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졸업식/靑石 전성훈
사랑하는 손녀의 유치원 졸업식이다.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 꼭 제 졸업식에 오셔야 해요’하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손녀이다. 시간이 나는 가족들이 참석하여 손뼉을 치면서 어린이 재롱잔치처럼 진행된 졸업식을 즐겁게 바라본다. 문득 손녀가 태어났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 졸업 축하 가족 외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켠다. 언젠가는 책으로 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손녀와 손자가 태어난 후 몇 년 동안 손주들의 자라나는 모습을 적어 두었던 글을 살펴본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 쓴 글을 보니까 감개무량하다. “ 1호선 전철 녹천역을 벗어나자 눈앞에 별세계가 펼쳐졌다. 초안산 입구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벚꽃의 향연이 무르익었다. 오랫동안 이곳을 다녔으면서도 이토록 아름답고 멋진 벚나무가 있는 줄 몰랐다. 벚꽃의 향기에 취하여 가던 길을 벗어나 나도 모르게 숲길로 들어섰다.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숲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디선가 할아버지하고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다시 할아버지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펴보아도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잠시 졸다 깊은 단잠에 빠졌던 것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전화를 받아보니 아내가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여보, 손녀딸이 태어났어요.’라고 외쳤다. 봄날의 벚꽃처럼 그윽한 향내를 풍기면서 손녀는 맑은 웃음을 띤 채 하늘나라에서 우리 집안으로 사뿐사뿐 내려앉았다. 면회 시간에 맞추어 기쁜 마음으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갓 태어난 아기를 유리창을 통해서 만났다. 눈을 꼭 감고 잠든 손녀를 보면서도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손녀가 옹알이할 때면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아빠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손녀를 생각하니 정말 대견스럽다. 늙은 할아비 눈앞에 그동안 자라나는 손녀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멋지게 지나간다. 태어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여 연세세브란스 재활 병동에 다니며 재활 치료를 받던 갓난아기,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며 울 때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 커서 천둥소리 같았던 아기, 첫돌을 앞두고 뒤뚱거리며 거실을 휘어잡고 다니면서 웃음을 선사하던 모습, 며느리가 둘째 출산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입원하자 간절히 엄마를 찾던 손녀의 애처로운 모습, 알레르기 비염 증세로 병치레가 심하여 이곳저곳 병원 순례하던 일, 어린이집에 다니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생활하던 건강한 모습, 유치원으로 옮긴 탓에 새로운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배움의 정도 차이로 인하여 한동안 어린이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울면서 힘들어하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연년생 동생에게 먹을 것을 꼭 챙겨주는 의젓한 누나, 키는 작아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크고 누군가에게 지지 않으려는 샘도 많고 욕심도 많아 영어 단어 암기 시험에 백 점 맞았다고 좋아하던 손녀가 너무나 귀엽다.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담임선생님에게 예쁘고 상냥한 모습을 보여드리며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한다. 손녀와 손자가 커갈수록 할아비와 할머니는 그만큼 늙어가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어 가는 게 못내 아쉽다. 할아비가 바라는 욕심은 하나이다. 사랑하는 손녀와 손자가 고등학생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할아비가 건강해야 한다. 손녀가 한글을 깨우치면서 할아비 서재 벽걸이에 걸려있는 시화전 작품을 보며 ‘할아버지 이름이 뭔지 알아요.’ 하며 할아비 뺨에 뽀뽀해준 손녀가 오늘따라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202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