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주일에 여러가지 요인으로 주일내내 평일미사를 드리게 되었고
특전미사외가 있는 평일 미사가 없는 오늘 토요일은 장례미사가 있어서
일찍 성당에 갔다
그렇게 알아낸것이 적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곳에서 봉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로 ㄴ필요에 따라서 그렇게 할수도 있고 본당에서 이미 그 능력이 검증된
이들을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여겨질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본당신부님이 권유하는 과정에서
많은 거부를 받기도 했나봅니다
이는 주일미사이든 평일미사이든 신부님의 강론의 요지를 들어보게되면
짐작을 할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잘 하는사람들이 더욱 더 하는것이 뭐가 문제이냐고 말할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고 막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현상으로는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왕에 그 능력이 있는 사람을 택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지 않기 떄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여러역활을 하는 사람들도 그 전문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짙어지면 질수록 본당의 운영은 세상속이 아니라 본당내에서
국한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교구 변두리 성당에 있을때에 구역장이 되었는데
그때에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던 것이었고 초기에 즉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때에는
여름학교에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에 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생각이 납니다
저학년때에는 성당에서 할때에는 좋아하다가 초등학교 상급학년이 되어서
몇일자고 오고 나서 아이가 가기 싫어하는 것이었지요
아이가 다른애들과 잘 적응하지 못했나봅니다
그이후로 고등학교는 개신교재단이어서 결국 개신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지요
그리고 저처럼 구역장을 하는 형제들은 그 아이들이 첫영성체교육을 받는 중이라고 하면서
성당입구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때에 아이가 교리시간에 잘 기도문을 외지 못한다고 하면서 수녀님이 붙잡아두워서
아버지가 안절부절하는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이이수만큼 젊은 아빠들이 봉사하고 있었지요
요즈음 미사에서 첫영성체교리를 받는 아이들을 만나게됩니다
그런데요 그들의 부모가 과연 지금 본당에서 봉사하고 있을까 립니다
그들의 부모는 대체적으로 30대후반이 아니면 40대초반일것이기 떄문입니다
물론 제가 아이를 키을때보다 결혼연령이 높아져서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의 나이가 많을 것입니다
본당에서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는 것 중에는
첫영성체교육을 받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히 그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들이 잘 연결되어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일학교미사가 토요일 특전미사때 하기 떄문에 그시간에 가는 경우가 드물지만
아주 잔혹 가게되면 생각보다 아이들의 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제가 40대였을때에 전남 시골곡성에 갔을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곳 아이들은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그 근처 순천이나 여수등 대도시로 유학을 보내기에
아이들을 그곳에서 만나기가 어려웠고 덩달아서 그의 부모인
30~40대의 남자를 도무지 볼수가 없었던 것인데
거의 20년이 흘러서 대구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일학교에서는 교리교사와 주일학교학생으로 구성하고 있는데요
주일학교학생때 열심히 다닌애보다 그때에는 ㄴ다니지 않고 열심히 고우하는 애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그들중에 주일학교교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20여년전에는 교구에서 학생 일인당 얼마이상의 교육비를 예산으로 잡게 했어요
그레서 주일학교예산만이 연간 5천만원이상이 책정되어서 전체 교회예산의
10%나 드는 아주 큰동을 지출했어요
이 비용은 대략 2년정도 교사로 재직하는 교사교육비로 지출했지요
교사는 대체적으로 영성적인 체험도 없는 상태에서 교구의 잦은 교육으로
지식적으로 발달했기 떄문에 주일학교 교육에 불균향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는 놀이문화를 잘 접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담할
전문교사나 이를 양성할 교구체계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당시 신앙을 마음보다는 지식적으로 학문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고 아이들은 내부갈등에 의해서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같은 청년들이라고 해도 주일학교교사는 높은 예산으로 교육비나 활동비로 사용할수가
있었고 그외 아이들간식비나 축일이나 성탄 부활시기에 주는 선물비는
아이들 엄마로 구성된 자모회에서 부담하였는데 반해서
청년들은 거의 본당에서 지원금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중에 더러는 직장을 다니거나
장사를 해서 돈을 벌기도 했지만 여전히 재정적으로 취약한 상태였지요
교리교사는 2년동안 봉사하다가 그중 일부분이 교삼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후로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청년부에 속하지도 않았지요
주일학교교사중에는 아주 드물게 전문교사를 채용해서 본당에서 임금을 지불하기도
하였지요
특히 남자아이들은 자라서 대학교다니면서 군대를 가게됩니다
이시기에 어떤 이유인지 교회를 많이 이탈하게 되는데요
그때문인지 그들중에는 혼배를 하는 이가 드물고요 만난 여자가 신앙이 있어서
관면혼배를 할려고 해도 신랑측인 남자가 반대를 해서 결국 둘다 천주교회를
떠나게 만들고 이에 영향을 받은 자녀들고 신앙과 거리를 두게 되는것입니다
이 한사람은 성인 남자로 인해서 천주교가정이 붕괴되어가게되는데요
이들이 진학과 그리고 취업이나 혼인들으로 많은 변화가 생긱게 되는데
그들에게 본당은 의미만 요구하고 자 ㄹ돌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쯤인가 잘 기억이 나지 망ㅎ았는데 이런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잘 엮고 본당에서 약간의 비용을 부담해서 아이들의 교육지도를 해주는
일도 있었지요
주일학교 체제도 미취학아동, 초등부,중고등부로 학년별로 나누었는대
잠시 바꾸이서 학생들을 학년과 무관하게 초중고등부를 여러그룹으로
나누게하여서 상급학년 학생들이 하급학년학생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일도 전문적인 준비가 미흡했고 결국은 새로운 본당신부가
와서 그 체제가 금방 무너지게 됩니다
아리들의 가정은 초등학교다닐적부터 성당에 보내기가 어려운 구도입니다
그들은 한사람당 여러곳의 학원에 다니기 떄문에 이를 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비신자들과 어울리기 때문에
주일날 미사드리고 그이후에 교리를 가르쳐주어도 효과적으로 활용조차
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오랫동안 시행해온 주일학교체제와 자모회운영이
지금 청년층의 이탈을 가져온 가장 큰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산에 있을때에 수원교구성서경시대회 참석을 위해서 본당에서
예비시험을 치는 등 자모회와 교리교사와 같이 활동한적이 있었지요
저는 그당시에는 상당히 학구적이어서 많은 준비를 하였지만
그들의 지식은 아주 놀라울 정도였지요 그런데 반해 그들은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체험서부터 신앙적으로는 아주 취약한 모습이었지요
모든것을 지식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교회는 천주교신자들이 게으르다는 평판으로
주로 활동을 많이 하느 ㄴ개신교청년들을 대상으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들도 역시 지식적으로는 풍부했지만 신앙적으로 아주 연약했기에
아주 체계적으로 잘 훈련된 신천지교사들에 의해서 쉽게 공략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일화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는데요
어느날 대학교 개신교동아리 회장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신천지쇼사를 만났지요
그는 자신이 넘펴서 그들과 몇시간을 토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놀랍게 그 개신교동아리회장이 결국은 신천지교회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립니다
그들의 전략은 그 학생이 필요한 부분을 들어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기 떄문에
그 청년회장은 신앙적으로 무장해제를 받은것입니다
사실 신천지에 빠진 청년들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회복을 위한 전문가에 의햐서 그가 빠진기간만큼 열심히 훈련을 시켜야만
겨우 그곳에서 빠져나올수가 있었는데
어느 천주교회교사는 운이 좋게도 좋은 전문가를 만나서 이로 투너 빠져나올수가
있었지먼 그때 받은 신앙적인 성처로 다시 천주교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개신교파에 다닌다고 합니다
청년들이 들어서 빠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신교회나 천주교회에서 청년들의 고민에 관심을 주지 않기 떄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레지오가 나쁘다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레지오가 생긴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이를 만든 프랑크 더프는 성모신심의 가득찬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 사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강시의 어려운 에이레나라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특히 몸을 파는 매춘부를 돌보고 위로하는 일에서 시작했는데
오늘날에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도 없이 개인적인 신앙관으로 본당내의 일에 전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별활동이나 새단원을 키우는 도제제도인가가 전혀 이루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