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하늘길이 닫혀있던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을 성공시켰다. 오래전, 우리네의 부모님들께서도 제주도를 종종 찾으셨지만, 오늘날의 제주도는 바다와 자연환경을 포함해 다채로운 즐길거리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던 방식에 다양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고, 스마트폰 갤러리에 꽃 사진이 늘어난다면, 나이를 먹기 때문이라던 그 농담도 고리타분한 것이 됐다. 요즘은, 비행기를 타고 다른 언어를 쓰는 곳으로의 여행보다 개인적으로 제주도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나는 자동차 면허가 따로 없다. 그렇기에 제주도 구석에 자리한 곳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데, 정차의 순간이 지속될수록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제주도의 모습을 기억에 각인시킬 수 있어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곤 한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버스가 성산읍 또는 바다삭 언저리를 지나던 순간, 차창 밖으로 보이던 에메랄드 빛 바다를 사라질 때까지 즐기던 사람들이 생각나곤 한다. 가끔은 그런 모습들을 접할 때, 시내버스가 아닌 관광버스에 탑승했다는 착각이 절로 들 만큼 말이다.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바라보던 바다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바다를 선사한다. 그로 인해 각 지역에 다채로운 올레길이 존재하며, 항상 인터넷 검색을 통해 결과 값으로만 보다가, 포토스폿과 더불어, 우연히 기회가 닿게 되어, 다녀왔던 곳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항상 나 홀로 제주도 여행을 떠나던 스스로에게 때로는 계획적으로, 한편으론 충동적인 선택과 마주했던 순간이었으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항상 만족감을 건네줬던 코스. 벌써부터 당시의 그 매력적인 순간을 떠올리니, 제주도의 바닷바람의 촉각이 생각날 것만 같다.
1. 닭머르
꽤나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나는 항상 제주도를 여행할 때, 숙소를 서귀포에서 해결하곤 하는데, 한라산을 뒤로한 채 망망대해를 바라보던 그 고립감이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동백꽃을 프레임에 담고자 제주도를 찾았던 어느 날, 우연히 스마트폰 갤러리에 담긴 사진을 보고 장소를 묻게 됐으며, 서귀포와 전혀 반대편에 자리해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다음 날 스케줄을 모두 취소시켰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이 잘 담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곳의 풍경이 다른 곳들과는 달라 신선했던 느낌이 컸기 때문이다.
서귀포를 출발하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약 1시간 30분. 한라산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를 넘을 때, 산에 걸린 구름에서 연신 빗줄기를 뿌려대고 있었다. 그토록 변화무쌍했던 날씨를 받아가며 도착한 목적지 주변에는 거짓말처럼 사라믈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며, 바닷가로부터 불어오던 바람이 꽤나 매섭게 느껴졌다. 그로 인해 바다는 잔잔함을 잃은 채, 그 표면이 상당히 거칠었고, 금방이라도 태풍이 이 섬에 상륙할 것 같은 기분을 절감할 수 있었다. 저 먼 곳에 자리한 전망대는 우두커니 홀로 서 있던 채로 말이다.
닭머르는 '닭이 흙을 파헤치고 그 안에 들어선 모습'을 뜻한다. 게다가 이곳은 지도에서 바라볼 때, 닭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마치 오래전, 유럽을 여행했을 때, 바티칸 시국에 속한 성 바오로 대성당이 열쇠의 형상을 담고 있던 모습이 떠올라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둘레길 코스로도 분류가 되어, 검색을 해보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던 곳이었다 데크길을 반드시 오지 않더라도 저 멀리서 닭머르 해안길을 관망하며,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데크길 주변으로 자리한 갈대들은 지금이 겨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전망대로 이어진 그 길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줬다. 정도를 걷지 않고, 약간의 삐딱선을 추구했던 덕분에 다양한 각도에서 보이던 해안길은 바람에 만족감을 동반했다. 이후, 전망대에 오르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으며, 어릴 적 배웠던 태권도 학원 이후로 아주 오랜만에 기마자세를 유지한 채, 카메라를 파지 할 수 있었다. 충동적인 그 결정에 전적으로 만족감을 표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이후, 주변에 괜찮은 카페가 없을까 싶어 찾아보니 꽤 매력적인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꽤 이른 시간에 이곳을 찾다 보니, 가고 싶었던 곳들은 문이 닫혀 있었고, 그곳까지 가는 동안 어느 드라마에서 봤던 분위기를 고스란히 떠올릴 수 있었다. 공항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막간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부터 공간의 사진을 담고 싶어 하시던 분들까지 손님의 그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세찬 바람과 잔잔한 마무리까지, 닭머르 해안길에서의 순간은 아주 만족스럽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2. 큰엉해안경승지
처음 이곳을 접해던 것은 유명 포토스폿 때문이었다. 모든 것들이 완벽했던 순간. 여행을 다니며, 불확실한 순간을 마주하지 못했던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동백꽃을 마지막으로 즐긴 뒤, 택시를 타고 노을시간에 맞춰 도착한 이곳은 이미 그 하루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고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으며, 오히려 그 주변을 지나가던 이들이 눈치를 보기에 바쁠 정도였다.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 때문에, 정확히 빨강과 파란색의 한반도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다.
'엉'은 제주도의 방언으로 '언덕'을 뜻 한다. 큰엉은 바다를 삼킬 정도의 큰 언덕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으며, 그 위로 잔디가 깔려 있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찾은 이곳은 그 포토스폿 때문이 아니라도 절경의 순간을 자랑했으며, 끝까지 이어지던 산책 코스는 사진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해안선 따라 꼬나 크게 이어져 있었기에, 찰나의 순간을 담고 나서 끝까지 걸어보고 싶었지만, 산책 코스의 길이는 그만큼 길지 않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귀포와도 가까워 숙소까지 편하게 오갈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본래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박물관인 '신영영화박물관'의 사유지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박물관의 협조로 서귀포시에서 이곳을 경승지로 지정, 편하게 돌아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짧게나마 관람료를 지불하고 그곳도 함께 돌아볼까 싶었지만, 2021년 11월을 시작으로 운영이 잠정 중단된 상태라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큰엉해안경승지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항상 국경일에 다른 사진들과 함께 SNS에 올라 가고 있다. 요즘은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줄어 사진을 담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닭머르와는 다르게 반대편으로 보이는 그 바다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이 펼쳐졌으며, 숙소로 돌아가고자 버스를 탔을 때, 그 모습은 어둠에 잠식되어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다. 정말 부지런히 돌아다녔기에, SD카드에 담긴 사진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 불규칙하게 깎아지던 절벽은 자연이 낳은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으며, 주변을 붉게 물들이던 노을빛은 사람을 감상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날이 밝았을 때도 좋겠지만, 노을 질 타이밍에 이곳을 찾아 사진을 담아 보기를 추천한다.
위에 추천한 두 곳을 제외하고도 해안길 코스는 곳곳에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제주도를 여행할 때, 성산과 제주도 북, 남쪽을 많이 여행하는 경향이 있기에, 마침 서쪽과 올레길 코스를 섭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최근, 괌을 다녀오고선 지금껏 바라봤던 지중해와 태평양의 그것을 시선에 소유할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와 울릉도에서 그 모습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또한 함께 그려볼 수 있었다. 따사로운 나날들이 펼쳐지던 요즘, 사진들을 정리하며 자연스레 가보고 싶은 곳들이 늘어나니 큰일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