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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일 오늘의 역사
2022년 식당, 카페 식기, 스푼, 컵, 이쑤시게 등 일회용품 사용 전면 중단
2022년 경남사천에서 공군 훈련기 KT-1 2대 공중충돌로 조종사 4명 전원 순직
2018년 남북평화협력 기원 한국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김정은 리설주 관람
2017년 시인 김종길 세상 떠남(91세)
2016년 노벨평화상 받은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미얀마 문민정부 출범
2015년 ‘헤이 주드’의 주드 엄마… 존 레논 첫 부인, 암으로 별세
2015년 기네스 등재 최고령 일본 117세 할머니 별세
기네스북에 남녀 통틀어 세계 최고령으로 등재된 일본인 오카와 미사오(여·117)씨가 1일 별세했다. 교도통신은 오카와씨가 이날 오전 노환에 따른 심부전으로 오사카의 요양시설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1898년 3월 5일 태어난 오카와씨는 재작년 6월 일본인 기무라 지로에몬(116)씨 사망 이후 생존하는 세계 최고령 인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그는 지난달 117세 생일을 맞았을 때 ‘지나온 인생이 길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짧았다”고 답했다. 장수 비결에 대해선 “잘 먹고 최소 8시간 이상 자고 긴장을 풀고 잘 쉬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오카와씨의 살아있는 딸과 아들은 94세와 92세로 어머니의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카와씨 별세로 미국의 거트루드 위버(여·117)씨가 최고령 생존 인물이 됐다. 위버씨는 오카와씨보다 4개월 늦게 태어났다. 남성 중에서 최고령은 일본의 모모이 사카리(112)씨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2014년 충남 태안 서격렬비도 서북서쪽 100km 해역 진도 5.1 지진 발생
2009년 학술원회원 윤능민 박사 별세
평남 중화 출생인 고인은 1951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 미국 퍼듀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4년 가톨릭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1969년 서강대 화학과로 자리를 옮겨 봉직하다 1993년 정년퇴직했다. 대한민국학술원 대한화학회 회장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이었으며, 2005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됐다.
2009년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 검출
석면이 검출된 파우더 제품. 보령메디앙스, 베비라 등 유명 유아용품업체에서 제조한 베이비파우더에서 발암물질인 석면이 검출됐다.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성 등급에 따르면 석면은 ’인간에게 발암성이 확실한’ 그룹1(1등급)에 해당한다.
유럽과 미국은 각각 2005년과 2006년부터 탈크 속 석면을 규제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석면이 검출된 제품은 ’보령누크 베이비파우다’, ’
식약청은 이들 제품에 대해 이날 판매중지 및 회수 조치를 내렸다.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이 검출된 것은 원료성분인 탈크에 자연적으로 석면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식약청은 설명했다.
2004년 고속전철(KTX) 개통.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공식 발효
우리나라의 첫 번째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가 1일 공식 발효됐다.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 대통령은 양국 FTA 발효를 기념, 지난달 30일 낮(현지시각) 칠레 산티아고 대통령궁에서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FTA로 한국 자동차·전자제품 구매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앞으로 양국 간 연구개발 등 광범위한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라고스 대통령은 또 “한·칠레 FTA는 아시아·태평양연안 국가 간의 첫 FTA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하고 “양국은 상호 보완적 경제구조를 갖고 있어 양국 간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득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기업들이 칠레를 남미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FTA 발효로 한국은 밀·양털·동물사료 등 칠레산 9740가지 품목을 즉시 무관세로 수입하게 됐다. 칠레산 포도의 경우 앞으로 10년 동안 계절관세를 적용, 5월부터 10월 수입물량에만 45%의 관세를 부과한다. 칠레는 우리 공산품 중 승용차·화물자동차·휴대폰·컴퓨터 등 2450가지 품목에 대해 FTA 발효 즉시 관세를 철폐했다.
2004년 광주대학교 이사장 김인곤 전(前) 의원 투신자살
1일 오전 11시 30분쯤 광주시 남구 진월동 광주대학교 호심관 건물 앞에 이 학교 김인곤(金仁坤·76) 이사장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경비원 강모(63)씨가 발견했다.
김 이사장은 이날 평소보다 2시간 늦은 오전 11시 10분쯤 출근, 호심관 21층 이사장실에 있다가 유리창을 열고 50여m 아래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부속실에는 부속실장과 여직원 등 2명이 있었으나 김 이사장의 투신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 이사장은 전남 영광출신으로 성균관대 법정대 3년을 수료했고, 조선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후 조선대여중교장 등을 거쳐 학교법인 호심학원(광주대)과 인성학원(인성고)을 설립, 운영해왔다. 김해 김씨 가락종친 관계인 김종필씨와의 인연을 계기로 정계에 진출, 13~15대 국회의원(13대 공화당 전국구, 14,15대 전남 영광·함평 지역구)을 지냈다.
2003년 홍콩배우 장국영 투신자살
홍콩의 영화배우 겸 가수 장국영(張國榮·46)이 1일 홍콩 중심가 만다린 호텔 25층짜리 최고급 호텔에 투숙했던 장국영이 이날 오후 6시40분쯤 24층 객실에서 투신, 퀸매리 병원으로 옮겼지만 오후 7시6분 사망했다. 경찰 대변인은 “장국영이 ‘심적 고통을 겪었다’는 내용의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부유한 양복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장국영은 1976년 ‘반항아’ 이미지를 살려 가수로 데뷔했고 80년대 중반부터 영화배우로 두각을 나타냈다. 장국영은 ‘금지옥엽’ ‘야반가성’ 등의 영화에서는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장국영은 특히 홍콩 누아르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영웅본색’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왕조현과 함께 ‘천녀유혼’에 출연하며 많은 한국팬을 확보했다. 중국 전통 경극(京劇)을 소재로 한 ‘패왕별희’는 1993년 첸카이거 감독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항우 역을 맡은 동료 연기자와 사랑에 빠지는 경극배우를 연기한 ‘패왕별희’에서 하이라이트는 우미인(장국영)이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 앞에서 칼을 들고 춤추다 자결하는 장면이었다. 이 영화에서 쌓은 동성애 이미지는 ‘해피 투게더’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톈안먼(天安門) 사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1990년 은퇴를 선언, 당시 10대 소녀팬들이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에 잡힌 미국 여군 ‘린치 일병 구하기’ 전격작전
카타르 소재 미군 중부사령부는 이라크 동남부 도시인 나시리야의 한 병원에서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제시카 린치(Lynch·19) 일병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2일 발표했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주요 언론은 이를 대서 특필했고, 미군 장병과 가족들은 환호했다.
린치 일병 구출작전은 지난 1일 저녁(한국시각 2일 새벽)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작전에는 해군 특수부대(Seal)와 육군 레인저부대가 투입됐고,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가 지자 미군 해병대는 나시리야 시내의 바트당(黨·이라크 집권당) 건물을 공격, 이라크군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이틈에 육군 레인저부대가 린치 일병이 있던 ‘사담병원’ 을 둘러쌌고,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문을 박차고 건물에 침투했다. 구출된 린치 일병은 미군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특수부대원들은 작전 현장에서 시신 11구를 함께 발견했다.
미 육군 제507정비중대 소속 린치 일병은 지난달 23일 나시리야 인근에서 다른 동료 14명과 함께 실종됐다. 이들 중 5명은 ‘알 자지라’ 방송에 이라크군에 포로로 잡힌 모습이 공개됐고, 2명은 전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던 린치 일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교육 기회를 얻으려고 군에 입대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고향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껑충껑충 뛰며 기뻐했다. 90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는 그녀가 실종된 직후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곳곳에 걸렸었다.
2003년 서동구 KBS사장, 청와대 “인사 불개입” 주장과 배치 파문… 사의 표명
KBS 노조는 서동구 사장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고문 출신이고 대통령 측근 실세의 사촌동생이며, 1978년 아파트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이 있는 서씨는 KBS 사장에 어울리지 않는다” 면서 서 사장 퇴진을 주장해 왔다.
서 사장은 지명관(池明觀) KBS 이사장을 찾아가 자신의 임명에 대한 노조 등의 반발을 잘 무마시켜 달라며 이사회의 협력을 부탁하는 등 사장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2일자에서 “조·중·동이 여론을 잘못 이끈다면 바로잡자고 했더니, 노 대통령이 방송 맡아달라고 했다” 는 서 사장의 발언을 보도한 뒤 사의를 표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한 지 8일 만인 2일 서씨는 사의를 표명했다.
2003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 상암동 축구경기장서 공연
2001년 미군 해군 정찰기, 중국군 전투기와 충돌해 중국 하이난섬에 비상착륙
미국 해군 정찰기 EP-3 1대가 2001년 4월 1일 오전 10시15분 중국군 전투기와 충돌한 뒤 중국 남부 하이난섬(해남도)에 비상착륙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군 전투기 1대가 바다에 추락했다. 사고원인에 대해 미국은 "중국 전투기의 위험한 추격과 요격이 직접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중국은 "미군 정찰기가 비행규칙을 위반하고 방향을 갑자기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사고 후 중국은 "미 정찰기는 하이난섬의 한 비행장에 있으며 승무원 24명은 인민해방군 초대소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양국은 비상착륙한 미 해군 소속 EP-3 정찰기의 처리를 둘러싸고 외교갈등을 빚어, 미국은 하이난섬 부근 해역에 구축함 3대를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정찰기의 손상없는 반환과 승무원들의 즉각적인 송환을 요구했으나, 장쩌민 국가 주석은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이 져야 하며 사과하라"고 강하게 맞받아쳤다.
양국은 사과 수위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인 끝에 결국 미국측이 사과(very sorry)표명을 하고, 중국은 12일 24명의 정찰기 승무원을 석방하는 것으로 사건발생 12일 만에 매듭지었다.
2001년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 체포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9) 전 유고 연방 대통령이 자택을 급습한 세르비아 특수경찰과 26시간 대치 끝에 2001년 4월 1일 새벽 경찰에 투항, 체포돼 교도소로 이송됐다. 유고연방 세르비아공화국의 두산 미하일로비치 내무장관은 이날 “밀로셰비치가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블라단 바티치 법무장관은 밀로셰비치가 일단 30일간 구금에 처해졌다고 밝히고, “권력남용 혐의 등이 입증되면 5~15년 징역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밀로셰비치는 이날 심문에서 권력남용과 공금횡령 등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결백을 주장했다고 그의 변호인인 토마 필라 변호사가 밝혔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은 지난 1999년 국제전범재판소에 `코소보 거주 알바니아계 주민들 학살 및 강제추방` 혐의로 기소돼 있는 밀로셰비치의 신병 인도를 촉구했다.
2001년 한국-유럽연합(EU) 기본협력협정 발효
1999년 시내전화 경쟁체제 돌입
1998년 대만, 경제부 국제무역국 대표단 서울 도착(1992년 한국과의 외교관계 단절 후 첫 공식대표단)
1998년 개신교 새문안교회 김동익 목사 별세
김 목사는 한경직 목사의 뒤를 이을 한국개신교의 리더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호주 선교사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조부 김선명 전도사, 부친 김희용 목사의 신앙을 물려받으며 성장했다.
1942년 경남 진주에서 7남매중의 장남으로 태어나 진주고 졸업 후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피츠버그 신학대학원을 거쳐 밴더빌트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연세대에서 잠시 강의를 하다 1981년 언더우드 목사가 세운 새문안교회의 제4대 목사로 부임했다. 안창호, 백낙준 등 한국의 대표적 인물을 배출한 개신교 예장통합의 대표적인 교회에서 39세의 젊은 나이로 시무하게 된 그는 `화합과 일치`를 목회의 이념으로 내세워 교회내외로부터 높은 신망을 받았다.
1996년 대전지역 대상으로 초고속 정보화 시범사업 개시
1991년 강원도 명주군서 2~3세기 원삼국 집단집터 발굴
2~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50여기 규모의 원삼국시대 후기의 집단취락지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안인리 유적을 발굴중인 강릉대 발굴조사팀은 1991년 4월 1일 지표에서 1.5-2.5m 깊이의 지층에서 50여기의 집자리로 이뤄진 국내 최대의 원삼국시대 집단취락지 유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발굴된 집자리들은 4.4㎡에서 16.5㎡에 이르는 장방형으로 모래 흙을 파내고 진흙을 펴 다진 움집과 지상가옥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이 유적에서는 특히 두집자리를 통로로 연결한 소위 `呂(여)` 자형 집자리가 이 시대의 것으로는 국내에서 최초로 발굴됐고, 벽재로 사용했던 불탄 판자나 지붕을 엮었던 갈대 등이 다량 출토돼 당시의 취락구조나 생활양식을 엿보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신석기시대 이래의 난방시설인 선사화덕이 온돌로 이행되는 중간단계의 것으로 보이는 장타원형과 아궁이형의 화덕도 출토됐다.
유물로는 무문토기, 경질-연질의 때린무늬토기, 회청색토기, 바리, 접시 등 완형의 토기 1백50여점과 숫돌, 갈돌, 방추차, 모루, 도가니조각 등이 발굴됐는데, 그중 모루와 도가니는 이곳에서 때린 무늬토기와 철제품이 직접 제작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91년 제47차 ESCAP 총회 서울서 개막
1988년 서울 천호대교서 버스추락(19명 사망, 35명 중경상)
1983년 1억원 올림픽복권 발행
1982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소련의 핵 동결제안 거부
1982년 조치훈 명인 본인방 십단위 차지로 일본 바둑계 3관왕에 오름
1982년 정부 유아교육 진흥계획 확정
1981년 한국, 체코-폴란드와 국제전화 개통
1981년 퐁세 프랑스 외무장관 방한
1981년 최초의 애국가 가사 발견(1940년 이전 추정)
1980년 독립문 이전 복원 공사 완료
1979년 이란 회교공화국 선포
1975년 재일동포 간첩사건
1973년 주민세 신설
1972년 대구경제신문 자진 폐간
1971년 사병 계급장 전면 변경
1970년 포항종합제철 공장 착공
1969년 중국 공산당 제9회 전국대표대회 개막
중국 공산당 제9회 전국 대표 대회(제9회 당 대회)가 1969년 4월 1일 북경에서 개막됐다. 1956년 9월에 건국 후 처음으로 열린 제8회 당 대회 이후 12년 만의 당 대회였다. 오후 5시, 2천2백만의 당원 대표 1,512명이 인민 대회당을 가득 메웠다. 단상에는 지도부 176명이 있었지만 제8회 대회 때와 같은 얼굴은 겨우 43명 뿐이었다. 문화대혁명의 거센 폭풍으로 그만큼 많은 지도부가 숙청됐기 때문이다.
8회 당 대회 때 얼굴을 보였으나 실각한 유소기와 등소평 대신, 새롭게 무대 전면에 등장한 사람은 임표와 강청이었다. 문화혁명은 유소기와 등소평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길을 걷는 `실권파`나 공산주의를 배반한 `수정주의자`를 몰아내고, 임표나 강청 등 `혁명파`가 권력을 잡는 계급투쟁이었다. 4월 14일 임표를 모택동의 후계자로 규정한 중국 공산당 규약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당내 서열 2위였던 당 제1부주석 겸 국방부장인 임표는 마침내 모택동의 `후계자`로 공식적으로 인지되었다. 대회는 4월24일 폐막됐다
1969년 소련 잠수함 북해 출현
1968년 향토예비군 창설
‘호국의 투사로서, 군경의 동지로서, 국민의 자제로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는 범국민적인 자유방위의 역군’이라는 이념 아래 창설된 향토예비군 5·16 직후인 1961년 12월 27일 법률 제879호로 향토예비군설치법이 제정·공포됐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동법 시행령의 제정이 지연돼 사실상 사장되고 있었다.
56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무장공비 침투는 67년 급격히 증가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68년 1·21사태, 그리고 이틀 후 푸에블로호 납치 등 도발을 계속해 왔다.
드디어 박정희 대통령은 1·21사태 직후인 2월 7일 경전선 개통식에서 자주 국방 태세 확립을 위한 향토예비군 250만 명의 무장화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무기 생산 공장 건설을 천명했다. 그리고 향토방위법을 제정해 군·경과 더불어 온 국민이 무장공비의 침입을 격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국회에 계류 중인 향토방위법을 폐기하고 68년 2월 27일 대통령령 제3386호로 향토예비군설치법 시행령을, 그리고 4월 1일 국방부령 제123호로 동법 시행 세칙을 공포함으로써 향토예비군을 조직할 수 있는 법적 뒷받침을 마련했다.
이리하여 향토예비군은 68년 3월 26일까지 지역 2608개 중대, 직장 478개 중대, 도합 3086개 중대 총 166만여 명으로 편성 완료하고 4월 1일 250만 명이 대전 공설운동장 에서 역사적인 창설식을 갖게 된 것이다.
1967년 구로공단 준공
1964년 3분폭리사건 전모 판명(총판매 249억881만원, 소득 25억 4436만원 세금부과 8억 8115만원)
1963년 한국-페루, 국교수립
1960년 최초의 기상위성 티로스 1호 발사
1956년 애국복권 판매 시작
1955년 키프로스섬에 반영국 폭동
1955년 김일성, 조선로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서 4월 테제 발표
<4월 테제>
'모든 힘을 조국의 통일독립과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4월 테제에서 김일성은 남북이 통일되어 전국적으로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이 완수될 때까지 북한에서 사회주의 기초건설과업을 철저히 수행하는 것이 남한 민중의 투쟁을 추동하는 힘이되며, 조국통일을 쟁취하는데 결정적인 역량이 된다고 주장.
이 테제는
1) 조선혁명의 기본임무로서 미제 침략세력과 그 동맹자인 남한의 지주, 예속 자본가, 친일친미파 타도를 통한 조국의 민주주의적 통일과 완전한 민족독립 달성,
2) 인민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 경제형태의 확대, 강화를 제시
1953년 국립 부산대학교 개설
1953년 장준하, 사상계 창간
1949년 호국군사령부 창설
1947년 그리스의 왕 게오르기오스 2세 사망
1946년 차량 우측통행제 실시
1942년 중앙선(청량리-경주) 개통
1941년 생활필수물자통제령 공포
1940년 조선무선통신학교 개교(민간통신사 양성)
1938년 보통학교를 소학교로 고등보통학교를 중학교로 개칭
1938년 일본, 국가총동원법 공포
1937년 미얀마(버마) 인도서 독립
1937년 조선일보사 월간 소년 창간
1933년 나치 유태인 배척운동 시작
1929년 여의도 비행장 개장
1929년 소설가 밀란 쿤데라 출생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가 1929년 4월 1일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지방도시 브륀에서 태어났다. 체코에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던 1947년, 그는 18세의 나이에 공산당에 가입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낭만적 동경을 품은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56년 후르시초프의 등장으로 해빙기를 맞자 그는 평론집 ‘소설의 기법’ 에 이어 1963년에 소설을 쓰기 시작, 첫 장편 ‘농담’ 을 내놓았다. ‘농담’ 은 그의 이름을 전유럽에 알리게 했지만, 후에 큰 재앙을 불러왔다. 한마디의 사소한 농담 때문에 강제노동소로 끌려간 지식인의 인생유전을 그린 이 소설은 당시 공산주의를 옹호하던 서방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1975년 프랑스 렌대학의 초청으로 체코를 떠나 비교문학 교수로 생활했다.
1978년에는 소설 ‘이별의 왈츠’ 로 이탈리아의 최우수 외국소설상인 몬테로상을 받는 등 유럽의 일급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모국어 외에 영어 불어 독일어등에 능통한 그는 파리시민권을 취득하면서 정식으로 망명작가가 됐다. 1984년에 발표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은 전세계에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1990년에는 유한한 인간의 정신 속에 숨어있는 불멸의 욕망을 그린 소설 ‘불멸’ 을 펴냈다.
1926년 경성제국대학교 개교(의학부-법문학부)
192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통치자 카를1세 사망
1920년 동아일보-시사신보 창간
1919년 경성철도학교 개교
1919년 유관순,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했다 투옥
가족을 따라 지령리교회를 다니던 유관순이 13세 때 서울 이화학당의 보통과 2학년에 편입한 것은 여성 선교사인 샤프 앨리스(한국명 사애리시·史愛理施)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충청도 지역에서 선교와 교육 사업에 열성을 바치던 사애리시 부인은 총명했던 유관순과 사촌언니 유예도를 이화학당에 보냈다.
3년 만에 보통과를 졸업한 유관순은 1918년 4월 고등과에 진학하였고, 학교 옆 정동 제일교회를 다니면서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의 선배들은 1학년생을 배제했지만 유관순은 담장을 넘어서 시위 대열에 참여했다.
유관순은 친구들에게 “공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고향에 내려가 독립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고, 헤어지면서 “독립된 뒤에 만나자”고 다짐했다.
‘칙칙폭폭’하는 기차소리도 ‘대한독립’으로 들린다고 말할 정도로 독립 열망을 품었던
유관순은 고향에 돌아와 천안 일대의 만세 시위 준비에 연락 임무를 맡았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의 만세 시위 때 유관순은 일본군의 무차별 발포로 부모님을 현장에서 잃고 본인과 오빠, 작은 아버지가 투옥되었다.
이듬해 3·1운동 1주년 기념 옥중 시위까지 주도했던 그였지만, 3년 형을 견디지 못하고 1920년 9월 28일 고문 후유증으로 방광이 파열되고 이를 일제가 방치하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다.
1916년 경성 상설소방대 조직
1913년 컨베이어 시스템 도입한 포드 ‘모델 T’ 생산
1913년 4월 1일, 미국 미시간주 하일랜드 파크의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컨베이어 시스템을 이용한 자동차가 처음 생산됨으로써 세계 자동차사가 새로 씌어지게 됐다.
컨베이어 시스템은 공장 내부를 물 흐르듯 연결하는 컨베이어가 설치되고 그 옆에 배치된 노동자들이 순서대로 부품을 조립하는 생산방식으로 대량생산, 가격할인, 대량소비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공정과정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처음 생산된 자동차는 ‘모델 T’로 1908년에 첫 선을 보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다. 견고하고 조작이 간단했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다른 자동차 값이 2,100달러였을 때 825달러짜리 ‘모델 T’의 등장은 포드자동차의 신화를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1912년 여객운임, 원거리체감법을 거리비례법으로 개정
1909년 민적법(현행 호적법의 효시) 시행
1908년 부산과 신의주간의 급행열차 융희호 운행
1908년 한국 표준자오선 처음 도입. 127도 30분으로 시작
1901년 라울의 법칙을 공식화한 프랑스의 화학자 라울 사망
1900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발행인 벤턴 출생
1895년 유길준. 첫 서양견문록 `서유견문` 간행
개화를 꿈꾸던 구한말 선각자 유길준(兪吉濬)이 최초의 대미외교사절 ‘보빙사(報聘使)’의 일원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은 그의 나이 27세였던 1883년 9월이었다. 아더 미국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리며 신임장을 제정한 보빙사 일행은 박람회를 참관하고 병원ㆍ소방서ㆍ우체국 등을 둘러보았다. 일행이 2개월여의 공식 일정을 끝내고 귀국선에 몸을 실을 때 유길준은 현지에 남는다. 다행히 에드워드 모스 피바디 박물관장이 최초의 국비 유학생인 그를 도왔고, 그 역시 7개월 만에 영어로 편지를 쓸만큼 노력한 덕에 동부최고의 명문학교 덤머 아카데미에 입학, 하버드대를 목표로 향학열을 불태울 수 있었다.
그러나 1884년 12월 조국으로부터 전해진 갑신정변 소식은 그를 번민에 빠뜨렸고 그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영국ㆍ이집트를 거쳐 홍해를 지나 싱가포르ㆍ홍콩ㆍ일본을 경유하는 6개월간의 여정 끝에 제물포항에 도착한 것은 1885년 12월. 김옥균 등과 친하다는 이유로 체포와 7년간의 연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기간동안 한국인 최초의 근대 서양 견문록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준비했으니 전화위복이었던 셈이다. 1895년 4월1일, 일본의 교순사(交詢社)에서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인 서유견문이 1000부 한정본으로 발간됐지만 1896년 친러내각이 득세해 유길준이 일본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이 마저도 금서로 낙인 찍혔다.
1868년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 출생
1815년 비스마르크 출생
1694년 노론에 의해 남인 몰락(갑술환국)
1436년 조선, 일식 발생
1434년 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 흉년
1428년 조선, 일식 발생
996년 고려성종 15년 철전 주조. 우리나라 동전의 효시
189년 백제, 일식 발생
54년 신라, 일식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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