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은 안중근 의사가 태어난 날이다. 해마다 이날에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간소한 탄신 기념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탄신 무렵 가장 뜻깊은 행사는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라시 소재 대림사(大林寺)에서 열린다.
대림사에서 매년 9월초 그곳에 사는 일본인들이 모여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법요식을 열고, 한국 측에서는 센다이 총영사와 한국에서 찾아간 인사들이 참여한다.
"동양평화 기원, 민족의 영웅 안중근, 정애(情愛)의 지사 지바 도시치" 라는 석비가 세워진 근처에 있는 청운사(靑雲寺)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열린다. 저녁에는 한일 양국 인사들이 모여 양국의 전통 예악이 곁들인 '한일 친선의 밤' 을 갖고 친목을 도모한다.
이런 행사의 출발점에는 지바 도시치라는 인물이 있다. 지바는 안중근 의사를 뤼순 감옥에서 감시. 경호한 헌병 상등병이다. 지바는 처음에는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 크게 분노하며 안 의사에게 적개심을 가졌으나, 안중근의 감옥 생활이나 재판 과정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안중근 의사가 개인적 감정에 기한 것이 아니라 동양평화와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이토를 사살한 것을 알고 안중근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이에 안중근은 '당신은 일본 군인으로서, 나는 대한제국 의군
(義軍) 참모중장으로서 각자 나라를 위하여 일한 것이니 나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다' 고 지바를 위로한다. 두 사람은 한일 화해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지바의 요청에 따라 안중근은
"위국헌신군인본분 ( 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이라는 글을 써준다. 안 의사가 쓴 수많은 유묵 중 사형 전 가장 마지막에 쓴 것이다.
지바는 36세에 퇴역하여 고향 구리하라로 돌아가 집에 유묵을 걸어 놓고 제사를 지낸다. 고향 사람들에게도 안 의사 의거의 참뜻과 인품을 알려 마을 사람들은 안 의사를 존경하게 된다. 지바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처가 유묵 앞에서 날마다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유묵은 조카인 미우라 구니코가 소중히 보관하다가 1979년 안중근 탄생 100주년에 한국에 기증한다. 2년 후 대림사에 '위국헌신군인본분' 이 새겨진 안중근 현창비가 절 앞 마당에 세워진다. 그리고 매년 본당 중앙에 걸린 "위국헌신군인본분' (복사본)
앞에서 법요식이 열린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인들이 법요식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양국 합동 행사가 되었고 한일 친선 행사로 발전하였다. 그곳 일본인들도 매년 3월 26일 서울에서 열리는 안 의사 순국 기념일에 참석한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하여 2020년부터 상호 방문이 중단되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대림사에 이르는 도로변에 한글과 일본어로 병기된 '안중근기념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2014년 1월 9일 중국 하얼빈역에 안중근 기념관이 세워지자 스가 관방장관은 "유감스럽다.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고 논평한 것을 계기로, 일본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공비(公費)로 범죄자의 안내판을 세우는 것은 잘못이라는 옹졸한 지적을 하였다. 당시 무라이 미야기현 지사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밖어서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찾아와서 안내판도 보고 안내판대로 방문하여 사찰측 이야기도 들어보라. 나도 그리하였다. 주지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또 대림사가 하고 있는 일을 보니 일본인이 참 훌륭하다는 생각, 이는 세계에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스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 말했다.
좋은 사람들은 곳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