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 한글판 딱지본소설 - 용맹무적 남이장군실[ 勇猛無敵 南怡將軍實記 ]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2. 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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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 한글판 딱지본소설 - 용맹무적 남이장군실[ 勇猛無敵 南怡將軍實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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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7. 22:19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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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 한글판 딱지본소설
용맹무적 남이장군실기
[ 勇猛無敵 南怡將軍實記 ]
명장의 억울한 죽음을 대하는 세 갈래 시선
장도빈(1888~1963)의 <남이장군실기>(덕흥서림, 1926)는, 유능한 청년 장수로 이름을 떨쳤으나 모반을 꾀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 남이 장군(1441~1468)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뛰어난 무예를 지녔으면서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남이 장군의 삶은 일찍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무속에서는 그가 신으로 모셔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장도빈은 그러한 관심을 배경에 두고 소설 <남이장군실기>를 출판하였다.
그런데 흩어져 있던 설화를 모아 일대기를 재구성하다보니 남이 장군의 조부모였던 의산군 남휘(?~1454)와 정선공주(1404~1424)가 조부모가 아닌 부모로 소개되는 사실의 오류가 나타나기도 하고, 남이 장군이 권람(1416~1465)의 딸을 괴롭히던 귀신을 물리치고 혼인을 했다는 설화 내용은 두 사람이 이미 궁궐에서 대면한 후 사랑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내용으로 윤색이 되었다.
그런 변화 외에도 남이의 행적을 통해 고려의 명장 윤관의 업적을 소개하고 조선 옛 영토의 회복을 강조한 것은 역사학자로서 작가가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수단으로 이 작품을 활용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남이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전개는 주변 인물들을 상대적으로 왜소한 인물로 만들어서, 유자광은 청혼을 거절당한 데 대한 앙갚음으로 남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예종은 무능하면서 남이를 질투했던 임금이고, 구성군 준은 겁이 많고 무책임한 인물로 소개된다. 소설에 따르면 남이 장군의 좌절은 개인의 복수심, 무능한 왕과 신하, 신뢰에 바탕을 두지 않은 군신관계 등이 초래한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남이장군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수록 지배체제의 허약함이 부각되고 이는 곧 조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일제가 <남이장군실기>와 같은 작품의 출판을 허용한 배경에는 조선을 열등하다고 각인시켜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해 덕흥서림에서 출판된 <김덕령전>도 유사한 사례이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맹활약했지만 반란군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죽음을 맞았다. 이들 작품은 포부가 좌절된 영웅에 대한 일반인들의 동정적 시선과 민족 영웅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 시선에 더하여 영웅이 자신의 경륜을 펼칠 수 없었던 나라 조선을 바라보는 일제 침략자의 시선이 배후에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품 개요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넷째 딸 정선공주는 의산군 남휘와 결혼을 했는데, 10년 후 남휘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다. 1442년(세종24년) 정선공주는 유복자로 남이를 낳는데 그는 자라면서 무예를 연마하는 데 힘써 차차 영웅호걸의 기상이 돋보이게 된다. 이에 세종대왕은 남이가 왕자의 자손이 아닌 공주의 자손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어느 날, 궁중에서 열리는 잔치에 참석하게 된 남이는 권람의 딸을 보게 되고 그녀에 대한 연정을 품는다. 이런 아들의 의사를 확인한 정선공주는 권람에게 사람을 보내 청혼을 하는데, 권람은 평소 남이의 인물됨을 알고 주목하던 터라 혼인을 수락할 의사를 보이고, 유명한 사주쟁이 최진사에게 남이의 운명을 물어본다. 최진사는 남이의 사주가 30세 이전에 죽을 운명이라며 혼인을 만류하고 이에 권람은 혼인하겠다던 약속을 철회한다. 그러자 남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던 권소저는 상사병이 들고 남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한다.
이에 권람의 집을 찾은 남이는 때마침 죽음에 이른 권소저를 살려 내고, 권람은 남이가 마귀를 물리쳐 딸을 구하는 일이 반복되자 혼인 문제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다. 남이는 최진사에게 권소저가 단명할 사주라 말해 달라 부탁한 후 권람에게 권소저의 사주도 보아줄 것을 요청한다. 자신의 딸 또한 단명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권람은 그렇다면 남이의 사주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여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하고, 남이와 권소저는 부부가 된다.
1467년(세조13년) 회령부사 이시애(?~1467)가 함경도 일대에 거짓 소문을 퍼뜨려 세력을 모은 후 함경병사 강효문을 죽이고 길주에 웅거한다. 함경감사 신면도 이시애의 무리에게 저항하다 잡혀 죽는데, 남으로 향하던 이시애는 과부 이씨의 외모에 반하여 이원에서 여러 날을 유숙한다. 그러는 사이 이시애의 반역사실을 알게 된 조정에서는 회의를 하는데 훈련대장 구치관이 한명회 신숙주 노수신 한계희 권람 등을 이시애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자 임금은 그들을 모두 옥에 가둔다.
한편, 이시애의 무리를 토벌하기 위한 군대를 이끌던 구성군 준(세종의 넷째 임영대군의 아들)은 겁이 나서 행군을 지체하며 그것이 강원감사의 탓이라 둘러댄다. 그러는 사이 선봉대장으로 임명받은 남이는 반적을 쫓아 홍원 북청으로 나아가며 적을 토벌하고 만령산에서 적의 무리와 마주하게 되는데, 산을 우회하여 적을 협공함으로써 싸움에서 이기고 이시애는 길주로 달아난다.
때마침 길주사람 허유례가 남이를 찾아와 계교를 꾸미고, 허유례는 이시애의 진영에 잠입하여 부하 장수들과 함께 공모하여 이시애, 이시합 형제를 잡아 목을 벤다. 남이의 군사들이 난리를 평정하고 서울로 돌아오니 세조는 남이를 병조판서에 임명한다. 이때 남이의 나이 26세였다.
세조 때, 오랑캐왕 이만주는 조선에 조공을 하던 관계였으나, 조선에서 오랑캐 낭복아합과 그의 아들 역승가 등을 처형하니 그들의 원수를 갚겠다며 조선을 침범한다. 이에 신숙주가 출정하여 적병을 두만강 이북으로 쫓아내었는데 세조13년 8월 이만주가 다시 함경도 강계에 쳐들어오니 세조는 남이를 선봉대장으로 임명하여 오랑캐를 토벌하도록 명령한다.
압록강에 도달한 남이는 오랑캐 왕 이만주의 두 아들 이고납합과 이타비라 등을 벤 후 이만주를 회유하지만 이만주는 투항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오랑캐의 본거지인 올미성을 차지한 남이는 이만주를 죽이고 다시는 오랑캐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올미성 안의 모든 것을 태우고 사방의 오랑캐를 평정하는 공을 세운다.
그로부터 두만강 압록강 근처가 무사할 수 있었다. 오랑캐를 평정한 남이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북진하여 고려의 윤관 장군의 비석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그곳에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어졌고 두만강에 물은 말을 먹여 없어졌더라. 남아가 스무살에 오랑캐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뉘라서 대장부라 고하리오”라는 내용의 한시 <호기가>(豪氣歌)를 남기고 한양으로 돌아온다.
세조가 죽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예종은 지혜롭지 못한데다 평소 아버지 세조가 남이를 몹시 아낀 것을 두고 불편해 하던 터였다. 한편 유자광은 남이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후 남이를 깊이 원망하고 있던 차에 “혜성이 뜨면 난이 일어나고 임금이 갈린다”는 말을 남이가 했다고 예종에게 알린다.
이에 예종은 남이를 잡아들여 직접 심문을 하는데 남이는 “혜성은 새로운 임금이 즉위하니 낡은 일은 물러가고 새 정사를 시작하는 징조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라며 역모를 부인한다. 예종은 남이의 말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남이를 변호하는 병조판서 허종까지도 의심한다.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판단한 남이는 자신이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적극 변호해 주지 않은 영의정 강순을 공모자로 지목하고 허종은 자신의 일과 관련이 없노라고 예종에게 말한다.
그러는 동안 정선공주가 왕비 한씨에게 아들의 무죄함을 애걸하니 왕비는 남이를 귀양 보내자고 예종에게 건의하지만, 유자광이 <호기가>에서 “오랑캐를 평정하지 못하면”이라고 한 부분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이라 썼다고 거짓으로 아뢰자 예종은 마침내 남이와 강순 등을 처형하기로 결심한다. 남이가 죽은 후 예종의 꿈에 남이가 나타나니 이로 말미암아 예종은 병이 들고 결국 1469년 세상을 떠난다. 남이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 28세이고 주변 사람들이 많이 화를 입었지만 남이를 사위로 두었던 권람은 그의 딸이 이미 죽었으므로 무사하였는데, 사주쟁이 최진사의 예언이 신통하다고 모두들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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