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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하나님 말씀에 붙잡힌 사람(정바울)
나균용 목사님 설교
사도행전 18:5-8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7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은 회당 옆이라
8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혔다는 말의 첫째 의미는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예레미야의 경우를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9절에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의 입에 대시며 “보라 내가 내 말을 내가 내 말을 내 입에 두었노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에스겔서 3장 1절에서 3절에 보면 “두루마리 책을 네가 먹었으니 이제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해라 다 이루어진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 마음에 충만히 거하게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밤새도록 고기잡이에 허탕치고 낙심하여 지쳐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저 깊은 데 가서 던져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내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해서 한번 해보겠습니다”하고 순종했을 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가 위대한 거는 고기잡이 이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본 것입니다. 자기가 누군가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고 능력을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고 여러 가지 지혜를 만나는 것도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께 붙잡히는 사람, 말씀에 붙잡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에 붙잡힌 자의 복은 무엇인가?
첫째로 받는 복은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에 붙잡혔다는 말은 하나님께 붙잡혔다는 말이고, 하나님께 붙잡혔다는 말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둘째로 말씀을 깨닫게 된다. 성경을 읽긴 읽지만 무슨 소리인지 또 의문이 가는 말씀들도 많이 나오는데 주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면 주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셔서 말씀의 더 깊은 세계에 들어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달으면 놀라운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히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 20~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는데 내가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붙잡아주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전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해야지 내 생각을 집어넣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써주시옵소서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달려나가서 쓰임받는 귀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8.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나균용 목사님 설교
창세기 22:1-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해 보실 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는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의 5종 제사는 레위기 1장부터 5장에 보면 1장은 번제, 2장은 소제, 3장 화목제, 4장 속죄제, 5장은 속건제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나타나는 제사가 바로 번제라고 하는 제사입니다.
노아가 홍수 후, 방주에서 나와서 처음 드렸던 제사가 번제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도 번제를 드리는데 양이나 소가 아닌, 너의 외아들 이삭을 드려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릴려고 사흘길 걸리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나무를 벌여놓고 위에 이삭을 결박해서 올려놓고 칼을 들어서 막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독자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겠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가 거짓으로 섬기는가 하는 것을 시험해 보시려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최종 관문이 되는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노라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부어주셔서 아브라함은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선민의 조상이 되는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번제는 노아가 홍수가 끝나고 방주에서 나와 가지고 처음 드렸던 것이 번제였고 아브라함에게도 요구하신 것이 번제였어요. 그러면 옛날 아벨이 하나님 앞에 양을 잡아 가지고 제사를 드렸는데 그것도 보나마나 번제였을 것입니다. 아침에 해 뜬 후에 저녁에는 해지기 바로 전에 정결하고 1년 된 숫양 한 마리씩 번제로 드려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니까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조석으로 양을 한 마리씩 바쳐가면서 번제를 계속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죄제를 드려라 화목제를 드려라 하신 게 아니고 번제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번제라는 게 대관절 뭘까?
왜 하필이면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까? 아브라함에게 너의 독자 이삭을 나에게 번제로 드려라 그렇게 명령하실 때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고 하는 거죠. 그 계획은 나도 나의 독자 예수를 너희에게 번제로 내려주겠다 그런 말씀이시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모두를 위한 번제물로 이 땅에 보내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로 우리를 위해서 제물이 되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셨다. 속건제물이 되셨다 이런 거는 다 아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번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셨다 이거는 잘 모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거는 제사 중에서도 최고의 1등 제사입니다. 내 온몸을 다 태워 주님께 드리는 그런 제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자신을 번제로 드리셨어요. 요한복음 15장 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해서 자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 먼저 친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사람이 예수님의 친구예요. 예수님의 친구가 되면 자신을 번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린 이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서 내가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남이 나를 붙잡아서 불사르는 데는 내줄 수 있어도 내가 내 몸을 불사르는 데 내준다? 이거는 사실 자기를 번제로 드린다는 얘기죠.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듯이 자기 몸을 불태워 번제로 드립니다. 바울도 하나님이여 나를 주님 앞에 번제로 드립니다. 자기를 드리는 거예요.
하나님은 예나 이제나 우리에게 이 번제를 요구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자신을 불태워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다 순교했습니다. 번제로 드려지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에요. 목배임을 당해서 죽을 수도 있고 불에 타서 죽을 수도 있고 칼에 맞아서 죽고 창으로 찔려서 죽고 짐승들 죽이듯이 악한 극형을 받고 죽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도들을 제물로 받으시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살려내시는 일을 행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 나를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내가 내 몸을 불사르는데 내줄지라도 우리도 우리 몸을 불사르는데 내주어 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야 하겠습니다. 나라를 구원해내고 세상을 구원해내는 이 거룩한 역사에 하나님이 써주시기를 축원합니다.
19. 선지자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
나균용 목사님 설교
고전4:1-2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물론 직분을 맡은 사람이 충성해야 되는 거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직분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게 되거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합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겨라.
둘째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겨라
그리고 그 다음 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합니다. 직분 맡은 것도 중요하지만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하나님이 비밀을 맡겨주시는가?
첫째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비밀을 주신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너에게 보이리라”. 또 29장 11절에도 너희가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에게 환난이다. 재난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환난이나 재난이 아니고 너희의 장래에 소망을 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12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셔서 놀라운 세계를 나타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참 선지자들에게 이 비밀을 주십니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나님은 무슨 큰일을 행하실 때에는 당신의 종 선지자들에게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지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이런 비밀들을 당신의 종들에게는 반드시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수없이 나타나는 선지자들에게 장차 될 일을 전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다니엘서입니다. 신약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이 말세에 일어날 일을 설명해 주시고 사도 바울도 베드로도 요한 계시록에도 마지막 때 일어날 일들을 전부 소상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전부 비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비밀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셋째는 요한복음 15장 13절부터 보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절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너희가 곧 나의 친구라 15절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는데 내가 너희를 친구로 삼았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준다. 이것이 하늘의 비밀이다.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요, 참된 일꾼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첫째, 이 세상 모든 걸 보면 전부 비밀입니다. 헬라어로 무스테리온인데 여기서 영어의 미스터리가 나왔습니다. 영어 성경에도 보면 비밀이란 말을 미스터리라고 번역한 것이 있고, 시크릿이라고 번역을 한 것이 있는데, 어떻게 번역을 했든 이 세상은 비밀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것이 다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만물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음성을 듣지를 못합니다.
신명기 29장 4절에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너희에게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또 이사야서 6장에서 이사야를 부르셨을 때에도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가서 전하긴 전하지만 저들에게는 보는 눈이 없고 듣는 귀가 없고 깨닫는 마음이 없다. 그러니까 네가 가서 전해봤자 저들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은 이때를 보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보지를 못하고 다 먼저 떠났는데 너희는 나를 만나서 드디어 이 비밀을 열어주는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복된 사람이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로부터 새 시대가 열려 닫았던 것을 열어주고 덮어 놓았던 것 뚜껑을 열어서 다 볼수 있게 하고, 또 감추어졌던 것이 다 드러나서 알게 하시는 놀라운 새 시대가 열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이 마지막 시대의 사역자들은 마땅히 이 비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우리가 미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린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더 겸손하게 낮아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신 것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가? 예수님도 성경은 나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을 찾아내는 사람은 성경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있어 최고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비밀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감격하며 주님 말씀의 은혜로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의 복음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놀라운 은혜를 더하시고 복을 내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20. 선지자란- 복음의 빚진 자
나균용 목사님 설교
로마서 1:14-16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우리는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제일 큰 빚이 복음에 빚진 자이다. 일만달란트 탕감받은 자의 비유에서는 빚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에 대한 교훈이 전해집니다. 예수님은 빚진 자를 사랑으로 용서하지만 탕감을 받은 자는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더 큰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구절은 영어에서 "죄" 대신 "빚"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빚"이란 우리의 죄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고, 하나님은 그 죄를 빚진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받으려면 우리도 우리를 해하거나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용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범한 잘못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뤄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서는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용서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용서를 기다리는 것이든, 그들이 요구하는 보상을 감내하는 것이든, 또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든지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가 범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며,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면제년이라고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7년마다 한번씩 이뤄지는 것으로, 이 기간에는 빚이나 노예와 같은 재정적 의무를 면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고 용서를 주시며, 우리가 서로에게도 그러한 자비를 베풀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면제년은 하나님의 지시로써, 우리가 빚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고, 서로를 돕는 사랑의 행동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면제년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시고, 우리도 서로에게 그러한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빚 보증을 서지 말라는 지혜로운 충고가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빚에 얽매이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빚 보증을 서면 그 후에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에는 보증자가 대신 갚아야 하게 됩니다. 이는 보증자에게 큰 부담을 주며, 종종 괴로움과 고통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고 서로를 돕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만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로써, 우리의 삶을 사랑과 관용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올바르게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헌신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이며, 서로를 사랑하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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