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치관 및 성격 형성에 있어 중요한 영향을 준 가족 및 성장과정에 대하여 작성 바랍니다.
[촉촉한 강총무]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운도 오지 않는다'라는 진리를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 희미한 햇살과 함께 하루 장사준비를 시작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자연스럽게 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가게 일을 하시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을 여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부지런함과 노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를 본받아 대학에 와서도 여러 방면으로 도전들을 했습니다. 인턴, 해외봉사, 국토대장정, 봉사활동 등 여러 기업체 및 학교에서 주관하는 일에 발을 내밀었습니다. 비록 모두 탈락의 고배를 마시긴 하였으나 각 도전마다 다른 팀원들과 함께 준비했던 시간은 어머니의 영향이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총무 역할을 담당하여 휴가계획과 모임에 돈 계산을 맡게 되어 붙여진 별명이 강총무 입니다. 저의 숱한 도전들을 보면서 탈락해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매 순간 겨드랑이에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하는 모습에 친구들이 '촉촉한 강총무'라는 별명을 새로 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팀원들 간에 있어서 든든한 팔로워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인 리액션을 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의 자세와 표정, 그리고 언제나 미소로 대화를 열어가며 손님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20년 넘게 보면서 밀양 지역의 하나의 고유명사가 될 수 있었던 어머니의 위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팀원들 간 의견의 불화나, 계획의 실패로 인한 좌절들이 있을 때, 당당하게 웃는 미소로 힘을 주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적절한 리액션으로 인정해주는 모습에 팀 내에서 의견조정 역할을 늘 담당했습니다.
어머니를 닮아 부지런히, 노력하며, 따뜻한 리액션으로 일과 사람을 잡아왔듯이, 미래에도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 지역의 NO.1 보상서비스 센터 직원 'OOO'이 되겠습니다.
2. 학업, 교우관계, 동아리활동, 자기계발 등 학교생활에서의 중요사건 및 경험에 대하여 작성 바랍니다.
[목표, 즐거움 그리고 밝은 미래를 향한 당찬 발걸음]
대학 2년간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무엇도 모르던 1학년 시절, 친구들처럼 놀고, 그들처럼 공부했습니다. 군대에서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많은 포상을 받으며 인정받는 병사로서 성공적으로 제대했습니다. 이후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던 마음에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교내에서 추진하는 독서대회, 글로벌 챌린지 등에 참여하면서 끊임없던 노력에도 운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무엇보다 값진 시간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화하는 것이 즐겁고, 미래 계획을 짜고 맞춰나가며, 돈을 관리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지금도, 앞으로도 잊지 않을 '증권연구회'에 들어가서 저의 능력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학습부장으로서 부원들에게 경제지식을 알리고, 경제상황에 대해 같이 토론을 주도하고, 앞으로의 학습 과정을 계획해나가며 주식과 시장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원들과 같이 자격증 공부 반을 만들어 금융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하고, 각종 모의투자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우리도 목표(10%~20%)를 달성하여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돈 관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CFP 자격증을 공부하며, 내 자산하나 관리 하지 않는 놈이 남의 자산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겠느냔 생각에, 그때부터 수입지출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주제와 세부 내용별로 1년간 작성하며 소비패턴을 알 수 있었고, 미래에 대한, 알지 못하는 재정적 위기상황을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알기 때문에 너를 알 수 있습니다.]
위험에 대한, 미래에 대한 소비를 생각하고 대비해서 고객감동을 위해 대신 발로 뛰겠습니다. 부원들을 가르치던 것처럼 남들보다 한발 앞서서 생각하고, 고객에 대해 꼼꼼한 분석을 통해 저만의 위험관리 모범답안을 만들겠습니다.
3. 학교생활 외에 각종 모임,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인턴 등 참여했던 사회활동에 대하여 작성 바랍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으나, 남을 위하고 도우려는 사람이 참된 봉사자이다.]
어머니의 가르침입니다. 어머니의 통장에 돈이 0원이 아니게 되면서 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기부활동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비록 몸이 바쁘고, 마음이 바빠서 직접 가지는 못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마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저 역시 어머니의 마음과 같이 대학생이 되면서 꾸준히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교육지도를 나갔습니다. 비록 돈도 없고, 어느 하나 특출 나지는 않지만 가장 잘 알고 있는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생각하고, 주말에도 찾아가 체육대회 및 소풍을 통해 유대관계를 쌓으면서 마음속에 가끔은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고 싶어, 2년간 꾸준히 다녔습니다. 이후 부족한 저를 채우기 위해 학업에 집중하느라 가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도 저를 반기던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활력을 잊을 수 없습니다.
[10시간의 주인]
편의점, 피시방, 마트, 우체국 등 여러 군데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단순 힘을 요하는 아르바이틀 제외한 카운터 역할을 하는 곳에서 주인의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매장을 담당하는 10시간은 단순히 저만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매장을 대표하는 얼굴이고, 편의점 기업을 대표하는 얼굴이 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밝은 미소와 분위기를 깨는 간단한 말로 시작한 고객대응은 단골손님들과 그 인척을 끌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단골손님들과 대화도 나누며, 인생의 조언을 얻는 값진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기계적으로만 대했다면 얻을 수 없었던,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소중한 경험입니다.
봉사의 마음과 주인의식으로 고객과 함께 최고의 마음, 최고의 신뢰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언젠가는 뒤쳐질 Most One이 아닌 지역의, 지역을 위한 Only ONE 보상서비스 전문 상담사 'OOO'이 되겠습니다.
4. 희망직무와 선택 이유, 그리고 희망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준비해온 과정에 대하여 작성 바랍니다.
[보상서비스 센터를 위한 저만의 절차탁마, 소통의 시발점이 될 고민상담소장]
언제나 고객과의 최접점에서 고객감동의 실천을 꿈꾸며, 이를 위해 두 가지를 겸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첫째는 지식입니다. 말을 잘하고,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합니다. 경영학의 여러 과목을 이수하면서 회사의 내부 의견절차 과정이나, 생산과정, 마케팅 등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정작 필요하다고 느낀 보험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습니다. 보험의 필요성과 만들어지게 된 과정, 여러 종류의 보험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보게 된 것이 'CFP 경대생 할인' 전단지 입니다. 전단지를 보고 무심코 시작했지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덕분인지 단시간에 자격증을 딸 수 있었고, 그 다음은 여러 경제지식과 업계의 동향파악을 위해 Seri에 접속하며 경제상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잘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즐기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준비해왔듯 앞으로도 즐거운 마음으로 지식을 쌓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대화입니다. 차가운 분위기를 깨는 말과, 경청, 리액션, 그리고 당당한 모습을 기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군 시절 관심병사 상담병의 직책을 하며, 사람을 알아가고 생각을 넓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학생활 여러 도전들을 하면서 팀내에서 의견조정역할을 늘 담당했듯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고민상담을 자주 합니다. 어려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고민상담소장으로서 누구보다 먼저 다가가 말과 음료수 한잔을 건네며 사람을 알고,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알게 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가지 저의 강점은 소통의 시발점으로서, 지식을 겸비해 더 깊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계기를 고객들에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언제나 고객과 함께 장미 빛 미래를 그려나가는, 당당하고 명량한 미소를 가진 'OOO'이 되겠습니다.
5. CS마인드
[무너진 희망을 다시 세우자!]
군 시절 엄청난 태풍이 가평 지역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수천 헥타르에 달하는 논의 벼가 무너졌습니다. 어린 시절 친척을 통해서 논 일의 힘듦을 알기 때문에 자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도움을 드리겠다고 달려갔지만, 딱히 저희에게 요구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최대한 많은 벼를 세워야 한다는 목표 아래에, 농민분들은 평소 해오시던 데로 아무 말 없이 진행하고, 저희는 세워놓은 벼를 보고 따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루에 얼마 못하겠다는 마음에 가장 선임이었던 제가 장이 되어 아이들을 지휘했습니다. 2인 1조로 조를 나누고, 각자의 구역을 정해주며 일 처리를 하니 빠른 시간 안에 한 마지기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수천 마지기의 땅을 보며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 행동을 표현하면 농민들의 마음은 더 아프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 않았습니다. 최대한으로 일하는 시간을 늘리고, 쉬는 시간을 줄여가며, 밥 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일했습니다. 이런 저희의 모습에 아저씨분들은 간식거리도 지원해주시고, 일하는데 힘내라고 저희의 취향을 어떻게 아셨는지 최신곡으로 틀어주셨습니다. 지친 아이들을 다독이며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은 마지기를 해내면서, 저희 팀들 간의 선의의 경쟁에서도 이겨 3박 4일의 포상휴가를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그분들이 고객은 아니지만, 그들을 위한 존중과 배려, 요구에 대한 노력으로 빚은 성과를 통해 유대감을 더욱 쉽게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원이 되어서도 고객과의 긴밀한 대화를 꾸준히 하여,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요구에 대해 정확한 상품 및 보상을 통해서 한 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을 만드는 당찬 사원 'OOO'이 되겠습니다.
6. 팀웍
[우리의 힘으로 해보자]
2012년 많은 친구가 어학연수로 해외로 떠날 때, 해외로 가고 싶고, 하지만 단순 영어공부를 위해선 가기 싫었고, 형편도 넉넉지 못한 네 명의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글로벌 챌린지를 통해서 미래 금융에 마음 맞는 친구들이 모여 한바탕 하기 위해, 모집 시작 3개월 전부터 모였습니다. 해외 기업 탐방이라는 목적 아래,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은행에 초점을 맞출 것이냐, 보험이냐 부터해서 어느 나라로 갈 것이냐 사전 조사와 현지인과의 연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준비물은 무엇이 필요한가까지 서류를 내는 날 전까지 수정하는 어려운 과정을 겪었습니다. 선택에 대한 친구들과의 대립들로 2:2 상황까지 만들어 지면서, 더욱 설득력 있는 팀원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팀장으로서 친구들의 의견을 종합했습니다. 은행과 제조업으로 갈려진 의견을 하나로 통합하여, 친구들의 계획을 먼저 알아보고 기업 선택과 동선을 계획해서 친구들에게 보여줬습니다. 또한, 가장 어려울 거 같았던 현지인과의 연결에서도 약 1개월간의 지인 또는 인척의 연결고리를 찾는 끝에 구하게 되어, 팀원들에게 팀장으로서의 믿음을 줄 수 있었습니다. 20장의 계획서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3개월간, 각자 역할에 대해 힘든 점을 같이 보완해 주고, 고민하며 가족과 같은 긴밀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 해외 탐방의 꿈은 무너지게 되었지만, 대학생활에서 제2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대해상에 입사해서도 저의 조정능력, 그리고 한 발 더 앞서나가는 노력으로 가족과 같이 하나 되는 팀으로 만드는 사원이 되겠습니다.
7. 변화/혁신
[이놈은 더 하네]
지루한 대학생활에 변화를 줄 '증권연구회'를 만나 지금까지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역 후 회원이 되고, 6개월 뒤 학습부장이 되어 동아리를 같이 이끌어 나갔습니다. 동아리 내 신입생 시절, 선배님들 못지않은 발표로 많은 예쁨을 받고 있던 터라, 학습부장으로서 더욱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지난 6개월간 선임 학습부장의 일들을 인계받아 수행하면서 증권연구회가 다른 동아리보다 부족한 점 2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종목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매주 발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즉, 나무를 계속 보다 보니 숲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드는 현상이었습니다.
둘째,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낼 수 없다 입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아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모의투자 대회가 있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참가하고 있고 동아리에서 관리를 안 하기 때문에 성과를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해야 할 일은 동아리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에 집회방식을 종목선정 및 분석이 아닌 경제부, 시장상황부, 기업부로 나눠서, 경제의 큰 흐름, 시장에 부는 주요 바람, 기업의 동향을 파악하려 했습니다. 정보에 기인한 주가의 흐름은 당연하기에 숲을 보는 것이 더 좋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두 번째로, 자격증 취득 반을 만들어 희망자들로 하여금, 책과 강의를 공동구매하여 자격증 취득에 힘썼습니다. 경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은 경제 용어를 알고 있어야 하므로 전문적 지식함양을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잘 적응을 해준 기존의 부원, 신입 부원들과 새로운 변화에 어려움을 겪어내어 우리만의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성과부족으로 조금씩 약해지던 동아리의 기세를 3개월 만에 다시금 OO대 대표 동아리로, 전국 최초 증권 동아리로 다시금 거듭났습니다.
8. 커뮤니케이션
[우리 동네 형님]
2012년 12월 추운 겨울 날 11박 12일의 합숙 여행을 어린 친구들과 함께 생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더 큰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구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인터넷 중독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에 발을 내밀었습니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뽑히게 되어, 최종적으로 합숙에 참여하게 될 학부모님들과의 만찬에서 저의 자신감과 신뢰감을 줘야 했습니다. 큰 목소리와 빛나는 눈빛,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선생이 되겠다는 각오와 군시절 상담병으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며 강한 신뢰감을 만들었고, 최종합격하여 합숙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만나는 순간부터 난관이었습니다. 저를 보지도, 듣지도, 따르지도 않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각자가 하고 싶은 대로 놀며, 합숙 프로그램을 전혀 따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프로그램 초반부에 동영상, 인터넷 중독에 강의와 같은 지루한 일과의 연속으로 아이들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멘토 선생님들끼리 모여 센터장님께 저희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체육프로그램을 통해 합숙 초반에 유대감을 쌓아 멘토와 멘티가 나뉜 것이 아닌 모두가 친구로서 다 같이 이 합숙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결국, 프로그램의 순서가 바뀌면서 아이들과 저희의 연결고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후반에는 강의를 진행하고 지루한 시간을 아이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게임을 즐기며 보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한 명의 이탈자 없이 합숙을 잘 마무리했습니다. 이별의 시간, 서로의 눈물을 공유하며 짧지만, 언제보다도 길었던 그 12일을 기억하며, 이제는 인생의 멘토로서 가끔 연락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아이들로부터 받은 'I LOVE YOU'가 프린트된 옷을 옷장 한편에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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