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인사동이 그립다
전통이란 문화이자 세월이다. 그것은 오래된 정신과 행위에 대한 유무형의 흔적이기도 하고, 또 손때 묻은 오래된 책갈피와 같다.
과거 인사동은 우리 전통과 예술문화의 집대성이었다. 길가를 따라 고서화랑, 골동품 가게, 서점, 표구사, 화실 등이 즐비했고, 골목 안 한옥에는 정이 넘치는 선술집과 토속음식점 그리고 향기가 가득한 찻집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은 풍류객들은 그들만의 풍요, 낭만과 해학을 쏟아냈던 곳이기도 하다. 전시회 뒤풀이 장소로 항상 화가들로 북적였던 부산식당, 시인 천상병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귀천도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인사동에 가면 과거의 순수했던 정취와 향기는 이내 사라지고 없다. 우리의 전통가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식 건물로 뒤바뀌어 있고, 일부 한옥은 양옥과 짬뽕인 퓨전 양식으로 변해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우리의 전통문화는 남의 나라 문화에 빨려들어 가버린 형국이다. 이에 그동안 인사동을 다녀간 많은 세계인이 이곳을 다시 와서 이런 현상을 바라보고 과연 그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뻔하지 않겠는가.
장사꾼들은 어느 날 인사동에 가보니 전통의 향기보다는 경제가 먼저 보였을까. 그로부터 인사동은 경제의 법칙이 어김없이 적용되고 퇴행의 길을 걷게 되었다. 또 개발이란 핑계로 삽질은 빨라지고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지금껏 우리의 전통을 고수했던 유명 화랑과 골동품 가게 등은 대학가에서 서점이 사라지듯 속절없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전통과 관련 없는 업태들이 만발하고 있다. 상품은 온통 다른 나라 싸구려로 쌓여 있다. 그나마 있는 우리 것은 비싸기만 하다.
여기서 잠깐, 지난 정권 때에 여성 건축가인 ‘김진애’는 인사동을 전통의 향기를 맡으며 마냥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든다면 야심 찬 설계와 시공을 했다. 그 공사의 핵은 도로포장(pavement)이었는데, 주 포장재는 우리의 전통, 흙으로 구운 크고 적은 진한 회색 ‘전돌’이었다. 모자이크처럼 깐 ‘전돌’은 우리 전통문화와 제법 조화를 이뤘고, 인사동은 그전보다 한결 환해졌다. 당시 새로 태어난 인사동의 모습은 여러 언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그런 효과였을까. 인사동은 광화문과 한 축을 이뤄 더한층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관광여행 문화상품으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 포장도로는 국적불명의 상품, 그리고 새로운 경제 세력하곤 조화가 잘 안돼서 그랬을까? 이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또다시 도로를 파헤치고 땅이 숨도 쉴 수 없는 화강석 판석으로 빈틈없이 포장시공을 얼마 전까지 했다. 이건 자연을 내팽개친 행위이다. 그러고도 자랑한다. 아니, 선거철이면 그 병이 기승을 부린다. 치적은 곧 표와 직결되니까? 아~! 서글픈 대한민국 인사동이여….
오래전 어느 지방자치 단체장은 청동 기념조형물이 더럽다고 해서 아래 공무원을 시켜 페인트를 칠한 일화가 번뜩 떠오른다. 전문가의 손을 빌려 간단히 청소만 했으면 될 일을. 이건 정말 無腦적인 발상이었다. 한심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정녕 고귀한 묵은 때를 새 페인트로 다시 칠한다고 그 값진 전통이 더 멋져 보일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인사동, 할 말이 많아도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온고이지신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 이 말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인데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역사를 배우고 옛것을 배움에 있어, 옛것이나 새것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을 고루 알아야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사동과 우리가 되어야 한다.
들판에 뿌려진 똥(便), 일명 농촌의 향기였던 그 구린내는 곤욕스러운 일이기 전에 우리 삶의 일부였다. 또한 그 내를 맡으며 우리는 이만큼 성장했다. 그래서 어쩜 자연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이젠 인사동에서 더는 전통이 매몰되는 어리석음이 멈춰서야 하고, 구수하고 풋풋한 향기가 진동하여 우리의 여러 기관을 건강하게 해줘야 한다.
“문화국민이여! 제발, 우리의 밝고 맑은 고상한 ‘똥꼬’ 냄새를 인사동에서 다시 맡게 해주오.”
<글/화가 이성완>
첫댓글 행정가들의 올바른 판단이 있어야 하는데요....저도 아우라님 처럼의 바람과 같은 바람을 빌어 봅니다....*^^*...그렇타고 푸세식 화장실은 사양합니다....ㅎㅎ
ㅎㅎㅎ 푸세식...글자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납니다. 시댁에서 있었던 잊혀질 수 없는 사건. 어쨌건 아름다운 추억이잖아요.ㅋㅋ^^
혹여 원고가 필요할 경우, 원문에서는 최대한 오탈자를 바로잡고 문장 수정도 약간 했습니다.^^
인사동을 지킵시다~~
독도도 굳건하게 잘 지켜야겠지만, 인사동도 우리 향기로 더욱 잘 지켜야겠지요.^^
오마나! 아우라님, 글이 맵짜고 감동을 주네요. 공감대는 물론이고요.
이렇게 신사적으로 얘기하면 그이들이 알아듣기나 할랑가?
무뇌들이!
오랜만에 시원한 글 읽었네요.
소정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글 쓰는 분이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니 부끄러운 마음 더욱 크고 화가로써 책임 또한 느낍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바랍니다.^^
끄덕끄덕 완전 공감~~~.인사동이 옛 인사동이 아니지라.
인사하는 눔들도 하나도 없슈 요즘은---. ㅠ ㅠ
요즘 한강에도 우리 고기는 사라지고 외래 어종이 설친다고 하는데 인사동은 오죽하겠습니다.ㅠㅠ 이건 별개의 얘기이지만, 오늘 인터넷 뉴스 '경희대 패륜녀 사건'을 보니 인사(동)받기는 커녕 아랫사람에게도 인사(동)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ㅠㅠ
끄덕끄덕~~ 이미 저는 그리 시작했슴다. 살기 위해 이젠 맘 다 내려 놓고 그냥 어린분들께도 인사잘하는 어른 되기로---
아우라님 늘 행복하세요
그런 사회가 행복한 세상이라면 저도 당장 오늘부터라도... 꿀벌님도 늘 강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