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와 함께 부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축이나관련 법, 사업 등과 관련해 원래 의도와 다르게 추진된 문제점을 고찰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협회 회원이면서 지역에서 활동 중인 대학교수와 건축사 등 6명이 릴레이식으로 기고해 '부산건축의 빛과 그림자'를 조명한다.
- 대형 건축물 대지 일정부분
- 소공원·보도 등 공익적 활용
- 일부 건축주 혜택만 챙기고
- 사적으로 이용 제역할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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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으로 가로막아 시민들이 이용하지 못하게 해놓은 공개공지. |
도시란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모여 사는 장소이다. 이유야 어떻든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그런 공간이다. 자신의 목적과 타인의 목적 사이에서 생기는 충돌을 해소하며 살아야 하는 장소인 것이다.
부산은 전쟁으로 인한 인구의 증가, 산과 언덕이 많은 지형적 문제 등으로 인해 실제 살 수 있는 공간이 적다보니 남들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보기에는 낡았지만 6·25전쟁 때 피해가 적었던 만큼 건축 유산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후 건물이 무분별하게 건립되면서 계획적인 도시 개발이 이뤄진 다른 도시에 비해 환경이 열악해졌다.
건축용어 중에 '공개공지'라는 것이 있다. 도심 대형 건축물이 자리 잡은 대지의 일정 부분을 공익 차원에서 가로환경(길가 시설물을 포함해 건축물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과 조화롭게 활용하기 위한 용지다. 공개공지는 소공원이나 보도의 형태로 이용되는데, 도심에 시민을 위한 공간이 적다는 점에서 반길 만한 일이다. 하지만 건축주 입장에서는 사유지를 내놓아야 해, 용적률이나 건물 고도 제한을 완화하는 보상이 주어진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한다. 건축주나 설계자가 혜택은 다 받으면서 공개공지에 자신의 옥외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공공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아 시민들이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1층 상점들이 공개공지를 영업장소나 주차장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개공지는 개별 건물의 전용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예 건축주가 공개공지임을 알 수 없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도시의 공공이익을 도외시한 채 개인 이익만 챙기는 데서 빚어진 현상이다.
도시인들은 같은 지역에 거주한다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데다, 실제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나 지인으로 연결돼 서로 보살피고 배려해야 할 사람들이다. 도시에서의 건축 설계란 개별 건축물의 부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을 전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개별 건물에 치우칠 경우 다수 시민들이 실망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공개공지의 확보가 공동의 삶이라는 사회적, 도덕적 책임감을 의식해 만들어졌듯이, 건축가와 건축주 그리고 사용자 모두가 공공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행정기관도 공개공지 활용 허가를 내준 후 뒷전으로 물러나 나몰라라할 게 아니라 공개공지의 효율적인 관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남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때로는 서로 상충하는' 여러 부담을 인식하며 산다는 것"(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중)과 같은 의미다.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함께 공동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자세가 필요하다. 겉으로만 그럴 듯할 뿐 실제는 '非-공개공지'로 흘러선 안 되고, 원래 목적에 충실한 'be-공개공지'가 되어야 한다.
이병욱/동의과학대 교수·부산건축가회 평론위원장
※약력-한양대 및 동 대학원과 독일 베를린공과대학교 졸업. 현재 동의과학대 실내건축과 교수로 재직. 한국건축가협회 부산건축가회 이사, 부산인테리어디자인협회 부회장, 부산시 건축심의위원 등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