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곳간을 지키는 구렁이/글.법철스님▒
옛날, 부산 범어사의 달 밝은 고요한 밤이었다.
달빛 속의 고요한 산사에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났다.
낙엽이 바람에 무수히 흩날리고,
법당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몸부림을 치면서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바람 속에 가까운 숲 속에서 부엉이의 음침한 소리가
광풍에 가세하듯 엄습해왔다. 그 때,
사찰의 주지스님의 방안에서는 명학스님 혼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시줏돈을 세고 있었다.
그는 출가하여 승려가 된 이후 불경에는 관심이 없고,
더더구나 선방의 문고리조차 잡아본 적이 없는 철저한 사판승이었다.
그는 출가승려로써 생사해탈의 공부도 중요 하지만,
사찰의 건립과 운영, 보수와 대중외호도 중요하다고 생각,
자신은 너무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찰이 퇴락 하여 쓰러지려하면 창·개수(創, 改修)하기 위해서
즉각 신도들에게 모금을 해야 한다. 또, 일없이
먹어대기만 하는 것 같은 대중을 외호 하려면,
역시 신도들에게 모금을 해야 한다. 모금이 어디 쉬운 일인가.
명학스님은 누구보다도 선 공부를 한다면서 허구헌날
방안에서 앉았다가 먹어대기만 하는 것 같은
선원납자를 은근히 경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로부터‘명학선사(明學禪師)’라고
호칭되는 것을 노골적으로 좋아했다.
같은 시간, 객실에서는 60대의 노승 한 사람이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20대 초반의 젊은 승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승은 금강산에서 온 객승이었다.
그는 다 헤어져 꿰맨 누더기 옷을 걸치고 좌선자세로 앉아서
자비로운 눈으로 젊은승려를 건네 보았다.
노승은 오랜 세월 선정을 닦은 선원납자였다.
그는 금강산에서 선 수행을 하다가 동안거에 들어가기 전,
부산 범어사에 까지 이른 것이다.그는 낮에 유심히 보았던
젊은 승려를 객실로 불러 들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내일이면 금강산으로 떠나야 하는데,
떠나기 전에 젊은 승려에게 깨우쳐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는 젊은승려를 법기(法器)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젊은승려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노승은 자신을 함월(含月)이라고 소개하고 젊은 승려에게 물었다.
“자네를 부른 것은 자네가 하도 부지런히 노동을 하기에
자네를 불렀다네. 자네의 법명은 어떻게 되는가?”
“예. 저는 속성은 경주 김가이고, 법명은 영원(靈源)이며,
이곳 주지이신 명학스님의 상좌입니다.
출가하여 득도한지는 6년 째 입니다.”
“그동안 무슨 공부를 하였는고?”
“저희 스승께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모두가 공부아닌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부지런히 일을 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일만 할 뿐 달리 공부한 것은 없습니다.”
“승려가 되는 기초공부인 불경은 배웠는가?”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저희 스승께서는 중은 염불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신도들로부터 시주를 받기 위해서는 염불을 잘해야 한다고 해서
목탁 치고, 요령 흔들며, 염불하는 것은 배웠지요.
하지만, 부처님 경전은 하나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불교에 입문하여 처음배우는‘초발심자경문’은 배웠겠지?
“그것도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나무관세음보살. 절집에 6년이나 있으면서
그것조차 배우지 못하고 소처럼 일만 하고 있었구먼.”
함월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자네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부처님의 말씀인 경문을 보지 않고,
부처님이 수행하시던 선 수행도 하지 않으니
진짜 부처님의 제자라고 볼 수가 없네.
공부라는 것은 때가 있는 것이네.
자네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네.
부처님이 아신다면 슬퍼하실 걸세.안타까운 일이지.
우주의 시간에서 볼 때 인간의 생사는 전광석화 같다네.
자네가 부처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출가승려가 공부하여 깨달아 광제중생을 하지 않는다면
첫째 나를 낳아준 부모님 에게 출가하여 효도하지 못한 죄와
시주님들의 시줏밥을 공짜로 먹어댄 도적과 같은
죄를 짓는 것이니,양가득죄(兩家得罪)를 하게 되고,
둘째, 자신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배우지 못한
후회의 한을 갖게 되고,
셋째, 승려가 공부하지 않고 탐착만 부리다 죽었을 때,
그 영혼은 속세의 영혼보다 죄가 무거워 명부(冥府)의
염왕(閻王)으로부터 추상같은 심판을 받아 지옥고와
추악한 업보의 몸을 받아 온갖 고통을 받게 되고 말 걸세.
알아듣겠는가?”
밤이 깊도록 함월스님은 젊은 영원을 위해서 공부 길에 나서라고
무수히 권장하고 촉구했다. 영원은 함월스님의 고귀한
법문의 뜻을 깨닫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공부를 하겠다고
맹세하며 절을 올리었다.함월스님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내일새벽에 금강산으로 떠날 것이네.
나는 금강산에서 공부하려는 자네를 기다리겠네.”
같은 시간, 범어사의 후미진 구석방에서는 승려 셋이 비분 어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30대 후반으로서
명학스님의 상좌들이었고, 영원의 사형들이었다.
세 승려들 중에 남산(南山)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부처를 이루자고 절에 들어와서 이상한 스님을
은사로 삼은 탓에 나는 무식쟁이가 되었고,
아는 건 고작 염불 몇 편뿐이네.뭘 배워 알고 염불을 해야 하는 건데…
아까운 청춘만 가버렸다니까.”
동산(東山)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도 아까운 청춘이 가버렸지.”
그 때 북산(北山)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고는 내뱉듯이 말했다.
“세속에서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승려가 되어서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이제 생각하면 진리였어.
나역시 노임도 없는 노동자로 죽도록 일만 해온 무식쟁이지.
아까운 청춘이 가버렸다니까.”
북산이 음침하게 웃으며 선동하듯 다시 말했다.
“은사스님은 신도들만 만나면 우는소리를 해대는 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네.
내가 은사스님에게 체통을 지키세요, 라고 하니까,
화를 벌컥 내시면서,사찰운영을 하자니 호주머니에 먼지뿐이니,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야. 시주를 받으려면,
명분을 세우고 부처님을 들먹이며, 우는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은사스님이 신도에게 하시는 말씀 기억하시나?”
남산이 실소를 터뜨리며 대꾸했다.
“무소유사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저승 갈 때 무얼 가지고 가는 것이냐, 는 것이지?
우리 은사스님이야 말로 진짜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 가시려는 것인지.”
이번에는 동산이 이마를 찡그리며 화답했다.
“은사스님은 그동안 챙긴 시줏돈을 어디다 감추었을까?
아마 수 만 량이 될 터인데. 방안에 두었을까?
아니면 누구에게 이자놀이라도 하는 것일까?
잠시 외출만 해도 방문에 쇠부랄만한 자물통을 채우니
알 수가 있어야지.나는 그게 궁금해 죽겠다니까.”
북산이 코웃음을 치더니 순간 심각한 얼굴로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가 그 돈을 찾아보세.우리중 누구든 그 돈을 찾으면
사형제간의 의리를 생각해서 삼등분해서 나누세.
나는 그 의리를 지키겠다고 맹세하겠네.
자네들은 어때? 혼자 발견해서 도망치지는 않겠지?”
남산과 동산은 동의했다.
북산은 더욱 음성를 낮추어서 속삭이듯 말했다.
“자네들에게 일급 정보를 알려 주겠네.
은사스님이 신뢰하는 공양주보살의 말에 의하면,
은사스님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사제인 영원을 신뢰한다는 거야.
은사스님이 죽으면 자신의 전 재산을 영원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씀을 하더라는 것이야.
이런, 제길. 우리는 말짱 헛거야.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남산과 동산은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딱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가운데 분해서 씩씩거렸다.
북산은 간교한 눈빛을 빛내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우리 셋이 합심하여 할 일은 영원을 하루속히
내쫓아 버리는 일을 해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그래야 은사스님의 돈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지 않겠나?”
남산이 이마를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착한 사제를 어떻게 내쫓나? 무슨 방법으로?”
북산은 개가 으르렁거리듯 사납게 말했다.
“강온의 방법이 있지.”
동산이 황급히 물었다.
“강온의 방법을 말씀하시게.”
“강은 지리산 참회를 시키는 것이네.
지리산 참회는 트집을 잡아 몽둥이 찜질을 하는 것이고,
온의 방법은 달래고 부추기어 내쫓는 방법이지.”
남산이 더욱 이마를 찌푸리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착한 사제를 두고 지리산 참회는 절대 꺼내지 마시게.
신장님의 벌을 받을까 두렵네. 온의 방법으로 하세.
언제 그 방법을 쓸 텐가?”
북산이 사나운 눈으로 확인하듯 두 사람을 보면서 결론을 지었다.
“내일아침부터 착수하세. 우리는 한 배를 탄 동지일세.
절대 의리를 변해서는 안되네.
특히 은사스님의 돈을 혼자 독식하는 자는 절대 없어야 될 것이네.
꼭 삼등분해서 평등히 나누세. 맹세할 수 있지?”
그들은 합심을 맹세하는 뜻에서 방바닥에 손바닥들을 포개었다.
그들이 문 밖을 나섰을 때 밖은 여전히 광풍에 의해
낙엽이 흩날리고,풍경소리가 비명을 내질러대었다.-계속-
※ 설화 내용이 너무길어서 3번 나누어 올립니다
첫댓글 정말 이런전설이 숨어잇어나 하는 의문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