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솔직히 기억안나오, 아버님이 군인이셔서 여기저기 8살 먹을때까지 이사만 12번 다닌것만 기억하오
국민학교적 학교에서 원아동복이나, 개구리아동복입은 아이들은 갑부집 아이들이었소, 소인은 체육복이 교복이었소
1986년 1988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한다고 아이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교육시킨것이 기억나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라고...
1993년 엑스포 열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소..-_- 작년에도 들었소...-_- 월드컵열때...
여름에는 항상 종아리에 아디다스 문양을 달고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소(예전에는 삼선아이다스라고 불렀다오,
아디다스 표식을 보면 잘 알것이오 선이 3개이오), 종아리 맞아 부은자국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오.
국민학교 5학년때 우리반에서 한놈이 나이키운동화를 신고온적있소, 어머니에게 졸라 사달라고 했더니 nice였소.
(그때당시 운동화는 스펙스-프로스펙스아니오-만 가지고 다녀도 부러움의 대상이였소, 나는 기차표운동화였소)
국민학교 2학년때 전교생을 불려놓고 양변기 사용법에 대해 운동장에서 교육했던게 생각나오 변기 모형을 가져다 놓고,
'앉아쏴'자세와 물내리는 방법을 전교생에게 한번씩 하도록 시켰다오 (그때만해도 쪼그려쏴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행복했소)
국민학교 6학년즈음해서 WWF가 항간을 강타했소, 아이들은 서로 홍키통키맨이니, 헐크호건이니, 언더테이커니, 워리어니
하면서 학교에서 레슬링하던게 기억나오. 물론 체육선생님에게 걸리면 죽도록 아디다스를 그렸다오
중학교때도 너무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하나 생각나는게 있소, 바로 중3때 항간을 강타한 서태지요.
중3봄에 보이스카웃인천대회에 가서 여중딩들 앞에서 잘보이겠다고 송도유원지 모래밭에서 서로 서태지춤을 추어댔던게 생각나오.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었소 입학할때 가정통신문을 보면 "두발은 단정하게 귀를 덮지않고,
뒷머리가 칼라에 닿지 않으면 됨" 이말을 찰떡같이 믿고 등교한 나는 머리에 사거리가 나야만 했소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렸단 뜻이요 4거리모양으로) 그다음날엔 삭발을 했다고 두드려 맞았다오,
(솔직히 학주가 앞머리를 안남겨놔서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소 젠장)
중학교 2학년이 올라갈때 나라에서 교복자율화가 사실상 폐지되었소, 중학교 1학년때까지 사복을 입던 나는
2학년이되어서 교복을 입자니 무지막지하게 들떠 날뛰었던 생각이 나오 (교복입고 다니던 학교가 부러웠던 시절이오)
중3때 우리를 강타한 또하나의 것이 있었소, 바로 미니카요. 건전지 2개를 넣고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타미야께 좋네, 반다이께 좋네, 아카데미께 좋네 하면서 그 코딱지 만한 자동차에 10만원 넘게 쳐발르는 넘들도 흔하게 봤소,
물론 학주에게 걸리면 박살이었소.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머리를 기를 수 있다라는 생각에 들떴소, 버뜨!!!! 평준화였던 시절에 가장 가기 싫었던 학교에 떨어지게 되었고,
두발 자율화는 꿈에도 생각못하는 학교였소 (뭐 물론 다른학교도 명목상은 자율화지만 실질적으로 빡빡이었소)
3학년이 되어서야 머리를 기를 수 있다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소만 3학년이 되었더니 학주가 바뀌면서
머리 길르면 죽인다 하였소 젠장
고등학교3학년에 삐삐란게 등장했소, 삐삐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학교에 우상이었고, 삐삐란걸 한번 만져보는것이 소원이었소,
어머니 몰래 삐삐를 구입했다가 (모의고사 본다고 뻥쳤다오) 다음날에 바로 학주에게 박살나고 한달을 울었다오.
너무 길어서 압박이 심할것 같소, 나중에 또 올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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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방
밑에글 보고 문득 떠오른 1977년생의 아련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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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본햏 너무 재미나게 읽었소이다..乃
본좌도 94년도 말쯤에 삐삐를 가지고 다녔소..모토로라 성냥갑같은데 위쪽에 작은 액정이 있는.. 95년도에 본좌 삼성에서 나온 with meS를 가지고 다녔다오.. 그런데 아직도 이넘이 서랍속에 있구려..95년이면 중2때였구려... 벌써 삐삐 썼던게 10년이 다되가오...
나이키대신 nice..너무 웃겼어여..ㅋㅋ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송도유원지라고 하시는걸보니 인천분이시군요 반갑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