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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23.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후한 복을 받을 사람 유백선 목사
누가복음 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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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비전교회 카페에는 삶의 행복과 깊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의 비전으로 복을 받고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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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최초로 흑인 페스트레이디가 된 미셸 오바바(Michelle LaVaughn Robinson Obama) 여사가 쓴 <비판에 담담하게 시선에서 자유롭게(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한 나를 만드는 법)>라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프레이저 로빈슨)는 도시 상수원 공장 직원이었습니다. 나의 유년시절, 가정교육, 대학진학에 항상 인종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흑인이었던 내가 당당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자존감입니다. 내 자신을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존감, 내 자신을 믿는 믿음과 만족감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나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집중해서 내가 백인들이 가득한 프린스턴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해서 법학박사를 취득했습니다. 법률회사(시들리 오스틴)에서 버락 오바마를 만나서 결혼(1992년)했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여러 가지 비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식 없는 솔직한 언행으로 비판과 시선에서 자유로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존감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지키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정에 확신을 가지고 담담하게 나아가고, 내 안의 매력 에너지를 끌어내야 합니다. 내 중심을 잡으면 흔들려도 균형을 찾게 됩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가진 것을 발전시키고, 연결시키는 치밀함을 통해 약점도 강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언론이 비난을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이다.‘ 말합니다. 가식이 없는 솔직한 행동이 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내 모습으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오해가 해소되었습니다. 항상 자신에게 진실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도 자신의 목표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면 부정적이고 사실이 아닌 공격을 받을 때도 신경을 꺼버릴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주목하면 자유롭기 힘들었습니다. 그때에 내 자신을 가식적으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의연하게 해나가면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비판을 하고, 잘해도 못해도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비판할 때 자유롭습니까? 사람들이 비판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비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하지 말라.’ 이 말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성공학자 데일 카네기가 사람을 다루는 기본 방법을 말했습니다.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말라. 솔직하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하라. 다른 사람에게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켜라. 비난은 자부심에 상처를 입히고, 자존감을 훼손한다. 적개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이 갖고 있는 최고의 능력을 끌어내는 방법이 인정과 격려다.” 긍정적인 자기대화가 정신건강과 삶의 질에 도움이 됩니다. 긍정적인 자기대화가 스스로에게 격려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자존감을 향상하고, 성장 마인드를 촉진하고, 정신 건강을 개선합니다. 회복력을 향상시킵니다. 자신과 주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판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자기대화는 자기의심, 자기비판, 과거의 실패와 미래의 걱정에 지나치게 집중합니다. 이것이 자존감을 낮추고 성장과 행복을 방해하는 파괴적인 습관입니다. 최선을 사는 삶의 방법 중의 하나가 비판적인 사고입니다. 성공하려면 자기제어를 해야 합니다. 시간 관리를 잘하려면 자신이 사용한 시간의 패턴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공지능(AI)시대를 대비하려면 비판적인 사고를 길러야 합니다. 생각하고 질문하는 사고능력, 인공지능(AI)시대에 생존을 가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비판을 받는 것이 괴로운 일입니다. 타인의 비판에 감정적인 태도를 갖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후한 복을 받을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후한 복을 주십니까? 비판하지 않는 사람에게 후한 복을 주십니다. 본문 3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여기서 “비판하다(크리네테/κρινετε/krinete)”는 말은 “구별하다, 결정하다, 언도하다, 비난하다, 판단하다, 더 좋아하다, 호의적으로 판단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왜냐하면 믿음이 약한 사람은 오해의 소지가 많아서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에 자유가 없고, 먹는 것에도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먹는 사람이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먹지 않는 사람이 먹는 사람을 비판합니다.(롬 14:1,3)
예수님께서는 후한 복을 받을 사람에게 왜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비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되면 하나님과 교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남을 비판하면서 자기 우월감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면서 자신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을 비판하지 않는 기질을 개발해야 합니다. 비판했던 그 비판이 다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비판을 하지 않아야 비판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기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롬 14:10) 남을 비판하지 않으면 비판을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남을 정죄하지 않는 사람에게 후한 복을 주십니다. 여기서 “정죄하다(카타디카제테/καταδικαζετε/)”는 말은 “불리한 선고를 하다, 유죄 판결하다, 저주하다, 비난하다” 라는 뜻입니다. 정죄는 누가 합니까? 마귀가 사람을 정죄합니다. 사탄이 사람을 정죄하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마귀가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지게 됩니다.(딤전 3:6) 정죄는 악인에게 하는 것입니다.(신 25:1) 악을 꾀하는 사람이 정죄를 받습니다.(잠 12:2) 사람이 부패해져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에 빠집니다.(딛 3:11) 경건하지 않는 일과 경건하지 않는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서 한 모든 악한 말로 그들을 정죄하십니다.(유 1:15) 욥이 말했습니다. “내가 의로워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기도 합니다. 내가 온전해도 나를 정죄하기도 합니다.”(욥 9:20) 현재 고난을 받을 때, 실패했다고 자책할 때 자신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나를 정죄하지 마소서. 내가 무슨 까닭으로 변론하시는지 알게 하소서.”(욥 10:2) 다윗이 하나님께 간청하며 말했습니다. “원수를 정죄하셔서 자기 꾀에 빠지게 하소서.”(시 5:10) 예수님께서 정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해서 심문을 받을 것이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을 것이다.”(마 12:36-37)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 사람들이 전도를 듣고 회개하지 않아서 정죄를 받게 됩니다.(마 12:41) 유대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은 여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와서 말했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서 죽이라.” 그러자 예수님께서 땅에 글씨를 쓰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그러자 모였던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나)를 해방했기 때문입니다.(롬 8:1-2)
하나님께서는 용서하는 사람에게 후한 복을 주십니다. 여기서 “용서하다(아포류에테/απολυετε/apolyete)”는 말은 “완전히 자유하다, 구원하다, 놓아주다, 풀어주다, 자유롭게 가게 하다, 가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용서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가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회개하)면 너그럽게 용서하십니다.(사 55:7) 사람이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십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마 6:14-15)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하고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줍니까?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죄를 몇 번이나 용서하라고 하셨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8:21) 형제가 죄를 범하면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눅 17:3)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왜 용서하기 원하십니까?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입니다.”(잠 19:8)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에 짐이 되고),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고후 2:7) 사탄에게 속지 않고, 사탄의 계책을 알기 때문입니다.(고후 2:10)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고, 의와 진리로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용서하신 것 같이 해야 합니다.(엡 4:32) “누구에게 불만이 있으면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 왜냐하면 주께서 용서하여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골 3:13)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에버레트 워딩턴 교수가 용서의 다섯 단계(REACH)를 말했습니다. 1) 상처를 부인하지 말고 다시 기억하라.(recall the hurt)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 당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감정이입(empathize)을 하라. 입장을 바꿔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말하기는 쉬워도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자신이 용서해야 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3) 용서는 이타적(altruistic)인 선물이다. 용서함으로 인해 자신이 자유로워지고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비록 상처를 입었지만 타인을 축복할 수 있는 것이 용서가 주는 선물이다. 4) 당신이 경험한 용서의 결정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commit) 감정적인 용서를 경험하면 ‘이만큼의 감정적인 용서를 했다.’ 말하면서 결심을 바꾸지 않으려고 전념한다. 5) 용서를 했는지 의심이 들 때마다 용서를 붙잡고 있는(hold on) 것이다. 용서하려고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다음날 그를 보면 ‘당신을 용서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용서를 하셨는데,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말했습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도 아니다. 내 자신이 과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놓아버려야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용서의 자유를 얻고 건강한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에게 후한 복을 베푸십니다. 본문 3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여기서 “자비롭다(오이크틸모네스/οικτρμονες/oiktirmones)”는 말은 “인정이 많은, 온유한 자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분입니다. 자비는 성령의 다섯 번째 열매입니다.(갈 5:22)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기십니다.(사 54:8) 하나님께서 자비를 더하셔서 번성하게 하십니다.(신 13:17)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어서 내 죄과를 지워주셨다.”(시 51:1)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원하신 뜻을 알기 원하십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자비로운 사람이 죄가 없는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다.(마 12:7) 자비를 베푼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됩니다.(눅 10:36)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마음을 같이 합니다.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합니다.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투지 않습니다. 허영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깁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빌 2:1-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을 사랑하심으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고 하심을 얻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십니다.(딛 3:4-7) 하나님의 자비는 원수까지도 품어주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랑입니다. 우리가 작은 자비를 베풀 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자비로 되갚아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는 사람에게 후한 복을 주십니다. 본문 3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 “주라(디도테/διδοτε/didote)”는 말은 “모험하다, 위탁하다, 넘겨주다, 허락하다, 은사를 주다, 수여하다, 몫을 주다, 직책을 맡기다, 공급하다, 허가하다, 위임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베풀게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주는 기쁨을 얻습니다. 응원해주는 마음이 행복하게 합니다.
세계적인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 박사가 쓴 <GIVE(기브) AND TAKE(테이크)(주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테이커/Taker)이 있다. 테이커는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기를 바란다. 왜?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게 된다. 2) 받는 만큼 주는 사람(매처/Matcher)이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선호하는 호혜원칙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주는 양과 받는 양에 차이가 있다. 매처는 손해와 이익의 균형을 이루는지 애쓴다. 공평을 원칙으로 삼고, 상부상조의 원리를 내세워서 자기 이익을 보호한다. 호의를 주고받는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3)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기버/Giver)가 있다.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고, 남을 위해서 베푼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낸다. 노력이나 비용을 아끼지 않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을 돕는 사람이 성공한다. 타인에게 베풀고, 양보하고, 헌신하는 행위가 성공하게 만든 것이다. 베풀고 살겠다는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 결정적인 타이밍을 잘 잡은 사람이 탁월한 성공을 거둔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고소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로 호송될 때, 바울이 탄 배(알렉산드리아)가 유라굴로 태풍으로 좌초 위기에서 276명의 목숨을 구하였습니다. 간신히 멜리데 섬에 상륙하여 구조되었습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차가워지자 원주민들이 특별하게 동정하여 불을 피워서 영접해주었습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서 불에 넣었습니다. 뜨거워지자 독사가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고 있었습니다. 봉사를 하다보면 독사가 물게 됩니다. 원주민들이 그 광경을 보고 말했습니다. “진실로 이 사람이 살인한 자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지만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바울이 그 독사를 불에 떨어뜨려 버렸는데 바울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봉사할 때 독사가 물면 떨어뜨리면 해를 받지 않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독사의 독에 쓰러져서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래 기다려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돌이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신이다.” 그 섬에 추장 보블리오가 사흘 동안 친절하게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서 누워 있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했습니다. 섬에 사는 다른 병자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후하게 대접하여 떠날 때에 우리에게 쓸 것을 배에 실어주었습니다.(행 28:1-10)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복이 있습니다.”(행 20:35)
여러분! 창의적인 기버(주는 자)가 개인을 넘어 조직을 성공으로 이끕니다. 위대한 스승은 누구에게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줍니다. 늘 주는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내고, 뛰어난 세일즈맨이 된다. 주는 것을 좋아하는 착한 사람이 가장 먼저 성공의 골인지점에 도착합니다. 현명한 세계관과 믿음의 정체성을 가져야 매력이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삶의 만족도가 더 컸습니다. 눈물로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기쁨으로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준 사람에게 후하게 주십니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주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흔들어 넘치도록 주십니다. 이제 비판보다 사랑으로 격려하고, 용서하고, 주는 삶으로 후한 복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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