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합니다...........
평생 공직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공직자답게 법률과 규정을 맹신하는 FM주의자였으며 그에 걸맞는 깐깐한 상품이셨다. 한치의 빈틈도 없으려고 언제나 노력했던 Mr. Manual이었다. 누구도 그렇듯이 당연히 남에게 조그마한 책이라도 잡히는 것을 커다란 수치로 생각했던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문제들의 대부분은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스템부재나 먹이사슬을 바탕으로 한 하도급적 문제 등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는 못하셨던 그저 흔해빠진 고리타분한 관료였다고 보는 것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중.고.대학시절 학생들의 비자금 확보의 원천은 주로 책이었다. 예를 들어 콘사이스로 한번, 딕셔너리로 한번, 영한사전으로 한번, 한영사전으로 한번, 영영한 사전으로 한번.......영어사전만 가지고도 다섯 번은 욹어 먹을 수 있었으니 책이야말로 학생들의 보고요, 금고였다.
그런데 내 경우는 적어도 책으로는 삥땅이 되질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필요한 책이 있으면 책명, 저자, 출판사 이름을 써서 아버지께 제출해야 했고, 아버지는 직접 서점에 가거나 부하 직원을 시켜 책을 사다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학생 누구나 상용하던 초보 삥땅이 원천봉쇄된 나는 학생시절을 곤궁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고 이런 아버지 밑에서 사는 것이 불행이요, 고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아버지의 그러한 습성을 이용하여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니(아버지는 책의 종류나 값은 따지지 않았다.), 덕분에 대학생 때부터 내 방은 마치 도서관의 서가처럼 책이 쌓여있었고 그런 습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 멋진 유산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아버지였기에 모든 면에서 웬만한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역시 불만이었지만 복학 후, 아버지와 본격적인 대화를 트면서부터는 세상에 그렇게 훌륭한 선생이 없었고, 그렇게 훌륭한 토론 상대가 없었다.
1914년생인 아버지는 1937년에 대학을 마치고 고향인 황해도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도청에 재직할 때 중매로 엄마를 만나 이듬해에 결혼을 하게 됐는데, 비교적 잘나가는 집안이요, 대학을 졸업하고 뷰로크라트의 화려한 출발점에 서있는 아버지가 웬일인지 별볼일 없는 가문에다가 평양숭의여중 2학년 중퇴라는 낮은 학력을 가진 엄마와 결혼을 한 것은 당시 집안 분위기로 볼 때 대체로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아버지에게 피곤했던 눌려 살았던 것은 그런 학벌이나 집안의 위세 때문이 아니다. 그 시대 누구도 그랬듯이 가부장적 전통사회의 남존여비사상을 바탕으로........날 때부터 꼿꼿한 성품에다 친구를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풍류기질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부부싸움 한번 없이 52년을 건전하게 잘 사셨다. 아버지와 엄마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화목하게 가정을 지켰고, 2차학교만을 전전한 2류인생의 나만 빼놓고는 자식농사에도 비교적 성공한 모범적인 부부였다.
엄마는 1988년 10월 21일 새벽, 72세로 돌아가셨다. 지난주에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고등학교 동창생 어머니와 1917년생 동갑이신데, 20년전에 돌아가셨으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이었고, 영결예배는 엄마 아버지의 피와 땀이 서린 아현중앙교회에서 드렸다. 집례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내 친구의 아버지인 김목사님이셨다. 교회 측에서는 영결예배 순서지를 마련했는데, 가정주부의 약력이 별게 있을 리 없지만 교회 측에서는 우리 집에 대한 예우와 배려 차원에서 순서지를 만들었고 뒷면에 약력을 써 넣었는데 여기에서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바로 아버지의 성품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예배가 시작됐다. 순서에 따라 부목사가 고인의 약력을 읽는 도중 아버지가 난데없는 발언권을 신청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날까지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지만 예배도중 ‘발언권’을 신청하는 중뿔난 사람은 그때 처음 봤다.
“여기 고인의 약력이 잘못되어 있어서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두가지 사항을 지적했다,
<고인은 廉XX씨와 李XX씨의 3남1녀 중 막내>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은 <4남2녀중 장녀가 맞다>는 것이었고, <평양숭의여중 졸업>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부분은 <평양숭의여중 2학년 중퇴가 맞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우리 집안 누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어떤 경로로 그렇게 잘못 쓰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본처인 李할머니에게서 3남1녀를 낳았고, 한번도 뵌적이야 없지만.....정력이 왕성했던지 이른바 첩실을 통해 1남1녀를 더 낳았으니 배다른 형제.자매들을 합치면 4남2녀가 맞는 것이고, 집(황해도 신계군)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평양) 기숙사에 있기 싫어 2학년에 오르자마자 무작정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 가질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으니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는 바.....
결국 영결 예배중에 벌어진 이 해프닝으로 조문객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고, ‘중요하지도 않은 그 문제를 저렇게까지 밝힐 게 무에랴“하는 반응을 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성품이었으니 도리가 없었다.
진상은 이랬다.
<3남1녀>는 당시 같은 교회에 다니던 외삼촌이 “정실의 자식, 적자만이 진짜”라며 첩실자식인 이모와 외삼촌 두명을 빼고 3남1녀로 써서 교회 사무실에 원고를 넘겼던 것이고, <중졸>은 방귀깨나 뀌고 살던 큰형 부부가 엄마의 중학교 중퇴가 남들에게 ‘창피하다’며 중졸로 원고를 보낸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1994년 1월 19일,
아산병원(당시 중앙병원)은 빈소가 만원을 이뤄 구급차를 타고 와 응급실에서 사망한 아버지를 병원 측에서는 딴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러나 엄동설한에 아버지를 옮길 수 없다고 버티다가 하는 수 없이, 큰형과 관계가 깊은 현대건설과 나와 관계가 깊은 아산재단에 ‘두’ 빽을 썼다.
결국 믿을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는 바,
그 하루 전 하와이에서 타계한 전 국무총리 정일권씨의 시신운구를 기다리느라 비워놓은 아산병원의 초대형 빈소에서 아버지는 1박을 하게 되었다. 34세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국무총리를 오래 지낸 정일권 총리이다보니 그의 빈소는 화려하게 치장을 마쳤고, 이미 헌병 2개 분대가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지경(정일권국무총리영결식장이라는 간판은 잠시 떼어냈다.)에 엉뚱하게시리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문상객을 맞았으니......문상을 온 손님들은 눈들이 휘둥그래졌다, 친구들도 눈치를 보며 물었다.
“느이 아부지가 공무원인건 알았지만, 어느 정도였길래 헌병들이 빈소를 지키고 있는가...”,
“별 넷쯤....장군이셨나? 장관이셨냐?....."
"우하하하.............."
다음날 새벽, 발인을 한 빈소로 옮기긴 했지만 그렇게 꼬장꼬장하던 아버지의 빈소가 하필이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었던 분의 빈소에 ‘가짜’로 자리를 잡게 됐는지 이것 역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만약 아버지였더라면 빈소 입구에 저간의 사정과 사실을 대자보로 달아놓았을 것이 분명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3B440E49753F9928)
엄마가 21년, 아버지가 가신지 15년차가 되는 고아이긴 하지만.....31세 총각시절, 부모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다.
지푸라기
바다처럼 넓고 깊은 마음씨를 가진 형균이가 발령한 번개를 맞으려 했지만, 상기한대로 어제는 마침 아버지의 15주기 추도식이었다. 마침 그날만 아니었더라면 만사를 제치고 동해횟집으로 달려가 형균이에게 독점당해 눈물지으며 이제나 저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용순과 영자를 구출?했어야 했지만...........추도예배를 집례할 목사님을 모셔오고, 모셔가는 일을 내가 맡았으니........비록 효자는 아니나 결코 싸가지없는 후레자식이 아닌 바에 어찌 그곳을 갈 수 있었겠는가.
봐달라.
첫댓글 어제는 형균이에게 독점 당하는 불상사를 내가 중간에서 구출하였으니 큰 염려는 놓아도 되겠다. 아버님의 바른 정신이 네게 유전되어 있겠지~~~
형균의 독점에서 풀려 기준에게 갔어도.........내겐 마찬가지다. 이놈들아 여인들에게서 털손 떼라!
어제 번개에 누구누구를 구출해야한다는것 지금 정정해야겠다. 그여인들 전혀 신경도 쓰질 않터라. ㅋㅋㅋ^^
신경을 안쓰긴.......아침에 용순과 전화했는데....형균이의 가슴이 넓다나? 깊다나? 따뜻하다나? 에이.....
부모님의 사진을 뵈니 자네가 어머님을 닮은것 같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