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이 오(吳)나라 재상이 되어 떠날 때 그의 조카 원종(袁種)이 말하였다. “오나라 왕 유비(劉濞)는 교만한 자이며, 그의 수하에는 간사한 무리들이 많습니다.
삼촌의 성격에 그런 무리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너무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각박하게 일을 처리하지 마십시오.
만약 그리되면 그들은 황상에게 상서하여 삼촌을 탄핵하거나 자객을 시켜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조카의 말에 원앙은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나는 오나라에 가서 대체 뭘 하며 지내란 말이냐?”
“날마다 술이나 드십시오. 결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마시고, 업무에도 너무 진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왕에게 눈엣가시처럼 보이면 곤란하니까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만 행동하십시오.
그리고 그저 오왕이 간혹 모반하지나 않을까 그것만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다행히 위난을 벗어날 길이 있을 것입니다.” 원앙은 조카의 말을 이해하였다. 그만큼 오나라 왕 유비는 경계해야할 인물이었다.
전에 한 고조까지도 그를 보고나서 ‘모반할 상’이란 인물평을 했을 정도였다.
원앙은 조카 원종의 계책대로 하였다. 그러자 오나라 왕은 원앙을 몹시 후대해 주었다.
오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원앙에게 이런 일도 있었다. 재상의 종사(從史)로 있는 어떤 사람이 원앙의 시비(侍婢)와 밀통을 하였는데, 누군가가 귀뜸을 해주어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원앙은 그 사실을 묵인한 채 종사를 잘 대우해 주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종사에게 가서 말하였다.
“승상께서 자네가 시비와 놀아난 사실을 알고 계시네.” 종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달아나 버렸다.
그러자 원앙은 그 소식을 접하고 몸소 달려가 그 종사를 붙잡았다.
그리고 아예 시비를 종사에게 주어 결혼해 살도록 하였으며, 직급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의 세월이 흘렀다. 한나라의 문제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뒤를 이어 경제(景帝)가 즉위하였다.
이때 오나라 왕 유비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원앙은 오래전에 오나라 재상에서 물러나 관직 없이 향리에 묻혀 있었는데,
경제가 그를 불러 태상(太常)으로 삼고 오나라 사자로 보냈다.
전날 오나라 재상을 지낸 바 있기때문에 모반을 일으킨 유비를 잘 설득해 보라는 황제의 명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유비는 오히려 사자로 간 원앙을 오나라 군대의 장군으로 삼겠다고 회유하였다.
원앙이 듣지 않자 감옥에 가두고 감시자를 배치하였다. 이때 원앙의 감시를 맡은 교위사마(校尉司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전날 재상의 종사로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돈을 다 털어 술과 안주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밤이 되기를 기다려 감시하는 사졸들에게 먹였다. 사졸들이 취해 여기저기 잠이 들자,
그는 감옥 속에서 잠든 원앙을 깨워 말하였다. “어서 달아나십시오. 오왕은 내일 아침에 승상을 베어 죽인다 하였습니다.”
원앙은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대체 그대는 누구요?”
“저는 예전에 승상을 모시던 종사입니다. 왜 승상께서 시녀를 아내로 삼을 수 있도록 해주셨지 않습니까?”
“그대였구려. 그대의 호의는 고마우나 거절하겠소.” 원앙은 조용히 말하였다.
“안 됩니다. 내일 아침까지 여기 계시면 승상께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대에게는 어버이와 처자식이 있소. 만약 나를 도망가게 해주면 그대는 물론이고 그대의 가족들이 해를 입을 것이오.”
원앙이 풀어주는데도 도망을 못가는 이유였다.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저 역시 도망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어버이와 처자식들도 안전하게 피신시킬 방책을 세워 놓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원앙은 안심하고 도망을 쳤다. 감옥에서 빠져 나온 원앙과 옛날의 종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반란을 일으킨 오· 초 7국은 평정되었다.
그 후 원앙은 초나라 재상으로 봉해졌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칩거하였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닭싸움과 개의 경주 등을 구경하며 모처럼 노후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처럼 원앙이 집에만 칩거해 있는데도, 한나라 경제는 가끔 사람을 보내 중요한 일에 대한 의견을 묻곤 하였다.
경제의 아우인 양(梁)나라 왕 유무(劉武)가 자진해서 황태제(皇太弟)가 되고 싶다고 하였을 때,
원앙은 이를 반대하였다. 그로 인하여 유무는 원앙을 원망하고 자객을 보냈다.
원앙이 사는 마을로 들어온 자객은 가만히 소문을 들으며 동태를 살폈다.
여기 저기서 들리는 소문이 원앙을 칭찬하는 말들뿐이었다.
자객은 원앙 앞에 나타나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저는 양나라 왕이 보낸 자객입니다. 그런데 공께서는 덕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제가 비록 돈을 받고 사람을 찔러 죽이는 자객이긴 하지만 덕이 있는 분을 해칠 수는 없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양나라 왕은 저 뿐만 아니라 10여 명의 자객을 풀어 공을 살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객이 물러가고 나서 원앙은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점술가를 찾아가 물어 보았다.
“위험합니다!”
점술가의 말은 이 한 마디뿐이었다.
원앙은 어떻게 하면 이 위난을 피할까 궁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나라 왕이 보낸 또 다른 자객의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다.
-《인물로 읽는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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