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으로 풀어보는 세계조선사
이스라엘 의 "유대"는 어디인가?
"유대인"이라면 우리들의 생각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생각이 날 것이다. 우선 "유대인 학살"이란 말이라든지, 등등. 물론《신약전서》에도 많이 나온다. <마태복음>제2장에 "Judea/Jews/Judah"가 보이는데, 모두 "유다"로 번역되어 있다. 물론 "Jews"는 "유다 사람들"이지만. 그런데 중국어《신약전서》에는 조금 다르게 번역되어 있다.
이들을 공통적으로 "猶太"이고, "Judah"만 "猶大"라고 되어 있다. 그 발음은 [youtai]와 [youda]이다. 그러나 어쨌든 같이 써도 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Bethlehem in Judea"는 "猶太的伯利恒"이고, "Bethlehem in land of Judah"는 "猶大地區的伯利恒"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국어사전》에는 "유대(Judea): 유태(猶太). Judaism."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유태· 유대· 유다·Judea·Jews·Judah가 모두 "유다"로 쓸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Bethlehem"이란 지역은 "Palestine[팔레스타인]의 옛 도시"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이 팔레스타인은 지중해 동쪽의 옛 국가이며, 1948년에 그 일부를 이스라엘(Israel)이 건국되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1948년 이전에는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임도 물론 상식이다. 과연 기원전 922년에 멸망한 그곳에 다시 세운 것일까? 아니면 전혀 낙하산식 건국일까? "Jew for Jesus", 즉 예수를 유대인으로 인정하고 구세주임을 전도하는 유대인 예수 그리스도교가 있듯이, 그 지역에 "예수[Jesus]"가 났다고 한다. 이렇게 "Judea·Jews·Judah"와 비슷한 말로서 "Yiddish"가 있다.
"이디시말"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동부 유럽 유태인 말"이라고 하고, "독일어에 슬라브말· 헤브루말을 섞어 헤브루 문자로 씀 :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 사회에서 주로 사용하며, London의 East End에서도 쓴다"고 한다. 슬라브(Slav)라는 말은 슬라브 사람, 즉 러시아 사람(Russians), 불가리아 사람(Bulgarians), 체코 사람(Czechs), 폴란드 사람(Poles)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혹시 불가리아라면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볼가강 상류인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독일은 동경 8도 이동 쪽이고, 폴란드는 동경 12도 이동 쪽이며, 불가리아는 북위40도 이북 쪽의 흑해와 지중해의 북쪽에 있는 나라들이며, 역시 유럽의 동부지역이다. 그런데 "Yiddish"라는 말이 "유대인"과 관련된 언어라면, "유대"라는 지역도 유럽동부지역에 있거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불가리아와 가까운 지역에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헤브루(Hebrew)라는 말이 그리스어로서 "강 건너온 사람"이란 뜻이니, 어떤 강, 무슨 강을 건너왔든, 혹시 마르마나 해협을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근처일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 베들레헴이란 북위 34도 이남, 동경 36도 이서의 지중해 연안이므로, 북위 40도 이북의 동유럽과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관계가 없다. 그래서 "강을 건너왔다"는 그리스 말의 Hebrew[헤브루/헤브류/히브리]에서 가리키는 강이 어디이든, "Yid"가 동부유럽의 유태"라면, 역시 흑해 남쪽의 유태인 땅에 해당되지 않을까? 《신약전서》의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에 나오는 지명으로서 "Pontus, Galatia, Cappadocia, Asia, Bithynia"가 나온다. 우리들에게 소개된 말로는 "본도, 갈라디아, 가빠도니아, 아시아, 비티니아"이다.
베드로(Peter)가 보낸 편지 속의 지명이 함께 나오는 력사 지도는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조좌호 편의《종합지도책》에는 기원후 2세기에 나온다. 이찬 등 8명이 지은《사회과 부도》에는 기원전 150년에서 기원후 325년 사이에 따로따로 지명이 나오는데, 흑해의 남부 지역으로서 동경 30도 이서의 아나톨리아(Anatolia)반도에 있다. "Yid"를 지명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언어적 문제로서 지리적 범위는 지금의 터키가 있는 아나톨리아반도 지역과 동부유럽 지역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런 "이디시말"이 미국과 영국의 유대인 사회에서 주로 사용된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게 여겨진다. 언젠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에.
키타이[遼]는 강철의 나라?
료(遼)는 키타이, 서료(西遼)는 카라 키타이라고 한다. 그러면 "西"는 "카라"라고 해도 되는가? 사실 "카라"는 "검다[黑]"의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키타이"를 "료(遼)"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는 무어라고 부르는지?
(1) 빈철(賓鐵 : bintie] : 강철(鋼鐵), 단철(鍛鐵), 정철(精鐵). 료(遼)나라의 칭호.[진명 중한대서전]
(2) 上曰 遼以賓鐵爲號, 取其堅也. 賓鐵雖堅, 終亦變槐, 惟金不變不壞. 金之色白, 完顔部色尙白, 於是國號大金, 改元收國.[金史卷2 本紀2 太祖 收國元年]
위에서 보듯이 "빈철(賓鐵)"을 " 료(遼)나라"의 칭호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지역에 "강철"이 많이 생산되는 곳인 모양이다.
정말 그런지 사서에서 보면, 위의 (2)처럼, 역시 빈철을 료, 즉 키타이의 국호로 삼았다는 것이다. 물론 바로 그곳이 뒷날에 "금(金)"나라가 되었다는 것도 함께 실려 있다. 위의 설명을 [한어대사전 10]에도 실려 있는데, 단지 다른 것은 그 앞에 "遼之號"라고 더 설명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賓鐵 : bintie"가 "키타이"[遼]임에 분명하다.
이런 강철이 생산되는 지역을 지도에서 보면, 우랄산맥과 카자흐고원에 "鐵"의 산출지로 표시되어 있다. 막상 지금의 몽고지역 등지에는 별로 표시된 지도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흑해/카스피해 남쪽으로 보면, 터키의 동부지역, 시리아 북부지역에 철이 생산된다고 표시되어 있다. 시리아는 옛날에 앗시리아라고 했고, 앗수르라고도 했다. 이곳은 물론 옛날의 페르시아 지역이다. 이 페르시아 지역에는 빈철[강철]이 생산되지 않았는가? 혹시 사료에서는 어떻게 나올까?
(3) 波斯國 : 古條支國也. ... 出白象獅子大鳥卵珍珠珊瑚瑚珀水晶金鋼賓鐵...[周書 卷50 列傳42 異域下]
페르시아[波斯國]는 옛날에 "시리아[條支國]"이었다. ...흰 코끼리, 사자, 타조알, 진주, 산호, 호박, 수정, 금강 빈철[강철] 등이 생산된다고 했다. 이 페르시아 지역이 옛날의 시리아였다면, 그곳이 지금의 시리아라면, 서-아시아의 끝이다. 이런 지리적 사실을 다른 학자들은 어떻게 볼까? 아예 그쪽 지방 학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빨리 리해갈 것이다.
(4) 후한 화제(和帝: 89-105) 영원9년(97)에 서역도호(西域都護) 반초(班超)가 감영(甘英)을 로마[大秦]에 파견했다. ...감영은 條支의 大海를 건너려 했다. 이 조지는 당시 안티오크를 중심으로 한 시리아이며, 대해는 그 서쪽에 펼쳐진 지중해를 말한다. 따라서 감영의 출사도달 지점은 시리아의 서계, 지중해의 동안인 것이다.[정수일, <씰크로드학>(창작과 비평사, 2001), pp. 418-419]
이 자료에서 보듯이 한나라 때에 "조지국(條支國)"은 "시리아"이며, 지중해의 동쪽에 있는 곳이라고 했다. 지도에서 보면, 바로 현재의 그 시리아 북부에 철이 생산되는 곳임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 옛날이 현재와 맞물리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근사치의 지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임진왜란이라는 괴물과는 어떤 관계는 혹시 없을까?
(5) 賓鐵出西番.[한어대사전 11]
(6) 明劉綎用賓鐵刀輸轉如飛, 天下稱劉大刀.[병학지남연의 器械]
위의 (5)에서 "빈철은 서번(西番)에서 난다"고 했다. "서번"이 어디이든, 이미 "키타이[遼]"지역에서 생산된다고 했으니, 그 지역과 그 남쪽 시리아까지 생각을 남겨두고 보자.
위의 (6)은 "명나라 류정이 빈철도를 사용했는데, 빙빙 돌리는 것이 마치 나는 것 같아 천하에서는 류정의 큰칼이라고 일컬었다"는 것이다.
이 류정은 충무공 리순신과 전라도 광양만의 왜교성에서 함께 작전했던 장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사용했던 무기 가운데서 "빈철도(賓鐵刀)"가 있다. 명나라에서는 대륙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도검류는 페르시아지역의 것을 사용했는 모양이다. 더구나 위의 (6)의 번역문에는 원문에 없는 설명문이 더 적혀 있는데, " 빈철(賓鐵)은 페르시아[波斯國]에서 나오는 바, 단단하고, 예리하여 금과 옥[金玉]을 절단할 수 있다."고 했다.[병학지남연의, (국방군사연구소, 1996), p.60]
물론 이 빈철도(賓鐵刀)는 환도(環刀)와 같고, 요도(腰刀)와도 같다. 단지 이름만 다를 뿐이다. 이 "賓鐵"에서 참으로 재미있는 말들이 있었다.
헌강왕이 최치원의 아버지?
이런 말은 참으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신라의 49대 임금 헌강왕(憲康王: 875-886)은 이름이 김정(金晸)이다. 당시의 임금들에 대해 재위 기간은 적혀 있어도 출생년도는 거의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 최치원은 출생년도는 적혀 있어도 사망년도는 적혀 있지 않다. 궁금증만 낳게 하고, 역사에 대한 신뢰성만 떨어진다. 그래도 이 두 사람과의 관계를 한번 보자.
(1) 신 아무개[최치원]은 아룁니다. 전 신라왕 서리 신하 김탄(金坦: 진성여왕)은 신[최치원]의 친숙모입니다. 신[최치원]의 죽은 아버지 증태부 신 김정金晸: 헌강왕)과 숙부 신 김황(金晃: 정강왕)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친숙모께서 제후국의 임금을 서리하다가 질병과 반란이 일어나 897년 6월 1일에 국왕의 임무를 간절히 밀어 신에게 도맡아라고 하셨습니다.
[臣其言, 前權知當國王事, 臣坦是親叔, 自臣亡父贈太傅臣晸及次叔臣晃, 相次亡沒, 叔權守蕃服, 疾故相仍, 至乾寧四年六月一日, 懇推蕃務, 令臣主持.][東文選 권33 表箋 崔致遠 謝嗣位表]
고운 최치원(857- ?)은 중국에 유학가서 벼슬하고 겨우 28살에 신라로 귀국하여 시무책을 올리고는 은둔생활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글 "왕위를 이음을 사례하는 표문"이 897년에 지은 것이니, 그의 나이 40살이다. 한창의 나이다. 그런데 이 표전의 제목이 "嗣位", 곧 "왕위를 이었음"이란 말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897년에 왕위에 오른 사람은 효공왕(孝恭王: 897-912) 김요(金嶢)이다. 그렇다면 "신[최치원]에게 도맡아라"는 말은 최치원이 효공왕이란 말인가? 게다가 최치원은 자신의 죽은 아버지[亡父]가 김정(金晸)이라고 했으니, 그가 바로 헌강왕이 아닌가? 성이 다른 최치원이 쓴 글에서 그 죽은 아버지가 신라의 임금이었으니, 최치원의 성이 '金'이었단 말인지, 아니면, 본문에 성이 적혀 있지 않고 이름만 晸·晃·坦으로 적혔으니, 이 신라의 임금들의 성이 '崔'였다는 말인지 도대체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김탄, 즉 진성여왕(887-897)이 최치원의 친숙모[親叔]가 되고, 김황, 즉 정강왕이 숙부[次叔]이 되는 것은 그들이 모두 경문왕(景文王: 861-875) 김응렴(金膺廉)의 아들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최치원]더러 897년에 임금을 맡았다고 했으니, 최치원이 효공왕이 아니면 이 글은 무슨 해괴한 말인가? 효공왕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김요(金嶢) 아닌가 말이다. 이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으니, 최치원이 대문장가라서 효공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지어 중국황제에게 올렸단 말인가? 아마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나마 변명은 될 것도 같다. 그렇다면 최치원이 대신 글을 썼다는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2) 그러나 신[최치원]의 숙모 김탄은 사람을 세우는 뜻이 간절하고, 자기를 꾸짖는 말씀이 깊어, …. [而臣叔坦, 志切立人, 言深責己, …][위의 표전]
(3) 신 아무개[최치원]은 아룁니다. 신의 숙모 김탄이 제후국의 임금의 서리로 취임하는 날 표문을 받들어 추증하옵기를 청하였더니 지난 897년 7월 5일에 ….
[臣某言, 臣叔坦權守蕃務, 日具表陳請追贈, 去乾寧四年七月五日, …][위의 책, 崔致遠 謝恩表]
최치원은 여전히 김탄을 숙모라고 하였다. 다른 표문을 올리는데, 여전히 김탄을 숙모라고 하였고, 제후국의 임금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아는 김탄은 진성여왕이다. 어떤 곳에는 이름을 원(垣)이라고도 하였다. 이 글자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가족관계가 문제이다.
위의 (1)에서 최치원은 헌강왕을 아버지라고 불렀다. 언제 의부(義父)를 맺었는가? 897년 7월에 효공왕은 즉위하였고, 이때에 진성여왕에 대한 추증이 이루어졌고, …
헌강왕은 의명왕후(懿明王后)에게서 자식이 없이 서자(庶子)뿐이라 그 아우에게 물려주니 정강왕이고, 그는 1년 만에 후사 없이 죽으니, 누이가 임금이 되니 이가 곧 진성여왕이다. 이 진성여왕이 죽으니 어쩔 수 없이 임금에 오른 사람이 헌강왕의 의명왕후(義明王后)에게서 난 서자 김요(金嶢)가 임금이 되니 효공왕이다. 그런데 그 897년에 임금을 도맡은 사람은 최치원이라고 최치원은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최치원의 말년을 은둔으로 꾸미고, 언제 죽었는지조차 없애버렸나 보다. 효공왕은 912년에 죽었다.
그렇다면 최치원은 헌강왕 김정의 서자가 아닌가? 이렇게 되면 최치원은 "김씨"가 되고, …
여기에 "親叔"이라고 썼고, 성이 없이 이름만 "晸·晃·坦"으로 썼으니, 아마도 이들이 "金"씨가 아니고, 공신으로 보는 "崔"씨의 제후국일 것이다. 그렇다면 "晸·晃·坦"은 신라의 "헌강왕·정강왕·진성여왕"이 아니라는 말이며, 이것이 맞다면, 적어도 효공왕은 최치원이라는 말이 되니, 이거야말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거짓 역사라는 말이 아닐까? 아무래도 이상하니 그냥 "최치원이 대신 글을 써준 표문이렸다!"로 보자. 어이쿠나!
선비(鮮卑)가 무엇인가?
선비(鮮卑)! 도대체 이 "선비"란 말이 조선의 역사에 무엇인가? 북방에 위치하면서...
어디에선가 "鮮卑爾"라고도 하고, "鮮裨爾"라고도 하는데, 그 소리로 보면 같은데 말이다. 그 소리의 원형은 과연 무엇인가?
[선비이]?
맛이 없군요. 이 말을 다른 말로 요즘 "西伯利亞"라고 하는데, <환단고기>에는 "斯伯力"이란다죠? 이 두 낱말의 글자는 다르지만, 그 소리는 무얼까?
[시비리아][시비리]
[sibir]
이 말은 요즘에 누구나 하는 말 "시베리아"가 아닌가. 그럼 [선비]=[Sibir]=[시베리아]
이곳이 어딘가? 유럽과 아시아를 지나는 것이라기 보단 그저 본디 말대로 오브강 중상류의 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의 그 사이에 있는 지역이 아닌가 싶다. 아! 이 또한 ....
"함께"의 뿌리는? ---->왓! 중국이 우리말을 뻬껴 쓰고 있다
함께 가는 길! 함께라면 웃음 머금고 불평하지 않는 걸음으로 그 길을 동행하는 인생길 묵묵히 가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는 사랑 하나 있으면 함께 가는 인생길 서러운 것도 힘든 것도 헤쳐 나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글월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함께"이다. 이 "함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한꺼번에 같이. 또는 서로 더불어."이다. 그렇다면 이 말의 뿌리는 무엇일까? 이런 말들을 사용한 모양을 보자.
(1) 한ㅂㅅ긔 / 한ㅂㅅㄱㅣ / 한ㅅ기 / 한께 / 함께 [본디 한의 ㅏ는 아래 ㅏ임]
(2) 함ㅂㅅ긔 / 함ㅅ긔 / 함긔 / 함께 [본디 함의 ㅏ는 아래 ㅏ임]
(3) 한대 / 한데 / 함께 [본디 한의 ㅏ, 대의 ㅏ는 아래 ㅏ임]
위의 보기에서 "함께"의 뿌리가 "한"과 "ㅂㅅ기"에서 비롯되었으며, "함"은 "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아래ㅏ]"은 "한"과 다르며, "한[아래ㅣ]"은 "一"이며, "한"은 "多/大"이다.
"ㅂㅅ기"는 우리들이 가끔 "끼니"나, "한끼"라고 할 때의 "끼"의 뿌리이며, "時"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함께"라는 말은 "같은 시간에 같이"라는 뜻이 들어 있으므로, "여럿이 더불어"의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을 현재의 중국에서는 뭐라고 하나? "一起"[이치]라고 소리 낸다. 그런데 이 글자를 곰곰이 뜯어보면, "一"+"起"인데, "一"은 앞에서 말했듯이 한글의 "?"이고, 요즘의 "한"으로 쓰는 것과 같으며, "起"는 우리는 [기]라고 소리낸다. 이 [기]를 조금 세게 소리내면 [끼]라고 난다. 분명한 것은 "起"는 소리[音]로서 [기][ㅅ기][ㅂㅅ기]이며, 그 뜻[訓]으로 [더욱/한층더]에서 이루어진 글이라 본다. 그러면 "一起"는 "한끼"의 소리와 같고, 요즘의 "함께"라는 말과 같다. 이것은 한어(漢語)라는 중국어는 글자로 한자 "一起"라고 쓰고 있지만, 본디 그 소리는 [한끼]였던 것임을 알 수 있는데, 단지 요즘 그들이 [이치]라고 소리 낼 분인 것이다. 아마도 중국대륙과 한반도를 분리하는, 중국과 조선을 분리해내는 과정에서 소리마저 다르게 만들게 되었다고 본다.
함께 – Endorphin(엔도르핀)
우린 먼 길을 참 급하게 정신없이 달렸지
돌이켜 보면 다 그렇지 아쉬운 게 더 많아
조금씩만 더 사랑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래도 우리 이렇게 마주보고서 웃고 있잖아 '함께’
워~ 아무도 모르는 외로움도 함께라서 좋았지
함께 어깨동무 하고서 걸어왔지
언젠간 걸을 수 없겠지만
그 순간까지 함께 있다면
또 항상 이렇게 (지금처럼) 빠빠빠빠라빠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