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가면 뭐 할 거야?
수험 생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으려 나누는,
요즘으로 치면 MBTI 얘기만큼이나 상투적인
속칭 '국룰 질문'에,
대한민국 남고생 모두가 그리하듯
나도 따라 CC라는 답을 외치면서도,
가슴은 늘 다른 말을 외치곤 했다.
홀릭스... 결코, 반드시, 홀릭스...
데이빗 보위, 레드 제플린, 에어로스미스, 너바나, RATM, 슬립낫,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마이 케미컬 로맨스 등등...
남정네들의 땀 냄새 나는 거친 음악을 동경하던 락찔이였지만,
첫사랑이 들려준 'If'가 계기가 되어 이것저것 찾아 보던 중 'I don't want to miss a thing'과 'always' 커버 영상을 보고는 윤하에 완전히 빠져버렸던 나.
그렇게 윤하와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눈팅하면서도,
주변의 눈치가 두려운 어린 마음에 그 어떤 팬 활동도 하지 못했다.
야자 시간에도 인강을 듣는 척하다가 야자 감독 선생님이 떠나시면 재빨리 Alt + Tab키를 눌러 직캠이나 V앱과 같은 영상물들을 남몰래 즐기고는 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페스티벌에서 촬영된 윤하의 모습이 담긴 온갖 직캠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이 느껴졌었다.
"어른이 되어 내 돈과 내 시간이 생긴다면 이 사람에게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수험 생활을 버텨냈다.
윤하의 노래들과 함께 준비한 수능이 끝나고, 어느덧 2020년, 나에게도 성년이 찾아왔다.
윤하의 노래들이 힘을 준 덕분인지, 감사하게도 초수가 확정된 나는, 이어폰을 꽂고 갓 발매된 'UNSTABLE MINDSET'을 N회독하며 알바와 과외를 오가면서 내 가수와 함께 맞을 분홍빛 미래를 준비했지만...
준비라는 것이 항상 실행의 전 단계라고는
말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거 들었어? 요새 신종플루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터져서 해외에서 난리도 아니래~!
아... 그래요...?
마치 곧 지나갈 실바람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아하던 일이, 그 예전에 동화에서나 봤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던 바람처럼 변하더니, 어느덧 나를 마주보고, 가는 길을 막아서고는,
외투 대신에 알바와 과외 자리를 날려 버리기 시작했다.
새내기 생활까지도,
심지어는 윤하와의 첫만남까지도.
'그 바이러스'는 어렸을 적 주변의 눈치보다도 위협적으로, 그리고 필사적으로 윤하와의 첫만남을 가로막았다.
위 스토리는 곧 다가올 미래를 어렴풋이 알아버린 그때의 내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윤하를 볼 수 있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예매한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0'는...
결국엔 취소되었다.
'그 바이러스'에 확진되는 것은 이로부터 2년 4개월 후의 일이나, 이때 이미 나의 폐부는 '그 바이러스' 때문에 쓰렸다.
코로나 학번의 대학생활이란 정말로 쉽지 않았다.
'나의 하루하루'같은 사랑도,
'Parade'같은 즐거움도 없었다.
이에 초등교육과 특유의 괴랄한 전공 학점 운영까지 겹쳐, 나는 그야말로 반폐인이 되어버렸다.
'Run'같은 재회를 꿈꾸었지만,
교생 실습까지 비대면으로 가는 마당에, 윤하를 볼 수 있는 두번째 기회란 주어지지 않았다.
술만 퍼먹고 노래나 부르다 보니 어느새 2학년이 끝나가고 있었고...
첫 CC가 파국으로 치달아 힘들어하던 중에
'End Theory'가 발매되었다.
윤하라는 가수는, 언제나 내가 힘들어 할 때 나를 찾아주는 것 같았다.
'반짝, 빛을 내'를 들으며 밤하늘을 쏘아보다가 맺히던 눈물은, 온전히 새벽의 찬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휴덕은 아니었지만, 'End Theory'의 발매는
느슨해진 오타쿠에게 긴장감을 주기엔 충분했다.
발매 한달 후에 콘서트를 한대서 예매까지 마쳤지만...
콘서트가 취소되지 않았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었다.
"아이고 종강이야~" (진짜 종강 때문에 아파서 내는 소리)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교에는 종강을 하면 술을 퍼먹어야 하는 이상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의 식도 역시, 마치 생체 킴테크가 된 것마냥 열심히 알코올을 닦아대야 했고,
인당 6병 신기록 달성의 대가로 콘서트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종강을 하고, 본가에 내려와 근처의 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를 하던 중에, 'End Theory'의 리패키지 앨범 발매 소식과, 앵콜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비록 티켓팅 시간이 교육 봉사 시간과 겹쳤지만,
사서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초등학교 도서관의 도서 대출용 컴퓨터로
티켓팅에 성공!!!
그토록 그리던 콘서트에 갈 수 있게 되었다.
VIP석 중에서는 가장 먼 편에 속하는 자리였지만...
떼창이나 호응도 할 수 없어서, 윤하와는 오로지 박수로 소통해야 했지만...
첫 콘서트 관람이 주는 전율에
동행자가 보건 말건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더해
가장 먼저 '살별'과 '블랙홀'을 들을 수 있던 영광까지...
그러나 마음 한켠엔 아쉬움이 남았다.
거리가 멀어서 사실상 내가 진정으로 목격한 것은 윤하로 추정되는, 윤하에 가까운 어떠한 사람의 형체였다는 점과 거리두기 규정으로 인해, 윤하와 한 목소리를 내며 공연을 즐기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 아쉬움을 풀기 위해 이후 학교 에타에
"저기 옆 XX교대는 축제 때 윤하 왔다는데 우리도 불러주세요~!!"와 같은 뻘글도 주기적으로 써보고 학생회장에게 넌지시 얘기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나는 그 아쉬움을 꽤 오래, 근 1년 동안이나 간직해야 했다.
아쉬움이 깊어질 때쯤 기회가 찾아왔다.
전국 투어 스포가 뜬 것이다.
비록... 콘서트를 할 때 쯤이면 나는 다시금 수험생이 되고 말겠지만,
그런 건 상관 없었다.
난 공부보다 윤하가 훨씬 좋으니까!
지리적으로 학교와 가장 가까운 02/11 대구콘을 희망했으나,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이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직접 나한테 "안돼."라고 그랬고...
나는 그 다음주인 멀고 먼 02/18 부산콘 티켓팅에 도전하게 된다.
티켓팅 당일 아침에, 기상 악화로 인해 계획해두었던 제주도 여행이 취소되어,
"아 오늘은 날이 아닌가...?" 싶은 불길함을 느꼈지만,
일전의 그 일은 사실 액땜이었다.
무려... C구역 1열 11번 좌석을 기적적으로 잡게된 것이었다.
(층간소음 이슈로 소리는 못 지르고, 뛰어다니느라 살고 있는 원룸 바닥을 부술 뻔했다.)
.
.
.
(빌드업은 여기까집니당 ㅎㅎ)
그리고 2월 18일이 다가왔다.
아침 무궁화호를 타고 부산역으로 향했다.
전날 친구를 만난다고 1시간밖에 못 잤지만,
가슴이 뛰어서 그런지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
비좁은 거릴 걷다, 수줍은 웃음이 나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마음은 맑은 하늘이었다.
설렘을 못 견디고 너무 일찍 도착해버려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벡스코 앞 카페로 들어갔다.
알바생 분이 너무 잘생기셔서 놀랐다... 부러웠다...
가져온 기본이론서를 펴서 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집중이 안됐다.
집중은 개나 줘버리고
"시간아 가라. 재미없다."하면서 책을 쏘아보고 있었다.
억겁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5시가 되어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데..
너무... 너무 가까웠다...
심장이 막 요동쳤다...
(신난 오타쿠의 주접)
6시까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생각하다가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점을 이용하면 더 많은 내용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임용고시 기본이론서를 다시 폈다. 그야말로 정신 나간 판단이었다.
아니 이거 공부 은근 잘 되더라??
앞으로 임고생 신분으로 콘서트 올 수 있는 핑계가 또 생겨버렸고...? (어머니 저 공부하러 윤콘 좀 다녀올게요)
옆에 분이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아무튼 열심히 공부하다보니 6시 땡! 콘서트 시작!
오랜만에 다시 만난 내 가수는 너무 노래를 잘했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 먹구름 때 진짜... 하...)
세션 분들의 연주는 너무 훌륭했고,
(기타 톤 잡는 법 배우고 싶었어요 진짜루)
가까이서는 처음 보는 내 가수의 실물은 너무 예뻤다...
(하이라이트는 '괜찮다' 마지막 후렴 들어가기 전에 감정 잡던 모습... 그저 극락)
그야말로 감격... 또 감격...
시계좌님 덕분에 살별 2트도 즐기고ㅋㅋㅋ
목 말라했던 떼창도 실컷 했다.
그러다가 앵콜, 'Home' 무대 중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몇 군데에다가 이걸 보낸 건지 모르겠네...
지인 여러분, 죄송합니다. 근데 그럴만 했잖아요 인정?
진짜 저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누나...
(근데 나 보고 하신 거 아니면 어떡하지...
몰라 걍 그렇게 생각할래)
아무튼! 홈체통 앵콜 끝나고
윤하의 발랄한 퇴장을 지켜보고,
나 역시도 벡스홀을 떠나, 바로 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차에서의 기억이 없다.
자취방 돌아와서도 15시간 잤다.
나의 임고 이대로 괜찮은가?
뭐... 윤하의 노래와 함께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친구랑 나눈 임고생식 담화ㅋㅋ
(초등영어교육 기본 이론)
인생 두 번째 윤하 콘서트이자... 첫 떼창을 해본 역사적인 날이었다.
평생 윤하의 팬이고 싶다. 그런다면 행복할 일이 정말로 많을 것 같아.
수미상관식 구조를 위해 마무리를 좀 짓자면!
선생님 되면 뭐 할 거야??
홀릭스... 결코, 반드시, 평생, 홀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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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릭스 여러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실지도 모르는 윤하 누나...
항상 힘이 되어주셔서 고마워요!
평생 응원할게요!
첫댓글 저도 그런 때가 있어서 공감합니다
공뭔이라는 막연한 길을 걸을때
애니덕질이든 윤느님덕질이든 취미가 덕질이 있는사람에게 참 괴로운 기간이였거든요. 그런 3년여만에 고생끝에 그 목표를 이루고 덕질을 하고있어요. 그꿈 반드시 이루어질겁니다 힘 내십시요
애정이 듬뿍 담긴 후기 잘 봤어요~
대단하십니다 증말 ㅋㅋㅋ 잘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