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7월1일(수)맑음
We are all in the gutter, but some of us are looking at the stars.
-Oscar Wilde(1854~1900)
우리 모두 시궁창 속에 있지만, 그 가운데 몇 사람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
아침 산책, 선원장과 절 앞으로 나가는 숲길을 걷다. 수원지로 쓰이는 연못을 바라보며 돌아오다. 수정봉 머리위로 안개가 피어오른다. 점심공양으로 짜장면이 나와서 세 덩어리를 먹다.
조계종이 시끄럽다. 종단의 청정성이 흐려졌다. 은처(隱妻 숨길 은, 아내 처/사실혼 관계에 있으면서도 호적상 공식적으로는 독신인 상태)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풍토이며, 그들은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힘을 행사한다. 깨어난 재가불자들의 비판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높아지리라. 종권을 잡은 승려들은 도덕적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기네들의 치부를 더욱 은폐할 것이고, 바람잡이(그들이 돈을 대주는 소속계파와 종회의원들, 불교신문, 법보신문, 종무원들, 자기들을 편들어주는 재가단체)를 앞세워 자기보호를 할 것이다. 나아가 종단권력의 장기집권을 획책할 것이다. 그런데 종단 안에 이렇다 할 청정세력이 없다. 자체정화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松潭송담 스님처럼 탈종할까? 아니면 소리 없이, 흔적 없이 살까? 태국이나 미얀마로 가서 살까? 八大山人팔대산인(1625~1705)처럼 살까? 道濟禪師도제선사 大滌子대척자 石濤석도(1641~1720)처럼 살까? 아니, 시중에 숨어사는 구도자로 살아야지. 大隱대은 市隱시은이라, 말세에는 세상 속에 숨는 것이 진짜로 숨는 거라 했으니.
野鶴靑雲爲伴侶, 高岑幽谷度殘年; 야학청운위반려 하고, 고잠유곡도잔년을,
願入松風蘿月下, 長觀無漏祖師禪. 원입송풍라월하 하야, 장관무루조사선을.
들판을 나는 학과 푸른 구름을 친구 삼고
높은 봉우리 깊은 골에서 남은여생 보내리라,
솔바람 불고 칡넝쿨 너머 비치는 달빛아래
번뇌가 새지 않는 선정 오래 닦으리.
부처님은 공동생활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여섯 가지의 중요한 덕목을 말했는데 이것을 육화(六和)라 한다.
①신화공주(身和共住): 몸으로 화합함이니 함께 살라.
②구화무쟁(口和無諍): 입으로 화합함이니 다투지 말라.
③의화동열(意和同悅): 뜻으로 화합함이니 타인에 대한 배려로 마음을 기쁘게 해주라.
④계화동준(戒和同遵): 계로 화합함이니 모두 같이 지켜라.
⑤견화동해(見和同解): 바른 견해로 화합함이니 이견이 없게 하라.
⑥이화동균(利和同均): 이익으로 화합함이니 균등하게 나누라.
조계종단은 육화정신이 완전히 깨졌다. 다만 선방에서만 유효하다. 한국의 선방스님들만이 육화정신으로 살아가는 법의 동지(法同志)라 할 수 있다.
2015년7월2일(목) 맑음
아침이 흐려서 비가 올까 짐작했으나 오후에 맑아졌다. 담요 호청 빨아 널고, 이불과 담요를 햇볕에 씌운다. 습도 조절 위해 방안에 놓았던 숯을 씻어 햇볕에 말리다. 이리도 고마운 햇볕일세, 사람의 내장도 꺼내어 흐르는 물에 빨아 햇볕에 내걸면 순수청정해지려나, ‘水月虛襟수월허금’이란 말이 떠오른다. 물에 비친 달처럼 투명하게 밝고 텅 빈 마음. 이는 心解脫심해탈의 경지라, 사선정에 들어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이 ‘물질로 된 몸’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마음으로 된 몸마저 벗어버릴 때 慧解脫혜해탈이다. 심해탈과 혜해탈 모두 이룬 것을 兩面解脫양면해탈, 俱解脫구해탈이라 한다. 차담 때 맛있게 먹었던 도너쓰가 과했던지 더부룩하다. 해탈은 고사하고 소화불량이라니, 應住軒응주헌(설조스님의 거처)으로 가는 오솔길을 빗자루로 쓸고 흙길을 맨발로 걸어야겠다. 그랬더니 입승스님이 와서 그쪽으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는데. 이유인즉슨 암자 주인의 心行심행이 까탈스럽다는 것. 선원장한테 가서 차를 얻어 마시다.
2015년7월3일(금)
<불자의 경제적 행복에 대해> 앙굿따라니까야 4장, pp281~283에서
한 때 디가자누(Dighajanu)라는 사람이 붓다를 찾아와 말했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처자식과 가정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저희들에게 현세와 내세에서의 행복에 도움이 될 어떤 가르침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붓다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행복에 도움이 되는 네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1. 자신이 종사하는 어떤 직업에서든 능숙하고 효율적이며, 근면하고 활동적(勤勉具足근면구족)이어야 한다. 또한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2. 이마에 땀을 흘리며 정당하게 벌어들인 자신의 소득을 보호(守護具足수호구족)해야 한다. 이것은 도적(도둑, 사기꾼, 나쁜 동업자, 나쁜 관료나 정치가, 사이비 종교단체)들로부터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3. 믿음직하고 학식 있으며, 덕망이 높고 도량이 넓은, 지적인 친구(善友선우, 스승)를 사귀어야 한다. 그런 친구는 자신을 악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
4.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자신의 소득과 비례해 합리적으로 소비해야한다. 너무 탐욕스럽게 축재해서도 안 되며 너무 낭비해도 안 된다. 자신의 분수에 맞게 생활(等命 samajivita사마지위따)해야 한다.
오늘 새벽 정진 황홀했다. 오전 내내 행복, 오후 내내 행복. 하늘과 땅이 모두 행복하다. 오후에는 울력하고 쉬다. 제1석문을 지나 제2석문까지 탐방하다. 천지가 가볍게 떠서 춤을 추듯, 노래하듯,,,이것이 輕快安覺경쾌안각이다. 이대로 여한이 없다. 무얼 더 바래랴. 대승불교의 本來淸淨본래청정이란 말이 이런 심경에서 나왔나보다.
2015년7월4일(토)맑음
아침 먹고 연못가로 나가다. 태평교 석교위에서 물고기 밥을 주다.
가을에 들을만한 불교와 철학의 만남 강좌가 있다 하니 참고할 만하다.
<미붓아카데미:21세기-불교를 철학하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사찰음식점 ‘마지’ 2층 갤러리 매주 금 오후7시
9/18 니체의 초인 무소의 불처럼 홀로 가라-박찬국
10/2 화이트헤드 과정철학과 연기연생법 –김희헌
10/9 불교의 언어철학(비트겐슈타인)-윤희조
10/23 라캉에 대한 불교적 독법-안환기
11/13 니시다 키타로의 사상과 불교-허우성
11/27 쇼펜하우어의 허무적멸론-김진
12/4 유식학과 후설 현상학의 수용성 개념-박인성
12/11 유식사상과 하이데거-권순홍
점심 먹고 제2석문 선원장하고 다녀오다. 오후 정진에 다리 아프다. 地大지대가 증가하고 風大풍대가 감소했다. 뻣뻣해서, 輕安경안하지 않았다.
*공지영의 르포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 <의자놀이>에서
나는 꿈꾼다. 최소한 두 가지,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돈이 없어 교육받지 못 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 자고, 먹고, 입는 것이 최소한 보장되는 나라. 그래, 그 돈이 없어서 우리는 그들을 보냈다. 그냥 보낸 것이 아니라 엄청난 고독과 절망으로 세상을 향해 한 글자도 남기고 싶지 않을 만큼의 절망 속에서 말이다.(148)
어떻게 평소에 몸과 마음이 건강했던 사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을 매고 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베란다의 높이가 이만큼 낮게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부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질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본능적이고 철저한 경계, 그것은 삶의 가장, 아주 당연한 조건이 아니던가.(36)
가정과 직장, 이 두 들판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93)
세상에는 아직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이 없어서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 있어도 눈에 안 띈다. 내가 볼 마음이 없고, 보고 싶지 않으니까, 보면 내 마음이 불편해지니까 안 보이는 것이다. 보고 안 보고가 문제가 아니라 보기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 문제이다. 무엇엔가 저항하고, 무엇인가를 거부하는 한 그대의 마음은 두 조각난 것(broken heart)이다. 두 개로 쪼개진 것은 서로 부딪힌다. 양 갈래로 갈라진 것 사이에는 하중(혹은 부하load, 충전charge)이 걸린다. 그래서 네 마음은 불편하다. 너는 쉬지 못한다. 상반된 두 갈래를 동시에 다 받아드려라. 세상의 고통을 네 것으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고통을 가슴으로 안아라. 이것이 온전한 가슴(Whole heart)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이것이 평정이란 무량심을 닦은 길이다.
조각난 것이 아닌 전체적 삶을 체험하라. 나와 남, 내편과 저쪽 편, 선과 악, 고통과 기쁨, 상승과 추락, 달지만 씁쓸한 맛, 어둠과 밝음, 여름과 겨울. 서로 상반되는 경험을 가슴 가득이 품어 안고 녹여낸다면 그대의 가슴은 꽃으로 피어나리라. 이 꽃은 미스틱 로즈Mystic Rose, 신비한 장미이다. 모든 삶의 이중성을 포용하여 전체적으로 살아가라.
나는 호강에 받쳐 살고 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 없는 척, 무소유로 사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기성세대에 속하며 기득권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고통과, 사회적 악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2015년7월5일(일)맑음
법주사를 한 눈에 조망하는 바위에 오르다. 입승스님의 길잡이로 선원장과 함께 오르다.
과연 一目眺望法住寺일목조망법주사, 一佛呼名離欲山일불호명이욕산 이라.
한 눈으로 법주사를 조망하니, 한 부처님이 ‘욕계를 떠난 산’이라 이름을 부르는구나. 나는 이 바위를 ‘큰 바위 얼굴’이라 부른다. 선원장 스님의 방에 앉아 찻잔을 들고 밖을 바라보면 눈에 딱 들어오는 것이 ‘큰 바위 얼굴’이다. 매일 큰 바위얼굴을 바라보는 선원장이 법주사의 큰 바위 얼굴 같은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
밤 비오다. 빗소리 마음을 촉촉이 적셔준다. 고적하고 유현한 산사의 밤 분위기가 연출된다. 빗소리 베고 잔다.
2015년7월6일(월)맑음
가사원에 전화하여 선원장 스님의 가사를 주문했다. 점심시간에 입승과 부도전을 탐방하다. 속리산의 바위는 화강암만큼 견고하지 못해 섬세하게 새길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부도의 외형이 단조로운 선을 가졌다. 명문도 다 마모되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다. 소박하고 고졸한 멋이 있어 좋다. 이것이 속리산 스님들의 멋이다.
포행을 너무 많이 다녀서인지 밤 정진에 다리가 아팠다. 종아리 근육에 우리한 통증. 몸이 찌부둥하다.
2015년7월7일(화)비
아침부터 가는 비 내린다.
신입회원 법명을 지었다.
월요명상: 장경자: 初鹿초록 //수요명상: 문 명: 明星명성 김정자: 圓心원심
오후에 <수행일기-3>을 카페에 올렸다. 나는 왜 카페에 일기를 올리는가? 학생들과 교감과 소통을 위해서, 마음이 고여 있지 않기 위해서, 공부가 정체되지 않기 위해서. 마음은 바닷물 같아 가두어 둘 수 없다. 넘쳐서 흘러야한다. 그게 정상이다. 갇힌 물은 썩는다. 교류하지 못하고 통하지 못하는 공부는 무용하다. 그것은 해탈이 아니라, 고립이며 속박이다.
2015년7월8일(수) 비 오락가락
새벽부터 가는 비 오락가락. 태풍 왔나?
사시 예불 가는 길에 뺨에 스치는 가는 빗방울 하늘 꽃비 같아라,
얼굴에 닿자마자 증발하네, 청량감을 남기며.
하늘로 올라가는 천녀의 옷고름이 볼을 스치듯,
뺨 위로 느껴지는 박하향기
사슴을 찾아 숲길을 걷다. 발자국은 보이는데 발자국 주인은 보이지 않네. 시간이 뛰어가는 소리를 심장에서 듣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는 귀 속의 귀로 듣는다.
등산화 뒤축이 닳아 물이 샌다. 일광스님께 전화했더니 白華백화보살님이 사서 보낸다고. 속리산아,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단숨에 높은 산도 넘겠네.
2015년7월9일(목) 비 오락가락
삭발목욕일. 비가 오락가락. 바람 분다. 태풍 영향권에 들었다. 점심공양 후에 海空해공(해인사, 승납8년, 42세)스님의 모친과 그 일행인 두 분 보살님이 대구에서부터 운전하여 면회를 왔는데, 해공스님이 선원장에게 한 말씀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선원장은 내가 동석해주기를 바랐다. 접견실에서 차 한 잔 나누면서 이야기 해주다. 스님 아들 두었다고 자만하지 말고, 여법하게 수행하라. 누구도 자신의 수행을 대신해줄 수 없다. 아들 스님이라고 만만하게 여기지 말고 만날 때마다 법문을 청하여 듣기를 즐겨하라. 해공스님도 어머니를 바른 법으로 잘 이끌어라. 스님 자신이 먼저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 부처님 법이 빛난다. 사리뿟따 존자가 어머니를 제도하는 일화를 소개하다. 해공스님에게 아직 젊으니까 비구계를 여법하게 지키는 미얀마에 가서 비구생활을 해볼 것을 권했다. 스님들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설법을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모두 기뻐하는 가운데 자리를 떠다.
청청한 수풀, 물소리 쟁쟁한 계곡을 걷다.
緩步澄逕灑骨凉, 완보징경쇄골량
雨後漲澗聾耳聰; 우후창간농이총
觀魚遊過太平橋, 관어유과태평교
豁然開眼碧層層. 활연개안벽층층
맑은 길 슬슬 걷노라니 뼈 속까지 청량하다
비온 뒤 불은 계곡물소리에 먹은 귀가 오히려 밝아지네,
고기떼 노는 걸 바라보며 태평교를 건너니
활짝 열린 눈 가득 겹겹이 푸른 산.
산 고기는 물을 거스르고 죽은 고기는 물에 떠내려간다. 물은 욕계 세상이니 그대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2015년7월10일(금)맑음
새벽 정진 끝나고, 석문 쪽으로 포행 나가다. 사슴을 보기위해서 일찍 숲으로 가다. 새벽 정적에 묻힌 비밀스런 공간을 열고 살금살금 들어간다. 밤 물기에 젖어 포릇포릇 바위 이끼와 길옆의 파랏파랏 초록 풀잎들. 나뭇가지는 밤새 팔을 내리고 쉬었다가 이제 천천히 팔을 들어올린다. 나무 둥치 안 물관을 타고 물 기운이 차오르는 것이다.
발밑에 밟히는 땅에서 수기가 느껴진다.
젖는다는 좋은 것.
밤 어둠에 젖고, 새벽 여명에 젖고, 물에 젖고, 숲 그늘에 젖고, 젖음에 젖는다.
너는 어디로 젖어드느냐? 젖어듦에 방향이 있느냐?
짙은 것에서 묽은 것으로.
형체 있는 것에서 형체 없는 것으로.
얽매임에서 풀어짐으로, 억지스러움에서 은근함으로,
악한 것에서 선함으로, 추함에서 아름다움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그렇지. 젖어듦이란 玄현과 妙묘, 진선미에 물듦이다.
소유에서 존재로, 무자각에서 현존재로, 잡음에서 놓음으로,
함에서 앎으로 젖어들면 좋으리.
그런데 그 역방향으로 젖음도 있으니.
선이 악으로, 미가 추함으로, 진실이 거짓으로, 자유가 구속으로,
사랑이 미움으로 젖어드는 것. 이런 젖음은 빨려들고 끌려들어 옴짝달짝 못하는 곳으로 떨어짐이다. 이것은 오염과 타락의 染緣起염연기.
나무들의 어깨동무 건너, 갯가 여울소리가 손뼉을 치며 따라오고, 새소리 방울을 울리며 앞서간다. 어이, 조용히 좀 해주게. 사슴이 놀라 도망갈라. 하마나 사슴 나올까 두리번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은 발길이 반 마장이나 되었는데, 사슴 그림자도 뵈지 않고, 바위 고개 넘어도 안 뵈고, 길 섶에도 안 보이고, 끝내 석문 앞 공터까지 왔는데도 안 보인다. 그래, 꽁꽁 숨어라. 그렇게 쉽게 보여주면 안 되겠지. 귀한 것일수록 아껴야 하는 법이니. 내일 볼 것을 기약하고 하릴없이 돌아선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새벽 놀이 곱게 물든다. 오늘은 좋은 날, 맑은 날. 숲 속의 친구들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전한다. 문득 오른쪽 언덕 빼기에서 ‘푸스럭 후스럭’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사슴 두세 마리가 엉덩이를 보이며 능선 위로 뛰어간다. 아침고요 깨뜨리며 다가오는 인기척에 달아난다. 사슴을 보기는 보았네. 뒤꽁무니 반쪽만이라도 봤으니 그걸로 오늘 만족. 내일 아침 다시 와야겠지. 사슴아, 나와 놀자.
오후 정진이 끝나고 빗자루로 섬돌을 쓸다. 소포가 왔다. 풀어보니 백화보살이 보낸 등산화 한 켤레가 환하게 웃는다.
첫댓글 새벽녘 사슴을 찾아 조심 조심 숲속길을 걷는 스님의 모습이
마치 잃어버린 소를 찾아 떠나는 심우도의 소년과 오버랩 되면서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산 고기는 물을 거스르고 죽은 고기는 물에 떠내려간다는 말씀이 심?쿵?하게 만드네요.
죽지말고 살아야겠습니다.
이틀이 지나면 스님을 뵐 수 있겠네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녹야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정진하시는 스님의 청정한 기운이 소록소록 스며듭니다.
속리산 이욕산 청정산 청신녀 청신남 살아있는 물고기들 이 모두가 나를 깨어있게 하는 멋진 날이었습니다.
덕분입니다.
깊숙히 머리 숙여 꾸 우 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