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동경 유학시절
1965.10.08
일본 와세다대학 원리연구회 노가따학사
휴일 같은 때에는 가와사끼(川崎)에 있는 회사 등에 자주 갔어요. 거기에는 유산탱크가 있는데, 노동자가 그 유산탱크 속에 들어가 정화하기 위해 원료를 죽 내려 보낸다. 그리하여 그 장치는 몇년간 쓰게 되면 못 쓰게 되어 버린다. 유산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을 교환하기 위하여 그 탱크 속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는 15분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런 곳에서 싸우면서 일했다.
돈이 없어서 그런 일을 했던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선생님의 형님께 ‘전 재산을 팔어서 돈을 부치라’고 전보를 치면, 형님은 세계 대표적인 가인이어서, 곧 보내 주신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없다. 선생님의 형님은 선생님이 어떤 남자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사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세계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고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남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열렬한 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여 전보를 치면 곧 보내 준다.
선생님은 돈이 있으면 전부 친구에게 주었다. 그래서 그런 곳을 돌아다녔다. 잘했지요?
왜 그런 일을 했을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일본을 사랑하는 조건을 세우자’ 그런 것을 생각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커다란 삼목(杉木)을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며 운 적도 있었다.
한국이 일본 정권하에 있었을 때, 선생님은 몇 번이나 유치장에 끌려 들어갔다. 이곳 도오꼬오(東京)에 와 있을 때에도 한 달에 한번은 경찰서에 불려 갔다. 그 경찰서는 다까다노바바(高田馬場) 거리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쪽에서 오른편에 있다.
그때에도 선생님이 한국에 돌아가려고 하면, 한국에 연락이 간다. ‘아무개가 한국에 돌아간다’라고. 학생이었지만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통사람은 선생님을 잘 모른다. 선생님을 보면, 입은 옷은 헌 옷가게에서 산 싼 것들이다.
그 옷을 보면 반들반들 윤이 난다. (웃음) 사람들은 모두 머리에는 기분을 내서 포마드라든가 무엇인가를 바른다. 바람이 불거나 태풍이 불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바른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다. 선생님은 어떠한 봄날이나 여름날에도 바르지 않는다. 또 걸을 때에는 밑에서부터 45도 이상 위를 보지 않는다. 이런 일을 했다.
선생님은 눈오는 날이나 태풍이 부는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하층 노무자들의 밥집에 나가 일을 했다. 그런 때는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태풍이 불고 있던 때니까 거기서 손이 새까맣게 되어도 비에 맞아서 죽 흘러내려 깨끗하게 되어 버린다. 그런 가운데에서 땀을 흘리며 일한다. 그 기분이 참으로 상쾌하다.
선생님은 일본인으로부터 많은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고문한 그 특별고등형사(特高刑事)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 친구들을 전부 모아 놓고, ‘불쌍한 것은 패한 일본이다. 이미 주권을 잃어버려 무릎을 꿇고 비는 사람을 때리는 자는 하나님이 벌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국에서 쫓기고 있는 일본인을 조용히 불러 ‘고문당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라’고 말하며 짐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
여러분은 일본을 사랑하겠지요? 어느 정도 사랑하세요?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많이 사랑할 필요는 없다. 먼저 여러분을 낳아준 부모를 사랑하라! 그 부모의 손이 가늘어지면, 그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려라! 동생이 다른 사람들같이 좋은 옷을 입지 못하였으면, 그 옷을 붙잡고 눈물을 흘려라! 자기의 부모에 대해서 자기의 형제에 대해서 책임져라! 그것을 하지 못하고 그 마음을 갖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나라를 사랑하겠는가? 그것은 원리적으로 보더라도 맞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기준에서의 부모를 중심으로 한 형제들인 것이다.
심정의 세계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경계가 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일본에 오면 한국인이 아니예요. 한국 사람이 아니라 하늘 사람이다. 그러니까 천국인이다. (15-180)
先生の東京遊学時代
文鮮明先生み言選集 No15
1965年10月8日(金)
早稲田大学原理研究会野方学舎
休日のような時には、川崎にある会社などによく行きました。そこには硫酸タンクがあって、労働者がその硫酸タンクの中に入って浄化するために原料をずっと降ろすのです。そうしてその装置は何年間か使ったら、使えなくなって捨てるのです。硫酸が染み込まないのです。それでこれを交換するために、そんタンクの中に入るのです。ところでその中では、15分以上仕事を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そんな所で闘って仕事をしたのです。
金がなくて、そんな仕事をしたのではありません。先生が先生の兄さんに「全財産を売って金を送れ」と電報を打てば、兄さんは世界の代表的なカインとして、すぐ送ってくれました。こんな人は滅多にいません。先生の兄さんは、先生がどんな男かをよく知っていたのです。先生の使命については良く分からなくても、世界でただ一人以外になく、世界をやっても取り替えることができない、そんな男であることを良く知っていたのです。天から啓示を受ける熱烈な信者でした。ですから金が必要だと、電報を打てばすぐに送ってくれたのです。先生はお金があれば全部、親友に与えました。
なぜこんなことをやったのか?
先生は「誰よりも日本を愛する条件を立てる」こんなことを考えたのです。いろんな所に行きました。とても大きな杉の木を抱き締め、涙を流して泣いたこともあります。
韓国が日本の政権下にあった時、先生は何度も留置所に連れていかれました。これは東京に来た時には、一月に一度は警察署に呼ばれました。その警察署は高田の馬場駅の、早稲田大学の右側にありました。
その時にも先生が韓国に帰ろうとすれば、韓国に連絡が行くのです。「何某(なにがし)が韓国に帰った」と。学生ですが、要注意人物でした。しかし普通の人は先生をよく知りませんでした。先生を見れば、着ている物はヨレヨレの古着でした。その服を見ればテカテカに光っているのです。(笑い)人々はみんな気分をだして、頭にはてポマ-ドやら何やら塗るのです。風が吹くか台風がくれば、髪の毛が風に乱されるからといって塗るのです。しかし先生はそうではありません。先生はどんな春の日、夏の日にも塗りません。また歩く時にも、下から45度以上、上を見ません。こんなことをしました。
先生は雪が降る日や台風が吹く日には、学校に行かないで、下層労働者の飯やに行って働きました。そんな時には、ほんとに気分が良いのです。台風が吹いている時ですので、そこで手が真っ黒になっても、雨に打たれて流されて、きれいになってしまうのです。その気分はほんとに爽快(そうかい)なのです。
先生は日本から、多くの拷問を受けました。しかし戦争が終わって、拷問をしたその特高刑事に復讐をしょうとしている友達たちを集め、「哀れなのは負けた日本だ。すでに主権を失って、膝を屈している哀れな人間を打つ者は、神が罰っせられる」と話して、また韓国から追われている日本人をひそかに呼んで「拷問される前に早く帰りなさい」と言って、荷物をまとめることもしてやったのです。こんなことが沢山ありました。
皆さんは日本を愛していますか? どのくらい愛しているの? 見当がつきません。
まず、皆さんを産んでくれた、父母を愛しなさい!
その父母の手が、か細かったなら、その手をとって涙を流せ! 弟たちが、他の人々のように良い物を着られなかったならば、その着物を抱えて涙を流せ! 自分の父母に対して自分の兄弟に対して、責任を負え! これをしないで、その心を持たない者が、どうして国を愛せるのか?
心情の世界には、国境がありません。言語というものは、境界とはならないのです。先生は日本に来れば、韓国人ではありません。韓国人ではなく、天の人間です。ですから天国人です。
The Period of My Study Abroad in Tokyo
The Selected Speeches of the Reverend Sun Myung Moon, Volume 15
Address given to Waseda University CARP
October 8, 1965
I used to go to a steel mill, in the Kawasaki area, very often on my off days from school. The mill had vats used to store sulfuric acid. Workers would clean these vats by going and making raw materials flow out. These vats were equipped with devices to do this; however, they would stop working after a few years. The devices would no longer handle sulfuric acid. In order to replace them, the workers had to go into the vats. Workers could not work more than fifteen minutes because of the toxic fumes of sulfuric acid in them. I fought against such deplorable conditions when I worked there.
I did not do such a job because I was desperate for money. Had I sent a telegram to my older brother asking, “Send me all the money you can get selling off all the properties,” he would have sent me the money according to my instruction, as Cain representing the world. Such a man rarely exists. My older brother really understood who I was. 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at my mission was clearly, he knew that I was the one man whose value is even greater than the entire world. He was a devoted believer receiving revelations from Heaven. Because of these reasons, if I had asked him for money, he would have sent it without hesitation. But, if I had any money in my pocket, I gave all away to my friends.
Why did I do such things?
I constantly thought how I could make conditions to love Japan more than anyone else, as I traveled to numerous places. I remember one day I wailed and wept embracing a large cedar tree.
When Korea was under Japanese occupation, I was taken to a jail so many times. When I stayed in Tokyo, I was taken to a police station at least once a month. I remember it was located in front of Takata-no-Baba train station on the right hand side of Waseda University.
During my study in Tokyo, whenever I went back to Korea, Korean authorities got notice of my return. The notice would say, “This notorious one left to go back to Korea.” I was just a student, but was black-listed by Japanese authorities. However, people in the general public did not understand or know me. When they saw me, they only noticed the beat-up old clothing I was wearing. But, my clothing was shining – because it was coated with grime. (Laugh) Back then, all men wanted to look good, so they put pomade or something like that on their hair. They made excuse, saying their hair got blown about by wind or typhoon, and so they had to put on hair gel. But, I was opposite. I would not put anything on my hair in spring or summer. Also, when I walked, I looked down 45 degrees and never looked up. I behaved, peculiarly.
I went to work at a working class eatery where lower class laborers hung out when snow or typhoons closed the school. I felt good when I was there. The strong winds and heavy rain accompanied the typhoons. My hands became black with dirt working there. I would just stand outside and let the rain wash away the dirt off my hands. My hands got so clean and I felt so good and exhilarated.
I was tortured countless times by the Japanese authorities. However, once the war was ended, I gathered my friends who were plotting to attack the military police detectives who had tortured me, and I persuaded them saying, “The Japanese are pitiful now that they are defeated. They already gave up their power and fell to their knees. If you hit the defeated and pitiful, then God will judge you.” I secretly called the Japanese who were wanted by Korea, and helped them, saying, “You must get out of here right away. You must go before you get caught and tortured.” Then, I helped them pack up their belongings to escape. I encountered so many situations like these.
Do you love Japan? If so, how much? (Responding to the answers) I don’t have a clue how much you love Japan. Anyhow, you don’t need to love a lot. First, you must love your parents who gave you birth!
If you notice their hands are thin and weak, you must cry with tears holding their hands. If your younger siblings are wearing clothing that is not as good as others, you must shed tears holding the clothing. You must be responsible to your parents and your siblings! If you do not do this and do not have the heart for them, how can you love your country?
There is no boundary line in the world of the heart. The differences of languages can never be the boundary between us. When I come to Japan, I am not Korean. I am not a Korean but a Heavenly man. Therefore, I am a man of the Heavenly Kingd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