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새벽기도회 ♣.hwp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새벽기도회 ♣
성경:예레미야37:11-21(구1113P)
제목:신앙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11.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12.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13.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14.예레미야가 이르되 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어 가매/
15.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16.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17.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
18.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19.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20.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1.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신앙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
여러분! 시드기야 왕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1.말씀을 듣지 못하는 귀.
2.이방을 의지하는 헛된 믿음.
3.심판의 확정.
육신의 귀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소리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들 듣고 따르지 않을때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를 때 복이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새벽에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예레미야37:11-21)
오늘 본문에서는 한 사람 기억할 인물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베냐민 문의 문지기 두목인 이리야입니다(13절).
오늘 본문은 그와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이 있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어제 본문(렘37:1-10)에서 살핀 대로 당시 국제 사회는 애굽과 바벨론 양강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유다는 양쪽 눈치 살피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안(바벨론)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아마 많은 사람들은 환호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환호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6-10절).
“갈대안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렘37:8-9절).
그런데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철수할 때 공교롭게도 예레미야도 자기 고향 베냐민 땅에서 자기 몫의 재산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고 했습니다(11-12절).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렘37:11-12)
그 모습이 바로 바벨론을 따라 도망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자 베냐민 문의 문지기의 두목인 이리야가 예레미야를 잡아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고 한다고 누명을 씌웠습니다(13절).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예레미야가 이르되 거짓이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고관들에게로 끌어 가매”(렘37:13-14).
예레미야는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했지만 이리야는 예레미야를 방백들에게 끌고 갔고,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습니다(14-15절).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렘37:15)
며칠 후 시드기야 왕이 그 소식을 듣고 그를 이끌어내고 비밀스럽게 예레미야에게 하나님 말씀에 대해 물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을 전했고(17절), 자기의 무죄를 거듭 주장하면서(18-19절), 자기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말도록 요청했습니다(20절).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이르되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이르되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렘37:17-18)
예레미야 선지자는 감옥에 나와서 왕에게 가서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왜 무슨 죄로 옥에 가두었냐고 항의를 합니다.
그러자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머물게 했습니다(21절).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령하여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개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떨어질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렘37:21).
신앙생활에서 “3가지 해야 할 것”과 “3가지 해서는 안될 것”들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16-18절 말씀을 보면 3가지를 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에서 꼭 필요한 “3가지 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1). 16절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하라)
2). 17절을 보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라.(하라)
3). 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하라)
이 삼행의 신앙은 “리스도 예수 안에서”(예수 믿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하나님의 소원)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19-22절 말씀을 삼불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3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1). 19절을 보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하지 말라)
2). 20절을 보십시오.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하지 말라)
3). 21-22절을 보십시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하지 말라).
이리야가 예레미야에게 했던 행동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다 한 것 같습니다. 이리야는 자기 딴에는 백성들의 인기에 영합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충성심과 의분에서 그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항상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한다는 소리만 하는 예레미야가 자신이 보기에는 역적처럼 느껴졌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했을 뿐입니다.
이리야는 올바르게 행동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거슬린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본인 생각에는 정말 올바른 행동인데 알고 보면 삼행의 신앙을 깨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균형 잡힌 기도생활과 말씀생활로 바른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1.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신앙에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틀림없이 사람에게 감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이 아름다운 감동이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감동은 항상 아름다운 감동입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감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 교회의 권위와 질서에 기꺼이 순종하는 삶이 있어야 하고,
2).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겸허하게 활용하는 삶이 있어야 하고,
3). 자기를 조절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꾸준한 삶이 있어야 하고,
4). 감동과 열정이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의지와 실천으로 나타나는 삶이 있어야 하고,
5). 냉랭하고, 냉소적인 삶보다 따뜻하고 온유하고 품어주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성령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으실 때,묵상하실 때,설교를 들으실 때 찬송하실 때,기도하실 때 성령님께서 감동을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감동하시는데 그때만 감동하고 성령님께서 감동하셔서 깨닫게 하셨는데도 행하지 않는다면 성령님을 거역함이요 성령님을 소멸하는 경우입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셨으면 즉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2. 예언을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예언은 무속인들이 말하는 점과는 다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될까? 누가 국회의원이 될까?” 이것을 맞추는 것은 기독교의 예언이 아니고, 긍정적인 영향도 없습니다.
“물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는 애매한 말들도 기독교의 예언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예언은 경고이자, 위로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앞으로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들면 앞으로 회복될 것이다”.
단순하지만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예언입니다.
기독교의 예언에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동쪽과 서쪽의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가야 성공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어야 성공한다!”고 말하는 것이 기독교의 예언입니다.
기독교의 예언은 우리가 몰라야 할 일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참된 예언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예언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그 방향을 제시하고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은 예언의 은사를 잘못 알고 있어서 마치 점쟁이식의 예언기도를 받으러 다니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예언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3.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1). 헤아린다는 말에는 “한번 더”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작정 판단하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요즈음 보이스피싱에 20-30대들까지도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퇴직자들 2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단계에 빠져서 퇴직금을 다 날려버렸다는 뉴스입니다.
돈준다고 돈번단고 여기에 속지 않기 위하여 한번 더 생각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헤아린다는 말에는 “상대방 입장에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구 몰아대지 말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오늘 성도들은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나무나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하고 맞지 않으면 적으로 알고 정회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헤아린다는 말에는 “따뜻한 마음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품으며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은 악의 자연성, 전염성, 확장성을 경계한 말입니다.
1). 자연성 - 선해지려면 노력이 필요하지만 악해지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2). 전염성 - 악은 전염이 되기 때문에 악한 환경을 피해야 한다는 말합니다.
3). 확장성 - 주일에 한 번 빠지면 두 번 세 번 더 쉽게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바벨론의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렘37:19)
사람들은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입니다.하지만 듣기 좋은 말이 반드시 옳은 말이 아닙니다.
스드기야 왕 주변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시드기야와 남 유다 백성이 듣고 싶어하는 예언을 들려주는 예언자들도 있었습니다.
남 유다와 예루살렘의 안전을 선포하던 가짜 예언자들이 그들입니다.하지만 예레미야는 그런 예언자가 아니었습니다.그는 언제나 남 유다 백성이 듣기에 불편한 말들만 쏟아 내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참된 예언자입니다.참된 바벨론 군대의 포위망이 사라진듯했지만,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베론 군대는 애굽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습니다.
크게 의지하고 기대했던 애굽이 맥없이 물러난 상황에 시드기야 왕과 남 유다 백성은 크게 동요되었습니다.그리고 평화와 안전을 외치던 왕의 예언자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오직 참된 예언자 예레미야만이 시드기야 앞에 남아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을 추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며, 범사에 좋은 일만 취하고 선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예레미야37:16-21절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깊게 묵상하시고 3가지 해야할 것과 3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실천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