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따사로웠던 주말, 엄마의 손을 잡고 그림을 보러 갔던 오래된 기억이 있다. 그림 속 잔잔한 연못에는 수련들이 가만히 떠 있고 바람조차 쉬어갈 듯한 차분함이 배어 있다. 아직도 선명하게 잔상이 남은 연못 정원 그림은 클로드 모네라는 유명 화가의 <수련>이라는 100년도 넘은 작품.
취재 차 찾은 가로수길에는 젊은 느낌의 브랜드숍들이 즐비했다. 메인 골목에서 조금만 빗겨 가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서면 하얀 외관의 ‘FIFTY FIFTY’를 볼 수 있다. 알음알음 요즘 꽤 핫한 연예인들이 단골로 드나든다는 이 신생 갤러리는 아트 토이부터 신진 작가들의 전시물까지 아우르며 젊은 콜렉터들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는 소문이다. 기존의 인사동, 삼청동, 평창동을 아우르던 화랑에서 탈피한 젊은 갤러리의 태동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철제 계단을 내려가 만난 공간에서는 주말 펍에서 흘러나올 법한 경쾌한 노래가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여태껏 갤러리에서 접했던 미술품들과는 다른 느낌의 그림들도 적잖이 당황스럽다. 화려한 색감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림들은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한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어느 인사동 골목에서 수백 년을 버틴 소나무처럼 우직함이 밴 그림들보다, 신진작가들의 ‘활어’같은 생동감이 갤러리 안을 채우고 있었다. 토마토가 앉아 있다니…. 빨간 토마토가 빨간 구두를 신고 앉아있는 그림은 도발적이기까지 했다.
한 벽면에 유일하게 원화로 걸려 있던 같은 작가의 작품은 선과 빨강, 파랑으로 만들어져 많은 색이 들어가지 않은 강렬함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냅백을 쓴 갤러리 관계자가 다가와 “네덜란드 작가의 그림이에요”라고 말하자, 기자는 눈도 떼지 않은 채 “얼마에요?”라고 지체 없이 물었다.
한편에는 그림들이 자리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아트 토이들이 일렬종대(一列縱隊)로 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어른이 되어도 장난감에 대한 소비를 멈추지 않는 키덜트의 마음에 쏙 들 조그마한 베어브릭부터 큰 베어브릭에 작가들의 그림을 그려 넣은 3D 아트까지.
이곳은 현재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비밀스럽게’ 공개된 공간이다. 그림을 보고 난 후 아트 토이 중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스티키 몬스터 랩’을 결국 손에 들었다. 아트 컬렉터의 시작은 접하고 느끼고, 사는 것이다.
입문자를 위한 3단계 ‘보고 느끼고 사라’
일상생활에서 그림 작품을 가깝게 접하는 것에서부터 컬렉터의 길이 시작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가령, 개인이나 지인들과 함께 개인 취향에 맞는 전시나 전시 장소를 자주 방문하며 그림과 익숙해지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미술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위한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이나 영화를 보아도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 도움이 된다.
처음부터 경제적인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경제적인 부담이 적은 엽서‧판화 등 원작품에 근접한 것부터 사 모은다면 당신은 이미 컬렉터로 입문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 경제를 견인하기 위해 문화적 생활을 돌아볼 새 없이 대부분을 일에 매진하며 살았던 베이비부머 세대와는 달리 요즘 젊은 세대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신생 갤러리들이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판매하며 젊은 세대의 니즈(Needs)를 충족하는 것도 변화의 한 측면이다.
그렇다면 아트 컬렉터로 입문하기 위한 작품을 고르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3단계를 명심하라고 했다.
STEP 1. 많이 보고 경험을 축적하라
처음부터 자신의 기호를 알 수는 없다. 단색화를 좋아하는지, 풍경화를 좋아하는지는 역시 경험에서 나온다. 영화와 책을 통해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보며 호기심을 가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령 <미드나잇 인 파리>,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 <우먼 인 골드> 등 현실에서 다소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를 보며 미술에 대한 연혁과 화가에 대한 성격, 그림에 얽힌 이야기 등을 접하는 것도 좋다.
숨겨졌던 이야기를 아는 즐거움은 그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것이다. 또 갤러리를 찾아 자신의 취향을 분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갤러리에는 언제든지 그림에 관해 설명해줄 큐레이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단 제일 먼저 자신의 소득 대비 지출 예산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STEP 2. ‘작가의 방향성’ 등 정보 수집은 필수
아트 컬렉터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그림의 배경에 있는 작가적 역량이다. 아이폰을 애플이 만들어 사고, 갤럭시를 삼성이 만들어 사듯이 작가 활동하며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활동을 지속해 오는지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윤섭 소장은 “정체성을 판단하는 나만의 안목을 기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보 수집은 다양한 채널에서 하되, 결정 단계에서는 신뢰할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창구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김 소장은 “개인 감성적 취향에 맞는 갤러리를 단골로 두는 것도 수집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STEP 3. 아트 컬렉터와 ‘아트 테크’는 한 몸이다
최근 아트페어의 동향을 보면, 비싼 금액의 큰 작품보다 작은 크기의 사진이나 회화가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명품 가방 대신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젊은 층의 여성도 늘고 있다. 투자라는 개념에서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하나의 향락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구나 신진작가의 그림을 산 후 그림의 평가가 오르는 기쁨까지 배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아트 테크가 되는 것이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해당 작가가 항상 수작을 내기란 어렵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값이 올라가지 않는 특성이 있다.
김윤섭 소장은
“아트 테크는 미술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미술의 잠재적 비전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아트 컬렉터에서 비롯된 아트 테크는 결국 하나의 뿌리”
라고 말한다.
강소영 기자 / 이코노믹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