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2022 신춘문예 당선 동화동시집
출: 정은 출판
독정:2022년 7월 24일
★ 광개토여왕(이지요)-강원일보
“엄마, 돈 벌어 올게.”
“가방에 그건 다 뭐야. 제발 적당히 좀 해!”
엄마가 태권도 가방 속에서 빠져나온 고무 딱지들을 째려봤다. 가방에 차곡차곡 자리를 잡은 나의 고무 딱지들, 엄마에겐 잔소리 대상이고 나에겐 성공의 상징이다. 고무 딱지가 하나에 천 원이니 매일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오는 셈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잔소리 폭탄이니 이보다 더 억울할 수 없다.
“광개토여왕 납쇼. 길을 열어라~”
며칠 전 우리 아파트에 이어 옆 아파트도 정복했다.
※ 심사평- 다문화 가정. 부모 이혼, 학원 문제 등 환상 동화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광개토대왕’은 생활 동화임에도 신선하고 새로웠다. 판타지적 요소가 부분부분 나타나지만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높이는 데 기여하면서 오히려 삶이라는 현실을 동화로 승화시켰다. 딱지 따먹기 내기의 강자 주인공은 이긴 자가 딱지를 다 갖는 ’진빠‘ 게임을 고집하여 갈등하지만 새로 나타난 강자와 겨루어 독식의 부조리를 알고 그와 이겨 딴 것의 반을 나누어주는 ’가빠‘ 게임 법칙을 세운다. 딱지 게임이 주 스토리지만 그 안엔 승자독식, 부익부의 비정함이 드러나기도 하고, 곁가지이긴 해도, 우리 사회의 이슈인 젠더 등을 암시하는 짧지만 생각할 거리가 풍부한 글이다. 구성이 짜임새 있고 게임을 소재로 하는 글답게 비정하거나 속도감 있는 표현도 좋다. -심사: 원유순, 권영상
★ 버스 정류장-김경애(경남신문)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아삐가 운전하는 버스였다. 할머니는 누가 나가기만 하면 서울 가냐고 물으며 따라나섰다. 장터의 옷 가게도 할아버지 할머니 옷만 팔았다. 옷 가게 앞에는 잔잔한 꽃무늬가 있고 색깔이 화려한 버선이 한가득 있었다. 버선은 한복 입을 때나 신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런 촌스러운 버선은 과연 누가 신을지 궁금했다.
· 병원 옆에 있는 요양병원이 병원보다 더 컸다. 옆에는 장례식장이 있었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서울은 무슨 다 지난 일이구나.”
지금 할머니는 온전했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보니 고모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혼자는 위험해. 거기에 있어. 고모가 갈게.’
·눈을 감고 자는데도 눈앞이 희뿌연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려고 아빠차를 탔다. 나는 어제 그림 그림을 할머니께 드리고 싶었다. 급하게 집으로 가 그림을 가져왔다.
“숙제 다 했어요. 할머니.”
차에 타서 뒷자리에 계신 할머니께 그림을 드렸다. 할머니는 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셨다.
“여기 세 번째 정류장 나무 대문 집이 빠졌구나.”
“어! 그러네요. 다시 그릴게요.”
“괜찮아.”
할머니는 그림만 계속 들여다보셨다. 그림에 난 길은 방학 동안 할머니와 내가 지나왔던 길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할머니와 그 길을 다시 걷기를 바랐다. 이미 할머니 마음도 그럴 것 같았다.
※평-치매 걸린 할머니와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아버지가 나오는데 지금 우리 사회의 아픔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듯. 집 밖에만 나서면 서울 가자는 할머니를 모시고 동네 나들이 가는 주인공의 착한 마음이 이 작품을 이끄는 힘이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는 날, 주인공이 그린 버스 정류장 그림을 보고 세 번째 정류장이 빠졌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독자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내용을 좀 더 긴밀하게 구성했으면 아쉬움이 있다.=심사; 소중애. 김문주
★ 분홍 물고기-문일지(경남일보)
방아깨비처럼 아저씨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저씨에게 분홍 물고기 비늘을 얻어와 수첩에 끼웠다.
“답답해. 여기서 꺼내 줘. 나야. 연못에서 봤잖아.”
수첩을 여니 비늘은 간데없고 종이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어 분홍 색종이 같았다. 수첩 무게에 눌려 얇은 비늘이 녹아 버린 걸까? 함께 넣었던 봉숭아꽃도 곱게 물들어있었다. 빨간 물방울처럼 아름답게. 다음날 수첩에서 분홍 종이를 떼어 내어 연못에 달려가 종이배를 만들어 띄웠다.
※평- 문장이 감각적이고 스토리에 얽힌 사연이 모두 이지미로 표현되어 한편의 서정시나 수채화를 보는 느낌. 현실 매시지 대신 시적 함축미와 이미지 구축에 무게 중심을 두어 생활 동화가 대세인 한국 동화에서 신선한 작품이다.-심사:조대현
★ 먹는 책-박청림(광남일보)
주의!
이 책에 나오는 음식을 잘 떠올리며 이름을 부르면 바깥으로 빼내서 먹을 수 있음! 하지만 한번 책 솔의 음식을 빼 먹으면 그 음식은 책 속에서 사라지니, 다른 음식으로 채워 넣으시오!
· 맛있는 음식만 빼 가면 그 후에 남은 글자들은 내용물을 빼먹고 남은 사탕 껍질이나 다름없 었거든요. 입맛을 다셔가며 책을 넘기고 또 넘겼다.
· 손으로 목덜미를 훑자 손가락에 갈색의 끈적끈적하고 단내가 나는 것이 조금 묻어나왔다. 손가락을 쭉 빨자 아주 친근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평- 책 이름만 떠올려 부르면 바깥으로 음식을 빼내서 먹을 수 있고 그 음식이 사라지면 다른 음식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주의 등 엉뚱한 재미를 준다. 전개 과정이 거칠지만,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줄기는 끝내는 책 속 음식까지도 꺼내 먹을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 등 소재를 조물조물 요리하는 솜씨가 돋보였다.-심사 이성자
★동물환상 국-황경란(광주일보)
개미 선생님은 ‘인간 사전’에 실린 가족과 친구의 뜻을 알려 주었다.
같이 밥을 먹고 + 같은 곳에서 잠을 자고 + 같이 울고 웃는다= 가족
마음을 기대고+ 등을 기대는 사이=친구
오늘 + 오늘=내일
지금 + 지금=오늘
가만히 + 조용히 – 두려움 = 함께하는 용기
가만히, 긴장하지 마라
조용히, 주위의 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두려움을 버려라
그러면 함께하는 용기가 생긴다.
“왜요? 왜 함께해야 해요?”
“너는 인간의 친구니까.”
“용기는요?”
“너는 자랑스러운 꿀꿀꿀이가 될 테니까
‘인간 사전’에서 ‘함께하는 용기’를 찾아보았다.
스스슥, 샤사삭, 스스슥, 샤사삭,
가만히 + 조용히 - 두려움=함께하는 용기
개미 선생님 코끝에서 안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이 있는데 내일을 바라본다고요? 나는 설명을 들으려고 ‘함께하는 용기’ 자세로 앉았다.
가만히 + 조용히-두려움의 자세는 힘든 자세였다.
‘인간에게 내일은 중요하다. 모든 인간은 내일을 기다린다.
내일 꼭 하고 싶은 일 = 꿈
친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 = 위로
동물이 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의 나는 빛이었다. 동물 환상국을 빠져나오자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개미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자랑스러운 ‘꿀꿀꿀’이가 되었다.
※평- 새 생명체로 태어나려는 동물의 혼령이 인간과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소재가 신선하다, 구성이 안정되고 문장에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특히 낱말 풀이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도록 하는 점도 좋았다. 활달한 상상력과 오래도록 가다듬은 문장력이 높다.-이미래
<주전자가 끓는 시간>은 할머니의 사랑을 노란 주전자로 형상화한 작품인데 그저 받기만 하는 수동적 위치여서 아쉬웠다.
★ 동백 101호- 손이랑- 국제신문
아직 꽃은 피지 않아 향기는 없겠지만, 향기가 싫으면 버튼을 누르면 돼. 좋은 향기도 오래 맡으면 머리 아플 수 있으니까, 초록색 불일 때가 산소 질이 좋다는 표시야, 노란색으로 바뀌면 나빠졌다는 것이고 빨간색으로 바뀌면 아주 나빠졌다는 위험 신호야. 하지만 걱정 없어. 동백 101호는 슈퍼 정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30초 내로 최상의 산소 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용태야 죽지 마, 너 없으면 학교생활 너무 재미없단 말이야. 다신 명태라고 놀리지 않고 점심에 도넛 나오면 너 다 줄게. 용태야, 일어나.“
“너 약속했다.”
용태가 눈을 뜨고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반 아이들 다 들었다. 이번 학기 내내 네 도넛은 내 거야.”
“아, 용태야!”
용태를 끌어안았다. 도넛은 백 개라도 줄 수 있어. 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산소 용기를 보았다. 세상에 동백의 붉은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울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동백 101호, 고마워. 용태, 살려줘서 고마워.”
※ 평-교문에서 로봇의 검사를 받고 휴대용 산소통에 적색 불이 들어오면 등교를 못 한다. 산소통 사재기로 섞어 쓰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세상이 코로나 이후의 일상이 될지 모른다. 흡인력 있게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시의적이고 설득력 있다.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김란(동아일보)
·미소 연구원! 친구 안 한다는 쿵이의 편지는 알고 보면 친구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외침이야. 우리가 쿵이의 마음을 달래주고, 두 아이가 다시 만나게 도와주자.
“쿵아, 나는 내일 당장 영지한테 사과할 거야. 우리 아빠가 그랬어.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이해해 주는 힘이 있다고,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대. 나는 영지를 많이 사랑하거든.”
· 들판에 돌담마다 알사탕처럼 줄줄이 매달려있는 빨간 산딸기를 입 주위가 새빨개지도록 따먹고, 토끼처럼 온 들판을 쏘다녔다.
사건 –합주 때 바이올린 켜는 실수로 선생님이 화를 내어 창피했는데 몽이가 나를 놀려 상처 입었다. 등
※평- 다른 작품들은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 마음을 헤아리는 작가의 개입이 강해 지루해지거나 소재를 잘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당선작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 일로 시작된 상처를 마음의 흉터가 아닌, 서로가 더 예쁘고 고맙게 보이는 별로 만들어준다-송재찬, 노경실
★ 외로움담당관-김태희(무등일보)
계단을 오르다 보면 층마다, 집마다 냄새가 다르다. 요즘은 이웃이 단절되어 삭막하다고 하지만 서민 아파트라 계단 문밖마다 사람 냄새가 난다. 202호는 지나가는 거 자체가 괴롭다. 집 주변에만 가도 담배 냄새가 심해 숨을 참아야 한다. 402호에는 아기 젖 냄새 같은 게 나는 듯하다 문 앞에 쌍둥이 유모차며 붕붕카도 나와 있다. 쌍둥이 아이가 자고 있으니 벨을 누르지 말라는 문구가 있어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지나간다.
· 법 공부를 한다던 손녀 이야기하며 아들은 거의 연락을 안 한단다 거실 벽면에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사진으로 채워진 것을 보니 오히려 외로움을 매단 것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순식간에 밥상을 차렸다. 청국장에 조기, 불고기, 잡채 등 이런 맛깔난 밥상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청국장 한 번 먹어 봐. 내가 직접 뜬 거야.”
청국장이 석 내키지 않았지만 한 입 떠먹었다.
“냄새는 좀 그래도 먹을 만하지?”
구수하고 짭조름한 국물에 깊은 맛의 콩이 부드럽게 씹혀 생각보다 맛있었다.
“네 엄마도 내가 담근 장을 좋아했어. 그 입맛이 어디 가겠니? 너도 똑같겠지.”
할머니는 얼굴이 환해지며 이번에는 조기를 발라 내 숟가락에 얹어주었다.
“나라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 보살펴주지만 그래도 외로워. 그런데 네 엄마가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줬단다 영국에는 외로움담당관이 있다며 너희 엄마가 내 외로움 담당관이라나. 뭐라나. 호호. 그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할머니 집에서 신나게 밥을 먹고 나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할머니가 배란다에 널어놓은 나물거리들을 거두며 말했다.
“모래가 보름이라 달이 저리 커졌네.”
창밖으로 환하게 뜬 달이 보였다. 배가 든든히 채워진 것 같은 풍성하고 편안한 달이었다.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튀어나와 재잘재잘거렸다.
※평-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외로운 시대다. 예전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따듯한 정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시대에야말로 문학의 힘이 가장 필요한 때다.-심사: 임지형
★ 농구의 신-정희(문화일보)
슟 할 차례다. 무릎을 굽혔다 펴는데 몸이 가볍게 올라갔고, 내 손을 떠난 공이 링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짜르르한 느낌이 온몸에 흘렀다.
“감독님, 농구는 신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거라고 보이킨스가 말했잖아요.”
“그 말은 아이버슨이 했거든.”
감독님이 웃으며 내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농구화가 생긴 다음 농구가 더 좋아졌다. 몇 시간 연습해도 힘들지 않았다. 보이킨스가 응원하며 함께 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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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볼 하며 앞으로 나갔다. 손바닥에 공이 와서 닿는 감촉이 좋았다. 뭔가 느낌이 온다.
농구장 안 모든 것이 정지했다. 공기마저 멈춘 것 같은 시간, 내 손을 떠난 공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링 안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휘리릭!’ 종료 휘슬을 불었다. 아! 짜릿한 버저비터(공이 선수의 손을 더나 있어야 숯으로 인정된다)였다.
※평- 농구를 잘하고 싶지만, 키가 자라지 않아 속상한 우현이가 중고 거래로 특별한 신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그렸다. 어린이의 욕망을 존중하면서도 성취는 거래 될 수 없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한다. 신은 주인공의 기대를 배반하지만, 그것이 꿈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우현이가 신발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갈등과 노력이 충분히 다뤄져야 하는데 압축해서 서둘러 전개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현장의 생생함과 소재의 경쾌함을 스타일로 소비하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심사: 김지은, 이현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는 저마다 무서워하는 것이 있는 세 아이가 사흘 동안 한집에서 지내며 날카로운 각자의 공포를 부드럽게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두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마음을 모으는 과정이 잘 나타났지만, 중심인물이 개에게 느끼는 공포만 일방적으로 그려졌다. 개가 가영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친밀한 일색이었다. 개도 가영이가 두려울 테고, 관계는 양방향에서 진행되는 것이다.-심사; 김지은. 이현
버저비트-농구에서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 소리와 함께 성공된 골, 버저가 울리는 순간 공이 슛하는 선수의 손을 떠나 있어야 숯으로 인정된다.
★ 새벽 놀이터-문채영(전남 매일)
완충용 블록 하나가 들리더니 그 밑에서 검은 색의 무언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공’이었다. 공은 오래전부터 이 놀이터에 사는 수수께끼의 생물이었다. 공은 낮 동안엔 줄곧 놀이터 밑 땅굴에서 잠을 자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움직이곤 했다. 밤이 되어야 사람들도 없고 놀이터가 조용해지기 때문이다. 공은 혼자인 게 편했다. 공은 빈 놀이터를 차지하기 위해 그네 밑에서 빠져나왔다.
“으악, 벌레! 아니 뭐야!”
옆 그네에 한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보민이었다. 보민은 놀이터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중이다. 할머니가 먼저 자자고 했지만 보민은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아 할머니 주무시는 틈에 놀이터로 슬며시 나왔다. 아빠를 조금이라도 일찍 만나기 위해서. 그런데 그네 밑에서 이상한 생물이 기어 올라온 것이다.
공은 그네를 벗어나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기구 위로 올라갔다. 색깔 점토 같은 것이 사방에 흩뿌려진 채 반짝 빛나고 있었다. 공은 미끄럼틀과 외나무다리, 전망대와 그물망 사이를 넘나들며 반짝 빛난 점토들을 먹었다. 보민은 그 빛나는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지금 뭐 먹는 거야?”
“에너지야. 낮 동안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다가 흘린 에너지들을 먹어.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데 반해 몸이 작으니까, 자꾸 이렇게 흘리는 거야. 이걸 그대로 놔두면 놀이터가 그 에너지를 빨아들여서 마구 날뛰기 시작하거든, 그래서 내가 먹어주고 있는 거야. 나는 아무리 먹어도 날뛰지 않거든. 놀이터엔 그게 항상 쌓여.“
“이건 필요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거야.”
에너지는 무슨 맛일까? 나고 공처럼 에너지를 먹어야 할까? 공은 그림자 같기도 하고 두더지 같기도 한 몸짓으로 놀이기구 사이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너는 매일 이렇게 놀이터에서 놀면서 에너지를 먹고 하는 거야.”
“응, 나는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거든.”
“진짜? 마법이나 요술 같은 것도 못 해?”
공이 특별한 능력을 갖췄다면 도와달라고 하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공이 더 좋아졌다. 특별히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점이 자신과 똑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넌 좋겠다.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괜찮아서.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항상 문제인데.”
“왜 그게 문제인 거야?”
“뭐든 잘하는 사람이 돼야 좋은 직장도 다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거든.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내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아빠를 행복하게 해드려야 한 대. 아빠 혼자서 나 키우느라 고생하니까 말야.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내가 만났던 그림자들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너.‘
“그림자?”
“응, 가끔 놀이터 위로 올라와 보면 커다란 그림자가 앉아 있거든. 신문지를 덮고 누워있기도 하고, 몸을 휘청거리면서 고함을 치기도 해. 전에 만난 그림자는 웅크린 채로 나쁜 말을 잔뜩 하고 있었어. 그림자들은 날 귀찮아해.”
공은 품 안에 에너지를 잔뜩 안고 와 보민에게 내밀었다.
“이거 나눠줄게, 작별 선물이야.“
“내가 먹을 수 있는 걸까? 배가 아프진 않겠지?”
“사람이 흘린 에너지니까 분명 괜찮을 거야.”
공에게 고맙다고 하며 에너지를 들고 그림자를 향해 뛰어갔다.
“아빠! 내가 라면보다 더 좋은 거 줄게. 이거 술 깨는 데 좋은 약이래.”
“어쩐지 가벼워진 기분이야. 날 짓누르던 게 사라진 것 같아.”
그림자는 가슴을 펴고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러자 그림자의 가면이 깨지고 몸에서 검은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맙다. 이거 약효가 좋은데?”
“아빠, 면접은 어땠어?”
“엉망이었지. 그래도 우리 딸 보니까 기운 좀 나네.”
공이 고개를 돌리자 길가 근처에 세워진 볼록 거울이 보였다. 새까만 덩어리 같은 공 모습이 고개를 숙여 손아귀에 남아 있던 에너지들을 봤다. 공은 에너지를 한 입 먹고는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공은 여전히 공이었다. 공은 이제 다시 땅굴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자신이 나왔던 구멍으로 들어간 후 블록 뚜껑을 닫았다.
※ 평-새벽 놀이터는 이미지가 남는 동화였다. 디테일 면에서 서투름은 있으니 자기만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 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인적이 끊어진 어두운 놀이터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의 두려움과 불안, 그 속에 묻어 있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심사. 임정자
-무난함을 넘어서 새로운 시도나, 자기만의 시선. 자기만의 동화적 세계가 필요하다.
★ 지하철역 아이-박영미(전북일보)
· 나도 역무원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서 아는 건데, 부역장님의 원래 꿈이 성우였는데 집안 사정으로 철도공무원이 되었다고 해. 그래서 우리 역 안내방송을 부역장님 목소리로 녹음해서 쓰고 있었어. 다른 역들은 모두 디지털 안내방송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역만 아직도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야. 기쁨이가 바로 부역장님 딸이었구나. 아빠 목소리를 들으러 엄마 몰래 매일 여길 온 거였구나. 나는 기쁨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저 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찍는 카메라일 뿐이야.
모니터 속 기쁨이는 울고 있었지
“역장님 오셨습니까? 얼마 전부터 보안카메라가 말썽이더니 오늘은 아예 한 곳만 비춘 채 먹통입니다. 새 걸로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그런데 저 아이는 왜 저기서 혼자 울고 있지?”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역장님의 지시로 역무원들이 기쁨이한테 서둘러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어. 기쁨이는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 대화를 마친 역장님이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어.
“기쁨아, 아빠 목소리 여기에 담았으니까 언제든지 들으렴.”
“여기서 정말 울 아빠 목소리가 나와요?”
기쁨이는 작은 이동식 메모리 장치를 쥐고 살포시 웃었어.
위험에 처한 승객을 살리고 목숨 잃은 아빠를 잊지 못하고 지하철역에 오는 아이의 이야기다. ※ 평-의인화된 보안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아이의 슬픔과 아픔을 비춰주는 설정이 돋보였다. 아빠 목소리를 찾는 결말도 감동의 여운이다.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동화다운 문장도 좋다.-심사. 이준관
★ 끼리끼리 마을-김다혜(조선일보)
끼리끼리 마을은 공동주택의 층간소음 문제를 과장해서 회화적으로 다룬 방식이 재미있었다. 사건의 극대화를 위한 대비되는 설정, 긴장감을 유발하고 역동성을 보여준 점, 문제의 주범이 어린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의 섬뜩함, 층간소음이라는 소재를 시의성 등에서 마음이 기울었다. 심사-황선미, 원유순
★ <떨어져 본 적도 없으면서!> 김세실(한국릴보)
· 한 표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나를 찍어준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전처럼 창피하지만은 않았다.
“너 오늘 멋있었어. 사실 나도 너처럼 선거에 나가고 싶었는데 도저히 손이 안 올라가더라. 네가 마지막에 나가는 거 보고 나도 나갈까 했는데 떨려서 못 했거든. 용기 내서 나가는 널 보니까 괜히 부럽고 그래서 나는 너 뽑았어.”
※ 평-어린이를 천진난만한 존재로 이상화하지 않으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인정하고 어린이에게 사회적으로 타당한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동화작가의 사명이다.
<떨어져 본 적도 없으면서!>는 소심한 주인공이 회장 선거에 나가 실패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상대 인물의 몰입도가 뛰어나 독자가 서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며 팬데믹 시대에 교실 생활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점도 반가웠다. 회장 선거 과정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았으며 현실적인 결말에 그치지 않고. 한 표에 대해 소중함을 알고 있는 주인공의 건강함이 사랑스럽다. 심사: 김민령. 최나미
★ 지켜보고 있다-지윤경(매일신문)
· 무인 계산기 앞에 섰다. “물건을 올려 주세요. 카드를 꽂아 주세요.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카드를 빼 주세요. 안녕히 가세요.‘
기계음에 따라 몸을 움직이다 보니 말 잘 듣는 로봇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바코드에 찍어주세요.‘
“알거든?“
장난스럽게 말하는데
‘하나, 진짜 웃긴다. 웃음 참느라 혼났네. 지켜보는 사람은 이런 기분이구나.
“아, 미안, 너무 웃었지? 아니, 널 비웃은 게 아니고 나도 맨날 그러거든. 나도 여기서 대답하면서 아이스크림 산다고.“
나도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참 오랜 만에 사람과 함께 웃었다.
“너무 온종일 말을 안 해서 답답했나 봐.‘
핑계를 대야 할 것 같아서 말했다.
“맞아! 나도 그래. 지난주는 미세먼지, 이번 주는 전염병. 진짜 답답해. 근데 학교에서 본 것 같은데, 너도 5학년이야?”
“응, 너도?”
· 친구들에게 말 걸기도 힘들었고 무슨 말을 걸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까르르 참새들처럼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시끄럽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다. 나도 저 참새들 중 한 마리가 되고 싶었다. 사람들 눈에 별로 띄고 싶지 않았는데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나는 더 선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수업 끝났니? 점심시간이지? 밥솥에 밥 뜨고, 국 1분만 데워서 먹어.”
“응.”
“위잉 위잉”
거실과 부엌에 여러 개 눈동자들이 나를 찾는다. 우리 집 구석구석 모든 곳에 캔이 설치되어 나를 비추고 있다. 화장실까지도. 혹시 내가 화장실에서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유다.
“띠디띠‘ 전자레인지 소리다 국이 다 데워졌다. 반찬이 몇 개 되지 않지만 깔끔하게 차려진 밥상을 본다,
· 다뜻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가슴속에 껴있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 평-전염병으로 비대면 수업이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곳곳에 눈을 두고 사는 시대가 되고 만 것을 보여주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기계적으로 오가는 담임과의 대화, 일일이 자녀의 일상에 관여하는 어머니, 지시에 길든 윤지와 희윤이가 보여주는 마지막 반전은 읽는 이를 통쾌하게 만들었다. 흩어짐과 모여들임이 이어지는 전개 방식과 구성은 글솜씨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심사- 김일광
·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자 북은 마음속에서 튀어나와 귓가에서 울렸다.
★ <달이 떴다> 유인자 -강원일보
스케치북을 펴고
컵을 엎어봤다
-작아
냄비뚜껑을 엎어봤다
-커
냉면 그릇을 엎어봤다
-딱!~
노란 색연필로 따라 그렸더니
조금 전에 봤던 그 달이 떴다,
달이
겨우겨우 내 방에 들어왔다.
★ <바람 부는 날>-유인자(강원일보)
드넓은 밀밭에
촘촘히 서 있는 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개를 까딱이며
허리를 돌리다가
온몸을 흔들어댄다
생동하는 아이들 마음과 함께 하며
즐겁게 쉬어 갈 수 있다
바람이 부는 만큼만 흔들면 될 것을
이젠 바람을 가지고 논다
밀밀밀. 밀들이 춤춘다.
밀밀밀, 들이 노래한다.
밀밀밀. 밀밭이 들썩인다.
바람이 밀밭에 갇혔다.
생동하는 아이들 마음과 함께하며 즐겁게 쉬어 갈 수 있는 다정한 동시를 슬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
달팽이 편지- 손바닥만 한 비탈길 갉작갉작 일구다가
★<얼음 침대> 정준호- 매일신문
수산물 시장
물고기들이 누워 자는
얼음 침대
따뜻한 바다에서 온 물고기가
머물렀던 자리에선
태양이 빚은 줄무늬들이 그려져 있지요
물고기는 떠나면서
침대를 반짝이게 닦아놓아요
자기 비늘 옷을 벗어놓고 잊고 갈 때가 있지만요
추운 바다에서 온 물고기가
누운 자리에선
단단한 달의 등뼈도 돋아나요
침대는
물고기가 온 바다들을
물고기들의 모습을 환하게 기억하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