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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순스님 |
다섯 선지식과 나의 견해가 다르지 않아 기뻐
송광사 인월암에서 안거중인 원순스님〈사진〉이 〈금강경오가해설의〉여섯권을 완역해 세상에 선보였다. 금강경오가해는 중국의 수많은 금강경 번역자 가운데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다섯분의 해설서를 모아 놓은 것이며, 〈금강경오가해설의〉는 근세 조선 초 함허스님이 자신의 시각으로 다섯분들의 해설을 평해 놓은 책이다. 함허스님의 이러한 노력에 의해 금강경오가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고 유통되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하겠다.
이번에 원순스님이 금강경오가해설의를 번역한 것은 자신이 번역한 ‘금강경 뜻풀이 책’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최고 권위를 인정받은 다섯분의 해설과 비교해 보면서 시작됐다.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 경전으로 한국불교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유통되는 경전이다. 대승불교의 교리 및 기본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문장이 짧고 간결해 오묘한 뜻을 담아내고 있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여 자신의 근기에 맞추어 얼마만큼 제대로 이해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이 경전이 중국에서 구마라집에 의해 번역된 이후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수많은 선지식들이 ‘금강경 뜻풀이’를 하였고, 그 결과 수많은 뜻풀이 책들이 양산되고 있다. 육조혜능스님 당시에도 알려진 것이 800여종이 넘는다고 했으니 지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원순스님 또한 ‘금강경 뜻풀이 책’에 한권을 추가한 것인지 모른다.
원순스님은 2009년 〈조계종 표준 금강경〉이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책을 보고, 표준이 되는 〈금강경〉이라면 모든 사람들이 쉽게 그 뜻을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우리말 금강경’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2010년 5월 〈우리말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엮어 출간했다.
이런 생각을 냈던 것은 10만부가 팔렸다는 조계종 표준 금강경이 스님이 보기에도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전을 매일 접하는 스님이 어렵게 여긴다면 일반 불자들 또한 어렵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한글금강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출간해 놓고 내가 정말 제대로 번역을 한것인지 검증이 필요했다. 〈금강경오가해설의〉는 자신을 검증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했지만 여섯분의 해설이 본인의 해설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철스님의 종정 취임법어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구절은 야부스님 말씀이다
이렇게 여섯분의 안목이 스님과 맞는지 안맞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한권씩 공부하고 정리하는데 2년이 걸렸다. 2010년 12월 육조단경 출간 이후 2년의 세월을 매달려온 것이다. 그 기간중에 특이한 경험도 했다고 한다. 야부스님 금강경을 발행한지 2~3달쯤 되었을 때 미국 하버드 도서관에서 책을 구할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시중에도 많이 유통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저 멀리 외국의 도서관에서 소식을 듣고 내게 연락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 하다고 했다.
금강경오가해설의
1981년 해인사 성철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면서 내린 법어 가운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이 〈금강경오가해설의〉에 나와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강경 5장에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는 대목에서 야부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부처님은 어느곳에 계시는고?”라고 물으면서 뜻풀이를 하였다.
금강경 뜻풀이 책 가운데 역사적으로 검증된 중국의 스님 다섯분인 규봉종밀, 육조혜능, 부대사, 야부도천, 예장종경의 해설을 묶어 놓은 책이 금강경오가해이다. 저마다 개성이 다른 다섯분의 주석을 누가 언제 무슨 의도로 골라 편집했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무학대사의 상수제자인 함허득통이 자신의 견해로 금강경 뜻풀이를 해나가면서 다섯분의 해설에 당신의 견해를 덧붙여 놓은 것이 〈금강경오가해설의〉이다. 이렇게 함허득통까지 합쳐 여섯분의 금강경 뜻풀이 책이 됐다.
여섯분의 금강경 뜻풀이는 규봉의 찬요, 육조의 해의, 부대사의 찬,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 순으로 되어 있고, 함허득통은 금강경의 원문과 야부의 송, 종경의 제강에 주로 설의를 붙였다. 육조와 부대사에 대해서는 육조스님의 서문과 부대사의 마지막 게송에만 설의를 붙였다.
여섯권의 책을 내고 사형인 천제스님에게 올리니 첫 번째 질문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사상을 어떻게 푸는줄 아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철스님께서는 “아상은 주관, 인상은 객관, 중생상은 공간, 수자상은 시간으로 푸셨다”고 말해줬다. 여기서 스님이 번역한 번역문을 소개한다.
〈금강경 원문 스님 번역〉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나라는 모습에 집착하고(아상), 남이라는 모습에 집착하며(인상), 나와 남들이 어울려 생겨나는 우리 중생이라는 모습에 집착하고(중생상), 또는 이들 모두의 생명이 영원할 것이라는 모습에 집착한다면(수자상), 이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님은 이 부분을 비교하면서 본인의 번역과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왜 저자별로 엮었는가?
원순스님은 “〈금강경오가해설의〉를 굳이 여섯선사 각각의 해설서로 나누어 엮은 것은 번역하는 동안 이 책의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이 경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금강경오가해설의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금강경 원문이 나온다. 그리고 규봉, 육조, 부대사, 야부, 종경의 글들이 이어지며, 이 내용들에 함허 스님의 설의가 곁들여지고 있다.
규봉의 찬요는 금강경의 중요한 뜻을 모아 풀이해 놓았다는 것이고, 육조의 해의는 금강경의 이치를 풀어놓았다는 뜻이며, 부대사의 찬은 금강경의 뜻을 찬탄한다는 것이고, 야부의 송은 금강경의 뜻을 간결하게 게송으로 풀었다는 것이며, 종경의 제강은 게송으로 금강경의 골격을 잡아가며 골수를 잡아내엇다는 말이다. 함허의 설의는 금강경오가해를 이해할 수 있는 올바른 이치를 설했다는 것이니 이들 모두 총체적으로 금강경 뜻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금강경의 한 장면을 여섯분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 특색있는 문학작품으로 표현해낸 것과 같다. 여러사람의 글이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한 곳에 모여 있으니 처음 경을 보는 사람들은 여러 선사들의 의도와 뜻을 헤아려 보기에도 벅찰 수 있다. 또한 원문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그 근본을 놓치고 곁가지에 집착하여 붙들고 있는 격이 되기도 쉽다.
이러한 연유로 원순스님은 여섯분의 금강경 뜻풀이를 저마다 각각의 금강경 해설서로 독립시켜 책으로 냄으로써 금강경을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를 위해 하나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 읽기 편한 해설서가 되도록 했다.
금강경을 공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금강경을 오가해의 해설로 읽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금강경오가해를 보고 특히 어느 한분의 해설이 좋아 그 분의 해설만 읽고자 하는 이들도 분명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오가해설의를 여섯권으로 나누어 출간함으로써 이미 번역본으로 나와있는 금강경오가해설의와 더불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재가 될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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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오가해설의> 여섯권 |
여섯선사 해설서의 특징
육조스님께서는 금강경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가르치듯 기본적인 용어를 설명하면서, 어려운 부분에서는 평이한 단어로 알기 쉽게 차근차근 풀어주고 있다. 저자는 육조스님 금강경부터 번역하기 시작한 것도 이 책이 가장 기본적인 해설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대사는 양무제가 금강경 법문을 청할 정도로 당시 금강경 대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부대사는 금강경 경문 그 단락단락마다 담긴 뜻을 게송에 담아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보여주고 있다. 금강경 경전 내용을 시의 형태로 되풀이하여 설명한 것이다.
야부스님은 금강경의 골수를 선시로 다시 풀어냄으로써 그 자체로도 훌륭한 선어록이 되고 있다.
종경스님은 때로는 선시로 때로는 ‘한번 일러보아라’일갈하며 후학들을 가르치는 선사답게 금강경을 공부하는 후학들이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함허스님은 우리나라 스님으로 금강경오가해의 오류를 바로잡고, 후학들을 위해 다섯선사의 해설 가운데 어려운 부분에 설명을 붙여 금강경오가해설의로 엮은 스님이다.
규봉스님 금강경은 해설서라기 보다는 논서에 가깝다. 세친보살이 천친론에서 내세우는 27가지 의심을 끊는 내용으로 금강경을 논리적으로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전을 번역하는 것은 단지 글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글에서 부처님 뜻이 글과 조화롭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전을 읽으면서도 삶에서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부처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고 그러한 경전은 생명력이 없다. 누가 읽더라도 경전을 통해서 부처님 뜻을 알고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부처님 삶을 실천하며 살게될 거라는 생각이 있기에 경전 번역에 심혈을 기울였는지도 모른다.
금강경을 보는 입장은 다양하고 독특하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스님은 책을 내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규봉스님에 대한 오해에서 오는 이해부족이었다. 일반적으로 규봉스님은 돈오점수를 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돈오돈수를 따르는 선의 전통에서는 온전히 받다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번역을 마치고 보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의문에 대해 명쾌하게 해설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