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평생을 함께해도 질리다고 거부 하지 못하는 것 그중에 맨 윗자리는 아마도 평생 삼시 세끼 먹던 밥일것이다. 내 기억 깊은 곳에서도 밥은 늘 보석같이 광채를 내며 존재하고있다. 내 고집을 굽히지 못하고 4학년때 실험실에서 생활을 시작하여 대학원내내 그곳을 지키며 직접 해먹던 그 소중했던 밥이 그 이유이다.
어릴적 대가족 밥상에서 배운 질서속의 경쟁은 나의 사회생활에 모든 기준으로 자리했다. 나에게 모든 먹거리는 소중한것들였고 무었을 특별히 좋아한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다. 어버지와의 겸상에서는 일찌기 봄나물들의 향기를 배울 수 있었다. 냉이, 달래, 씀바귀, 벌금자리, 쑥... 각각의 계절자리에서 된장도 무치고, 고추장, 간장, 설탕, 식초... 새콤 매콤 달콤하기도하고.. 옅게 풀은 된장국속에 그윽한 쑥향이되기도 했었다. 그리배운 입맛들은 지금도 하나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아궁이 잿불 토닥여 석쇠위 지글거리는 조기, 놀놀한 껍질과 하얀속살의 조화에 눈도 호강하고 쫍쪼름 군침돌아 밥술 크기를 키우게 했고, 꽁치, 자반, 전갱이(당시는 아지라고 했는데... 커서 보니 일본어였지) 들은 먹고 남아 찬장 속에 식은채로 있다가 점심 나절 물 말은 보리밥, 고추장 듬뿍넣어 얼얼한 열무김치 비빔밥에 위에 한점때어 얹어 먹는 살맛이 살맛나게 했었지...
마루바닥 넓게 하얀 광목천을 깔아 밀가루 뿌린 위에 잘 불린 반죽덩어리를 요리 조리 돌리며 내키만한 홍두깨로 한참을 밀어 넓혀 만들어진 둥그런 밀가루 원판을 끝에서 부터 착착 접어 긴칼모양을 만들어 놓고 나무도마위에 올려 무쇠칼로 썩뚝 썩뚝 썰어 다시 보자기위에 흩뿌려 놓는다. 엄마는 잊지 않으시고 반죽 막대 양쪽 끝자락을 길게 잘라 주신다. 보릿짚 타닥이는 아궁이 속에 불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다 펼친 조각들을 살짝 올려 놓으면 소나기가 마당에 만들던 둥근 물방울 지붕같이 부풀어 오르며 노릇 노릇 해질때 꺼내주며 누이는 정당한 댓가라며 한잎 뜯어 내고 건네준다. 그맛은 "난" " 짜파티" 라는 밀가루 떡으로 이국에서의 피곤한 입맛을 덜어줄 수 있도록 먼나라 출장중의 밥상에도 남아있다.
그 많은 맛의 추억들 중에서도... 톡쏘듯 신맛나는 김치국물까지 밥말아 먹던 우리엄마 김치는, 배추, 열무 가리지 않고 겉절이든 시어터진 철 묵은 김장김치든 건더기에 국물까지, 아내가 "없어 보인다" 해도 그릇에 남은 국물흔적까지도 한 숫가락 밥으로 닦아 먹게 남아있다. 설겆이 구정물도 버리지 않고 쌀겨 한바가지 올려 돼지 밥을 주던 당시 밥상은 늘 깨끗한 빈공기여야 했던것이 지금도 그대로다.
입안 음식이 밖으로 보이게 씹으면 복이 달아나고 젓가락으로 깨적되면 뭐하고... 밥먹고 숭늉 많이 마셔야 오래살고... 이렇게 틀 잡혀진 내 삼시세끼는 아직도 그대로 변화가 없다.
94년 시작한 서울살이 유명하다는 곳도 맛나다는 것도 많이 찾아보았지만 지금까지 내기억 자리를 차지 하는 것들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맥주주력 그룹 회사에 다니다 보니 맥주 인심 후했던 시절, 을지로 골뱅이무침, 얼음맥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나다는 생맥주, 저녁 밥 대신 차곡차곡 채웠던 그것들은 위장을 냉장시켜 드나들때 온도가 별로 차이 없게 느껴질때까지 마셨다.
처음에는 내 머리통 만한 주전자로 다녔던 막걸리 심부름. 집앞 백발자국 거리 양조장에 가면 구수한 술밥이 널려 있어 그것 때어 먹는 재미로 시작 됐나? 사다리타고 올라가서 고무래로 바닥을 퉁퉁 치며 저어서 담아 주던것이 재있었나? 아마도 술받아오다가 움찔움찔 꼭지로 넘쳐나던게 아까워 받아먹다 보니 맛들렸나?
막걸리 심부름은 잔돈챙기는 매력을 더했던 기억으로 남아 요즘도 1일 1막으로 맥주 앞에 자리하고 있다.
바람찬 편백나무 숲은 4월을 앞둔 요즘까지도 겨울 점퍼를 챙겨야하는 영하의 아침을 맞는다. 밭농사를 지어 볼까 궁리를 해대는데 무엇을 할것인지 미루다 1년을 넘겼다. 물론 고추도심어보고 철따라 대야장날 나오는 모종들을 심어 보며 농업경영체 등록을 해보려 시도중이다. 그밭에는 냉이가 사철피어나 냉이국, 무침, 전으로 풍성한 밥상을 만들어준다. 민들레는 쌉쌀함이 새콤 달콤한 양념장과 어울리고 쫑쫑 썰은 달래를 간장, 고추가루, 식초에 담그면 콩나물밥 비벼먹기 일품이고, 머위작은 잎은 데쳐서 된장이나 초고추장, 큰잎은 쌈으로 주먹밥으로, 아침 산책길 이산 저산 고사리 밭 굵은 대 참고사리 한줌씩날라다 데쳐 말려 1년 먹거리 장만하고, 아픈 허리 펴주면 눈 높이 손바닥 활짝 펼친 참두릅이 가시위에 올라오고 송이째로 따다가 데쳐서 초고추장 발라 한 잎씩 따먹거나 새콤달콤 간장물 부어 장아찌로 연중즐기기 , 진딧물과 개미가 너무사랑하는 산초 파란 열매는 쌉쌀한 맛과 톡쏘는듯 알싸한듯 향기로움이 한꼬치를 먹으면 입안 가득퍼져 하루가 간자. 물에 담가 개미들 씻어내고 고추장 찍어 먹거나 피클로 담가 두고 삼겹살 수육이나 앞다리살 항아리 구이 해서 곁들여 먹으면 느끼하지도 않고 입을 개운하게 해서 아주 좋아,아들, 객지 생활하는 딸내미, 처조카들, 시골집이 좋다고 찾아와서 최고라 엄지척한다.
이렇게 지천에 널린 먹거리들은 그냥 지들이 앞다퉈 유혹하는것들이고 샐러드로 먹는 쌈채소 는 씨앗을 파종하거나 모종을 사서 키운다.
우리집 아침 셀러드에는 깻잎,양배추, 상추, 갓, 쑥갓, 루꼴라, 바질, 사과, 토마토, 각종 견과, 냉동베리... 등등 장모님이 세어보니 20여가지도 된다고 하셨다. 큰접시 차례로 깔고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발사믹을 충분히 뿌려준다. 서니사이드엎, 고기, 아내가 직접구운 빵 1조각씩. 나는 포트에 물을 가득담고 끓이며 원두를 그라인터에 4스픈 약 40g 담아 약 30초 정도 갈아주고 여과지를 따뜻한물로 린싱해준 드립퍼에 담고 끓는 물을 잠깐 두었다가 약 30초간 불림을 해준다.
이때 갈려진 커피 조각들의 마른 조직들은 흠뻑 물을 맞으며 자신들의 맛과 향을 잔뜩 끌어 올린다. 동전 크기로 더운물을 가늘게 떨구어 주며 거피 알갱이들을 여과지 속 물위에 띄워주기도 앉히기도 하며 최대한 맛과 향을 짜낸다. 너무 오래 하면 카페인이 짙어진다. 이렇게 맛난 커피는 해어날 수 없도록 매력적인 아침식탁을 완성 시켜준다. 우리집 막내를 지처하는 딱콩은 잔신의 콩알 사료를 바닥에 깔리게 남겨두고 내옆에 온다. 그리고 나를 쳐다 본다. 이는 우리의 규칙, 내가 빵 속살을 잘라 달걀 노른자에 적셔 불려 놓았다가 남겨진 사료에 비벼주는걸 기다리는것이다. 나무틀에 얹힌 얇은 스텐 밥 그릇을 맛나게 핥아먹으며 내는 소리는 쿵더쿵덕 리듬을 타고... 만족한 강아지는 카펫 바닥에 고개를 박으며 이리저리 돌며 기쁨의 춤을 춘다.
쓰다보니 좋아하는 음식들과의 의리를 저버릴수 없어 거르고 걸러 이정도로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나누며 채워지는 즐거움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것일 수 밖에 없을것이다.
첫댓글 좋아하는 음식과의 의리?
맛의 미학
좋은 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