이 보츠(몽골 찐 만두)를 먹고 있었다. 나는 고기 칼국수인 고르태셜을 시켰다. 소금을 적게 넣어라 주문을 했더니 주인이 난감한 표정이다. 마늘은 먹을 수 있느냐고 한다. 마늘로만 간을 낼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온 셜에는 소금을 전혀 치지 않았다. 간간히 마늘 양념만 입에 받친다. 주인은 내 눈치를 살핀다. 싱거웠지만 괜찮다고 주인을 안심시켰다. 주인을 비롯해 앉아 있던 손님들도 모두 따라 웃는다. 몽골에 와서 진한 소금간에 겁을 잔뜩 먹은지라 초이르에 와서 까탈을 부리다 도리어 내가 당한 꼴이다. 그러나 몽골 무공해 밀가루의 진한 맛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식당 안은 특이하게 한 쪽이 화장품 가게다. 주인도 따로 있었다. 상품은 많아야 50종을 넘지 않는 것 같다. 식당과 화장품 가게의 동거, 재미 있는 조합이다. 시골다운 기획이지만 특이한 만큼 장사가 잘 될지는 모를 일. 화장품 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음식을 사서 싸들고 하루 점포를 마무리한다. 나도 식당을 나왔다. 저녁이 충분치 못해 가게에 들러 주전부리를 샀다. 롯데 하비스트비스켓과 애플파이가 눈에 뜨였다. 어느 길로 온 것일까. 이 먼 몽골 반사막까지 실려 와서 빨갛게 빛나고 있는 한국산 애플파이 겉봉이 눈에 콕 박혔다.  나는 900 투그릭을 주고 하비스트비스켓과 물 한 병을 산 뒤 호텔로 천천히 돌아왔다.




어르트 호텔에서




호텔 관리인은 몸집이 큰 전형적인 몽골 아주머니였다. 몸집만큼 푸짐하고 친절하다. 이불닛을 갈고, 침대 담요를 깔아주고는 나간다. 그 모양을 아들인 듯한 학생이 방안까지 따라 들어와 쳐다본다. 아마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아들에게 한국인이 와 있다고 했더니 구경삼아 따라 나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그 점을 말해주고 있다. 언제 다시 와 볼지 모를 초이르에서 지낼 내 첫밤을 위해 그녀는 정성을 다했다. 화장실과 세면대가 방밖에 공용으로 마련되어 있어 불편하지만 깨끗하다. 온수가 잘 돌아 따뜻한 방안에는 벽시계까지 걸렸다. 샌들에 탁자와 의자까지 마련했으니 기본 시설은 다 갖춘 숙소다. 가끔 굴러가는 기차 소리가 들린다. 화물차임에 틀림없다. 


따뜻한 방안 기온이 새벽녘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텔레비전을 켠다. 위성안테나를 이용한 텔레비전에서 몽골 방송은 중심이 아니다. 대부분 러시아 방송인 가운데 중국 방송이 한 몫을 보고 있다. 몽골 맑은 별빛 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방송인 셈이다. 프랑스 방송도 보인다. 몽골 방송에 맞추어 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몽골, 여자라면 젊은 치정인 양 어느덧 품어볼 만큼 품어본 셈인가. 몽골, 술이라면 은근히 취하는 토속주인 양 한껏 마셔본 셈인가. 그러고 보니 이제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몽골에 오면 한국 남자들은 거의 살이 빠지고 여자들은 거의 살이 진다고 말 해 준 사람이 누구였더라. 나도 살이 빠진 느낌이다, 언제부터 바지의 허리띠를 조여야 했으니. 


기차 경적 소리가 방밖에서 크게 들렸다. 시계를 보니 9시 25분이다. 아마 4시 30분 울랑바아타르 역을 출발해 자밍우드로 가는 기차일 것이다. 다섯 시간쯤 걸려 초이르에 닿은 것이다. 방 커텐을 열고 창밖을 내다 본다.  길 하나 건너에 철조망이 있고 그 너머로 기차가 서 있다. 제복을 차려 입은 여승무원이 타는 사람들을 점검하고 있다. 기차 안은 어둡다. 어떤 칸 좌석은 아예 불을 껐다. 긴 여행에 벌써 잠이 든 모양이다. 사람들이 오가고, 보쯔를 파는 이가 바삐 그 사이로 보쯔가 있다며 외치고 다닌다. 기차는 다시 온 만큼 더 달려 자정 넘어 동쪽 사막, 도르노고비 행정 소재지인 사인샨드에 이를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달려 새벽에는 몽골의 남쪽 국경도시인 자밍우드에 닿는다. 내린 사람들은 흐릿한 불빛 아래서 마중 나온 사람들과 바쁘게 엉키어 흩어진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 오른다. 그들 가운데는 중국 쪽 국경도시인 에를랭에 물건을 사러 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20분 남짓 기다려 다른 기차를 먼저 보내고 난 뒤 떠나기 시작했다. 경적 소리가 아까보다 더 요란하다. 사막을 오가며 기차 안에서 지켜 보았던 풍경을 오늘은 거꾸로 초이르 쪽에서 바라보고 있다. 곧 역 구내 가로등도 다음 기차가 올 때를 기다리며 모두 꺼지리라. 그러면 초이르역 둘레는 다시 조용해 질 것이다. 


조금 있으려니 호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기차에서 내린 손님이 방을 찾는 소리겠다. 사람이 들고 날 때마다 호텔 문을 잠궈 두는 통에 사람이 올 때마다 문을 두드린다.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가고 서로 손을 흔든다. 개들도 왔다 갔다 배웅에 한 몫을 거든다. 텔레비전에서는 내일 몽골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초이르 날씨를 보니 영하 21도에서 영하 9도 사이다. 많이 추울 날씨는 아니다. 울랑바아타르가 영하 19도에서 영하 10도 사이다. 사막 지역이 울랑바아타르보다 겨울 내내 조금 따뜻한 기온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벌써 그런 낌새를 느낀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그런데 잠이 들었는가 했는데 다시 깬다. 2시 20분이었다. 이번에는 울랑바아타르로 올라가는 기차가 낸 소리 탓이다. 역에서 꾸리는 호텔의 즐거움이자 난처함은 기차가 오갈 때마다 요란한 경적 소리에 잠을 깰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눈을 부비며 창가에 붙어선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승객들은 거의 울랑바아타르로 바로 가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역무원만 진한 주황빛 근무복을 걸치고 바쁘게 오간다. 천천히 허리를 굽혀 바퀴 쪽 기관들을 쇠뭉치로 두드리고 전등을 비춰가면서 점검을 한다. 여승무원들은 아예 기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타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차 바깥이 매우 추운 탓인 게다. 잠든 몇 시간 사이에 창에는 성애꽃이 벌써 두텁게 피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 무성한 겨울 꽃밭이다. 창밖 풍경이 흰 꽃잎 사이로 흐릿하게 흔들렸다.


나는 창문을 열어둔 채 기차가 떠날 때까지 붙어 서 있었다. 차안에서 내다보는 사람이 있다면 환한 가로등 쪽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2시 40분, 다시 기차는 떠난다. 내일 아침 울랑바아타르로 온힘을 다해 달려가 사람들을 내려놓을 기차다. 울랑바아타르 내 기숙사에서 아침마다 개짓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기적을 들려주던 기차가 바로 저것이다. 가만히 사라지는 기차 소리를 한참 동안이나 듣는다. 무엇을 싣고 무엇을 내려놓고 가는 것일까. 언제 보아도 떠나는 기차의 뒷 모습은 애련하다. 세월을 내려놓은 듯 싶기도 하고, 슬픔을 내려놓은 듯 싶기도 하다. 아니면 사막 어둔 골짜기, 거센 흙바람, 번연히 어려운 삶터임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회한일까. 오가는 사람들이 보다 삶의 기차에서 아픔을, 가난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텔 안은 조용했다. 가로등도 꺼졌다. 모두들 잠 속으로 다시 내려간 까닭이다. 나도 그들을 따른다. 잠길이 가볍다. 잠들 때 미리 옷을 껴입고 잔 덕에 추위도 멀찌감치 있는 듯싶다. 


초이르를 떠나며


 


일어나니 6시였다. 언제 왔는지 기차가 서 있다. 지난 밤 11시 무렵에 사인샨드를 떠난 기차일 것이다. 밤 사이 손님이 문을 두드리고 여닫는 소리에 잠시 깬 듯했더니 새벽녘에 깊이 잠들었던가 보다. 이 새벽까지 호텔에 손이 든다. 지금 멈춘 기차를 타고 온 사람인지 모른다. 깨고 보니 춥다. 홑겹 담요로 버티기에는 두꺼운 추위가 느껴지는 새벽이다. 6시 30분이나 되어서야 기차가 떠나고 역 구내 가로등이 다시 죄 꺼진다. 이제 8시나 되어야 날이 온전히 샐 것이다. 7시 무렵 창밖은 아직 어둡다. 방안에서 가볍게 아침을 떼운 뒤 나들이 준비를 했다.


8시에 호텔 문을 나섰다. 10시에 울랑바아타르로 나가는 미크로버스가 있다고 한다. 만약 할증올 약수터까지 가는 택시를 얻을 수 없다면 그 버스로 울랑바아타르로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시가지를 한 바퀴 둘러본 다음 가면 시각이 맞을 것 같았다. 아침 초이르 흙모래 길에는 서리가 하얗다. 밝아오는 여명을 따라 사인샨드로 내려가는 국도를 걷는다. 전봇대가 길 두 쪽으로 나란히 서서 줄줄이 남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 전봇대가 모두 땅 밑으로 들어가거나 아예 하늘 위성으로 바뀌는 날이 올까. 그 때에는 몽골에도 천지 개벽에 맞물릴 만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 근대의 화려한 키다리 아이, 전봇대를 빌린 전화와 전기의 소통에도 한결같이 절박한 사정이다. 


할증올 산에 있는 약수는 초이르 남쪽 50킬로미터에 있다. 스포츠센터 앞에 있는 승강장에 이르니 택시는커녕 미크로버스만 한 대 덩그랗다. 이 추운 겨울에, 그것도 먼 사막 한가운데 산 속 얼어 붙어 있을 약수터를 보러 갈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게다가 얼굴을 콕콕 찌르는 추위는 사막 값을 하느라 더욱 매섭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미 할증올 약수터 걸음을 포기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황량한 겨울 반사막으로 들어섰다 그냥 돌아나가는 것도 매력 있는 일이다. 울랑바아타르 차도 시각을 예상하기 힘든 터에, 다시 더 남쪽 시골로 나가는 걸음은 어렵다. 할증올은 작은 그리움으로 묻어두기로 한다. 우브스와 호버드 그리고 세상의 뿌리라는 올기 아이막, 몽골 서쪽 세 지역은 아직까지 밟지 못한 나다. 그쪽만큼은 남겨두는 것이 몽골에 대한 예의 같았다. 이제 할증올도 그렇게 둔다. 스치듯 지나친 몽골 길만 해도 얼마나 많은 마음 무늬를 새겼던 것인가.


미크로버스 정류장에서는 서너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버스는 이르지도 않았는데, 울랑바아타르로 간다는 택시가 하나 들어왔다. 미크로버스 값인 5000투그릭만 받는단다. 아마 평소 직업적으로 울랑바아타르와 초이르를 오가는 차는 아닌 듯 싶었다. 미크로버스를 기다리다 손님이 차지 않으면 또 다시 낮 2-3시까지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사람과 나, 그리고 젊은이, 모두 네 사람을 태우고 중고 택시가 초이르를 떠난 때는 9시 50분이었다. 기사는 먼저 어느 호텔로 차를 몰고 가 다른 차 트렁크에서 껍질을 벗긴 양 한 마리를 꺼내 뒷 트렁크로 옮겨 싣는다. 아마 어젯밤 초이르에서 더 떨어진 시골에서 와서 호텔에 묵고 아침에 출발하는 모양이다. 양은 울랑바아타르에 가지고 나가 팔아서 요긴하게 쓸 요량이리라. 기름을 넣은 뒤 초이르를 빠져나온다. 얼마지 않아 초이르 공동묘지가 보였다. 너른 초원에서 확 눈에 드는 것은 늘 집짐승과 게르 그리고 공동묘지다. 그 밖에 모든 것은 단순하게 선으로 가꾸는 몽골. 초이르 공동묘지는 사막 가운데 다소곳이 앉아 있다. 산이 없으니 들에다 그냥 썼다. 비석들이 죄 작다. 모든 사람의 흔적은 스스로 규모를 줄인 채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사막 아니던가. 


거의 30분 남짓 달린 뒤 기사가 잠시 차에서 내려 손전화를 건다. 나도 내려 사진을 찍었다. 옆에 앉았던 아주머니 둘이 그제서야 내가 외국인인 것을 눈치챘다. 그때부터 나에 대한 두 아주머니의 질문이 호두를 까듯 요란하고도 당황스럽게 이어졌다. 누구 집에서 잤느냐, 호텔에서는 누구와 잤느냐 들들까지 캐묻는다. 아마 국제혼인을 하기 위해 한국 사람이 이곳까지 왔다 간 모양이다. 그들의 몽골 자랑과 한국에 대한 관심까지 손짓 눈짓으로 주받으며 더듬거리다 보니 차 안이 시끄럽다. 그들 질문이 그친 때는 울랑바아타르로 거의 반이나 넘게 달려온 뒤다.


그녀 둘이 졸다 말다 조용해 진 다음, 차창 밖은 황갈색 풀밭과 잔설 쌓인 언덕배기였다. 줄지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차는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매. 어제 올 때보다 훨씬 더 자주 눈에 뜨였다. 거의 몇 백 미터마다 한 마리씩 있는 성싶었다. 날아 오르고 내려 앉는다. 그렇지 않으면 도토리 껍질 같은 갈빛 몸매로 조용히 높은 데 앉아 한 곳을 노려보고 있다. 어느 놈없이 혼자다. 짝을 지은 법이 없다. 봄이 오면 암수로 어울릴 터이지만 지금은 혼자다. 한 마리 추운 사막의 매, 고독한 마침표. 어쩌면 불혹의 몸짓을 배우고 있는지 모른다. 매가 뿜어내는 묘한 당당함과 쓸쓸함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어젯밤 멀리 사막 도시 초이르에 남겨두고 온 기차의 따뜻한 경적 소리를 떠올린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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