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국 (역사학 박사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인문학으로 풀어 본 무예 14편]섬세한 손길과 눈길 보통 사람들은 ‘무예’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떠올리면 신체를 통해 뿜어 나오는 강력한 힘과 빠른 속도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무예의 본질에는 힘과 속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섬세함이다. 만약 무예에서 섬세함을 뒤로하고 오로지 힘이나 속도에 의존하게 되면 말 그대로 힘자랑하는 싸움꾼의 기술로 전락하고 만다. 처음 무예를 수련할 때에는 멈춰있는 물체를 손이나 발을 이용하여 타격하거나 칼이나 봉을 이용하여 공격하는 기법을 수련한다. 초보 수련생의 경우는 어깨나 허리에 힘을 잔뜩 줘서 세고 빠르게 물체를 공격하려 하기에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제대로 된 공격지점을 맞추기가 어렵다. 수련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깨와 허리의 힘이 빠지면서 섬세하고 정확한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멈춰있는 무생물의 물체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한 타격을 만든다고 해서 그것이 실전에 활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와 대적하는 상대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쉼없이 움직이며 나의 동작에 따라 반응하기에 더욱 신중하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보통 갓초보를 벗어난 수련자들이 실제 상대와 맨손 겨루기나 격검을 시작하게 되면 긴장감으로 인해 쓸데없이 어깨에 허리에 힘을 줘서 섬세한 타격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힘과 속도는 충분한데 정확한 타격 능력이 없다면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고, 자신의 체력만 소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는 눈으로 보여지는 상대의 움직임에 현혹되어 자신이 갈고 닦은 실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섬세함은 대상에 따라 그 움직임의 속성과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에게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꿈속의 나비와 나’라는 이야기로 잘 알려진 중국 고대 도가의 사상가 장자(莊子)가 남긴 글을 보면 섬세함이 얼마 중요한 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장자(莊子)의 글 중 사람이 몸을 기르고 생명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양생주편(養生主篇)을 보면 포정해우(포丁解牛)라 하여 ‘백정의 소 잡는 법도’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한 높으신 분이 백정이 소 잡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그 백정이 손을 움직이고 어깨에 힘을 주고 발로 밟고 무릎을 한번씩 굽힐 때 마다 칼질하는 소리가 쓱싹쓱싹 울려 퍼져 음악의 가락에 맞았다. 분명히 시퍼렇게 날이 선 큰 칼을 잡고 소를 잡고 있는데 그 동작은 아름다운 춤과 같았고, 고기를 절단하며 내는 소리는 악기를 연주하는 듯 했다. 백정에게 실력이 훌륭하니 도대체 어떻게 그 경지까지 다다를 수 있었는가라고 묻자, 그는 칼을 내려놓고 그 내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길,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소의 겉모습만 보았다가 이후 3년이 지나자 눈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마음으로 일을 풀어 가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모든 감각기관을 멈추고 오로지 마음만 움직였다는 것이다.(官知之而神欲行 依乎天理 관지지이신욕행 의호천리) 심지어 보통 백정들은 칼이 무뎌져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바꾸는데, 자신은 뼈는 물론이고 힘줄이나 근육의 형태까지도 살펴 칼을 쓰기에 19년 동안 칼을 바꾸지 않고 수천마리의 소를 잡았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는 "훌륭하구나. 그대의 말을 듣고 나는 삶을 기르는 법도를 알게 되었다"(善哉 吾聞포丁之言 得養生焉 선재 오문포정지언 득양생언)라고 하며 그 섬세한 움직임을 극찬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백정은 말 그대로 섬세함의 절정을 보여준 것이다. 무턱대고 힘으로 칼을 썼다면 한 마리의 소를 도축하기도 전에 이미 칼은 이빨이 다 나가고 무뎌졌을 것이다. 무예 수련처럼 오랜 반복 속에서 뼈와 근육을 읽는 섬세한 심안(心眼)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칼질이 자유로운 춤처럼 보였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이런 섬세한 눈길과 손길이 필요할 때가 많다. 그저 외형상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비로소 생각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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