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1일 ~ 10월 2 일
충남 태안군 승언리 ~ 충남 태안군 근흥면 용신리
* 반포 고속터미널 8ㅡ 2출구
출발 07:20
둘째날 아침 06: 00 식사
* 서산 ㅡ 신갈 ㅡ 죽전 ㅡ 반포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서 시골길을 달렸다.
낮은 산에는 산 벚꽃나무 잎이 벌써 곱게 단풍이 들어서 고왔고,
오랫만에 와 보는 수타사 가는 길은 가을이 벌 써 와 있었다.
농고 가는 길로 가다가 오른 쪽으로 들어가서 있는 택배에서 고추가루를 찾았고,
수타사 가는 길로 가다가 골프 연습 장 지나서 펜션 동네 입구에서 알밤 부쳐 온 것을 찾았다
전화 한 통화로 여름 내내 땀 흘려서 고추 농사를 짓지 않아도
빛깔 좋은 고추가루를 받아서 김장을 할 수가 있고,
밤송이를 까느라고 손에 가시 찔리지도 않고도
알밤을 자루째 받아서 구워도 먹고 쪄서도 먹는다.
밤가위로 껍질을 깔끔하게 까서 송편 소를 넣을 수도 있고,
대추 넣고 찹쌀로 약식을 지어서 볕 좋은 가을 산천으로 나들이 소풍을 갈 수도 있다.
편하고 고마운 세상이다.
배낭을 메고 대문을 나서는데
삐돌이가 저는 안 데리고 가냐고 웅얼거리면서 길길이 뛰었다.
" 얘 ! 내가 마실 가는 줄 아니?"
화단의 철쭉 밭 속에서 고양이 네마리가 무슨 일 났나 하고 쪼르르 나와 앉아서
배낭 맨 나를 올려다 보고 합창을 하며 야옹거렸다.
마당에 퍼질러 앉아서 고양이에게 멸치를 먹이다가 성질 급한 어미 고양이에게 손가락을 깨물렸다.
피가 솟구치는 손가락을 스포츠 테잎으로 칭칭 감아 누르고 병원으로 달렸다.
파상풍 에방 주사를 맞아 놓았기는 하지만, 야생 동물이 지닌 무슨 독성 있을까 겁이 났다.
나 죽으면 어떡하지 ?
고양이에게 물려서 죽지는 않아..
운전을 하던 청람님이 박장대소를 하였다.
독립 운동을 하다가 죽지는 못해도 고양이에게 물려서 죽었다는 말을 듣는 것은 너무 챙피하잖아.
응급실에가서 물린 손가락을 세바늘이나 꿰매는 수술을 하였다.
다시 너에게 먹을 걸 주나봐라.
고양이는 저 잘못도 모르고 새끼 고양이까지 세마리를 데리고
현관 앞에 앉아서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고 야옹거리며 나를 졸맀다.
벌레 난 쌀로 밥을 짓고 장날 생선 가게에서 얻어온 고등어 대가리를 삶아서
고양이네 식구들 밥그릇에 채워주고, 깨끗한 그릇에 물을 한통 떠다가 놓아주었다.
불쌍한 고생들.
멍 때리며 맥주 한 잔 하면서 먹다가 빨래 집게로 접어 둔 새우깡 봉지를 열어서 한 줌 던져 주었다.
시간의 흐름이 묘한 변화를 가져 온다.
눈에 보이는 찬란함과 풍요로움과 자유와 아름다움의 베일 아래에는
착취와 비 인간적인 전쟁과 마침내 느끼는 평화,
눈먼 우리.
위기와 회복기를 거치면서 끊임 없이 진화하고 비대해져 오며 그 모습을 교묘하게 바꾸고
우리는 그 바뀌어진 현상의 실체를 알아 차리지 못하고 원래 그러했던 것이라고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체질화 되어서 살고 있다.
반성도 고뇌도 뒤돌아 살펴보는 일 조차 하지 않은채로 무책임하게 살아가고 있다.
눈먼 우리.
내가 눈을 크게 뜬다고 무엇이 달라지랴 마는.
참으로 두서없는 날들에 하는 참으로 두서 없는 생각들이다.
하워드 진( Howard zinn ) "미국민중사"를 읽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었다.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에서 체류하면서
우리같은 원주민들이 나무 뿌리나 거미 유충을 먹고 발가벗은 채로 생화하는 부족이라 할지라도
오직 서구 사회와는 다를 뿐,
우리의 사회보다도 훨신 합리적으로 그리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면서 생기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속에서도 주권없는 나라로 살기도 했고
전쟁으로 적대와 학대, 온 몸을 마비시키는 공포 , 무시무시한 긴장,
혼란과 소요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그리고 살아 남은 우리.
역사가 혹은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 모든 악행을 거대한 강물처럼 바다로 실어 나른 후에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바닷가를 걸어가면서 철썩거리며 들고 나는 파도를 보며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과 낭만을 보고 환호한다.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것
죽음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 생명일까 희망일까
욕실의 환기창을 잠그고
부엌 가스렌지 위의
환기창도 잠그고 우유 빛 덧창을 닫았다.
유비무환이라는데 이십여년 시골에서 무심히도 살아왔다.
걸으면서 등에 땀이 배이는듯하면 선선한 바람이 금방 서늘하게 식혀 주었다.
이제는 노랗게 물들어 고개를 숙이고 여물어 가는 가을 들판의 튼실한 벼 포기들,
물을 뺀 논에서 익기 시작하는 벼 포기 사이로 가막사리의 노란 꽃,
노랗고이쁜 꽃이 진자리에 지나가기만 하여도 달라붙어 꼭꼭 찌르는 도깨비 바늘,
고구마 넝쿨을 걷어내고 고구마를 캐는 바쁜 농부들,
밭 두둑 에 구멍을 줄지어 뚫은 비닐을 덮어서 마늘을 심는 아주머니들,
주말과 개천절 까지 잇달아 사흘 연휴에 일손을 거들러 도시에서 온 자손들,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을 들판을 채우는 젊은이들과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보랏빛 들국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텐트가 가득찬 방포 해수욕장을 지나고 두에기 해수욕장을 지났다.
밧개 해수욕장을 지나고 안면 해수욕장을 지났다.
이름이 예쁘기도 해라
두에기 해수욕장 , 밧개 해수욕장.
퍼질러 다리뻗고 앉아서 조개껍질 줏어다가 소꼽 놀이 하면 딱 좋을만큼 조용하고 소박했다.
해수욕장 옆으로 울창한 송림 사이로 난 고운 모래 밭길을 맨발로 걸었다.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모래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드러운 ,ㅡ아마 날아와서 쌓인 모래라서 그런가 하는 나의 추측,ㅡ 태안 국립공원 해안로에는 덜어진 솔잎이 맨발의 발바닥을 꾹꾹 찔렀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다.
태안해안로의 송림 사이로 난 솔향과 파도내음 가득한 길도 어둠 속에서 볼 수도 느낄수도 없었다.
앞 사람을 놓칠까봐 급하게 뒤따라 갔다.
이렇게 늦어질 줄 예상 못했다.
하루 이틀 걸은 길도 아닌데 랜턴 챙길 생각을 못하다니 나는 참 바보다.
기지포 해수욕장, 삼봉해수욕장, 백사장 해수욕장을 지나서 드르니 항에 닿았다.
축제에 온 사람들로 시끌 벅적한 드르니 항과 백사장 해수욕장 사이를 이은 바다 위의 구름다리는 2014년에도 건너 갔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시끌벅적 하지 않았고 그때는 고즈녁하고 아름다웠었다.
아니 실은 안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 뿐일지도 몰라.
대상 양식 영어 조합의 양식장인지 염전인지 물이 찰랑찰랑 갇힌 논을 지나고
태안 곰 삼각지, 태안 별주부 마을, 청포대 해수욕장, 달산포 해수욕장,
몽산포 해수욕장, ,몽산포 청솔 오토 캠핑장을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몽산포 항의 궁뜰길에 닿았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과 술과 잠자리를 권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알았다면 분명 부끄러워할
태안 해변 오토 캠핑장의 주인은 지나는 길을 줄로 막아 놓고,
해변으로 들어서서려는데 황급히 뛰어 나와서 지나가지도 못하게 길을 막았다.
서해의 바닷물은 해변의 송림 발치께까지 차올랐다가 ,
그리고는 또 빠져 나가서 진흙의 검은 잿빛 너른 뻘 밭을 남겼다.
망둥어가 물이 빠진 갯벌에서 꼼지락거리며 몸을 뒤채고,
빨간 다리 게는 꿍짱어와 함께 잽싸게 갯벌속 구멍으로 몸을 감추었다.
바닷물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 까지 밀려 나가고,
드러난 갯벌은 남은 물기로 번들거렸다.
긴 서해 대교를 지나 가서 행담도를 지날 때 까지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은 가다서다 느리게 움직였다.
도보가 끝나고 차가 서산 터미널에 하이박, 홍학, 분도 세사람을 내려주었다.
창 밖으로 어제 저녁 식사를 했던 이화수 육개장집 간판이 얼핏 지나갔고,
편하게 묵었던 태안군 그랜드 파크 모텔의 지붕이 보였다.
고맙게도 하루종일 참고 있던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하였다.
비 내리는 가을 저녁은 쌀쌀하였다.
연휴 인파와 차들로 혼잡한 평택 휴게소에서 잠깐 섰다가 경부 고속도로로 들어선 버스는
꽉막힌 4차선 옆으로 뻥 뚫린 버스 전용차선으로 시원하게 달렸다.
빗줄기가 점점 세어졌다.
차창 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 벼가 익어가는 들판이 노란색으로 환했다.
동서울에서 시골가는 7시 35분 차표를 2장 예매하였다.
오늘 밤 안으로 집에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가지런한 일상은 어디로 갔을까?
소슬한 바람과 구름한 점 없는 높고 푸르른 하늘과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들녘과
가까운 산 골짜기에서 푸드득거리며 시끄럽게 분탕질치며 날아오르는 장끼와 까뚜리의 날개짓 소리.
갓 내린 향이 좋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기 좋은 시간에
책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창밖을 보는 안락하던 일상은 어디로 갔을까 .
베란다에는 어미와 새끼 고양이 세마리가 서로 서로 몸을 기대고 고개를 파묻고 졸면서
현관 문을 열고 내가 생선대가리 던져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 반짝이는 대추 잎사귀에 반사된 햇살은 눈 부셨다.
밭 가득 노란 콩잎과 함께 콩이 노랗게 익어가고, 사이사이로 바쁜 메뚜기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가을 무우가 한창 맛이 드는 계절.
싱싱한 잎에 매달린 튼실하게 큰 무우를 다섯개 샀다.
깍도기도 담그고 무우 생채도 무치고 차곡차곡 채썰어서 뽀얀 무우 나물을 해서
엊그제 아침 산책 길에서 고구마를 캐다가 허리를 펴고 집어준 고구마를 쪄서 이 친구 저 친구를 불러서
왁자하게 웃고 떠들고 놀아야 쓰것다.
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강아지가 큰 소리로 짖어도 커텐 밖을 내다보기가 쉽지가 않았다.
먼 나라의 전쟁에도 힘들어하고
이웃에 든 도둑 소식에도 잠 못들어 하였다.
늙어지면 이런 일 저런일에 괘념않고
무심한 바람처럼 살 줄 알았다.
무심은 커녕 바람이 없어도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억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