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93년에 미국에 왔던가...그 때 엘란트라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차를 지금까지 잘 쓰고 있습니다. 3 년 전 미니밴을 사기 전까지 우리의 가보로서 아주 사랑을 받았습니다.
엘란트라, 이 '넘'에 대해서 글을 쓴 적도 있는데, 제가 정을 아주 많이 붙였습지요.
빨간 엘란트라.. 11 년이 된 건가...그러니까, 복숭아 나무님의 애견, '찡'의 나이와 비슷한 건가... 찡이 이제 노쇠해서 청력을 상실했다던데...(그 이야기 듣고 가슴이 찡했어요. 말장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징---하더라고요.)
우리 엘란트라, 이 녀석도 늙어가면서 환절기 감기를 좀 앓는 경향이 있어요. 환절기라함은 노상 여름 날씨같은 캘리포니아에 겨울이랍시고 비가 좀 많이 내리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비가 오기 시작하면 엘란트라한테 시동이 안 걸려요. 절대 안 걸려요. 그래서 점프 스타트 해주고 엉덩이를 좀 두들겨주면 갑니다. 그래서 남편 에릭 출근 길에 좀 정신이 없는 날들이 생기지요.
엘란트라 하나로 살던 시절 (이것도 글로 언급한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제 배가 쭉쭉빵빵 모델의 뱃가죽을 닮았더랬습니다. 아이들과 걸어다니고, 걸어다니고, 또 걸어다녔으니까요.
꼴렛이 어려서 업고 다닐 적에는, 에밀을 자전거에 태워 오래 오래 산책을 하고는 했는데, 오르막 길 같은 곳에서 에밀이 잘 몰라갈 때가 있고, 그럴 때 제가 아기 없은 채로 몸을 굽히는 게 힘들어서....커다란 나무 막대를 들고 다녔습니다. 오르막 길에서 그냥 막대기로 쭉 밀어주면 되니까.... 그 막대는 대빗자루 (이거 한국말로 뭐라하더라?)에서 떼어낸 것인데...음.. 사내 아이가 자전거 타고 앞에 가고, 그 뒤에 아기 업은 엄마가 길다란 막대기를 들고 가는데, 그 막대기를 질질 끌고 갈 수 없으니, 땅을 톡톡 치면서 걸어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멀리서 보면 소경 엄마와 아가의 산책과 같은 그런 정경이 연출되었다는......(남이 나중에 해준 소리였음...-.-)
산책을 많이 하다보니----뱃살이 없어지고!!! (어, 옛날이여~~)--- 아이들과 동네의 나무란 나무는 다 만지고 다니게 되었지요. (만질 게 없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살던 집에서 유씨어바인 캠퍼스 까지의 길의 가로수 중에서 에밀과 꼴렛이 만지지 않은 나무가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가끔은 껴안기도 하고, 나무 뒤에 숨기도 하고.....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아파트를 얻어 살 적에도, 남편이 차를 쓰니, 우리는 그냥 몸으로 때우고 다녔는데, 그래서 여기서는 사람들이 거의 타지 않는 버스를 많이 탔습니다. 한번에 1 달라 내고 타는 건데, 거의 텅텅 비다 시피한 버스는 고급 리무진과 다를 바 없지요. 그거 타고 1 시간 거리의 해변으로, 수퍼마켓으로, 놀이터로 놀러갔다 오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버스 타는 거 무지 좋아했어요. 제 주위에서 캘리포니아의 버스를 타본 사람들이 거의 없더군요. 아이들에게는 참 좋은데.....(벤쿠퍼 친구 님, 님의 가족과 버스와의 심오한 관계에는 못 미치는 야그입니다요.^^)
꼴렛과 에밀과 노상 걸어다니면서, 캘리포니아에도 겨울이 있음을 실감했지요.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이의 손이 얼음처럼 차가와지고, 살갗이 트는 것을 보면서 말이죠. 빨갛게 튼 뺨에 오빠의 옷을 줒어입은 (아니지...내가 줒어 입힌 거지...-.-) 꼴렛을 보면서, 뭐랄까, 옛날 우리 한국에서 나의 어렸을 때의 친구들 얼굴 같기도 하고, 저의 몽골리안 얼굴에 가까운 그런 정감있는 얼굴 같아서 기분 좋았던 생각도 나네요.
미니밴을 산 뒤에도 우리는 가끔 온 가족이 엘란트라를 타는 맛을 즐겨요. 살과 살이 닿는 듯한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저저로 도란도란 목소리가 정겨워집니다.
손을 뻣지 않고, 그냥 고개만 돌려도 몸이 가깝게 있는 아이들 바라보면서....두 아이 다 이 엘란트라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 낳았고, 신생아이였던 아이들을 곱게 곱게 싸서 이 엘란트라로 집에 모셔왔던 생각을 떠올립니다. 에릭은 운전하고, 저는 뒤에 아이 옆에 앉아서 노래 불러주고, 발가락 간지르고, 장난감을 흔들어주고, 자는 아이에게 태양빛이 너무 강열하다고 아가 담요를 들고 막아주면서 행복하던 그 순간들....
내가 엄마가 된 게 얼떨떨하고, 뒤통수를 바라보며 '저 인간이랑 나랑 평생을 살기로 약속했단 말이지? 정말? 내가 저 사람하고 단 둘이 사랑하면서 산다는 게 맞아? 맞아?' 속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기를 바라보면서, '이게 뭘 믿고 여기로 나왔지? 내가 엄마 맞아? 너 나 엄마라고 믿는 거니? 대차다..대차..'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서 앉아 있던 그 엘란트라...
제가 '미니밴몰고 다니는 엄마' (흑흑...)가 된 뒤에 엘란트라랑은 좀 거리가 생겼지요. 가끔 가족 외출 때 타기는 하지만...
엘란트라 그 녀석이 그래도 묵묵하게 우리 남편을 잘 모시고 다니는 거 보면서 기특해했지만, 꼭 챙겨서 씻어주고 어쩌고 하는 일은 상상도 못하리만큼 바쁜 제 일정 때문에....(저는 세차 무지 좋아해요. 애들이 하는 것도 싫고 내가 하고 싶어요. 그런데 바쁘다보니..)
'가족의 차'에서 '남편의 차'로 전락한 엘란트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엄마의....으윽.....꺅꺅 고함소리에서 멀어지고, 남편이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25분씩 사용하는 차가 되어..외로워진 우리 엘란트라..
제가 엘란트라가 얼마나 버려져있다는 걸 잊고 살아왔다는 걸 깨달은 것은 며칠 전...우편함을 체크하고 엘란트라 옆으로 지나치다가 제가 억~ 하고 놀랐습니다.
너무..더러워서.
어쩜.... 세차를 한 적이 언제였던가...
빨간 엘란트라가 어찌...회색끼가 도는 차로 변했단 말인가.
남편이 주유소를 들를 때 가끔 유리창만 닦는지 유리창의 일부만 깨끗하더군요.
그리고....
이거이...정말...
차고가 없는 집이다보니 먼지를 뒤집어 쓰는 건 당연하다지만, 이거..참, 먼지만이 아닌 거에요. 새의 오물이 여기 저기..
"에릭!"
남편, 불렀습니다.
"이게 안 보여? 새 똥이?"
"엄...그럼 어때? 엄....당신은 자동차는 어떤 한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가는 수단이라고 믿고 있잖아? 잘 가기만 하면 된 거 아니야?"
"아니, 이게 뭐 운송 수단이야? 새들의 화장실이 되어 버렸잖아?"
정말이에요. 새들도 아이큐가 있나 봅니다. 화장실을 알아보나봅니다.-.-
엄마 새가 아기 새들의 기저귀 훈련을 우리 엘란트라 위에서 하기로 작정했는지.....
낡은 차를 장난삼아 '똥차'라고 부른다지만, 이건 말 그대로 똥차~~이니. "10불 짜리 세차 갔다 올까?" (양심이 좀 있는 남편의 발언)
"10불 짜리 갔다간, 세 번 정도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해야할 거 같아. 수세미로 빡빡 문질러야할 판인데?" (현실적으로 살 길을 강구하는 부인)
그래서 그 날 밤, 엘란트라를 씻었습니다. 아기 목욕 시키듯이, 부드러운 천으로 굳은 똥을 물로 녹이고 녹여가며.. 물도 많이 쓰고, 비누도 많이 쓰고, 힘도 많이 써서 씻었습니다.
차 세척할 공간도 많지 않던 기숙사에서 새벽에 몰고 나가 일찍 자리잡고 세차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우리 집의 물을 끌어다가 주차장에서 세차할 수 있는 복이 새삼스레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오랫만에 엘란트라에 얽힌 우리의 옛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도 되었지요. 남편은 제가 엘란트라를 몰고 자기 쫓아다니는 기억을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상기하더군요.
제가 '우--연--히--' 지나가다 차를 세우고 '우--연--히--' 만난 것을 반가와하면서, 태워주겠다고 강요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탔던 거... (아, 마담의 존심이 부스럭, 바스락....구겨진다~~~).
에릭은 2 분도 안 되는 거리니까 걸어가도 된다는데 제가 자꾸 차를 타라고 우겨서, 그것도 뒤에 차가 밀려 서있는데 우기니 어쩔 수 없이 탔어야했다나..(아, 마담의 존심이 마구 마구 꾸겨지고 있다.)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어찌 새벽에 모르는 동네까지 몰고와서 2 시간동안 해매면서 자기 집을 찾았냐고...(마담의 존심, 짜악 찢어진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30 분만에 우리의 엘란트라, 훤한 얼굴이 살아 났습니다. 반짝반짝~~
엘란트라 빛나리~~ 사랑스러운 나의 빛나리 엘란트라, 가끔은 세척해주마~
복숭아 나무님의 찡도 오래 살아라, 엘란트라도 오래 살아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