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우리들의 만남은 점점 깊은정이 쌓이고 모두가 부러워 하는
2014 부초 3회 가을여행 이야기를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올리고자 합니다.
5월 9일 서울 번개모임시 틀니 빠진것을 11월 1일 출발하기전까지 하려고 6개월동안 기다리고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날 늦게까지 좌측 인플란트도 끼여서
10개의 인플란트를 완성 하기까지 마이너스 되고 쪼달린 생활을 아니 할 수 없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도 들고 그랬답니다.
전날 치과도 다녀오고, 부산 갈 보따리도 안싸고 밤늦게 잠이 들어서
새벽 1시 30분, 2시 30분, 3시 40분 이렇게 깨어
할수 없이 늦잠 잘까봐 일어나 청소 및 국과 반찬들을 만들고 부랴부랴 나섰는데 너무 늦었는데도
제정신 아니게 전철을 탔습니다.
그때 바로 정신을 차리고 차몰고 광명으로 갔으면 반가운 친구들과 상봉을 했을 텐데..
서울역을 도착하니 정각 8시 였어요. 기차가 8시 출발인데...
전철에서 서울역까지 헐레벌떡 올라가니 5분이 지나고 내가 만날 친구들을 싣고 기차는 떠났습니다.
거기서 여행사 직원을 만나 회장님의 안내 대로 다음 열차를 타기로 했답니다.
입석으로 가려면 8시 30분 차를 타라고 하지만 엄두가 안나서.. 안했죠.
그걸 타고 영화관으로 가면 된다는 방법을 거기 가서 권영대가 말해줘서 알았답니다.
8시 50분 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가서 관광버스에 앉은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가이드 말대로 라면 안동 친구들과 만나고 버스 기다리고 하느라 많은 시간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정말 미안한 일이였어요.
일단 서울에서 권기진회장,고창영,김희록,남시호,남정식,신동익,이명희,이병은,서영경,서정형이 타고
나는 뒷차로 출발하여 서울 인원은 총 16명입니다.
광명에서 권영대,신동주,박기선이가 탔고, 대전에서 권영웅,고진영(고재복)이가 탔답니다.
춘천 김명희는 차를 서울역에 세우고 서울역에서 함께 내려갔고
안동에서는 권민,권기호,김동선,김상억,조동복(5명)이 왔고, 대구에서는 박영순,김금순,신정숙,홍성기,
울산 한경택이는 저녁에 식당으로 차를 몰고 왔어요.(5명)
부산에서는 권애랑 ,부산 현지에서 신동주가 연락하여 찾아낸 김태경이가 저녁 식사시간에
목발을 짚고 나타 났답니다.(등반하다가 넘어졌다고 함).
우리 인원을 보고 너무 놀라워 했어요.처음엔 부부동반으로 온줄 알고 갈려고 했다고 하네요.
모르는 사이지만 동창이라는 이유 만으로 친절하게 반겨주고 반가워 했죠.
태경이라는 친구도 너무 좋아하고 반가워 했어요.
부산역에 대기 하고 있던 동부테마 여행사 관광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첫코스로 용두산 공원으로 갔다.
신기하게도 가이드가 오늘 다른사람 대신 왔다는데 안동사람이라는 사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런 히얀한 인연이 있다니..
가이드 이름은 권우경씨고 안동 권씨 나이는 37세 키는 186Cm 전공은 유도인데
대학 다니다 다쳐서 쉬다가 롯데로 입사해서 투잡을 한답니다.가이드도 하고..
고향사람이라 동생같이 좋았어요.
서울에서 비바람으로 옷을 잔뜩 입고 갔는데, 부산은 따뜻해서 다들 더워 하고 떠 죽는 줄 알았어요.
용두산 정상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정각 12시에 영도 다리 올라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용두산은 산의 형세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바다로 향하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여 유래라고 합니다.
-초량왜관 : 용두산공원과 이 주변은 조선후기 초량왜관이 있던 지역이며, 조선시대 왜관은 외교와
무역을 하던 유일한 장소이며, 조선전기에는 제포(진해), 부산포(범일동), 염포(울산) 등이 대표적으로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폐쇄되었으며, 이후 관계개선 후 두모포(수정동)가 설치되고 관계가
더 활성화되자 확장하면서 1678년 초량왜간 설치되고 300년간 존속되다가 일본개항 후 용도변경함.
사진을 자유사진 앨범란에 올릴테니 보기 바랍니다.
저걸 보기 위해 일본 사람들은 식사하다가도 나온다고 한다.
*남포동 안내
유명볼거리로는 영도다리 도개, 부산근대박물관 부평동 깡통시장, 광복로 야경,
BIFF 광장, 광복로 불빛축제.
-깡통시장 : 매일평균 평일 3000명, 주말 7000명이 방문, 야시장으로 발전하여 비빔당면, 씨앗호떡, 거인통닭, 양곱창/족발골목 등 먹거리가 다양하다.
-영도다리 도개 : 일제강점기 1934년 개통, 그 당시 국내/동양 최초, 최대 도개교이며, 6.25 당시
피난민들이 꼭!! 다리에서 다시 만나다고 약속하며 헤어졌다고 하며, 헤어진 가족들의 슬픔이 담긴 다리입니다.
2013년 11월 27일에 47년 만에 도개(15분)되어 큰 화재를 모았으며,
12시 정각에 딱 15분 도개되어 많은 외국/국내 관광객들이 모입니다.
용두산 공원 구경후 부산에서 유명한 완당이라는 식당으로 옮겼다.
부산 권애랑이가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많은 식당을 가서 맛보고 부산의 명품식당만 추천한 거라 색다른 것은 다 먹어 볼 수 있었다.
수제비도 만두도 아닌것이 그 얇게 빚은 피속에 깨알같이 작은 고기가 들어 있었다.
그 피 만드는 것이 기술중 기술인것 같고, 발~ 국수라 해서 발로 밟아 만드는 국수인줄 알았는데 발에 담아서 나온 메밀국수 인데 그 맛과 면의 쫄깃함은
다른데서는 먹어 볼수 없는 것이여서 그렇게 유명한가 보다. 그 국물맛이 특허품인거 같았다.
]
이 완당은 박기선이가 내는 것이여서 박기선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여기를 처음 오는거라고 한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권애랑이가 준비해준 부산의 명품떡집에서 해온 떡을 세박스나 들고 차에 올랐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떡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애랑이가 해 온 떡으로 (흙미찰떡,약식) 다니면서 먹어서 저녁이 늦어도 배고프지 않았다.
*태종대 유래
속전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사후(射侯)의 장소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에 따라서
현재는「태종대」라는 호칭으로 보편화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태종대는 기우제를 지내던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이후에는 동래 지방에
가뭄이 들면 동래부사가 이곳 태종대로 와서 비 오기를 비는 기우제를 직접 올렸다고 합니다.
*태종대 설명
청명한 날에는 약 56㎞거리인 일본의 쓰시마섬까지 볼 수 있어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예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일제때부터 오랫동안 군 요새지로 사용되던 관계로 일반시민의 출입이 제한되어 오다가
지난 1967년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였고 뒤이어 1969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습니다.
태종대를 향해 가서 구경을 하고 해운대 요트 경기장에서 요트를 타는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를 맛보게 되는 즐거움을 가졌어요.
요트 한대가 7천~1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요트 승선 가격은 1인당 4만원이고 요트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맛은 밤에 더 아름다웠다.
홍콩을 흉내내어 만들어서 바다 범위만 좁을 뿐이지 홍콩을 방불케 했다.
광안대교 다리에서 비치는 네온싸인은 정말 장관이었답니다.
요트투어를 하고 나니 해가 저물어 추웠어요.
바로 염진호 전임회장이 쏘는 백만원으로 청산우가로 가서 불고기를 아주 싫컷 먹고
신동주가 연락해서 온 태경 친구도 만났답니다.
식사를 길고 여유있게 먹고 9시즘 노래방으로 가서 28명이 끼어 앉으며 한쪽은 안무 부대가,
한쪽은 주인공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장소가 좁아서인지 광란의 짓은 하지 못하고 품격있는 노래들만 불렀답니다.
우리 모임에 함박 웃음을 선사하는 박기선이의 몸짓 하나하나에 우리는 배꼽을 잡았답니다.
숙소인 해운대 바다앞 글로리아 콘도는 바다가 바로 보이는 방으로 애랑이가 얻어놔서
피곤하지만 나가지 않을 수가 없어서
밤11시 30분경에 홍성기,서영경, 나 셋이서 나갔는데 안나갔으면 후회 할뻔 했어요.
젊은이들은 대낮을 방불케 쌍쌍이 다니고. 자화상을 그려주는 분들이 여기저기 빛을 밝히고 있었고,
장당 3만원이라는 가격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화상들을 그리는데
실물보다 더 낫게 뽀샵을 해서 보기 좋았다.
저 멀리 신나게 기타치는 두사람의 젊은이들을 에워싸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백사장 거리공연인데 정말 신나는 음악으로 어깨가 으쓱 거렸다.
또 한곳은 한명이 부르는데 노래가 축 쳐지고 오늘 처음인지 구경하는 사람이면 캔맥주를 돌렸다.
공짜라면 두려운 공포증이 있어서 경계를 했더니 부모님이 아들을 위해서
앉아 구경하라고 돌리는 것이었다.
오늘이 처음인지 왠지 어색하고 준비가 덜된것이 역력했다.
콘도로 돌아오니 새벽 2시가 다 되어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자친구들은 17층, 우린 10층이라 밤에 사건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다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이고 여행철이라 콘도 방이 단 한개도 비지 않고 꽉 찼다니 여행 인원이 얼마인지 상상이 간다.
습관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심심하여 신정숙,박영순,김명희 ,이명희,고진영이가 자는 방으로 가서
떠들고 얘기를 시작하여 시간 가는줄 모르다가 금방 아침 식사시간이 되어 이번엔 상억이가 쏘는 초원복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복이 비싸고 시원하여 다들 좋아하지만, 나는 쌈 다시마에 갈치젖이 너무 맛있어서
애랑이 남편 주려고 복은 포장해 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아번주가 애랑이 친정 모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랑이가 우리를 위해 남고
남편 혼자만 친정 모임에 가셨으니
미안함을 표시 할 방법이 없어서 그리 하기로 마음 먹었다.
애랑이는 우측 어깨뼈를 다쳐 쇠를 박는 수술을 하고, 퇴원하여 깁스 푼지 일주일도 안된 상태고,
앞으로 1년은 족히 고생해야 낫는다니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다.
그 다음 코스는 송정역 부근 문텐로드 트레킹을 하고자 그리로 움직였다.
미포를 지나 청사포를 거쳐 송정까지 가는 길인가 보다
이 길을 걸으니 마음이 안정되고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맑은 공기와 숲냄새, 동창들들과 흙길을 걷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답니다.
*문탠로드(5키로)
선탠에서 착안하여 문탠로드란 이름을 만들고 “달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는 길”이란 의미고.
꽃잠길, 가온길, 바투길, 함께길, 만남길 등 5개의 테마길(총2.2키로). 야간산책도 가능하며 새
벽5시부터 밤11시까지 가로등 켜져 있답니다.
트레킹 끝날무렵 폐쇄된 철길로 이어 지는데 그 철길을 걸으니 기차길옆 오막살이가 생각납니다.
그 철길은 원래 해운대와 송정 사이를 연결했던 곳이고 2013년 12월에 폐쇄되어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다녀가는 곳이고 끝까지 가면 송정 해수욕장이 나와요.
송정 해수욕장 앞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다음코스인 해동 용궁사를 향하여 갔답니다.
*해동용궁사
용궁사->수상법당이라 표현하고 관세음보상님은 이런 바닷가 외로운 곳에 상주하시며
용을 타고 화현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으니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해동용궁사로 한국의 삼대 관음성지이며, 동해의 최남단에 위치한 용궁사는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대사가 창건. 당시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민심이 흉흉했는데
동해 용왕이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라함.
1592년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소실되었다가 1930년 약 300년 만에 중창하여 2007년까지 재신축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용궁사는 우리가 처음 도착했을때도 사람이 많았지만 나올무렵은 인산인해로
들어 가는 줄만 100M가 넘게 기다리고들 있었다.
여수 보리암보다 넓고 웅장해서 속이 후련했다.
어떻게 저런곳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하기사 베트남에 가보니 도저히 집을 지을 수 없는 곳에도
불가사의한 건물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 구경을 하지 않고 막걸리만 들이키고 있는 친구도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있었답니다.
용궁사를 돌고 버스에 와서 목마름을 축이고자 권기호 사모님이 보내주신 안동 식혜의 맛은
말로 할 수 없이 환상이었답니다.
사모님께 감사 인사 드려 주십시요. 꾸벅
먹을것이 많아 부침개 재료도 해 왔는데 먹지도 못하고 돌려 보냈답니다. 원통ㅋㅋ
구경을 하고 점심먹으러 서박사가 쏘는 바우덕이라는 한정식 음식점으로 갔는데
메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환상이었답니다. 반찬 하나하나가 다 맛있어요.
호박죽-야채샐러드-물김치-전-전복초-탕평채-구절판-회무침-탕-잡채-떡갈비-묵은지 등갈비김치찜
순서로 나왔답니다.
꿀맛처럼 먹고 나와서 버스에 올랐는데, 걷고 먹어서인지 정신없이 골아 떨어졌답니다.
부산역으로 가는데 1시간은 소요된것 같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국제 깡통시장은 가 보지 못하고 부산역에 내리니 그렇게 평온했던 날씨가
바람이 불고 스산하기 시작했다.
오기전 이틀동안 전국에 비가 내린다더니 우리 여행 잘 하라고 얼마나 날씨가 좋은지 축복이었답니다.
애랑이와 권우경씨와는 작별을 하고, 경택이는 글로리아 콘도로 차 가지러 가고, 우리는 역사 올라 오기전 한컷을 찍고 커피숍 가는 친구,
앉아 담소 나누며 기다리는 친구등 다양하게 놀다가 승차 했답니다.
누구라고 말은 안하지만 한잔 걸치러 간 몇명이 4시20분에 나타나서(4시 30분 출발)
대구 안동친구들과 이별 인사를 하고, 허겁지겁 타느라 막판에 달리기를 좀 했답니다.
대전에서 고진영, 권영웅 내리고 광명에서 신동주 내리고 ,영대도 내려야 하는데
박선화가 오지 못해 집행부 책임으로 서울까지 올라와서 다시 내려 가기로 하고...
서울역에 7시 20분쯤 도착하여 일반 중국집이 아닌 좀 가격대가 나가는 집으로 가서 모두
이명희가 쏘는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었답니다.
그리고는 김명희는 춘천으로 세워둔 차를 몰고 가고, 여러분! 김명희 너무 고맙지 않습니까?
그 성의 대단하죠? 영대는 다시 군포로 가고 나는 인천으로..
일산으로 가는 서박사, 희록이도 가고.. 각자 자기집으로 헤어졌는데 1박2일 이지만
함께 해서 그런지 엄청 친근감이 듭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기분입니다.
많고 많은 이야기를 이틀동안 근무 하면서 쓰느라 바빴고, 다 못한 얘기는
친구들이 댓글로 남기시기 바랍니다.
일요일 일정이 있는데도 참석하고 당일 밤늦게 대구로 올라간 김금순 정말 고맙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모임에 참석한 고진영(고재복) 기분이 좋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한 박기선 일요일 부모님 49제로 일찍 올라가면서
참석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권기진 회장님이 여러가지로 오만가지 신경 다써서 우리가 즐거운건 다 아시죠?
너무 고생 하셨고 감사 드립니다. 우리도 회장님께 받는게 몸에 뱄는데 고마운건 아무리
경상도 사나이라도 표시를 해야 합니다.
큰일을 치루고 "당신! 이번에 수고했어! 고마워!"라는 한마디에 부인들이 일거리 많아도 피로가 풀립니다.
협찬해준 친구들이 많아 몇 분은 내년을 기약 한답니다.
계인식은 이장 문제로 오지 못했지만 바늘방석 이었을 것입니다.
다음해를 기약하며 이상 부산 여행 후기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썼는데 보기만 하지 마시고 한자정도는 남기시고,누락된거 적어 주시고 가시길...
여러분들 긴글 읽느라 지루할까봐 그림도 첨부 했답니다.
남재수는 어디 간겨? 우리의 심볼! 호박잎과 강된장의 기억으로 남는 재수!!
사업에 지친 염진호 회장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는데 못 오셔서 서운..
애랑이가 좋은 곳과 좋은 음식으로 안내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처음 대화 나눈 조동복! 참 좋은 사람이고 순한걸 느꼈답니다.
대구,울산,부산 친구들이 선물로 안겨준 수제 센베가 참 맛있네요.
매일 한개씩 먹을때 마다 감사함을 느끼며..
첫댓글 신은희~볼수록 겪을수록 진국이네..정성과 노고에 감사한다^^ 글도 점점 진화해가네...이미지도 구성도 좋다!!! 파노라마
역쉬 신은희야! 이젠 각종 사진과 해설로 멋을 내기까지.. 그리고 이틀간의 얘기를 빠짐없이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 하다니..
그런데 서울역에서 저녁먹고 나서 정형 정식 영대 희록은 밤 10시까지 아쉬움을 소주로 달래고 헤어졌다는 소문이...
고박사는 이명희 두고 내빼다니 충격이었다오. 같이 가야 하는거 아닌가? 우린 고박사 찾느라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지
@신은희 아이 엠 쏘리! 급히 들렀다가 갈데가 있어서, 가다보니 그렇게 되었네! 오해 없으시기를...
신씨 맞지.. 최고야
언제나 펼쳐 볼 수 있는 자네 글 정말 고마워...
박선화 서울 회장님! 인제 감기 다 나으셨나요? 이번감기 안걸린 사람이 없네. 골프 모임도 못가고 우리 모임도 못오고..
박영순과 통화하면서 알았답니다. 우리 회장님이 1인당 4만원 하는 보트 비용을 냈다는데 너무 거금 아닙니까?
그리고 금순이를 직원에게 10만원 줘 가면서 모셔다 드리라고 했다니 너무 고맙고 감동입니다. 지난번에는 황영숙이를 서울에서 수지까지 모셔다 드리더니..
이렇게 물질적으로, 실천으로 배려를 하니 어찌 모이지 않겠습니까?
이젠거의작가수준이네.
잘썼어요!
은희를 우리 3회 종신 史官으로 모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