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쯤의 일이다.
그때 대신동과 내당동 사이에는 극장이 하나 있었다.
당시엔 TV는 없고 라디오만 있던 시절이라 애 어른 할 것 없이 극장은 최고의 오락이었다.
그때는 동시상영을 많이 했는데 재미있는 영화에 재미없는 영화를 끼워 보여주곤 했다.
한 번 입장하면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다.
혹여 재미있는 영화 두 편이 동시상영 한다는 소문이 나면 극장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최신식 호텔이었던 사보이 호텔보다 더 좋은 곳이 달성공원과 인접해있는 시민극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가끔 공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유는 극장에 가면 표를 받고 입장시켜주는 분을 ‘기도’라고 하는데,
그분이 서문시장 우리 건어물 가게에 들러 오징어 같은 것을 잘 얻어가곤 했다.
오징어 값을 받는 대신 나에게 공짜로 영화를 보게 해주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 있으면 표가 없어도 내 얼굴을 보고 짐짓 모른 척하며 들여보내줬다.
나는 앞 사람과 일행인 척 하며 바짝 붙어서 따라 들어갔다.
개봉 초기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려웠지만, 상영기간이 끝날 무렵이면 빈자리가 많았다.
마음씨 좋았던 그 ‘기도’ 아저씨는 내게 동네 아이들이나 학교 친구들 열댓 명 씩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친구들에게 인심을 팍팍 쓰며 어깨에 힘을 줬던 내 모습도 기억난다.
서문시장 건어물 가게 아래쪽에는 콩나물 파는 아줌마들이 대여섯 명 앉아있었다.
콩나물이 쑥쑥 자라있는 시루 단지에서 한 손 가득 집어서 담아주면 손님은 여지없이 요구했다.
“그라지 말고 쪼매 더 주이소!”
“그것도 많이 담은 기라예! 더는 안됩니더.”
“멀리서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좀 더 주이소!
“그렇게 주면 남는 게 하나도 없어예!”
실랑이를 하는 사이 손님의 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시루에서 콩나물을 쑥 빼내갔다.
눈깜짝하는 사이 콩나물 빼는 것이 나는 너무 재미있어 보여 가세했다.
“멀리서 왔다 카는데 쪼맨치만 더 드립시더!”
콩나물을 한 주먹이나 빼서 손님한테 주는 나를 보고
아줌마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좀 특별해 보였나 보다.
귀신같이 콩나물을 잘 빼는 솜씨를 보고, 언제부턴가는 내가 근처에 가면
아예 콩나물 좀 빼놓고 가라며 특권(?) 같은 일감을 주곤 했다.
그러면 나도 아줌마 옆에 쪼글시고 앉아서 콩나물을 잔뜩 빼서는 비닐 봉지에 담아드리곤 했다.
가끔 시장일은 니 일 내 일 구분없이 그렇게 계산없는 정情으로 이뤄지곤 했다.
지금은 사라진 할매 우동집도 생각난다.
당시 버스비가 30원 정도 했는데 우동 값과 그와 비슷했다.
형제가 많은 집이라 우린 먹는 것에도 각별하게 꾀를 냈다.
“할매요, 여기 우동 두 개 주이소!”
두 그릇에 50원 하는 우동값을 치른 다음, 덧붙였다.
“세 그릇에 나눠서 주이소.”
그런 꾀에도 말없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한 그릇, 한 그릇
정성껏 넉넉한 양을 담아주시던 우동집 할매. 그 할매도 이제 세상을 떠나셨겠지...?
대신동 골목과 골목 사이를 오가며 시끌벅적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 놀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남산학교 앞 들판에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가을이 되면 논으로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논에는 나락 반, 사람 반일 정도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그 많던 메뚜기를 함께 잡곤 했다.
당시 메뚜기는 어른들에게는 술안줏감으로 최고였고 아이들에게는 도시락 반찬으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형제들과 그런 추억속에 빠져 걷다 보니 약 한 건어물 가게 앞에 이르렀따.
그곳은 약 60년간 대를 이어 온 가게였다.
꽁지가 세 개 달린 가오리가 있냐고 이것저것 물으며 이야기가 오가던 중 주인이 아는 체를 했다.
“혹시 그... 조선물산 맞지요?”
“어 우리 아버지 가게 이름인데, 우째 아세요?”
첫댓글 그때그시절~ 정겨움 넘칩니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에 정이 가득 느껴집니다.
자연에서 뛰어놀고 함께하는 모습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머릿속에 장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절로 상상하게 되네요.
추억의 그 시절 이야기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소설처럼 읽혀지네요, 참 정겹습니다~^^;
어린시절 추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작가님의 대신동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글을
읽으니 정겨운 시장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따스한 시절이야기 감사합니다.^^
콩나물 한줌 뽑아내면 가지런하게 딸려나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서문시장을 누비던 작가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정겨운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감사합니다^^
대신동 어린시절 추억 함께 합니다~~
대신동
추억 속으로 흠뻑 빠져듭니다
따뜻했던
시절
엄마 아빠도
동내어르신들의 인심도
철없던시절 추억도 그립습니다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재미있고 정겨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추억이 가득한 이야기
서문시장의 사람냄새 가득한 이야기
마음이 따뜻해지고 인정이 넘치는 글 감사합니다
어린시절 추억의 이야기
마음의 평온을 담았습니다
마음의 양식을 채우주시는
따스하고 온화한 글 감사합니다.
시민극장의 '기도'아저씨, 콩나물 파는 아줌마 그리고 우동집 할매... 모두들 정이 가득하신 분들이네요. 이런분들과 저도 함께하고싶어지네요^^
정겨움 가득한 추억의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정(情)"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