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소개
김동식
유명 은행의 사원. 직급은 대리.
상사의 잘못 된 행동에 휘말려 두루군 마리면 촌구석 파견소로 발령 남.
동네 어른들에게 호구잡혀서 오만 잡일에 불려다니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는 중.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음.
최미희
마리면 파견소에서 6년 째 일하고 있는 베테랑 여직원.
뭔가 해 보려고 노력하는 김동식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다.
실장석에 대해서 그럭저럭 잘 알고 있는 듯.
안토식
'하늘과 인간과 실장석의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자칭 목사.
'실장석의 구원'이 목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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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치이이익 치이이익!"
동식은 비몽사몽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들었다.
"이이이이잇! 치이이익!"
무엇인가가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테치이이이! 츄와아앗! 츄와아아앗!"
단잠에 빠져있던 동식은 벌떡 일어났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가 중추를 자극했기 때문인지. 평소와 다른 격한 기상이다. 정신이 멍한 가운데에서도 아직도 어두컴컴한 새벽임은 알 수 있었다. 고개를 이리 저리 돌려보니, 어둠속에서 뭔가가 휙휙 지나다니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익!"
콰당 하면서 서랍장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테치이이이잇! 이이이이이이이익!"
이게 대체 무슨소리야 싶어서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핸드폰 시계를 살펴보니 새벽 3시 27분. 어제 과일 상자를 나른다고 고생을 해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짚은 왼팔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진다. 소음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서 일어났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번개가 친다.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를 것 같지
만, 꾸욱 참고 비틀비틀 걸어가서 전등을 켰다. 보일러가 꺼졌는지 발바닥이 얼음장이라도 밟은 것 처럼 차갑다.
"...이게 뭐야?"
불이 밝혀진 방 안은 처참했다. 바닥은 온통 초록색의 질척한 액체로 엉망이었고, 특히 침대 바로 옆이 엉망이었다. 방금 동식이 불을 켜러 움직이면서 지나간 흔적으로 남은 초록색 맨 발바닥 자국이 그로테스크했다. 그리고 저 초록색으로 뒤덮인 넝마더미는....
"으악 시발!"
은행에 입사한 후로 공적인 자리는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절대로 욕을 하지 않고 온화한 표정으로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 온 동식의 결심이 몇 년 만에 박살이 났다. 몇 년 만의 욕설은 거의 뇌를 통하지 않고 가슴 속에서 바로 튀어 나왔다. 녹색의 끈적이는 무언가로 뒤덮인 넝마더미는 바로 어제 동식이 입었던 바지였기 때문이다. 손가락 두개로 겨우 집어들자 녹색 액체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이 역겨운 녹색의 액체는 무엇인지 대체.
"치이이... 치이이이...."
그러고 보니 이 소리는 대체 무엇인지. 동식은 소리가 나는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
"실장석?"
손바닥 만한 자실장이 방 구석에서 무언가 검은 덩어리를 끌어 안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들어온거지?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자실장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빨이 부딪히며 딱딱딱 소리가 났다. 두려워하는 것 같다.
"테챠아악!"
갑자기 옆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자실장이 한마리 더 있었다! 두번째 녀석이 아주 조금 더 큰 것 같다. 동식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하더니 '테챠아...'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내며 마찬가지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 녀석들은 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동식은 잠깐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
다. 대체 이 새벽부터 무슨 재앙인지....
"우선은 치우자."
결론을 내렸다.
"자아, 이리 와."
기억을 더듬어 신입사원 시절에 봉사활동 나갔던 경험을 찾아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지체장애인과 노인들. 살살 달래면서도 진땀을 뺐던 기억.
"치이이이잇!"
"테챠아악!"
화장실에서 대야를 가지고 나와 자실장들을 거기 넣으려고 하자, 한 마리는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질렀고, 한 마리는 네 발로 서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위협을 해 댄다. 주먹만한 놈이 위협을 한다고 무섭지는 않지만. 어쨌든 아마도 똥으로 생각되는 초록색 액체가 덕지덕지 붙은 상태로 놔 둘 수는 없었다. 바닥에 온통 녀석들이 똥을 밟고 돌아다닌 자국으로 엉망이었으니, 이대로 청소를 해 봤자 점점 더 더러워지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자실장들도 씻겨야 했으니.
"테챠아악!"
우선 위협하는 큰 놈을 집어든다. 이빨을 드러내고 양 팔을 휘두르며 바둥거렸지만 어차피 인간과 자실장의 힘 차이, 저항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버둥거리는 힘 때문에 다칠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부리리리리릿
"으악 뭐야!"
갑자기 오른손이 축축해지는 느낌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자실장을 놓쳤다. 실장석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동식은 손바닥 안의 자실장이 빵콘하며 이미 한계까지 부풀어 있었던 팬티 틈으로 미지근한 똥이 흘러 나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바닥에 엉덩이부터 떨어지며 사방으로 방금 싼 똥이 튀었다. 작은 놈이 테치테치 하며 뛰어가서는 큰 놈에게 안겼다.
"어휴 진짜...."
직접 빵콘세례를 당한 손은 물론이고, 녹색 똥이 튀는 바람에 발도 엉망이 되었다. 슬슬 코가 마비가 되었나 싶었는데 방금 싼 똥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독한 냄새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이다. 동식은 슬슬 짜증이 날 것 같았지만, 짐승에게 진지하게 화를 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 친했던 같은 과 선배인 혜진이 누나가 유기견을 주워 교육시켰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때 인간에게 호되게 당했는지, 하얀 색 강아지는 혜진 누나가 다가가면 벌벌 떨면서 짖지도 못하고 발버둥만 쳤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며칠 함께 지냈더니 그제서야 마음을 열고 슬그머니 다가와서 손등에 턱을 얹었다고 했던가. 혜진 누나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이야기를 했었다. 얼마 뒤 동식은 혜진과 CC가 되었고 1년 정도 알콩달콩 사귀었다. 그러다 군대를 가게 되었고 상병 때 졸업을 앞둔 누나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얼마나 울었던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는데 잘 지내고 있을... 이게 아니라. 일단은 청소다.
"요 녀석들!"
동식은 서로 얼싸안고 떨면서도 위협하고 있는 자실장들을 각각 잡아 들었다.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빵콘을 했는지 다리 사이에서 똥이 뚝뚝 떨어졌지만 재빨리 대야로 집어 넣는데 성공했다.
"테챠아아악!"
큰 놈은 갑자기 빨간 색 대야로 들어가 사방이 막히자, 동식을 올려다 보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자,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위협해도 상관없다 생각하며 조금 안심한다.
"테에에? 테에에에...."
작은 놈은 바닥에 주저 앉아 잠깐 주변을 둘러본다. 빵콘을 대체 얼마나 한건지 팬티 틈으로 흘러 나온 똥의 양이 무슨 바가지로 부어 놓은 것 처럼 엄청나다. 어쨌든 일단락이 되었나 했더니,
"테에엥? 테에... 오오오오오옹! 오오오오옹!"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마치 준비단계였다는 듯, 입을 마치 새 주둥이처럼 뾰족하게 만들어 고개를 잔뜩 치켜들고 울어대는데 인간 어린 아이가 울어도 이렇게 시끄러울까 싶을 정도의 울음소리였다.
"테챡! 테치이이익!"
큰 놈은 위협하다 반응이 없자, 대야의 빨간 프라스틱 벽 쪽으로 가더니 기성을 지르며 양 손으로 탁탁 두드리기 시작했다. 손에 묻어 있던 초록색 똥이 매끈한 플라스틱 벽에 점점이 흔적을 남겼다. 두드려도 안 되니 신경질적으로 울어대며 팔짝 팔짝 뛴다. 제자리에서 양 손을 쫙 펴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팔짝팔짝 뛰어대는 꼴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하는 동식이다. 일단 이놈들은 정리 됐으니 슬슬 청소를 시작하려는 참에....
철퍽
뭔가 차갑고 끈적끈적한 것이 종아리에 가서 묻는다. 놀라서 대야를 보니, 큰 놈이 팬티 속에 손을 넣더니, 똥을 잔뜩 쥐고 던지고 있었다. 몸은 나올 수 없지만 똥은 던질 수 있다는 것인지!
"테프프프프, 프프픗!"
큰 놈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변했다. 뭉툭한 손 끝으로 이 쪽을 가리키며, 나머지 한 손은 자신의 배를 가리고 있다. 무슨 표시일까. 동식이 어리둥절해 한다.
"프갸갹! 프갸앗!"
그리고 옆에서는 작은 놈이 여전히 울고 있다.
"오오오오옹! 오오오오오옹!"
동식은 잠이 부족해 머리가 멍한 와중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옴을 느꼈다.
끝냈다.
자실장들이 든 대야를 화장실에 놓고서야 간신히 청소를 끝낼 수 있었다. 동식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보가 벗겨진 매트리스에 걸터 앉았다. 어느새 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끔찍한 실장 똥 냄새 때문에 창문을 다 열어놔서 방 안이 상당히 서늘했는데도 말이다.일단 청소를 시작하니 방 안이 너무도 처참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덮고 자던 이불과 침대보에는 점점히 녹색 똥이 튀어 있었다. 아마도 동식을 깨우기 위해 똥을 던진게 아닌가 싶었다. 덜 피곤했다면, 차라리 처음 자실장들이 깨우려고 할 때 일어났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되지 않았을까, 하고 조금 안타까운 기분도 든다.
자켓과 와이셔츠는 그나마 탁자 위에 놓아서 다행인데, 바닥에 널부러진 바지는 자실장들이 무슨 원한이라도 졌는지 빽빽하게 똥을 싸 놓아서 도저히 구원이 불가능해 보였다. 눈물을 머금고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넣고 꽁꽁 묶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대부분의 똥이 바지에 집중이 된 덕에, 일단 바지를 치우고 나니 흔적 정도라 걸레질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는 자실장이 어둠 속에서 여기 저기 부딪혔는지(밤에 났던 쿵 쿵 소리가 그 소리였던 것 같다) 자잘한 흔적들을 걸레로 지워냈다.
냄새는 혹시라도 홀아비 냄새가 날까 걱정해서 몇 개 사 둔 방향 스프레이를 잔뜩 뿌렸더니 조금이라도 나아 진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자실장들은 어쩌고 있는지...
"테츄, 테츄!"
"테엑, 테엑."
두 자실장은 모두 제멋대로 날뛰다 지쳤는지 아까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얌전한 상태이다.
작은 놈은 재채기라도 하는 듯, 부들부들 떨먼셔 테츄 거리고 있었고 큰 놈은 제 분에 못 이겨 괴상한 소리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동식이 다가가자 간신히 '테챠아아' 하며 위협 비슷한 소리를 내긴 하지만 아까 같은 기세는 없다.
"그러고 보니 추웠겠구나."
동식은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중얼거리며 세면대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자, 옷 벗자."
대야에서 작은 놈을 잡자, 큰 놈이 갑자기 '테치아아악!'달려들었지만 동식의 엄지손가락에 어정쩡한 각도로 메달려서 대롱거리다가 지쳐서 떨어져 나갈 뿐이다.
"으챠으챠, 옷 벗어야 예쁘게 씻지요?"
자기도 모르게 어린아이에게 하는 말투를 쓰며, 동식은 조심스럽게 자실장의 옷을 벗기려고 치마를 들췄다. 그러자 갑자기 위협이라고 느꼈는지 자실장이 '테에엑!' 하고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지만은 역시 자실장의 저항은 미약할 뿐이다.
"어라, 이거...."
자실장의 배 쪽의 얼룩을 보니 이건 어제 동식이 감을 줬던 자실장이다. 끈적끈적한 감 물이 들어 딱딱하게 굳어진 자락을 보면 거의 확실했다. 그때의 두 자실장이 그걸 기억하고 집에까지 찾아온 것인지, 조금쯤 애틋함이 느껴지는 동식이다.
"으에엑! 시발!"
그러나 그 애틋함도 무색하고, 오늘 벌써 두 번째 자신도 모르게 나온 욕이다. 원피스 구조로 된 실장옷을 대충 벗기고, 두건까지 벗기자 큼직한 귀가 드러났고, 매끈하지만 돼지처럼 투실투실한 몸이 드러났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빵콘으로 부풀어 있는 팬티를 벗기자 엄청난 양의 똥이 질퍽하게 바닥에 쌓이고, 반 쯤 굳은 묽은 똥덩어리들이 다리 사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이다. 자동으로 눈쌀이 찌푸려지고 지독한 냄새에 고개가 돌아갔다.
"으으 젠장 이 많은 똥이 다 어디서 나온거니?"
동식은 눈살을 찌푸리며 따듯한 물이 담긴 세면대에 자실장을 담궜다.
"치이이잇! 이이이이잇! 치이이이... 치이... 테츄우...."
발버둥치며 비명을 지르던 자실장은 일단 따뜻한 물에 들어가자 기분이 좋은지 발버둥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하긴 자기 똥에 덮여서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물에 들어갔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부릿 부리릿 하고 세면대 물이 급속도로 녹색으로 물들어 간다.
"으아, 너는 대체 얼마나 똥을 싸야 직성이 풀리는거야?"
이대로는 안 될것 같아 일단 세면대 물을 내린다. 몸을 감싸고 있던 따뜻한 물이 사라지자 자실장은 '테츄우? 테치이?' 하면서 의아해 하다가 동식이 샤워기로 따뜻한 물을 틀자 다시 눈을 감고 샤워를 즐긴다(그리고 또 똥을 쌌다!!!). 어쨌거나 비누칠까지 마치고 수건으로 닦아줬더니, 기분이 좋은지 '테츄웅'하고 울면서 보송보송한 수건에 몸을 묻고 얌전하게 있다.
"자 이번엔 네 차례야."
한참만에 작은 놈을 다 씻긴 동식은 큰 놈에게 손을 뻗는다. 큰 놈은 작은 자실장이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았는지 아까보다는 훨씬 안정 된 모습이다. 그러나 역시나 옷을 벗기려 하자 격렬하게 저항했는데, 작은 놈보다 훨씬 사방으로 팔다리를 흔들어 대는 통에 사방으로 똥이 튀었다. 그래도 억지로 옷을 벗기는데....
찌이익.
"어라?"
"테에?"
찍, 찌이익.
하도 발버둥을 치는 통에, 원래 좀 너덜너덜하던 옷이 찢어져 버렸다. 투실투실한 몸이 껍질 벗겨지듯 떨어져 나가 세면대 위에 철퍽하고 떨어진다.
"테에에엑! 테에엑!"
"어... 미안해. 이거 어쩌지?"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큰 놈이 울기 시작했다. 동식은 반으로 쪼개진 실장옷을 들고 어쩔줄 몰라했다.
"테에? 테에에? 오오오오옹! 오오오오오오오!"
그 소리를 듣더니 얌전히 수건에 감싸여 있던 작은 놈도 아까 그 고개를 치켜들고 내는 시끄러운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으악 시발 조용히 해!"
...벌써 세 번째 욕이다. 저 울음소리는 정말... 조금 공포스러울 정도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서 일단 찢어진 옷은 던져 놓고 팬티를 마저 벗긴다
.
"우웩!"
정말 굉장한 냄새와 비주얼이다. 팬티 속에서 똥덩어리들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대야 안에는 주먹만한 자실장 두 마리가 내놓았다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녹색 똥이 무더기가 되어있었다.
"테에에엥 테엑!"
그 와중에 온 몸에 똥을 묻힌 자실장이 죽어라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동식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샤워기를 뿌렸다.
"테에엑! 테에... 게보보보복!"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가자 자실장이 죽는 소리를 내며 기침을 했다. 이 때 재빨리 따뜻한 물로 온 몸을 적셔줬고, 기침에서 벗어난 자실장은 기분이 좋은지 '테츄웅~' 거리며 얌전해졌다. 동식은 참 알기 쉬운 생물이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잠시 뒤 부리리릿 하고 엄청난 양의 똥을 싸버리는 것을 보며 사라져 버렸지만.
...폭풍과도 같은 새벽이었다.
겨우 자실장 두 마리를 씻기고, 대야에 한가득 쌓인 똥을 버리고, 사방으로 튄 똥자국들을 정리하니 이미 평소 일어나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서둘러 동식 자신도 씻고 출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직장인 파견소가 가까워서 다행이다.
평소보다 훨씬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었다. 텅 비어버린 옷장을 보니 옷을 좀 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일을 돕는다고 버린 바지가 세 벌에, 어제 실장석들이 더럽힌 바지가 한 벌. 딱히 비싼 옷은 아니지만 그래도 완전 싸구려도 아닌데 지갑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 외에도 왜인지 작은 자실장이 아무렇게나 벗어서 돌돌 말린 양말을 가지고 놀았는지 똥칠이 되어 있어서 바지와 같이 버려야 했다.
"테-스, 테-스"
피곤했는지, 씻고 나서 울다가 곧 잠들어 버린 두 자실장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용히만 있으면 인형이 따로 없는 귀여운 녀석들인데. 상자 안에서 푹신한 수건에 감싸여 세상 모르고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옆에는 물을 담은 접시와, 먹다 남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과일 조각 몇개를 놓아 두었다. 뭘 먹고 사는 생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제 과일을 먹는것을 보긴 했으니까.
"어이쿠, 늦겠다."
동식은 혹시라도 자실장들이 추울까 봐 창문을 닫고 보일러 온도를 조절한 후 현관으로 나갔다. 몸은 어제의 중노동에 이어 실장석들 새벽 난입으로 엄청나게 피곤하지만, 그래도 금요일이라 오늘만 참으면 주말을 느긋하게 보낼 수 있다 생각하니 조금은 발걸음이 가볍다. 버릇처럼 자동차 키를 들었다가 내려 놓고, 신발을 신는다. 그러고 보니 구두도 온통 긁힌 자국으로 엉망이다. 부모님께서 생일 축하로 사 주신 물건....
뭉클.
낯선 감촉에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친다. 설마... 설마....
천천히 발을 꺼내자, 검은 양말이 초록색 끈적끈적한 '무언가'로 푹 적셔져 있었다. 동식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실장석 똥이 여기까지 튄 것인가?
질척.
이번엔 오른 손이다. 손을 올려 보니 뭔가 끈적끈적 차가운, 투명한게 묻어 있었다. 똥은 아닌데... 대체.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지독한 냄새, 실장취가 났다. 동식은 학교에서 두 번이나 수석을 차지했던 '나름' 명석한 머리를 굴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리해냈다.
증거 #1
전 주인이 만들었던 애완동물용 출입구를 막았던 테이프가 너덜너덜 떨어져 있다. 동식이 살고 있는 집의 원래 주인은 귀농을 결심했던 노부부라고 한다. 그래서 이 작지만 안락한(진짜다) 집을 짓고, 애완견 두 마리와 함께 시골에 정착했는데 2년 만에 못 견디고 돌아갔다고 했다. 아마도 동식 생각에는 텃세 갑질을 부린 마을 주민들 때문이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현관문에 애완견들이 들락거릴 출입구를 만들어 놨는데, 문을 새로 하자니 제법 큰 돈이 들어갔고, 테이프로 막아두면 딱히 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방치 해 두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진 테이프 때문에 자실장이 들락거릴 수 있는 틈이 생긴 것이다. 아마 감 조각을 얻어먹었던 자실장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온 모양.
증거 #2
구두에 잔뜩 쏟아져 있는 똥과, 주변에 자잘하게 흩어져 있는 똥. 자실장 사이즈로는 현관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높이 조차도 오를 수 없었기 때문에 구두를 밟고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몇 번이나 떨어졌고, 구두 안에서 성대하게 빵콘을 했으며 바닥에 덜어지면서 자잘한 파편을 튀겼을 것이다.
증거 #3
구두를 밟고 올랐어도 한 번에 올랐을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현관에서 집 안으로 이어지는 턱에 몇 번이나 얼굴을 부딪히고 침을 흘렸을 것이다. 축축하고 투명한 액체는 그렇게 흘린 똥 이외의 체액이 분명하다.
사건 해결! 을 외치고 싶었지만, 지금 동식에게 현실이란 빠듯한 출근시간에 손에는 실장침을, 발에는 실장똥을 잔뜩 묻힌 절망적인 상황일 뿐이었다. 간밤의 폭풍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안녕하세요 김 대리님."
"안녕하세요 미희씨."
20분이나 지각한 김 대리의 모습을 보는 미희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어디 아프세요 대리님?"
"에?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얼굴이 말이 아니신데요. 처음으로 지각도 하시고... 병가라도 쓰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말에 동식은 벽에 걸린 거울을 보았고 놀랐다. 아침에 나름 왁스 발라가며 정리한 머리는 여기 저기가 삐져 나와 있고, 눈 밑에는 시커먼 다크 서클이 걸려있다. 심지어 생각해보면 어제 점심부터 오늘 아침까지 감 몇 조각 먹은 것 빼면 먹은것도 하나도 없다! 죽은 사람 몰골인 것이 당연하다.
"아뇨 그냥 좀 피곤하네요. 괜찮습니다 미희씨."
"흐음...."
동식은 자기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깊게 몸을 묻었다. 전임자가 두고 간 선물인 명품 사무용 의자가 아직도 근육통으로 욱신거리는 등짝을 부드럽게 받쳐주자 조금이라도 편해진다.
"참, 대리님. 오시면서 문 앞에 똥벌... 실장석 없었나요?"
"네?"
뜨금하며 고개를 돌리는 동식.
"실장석들은 말이죠, 보기에는 그래도 엄청 영악한 생물이에요. 한 번 먹이를 주면 그걸 기억해서 무리를 지어 찾아오거든요. 그리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고, 먹이를 안 주기 시작하면 보복까지 할 거에요."
"하, 하하하, 그렇군요."
"그래서 어제 대리님이 먹이 주시는 것 보고, 분명 오늘은 잔뜩 몰려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나보네요."
"그거 다행이네요."
사실 동식 입장에서는 '내가 잘못한건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긴 하지만, 왠지 어제 있었던 일을 밝히기가 껄끄러운 것이다.
"미희씨는 실장석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가봐요."
"네 제가요?"
갑자기 미희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며 살짝 상기됐다.
"으... 아니에요 잘 안다고 해야 하나 싫다고 해야하나."
"그, 그러시군요."
"어쨌든 그런 생물과는 엮이기 싫어요."
단호하게 말하는 미희를 보며 동식은 약간 질리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보면 자신도 어제 된통 당하지 않았던가. 그런 일을 두 번 다시 당하면...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집에 재워두고 온 실장석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아까 최 영감님이 오셨었어요. 보험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시던데요."
"에엣? 진짜요? 왜 빨리 말 하지 않으셨어요."
동식은 얼른 짐을 챙기고 튀어나갈 준비를 했다. 최 영감님은 마을 뒷산 주인이었다.
"...그런데 거기 오늘 벌목하는 날이에요."
"...."
"꼭 가실거면 목장갑이라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동식은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털썩하고 의자에 앉았다. 미희는 피식 웃더니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솔직히 말해서 마을 분들 일을 좀 도와드려도 괜찮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힘들다. 여러가지 일이 있긴 했지만 입사 이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지각이라니. 잠깐 눈을 감고 쿡쿡 쑤시는 안구 주변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시간이 애매하긴 하지만 뭐라도 먹는 편이 나으려나.
"실례합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동식은 튀어 오르듯 일어섰다. 은행 창구 업무 시절부터 몸에 벤 버릇이다.
"안 목사님 아니신가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하, 은행 일을 볼게 있어서 지나가다 잠깐 들렀습니다."
산발한 머리카락에 검은 옷, 말랐지만 말쑥한 얼굴. 동식의 집 근처에서 '하늘과 인간과 실장석의 교회'를 운영하는 안토식 목사이다.
"저희 교회를 후원 해 주시는 독지가 분들이 계신데, 예산을 관리하는 계좌를 가급적이면 가까운 은행에서 만들었으면 해서요."
"아! 그러시군요. 그럼 이 서류를...."
싱글벙글하며 관련 서류를 차례대로 내놓는다. 창구 실무를 본지 한참 지났지만, 거의 몸에 베여 있는 경험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동작하고 있었다. 절차에 따라 어렵지 않게 계좌가 만들어지고 출금용 카드와 인터넷 거래용 패스워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차나 한 잔 하시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동식은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요! 제가 여기 와서 처음으로 찾아오신 '제대로' 된 고객이신데요."
미희의 질문에도 힘차게 대답한다. 3개월에 한 건. 그나마도 그냥 계좌 개설이라니, 여러모로 낙제감인 실적이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실적에 대한 질책이 오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어떻게 친해지셨어요?"
"저희 집 이웃에 살고 계시거든요. 지나가다가 어쩌다 알게 됐네요."
"아, 그랬지요."
"참 좋으신 분이에요."
"네... 어떤 분인가요?"
"미희씨는 모르세요? 제가 오기 전 부터 살고 계신 것 같은데."
"몇 년 되시긴 했지요. 그런데 뭐랄까... 솔직히 말해서 마을에선 붕 뜬 느낌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실장석을 다들 싫어 하시는데, 그걸 모아놓고 '실장 고아원'을 운영한다니 반응이 어떻겠어요?"
"...그것도 그렇네요."
"한편으로는 대단한게, 귀농하는 사람들 대부분 마을 노인네들이 텃세 부려서 쫓아내곤 하는데 저 목사님이란 사람은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 버티고 살고 계시잖아요. 노인네들 말로는 항의하러 가면 자기도 모르게 설득당해서 오게 된다네요."
동식 입장에서도 이상한 카리스마가 있는 양반이란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그 정도일 줄이야.
"아무튼 좀... 시골에서 드물게 잘 생긴 젊은 사람이라 따라다니는 여자애들도 있고 했는데 저는 좀 꺼려지네요."
이래서 잘 생긴 놈들은... 이 아니라, 마음이 복잡해지는 동식이다.
그래도 어쨌든...
'내일도 살아가는거야!!'
동식은 마음을 다잡았다. 적어도 내일은 휴일, 공업사에 맡긴 차도 찾아오고 오랜만에 쇼핑도 하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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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피 학대물인줄 아셨나요?
쟌넨, 김대리 학대물이랍니다 데뿌뿌뿌
첫댓글 두루군 마리면ㅋㅋㅋ 와 지명 쩐다
후타바 공원처럼 딱 박히는 지명을 고민했는데 개인적으로 스크에서 젤 만족스러운게 지명임 ㅋㅋㅋ 그나저나 중간에 싸지말고 잘 연재하는 뎃샤
학.살.학.살
ㅎㅅㅎㅅ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
목사가 미친놈일 거 같은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숫도 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김머리가 뭔가 했네 ㅋㅋㅋㅋㅋ
아아... 제발... 나를 학대하지 마
조금만...(헉헉) 더 참으면은...(허억허억) 기분이... (하악)좋아질거야
김대리가 안타깝다...
감정이입 ㅠㅠ
앞으로도 기대리는 심하게 고생할 거 같네요. 학대파로 각성할려나...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