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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 6 장과 제7장 그리고 제 8 장이 그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러므로 저번 6장 6절까지 우리가 연구해본 요한의 계시를 다시 한번 더 복습하고
본장을 나아가기로 합니다.
우리가 달력을 보게되면 주일의 명칭이 나열되어있읍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일요일,
이를 칠요일(七耀日,七曜日)이라고 부릅니다.
빛이 일곱종류로 비추거나 비침을 행한다는 의미인데.
해당 일주일 명칭은 서기 325년에 소아시에 니케아에 열린 카톨릭 정교회의에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대제가
소집하여 아리우스타를 이단으로 몰고 아타나시우스파를 채택할때 일주일의 명칭이 확립된 역사적 사실에
기인합니다. 이때 일주일의 명칭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런고로 삼매의 여호아선의 이치를 모른다 하여도, 실제적으로 이를 정립한 일주일의 빛의 행함과 운동을
논하는것으로도 요한계시록 6장과 7 장 을 드리우고 직관 할 수 도 있는것입니다.
빛은 , 순수하게 빛으로서만 행함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는데 지구계에서는 달인 월 과 태양인 일 사이에 오성인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을 놓았읍니다.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행성은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이기 때문입니다.
빛이 빛의 속성을 낳았다는 것을 의미함인데,(공간계의 행성출현) 이것이 빛인 태양의 심판의 7 행 변이 속성으로 자연광을 굴리게 되었다 할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인 빛은(광명), 수(水) 불(화), 열, 습, 한, 조(燥),化(기화, 액화, 고화) 7 가지 로 작용과 반작용을 합니다(상대세계).
이것은 빛이라는 자기관이 아우러지는 효과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런고로 태양의 빛은 말입니다, 순수한 광명체가 아닙니다. 수와 화 가 서로 섞이고 충돌하고 화합하는 과정의 화학반응로
핵융합을 하여 우주공간에서 일어나는 충돌의 의미에서 태양은 생겨난 것입니다.
이를 기준하기 때문에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로 일주일 (빛의 운동) 을
설정했다 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빛은 충돌의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이는 불꽃의 염염작용으로, 또한 그 기운이 오행성의 위치에 따라
지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습기, 한기, 건조함, 열기, 화함(기화 액화 고화) 등으로 빛의 속성에 인과에
따라 변화 한다는 것인데 이는 주기가 있어 항상 반복 리필됩니다. 빛은 언제나 둥글게 희어지며 운동하고
무시무종(시작또 끝도 없는)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없이 서로 섞입니다, 스스로 자화작용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질소 엔은 자화자굥을 합니다, 이를 토화작용이라 함인데 추후 소개합니다)
이 칠(七) 의 운동의 종합적인 스트럼현상과 우주공간에 서로 종합적인 아우라를 지니고 아우라를 지니면서 비추는
것을 광명이라 이름합니다. 상대를 서로 비추는(하늘과 땅이 마주함) 것을 반조(反照:되돌려서로비춤)) 한다 하는 거인데. 이러한 빛 의 운동을 "회광반조"(回光反照) 라 합니다.
빛을 순리대로 보기도 하고 역으로 뒤집어 보기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마주하고 같음을 비추고 비침의 아우라는 그러므로 인과율을 가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 눈으로 갑돌이를 본다 하는 것은 내 눈의 빛이 갑돌이에게 부딧히면 거기에는 갑돌이의 빛이
(만약 거울을 장착했다치면) 거울로 주어져서 마주하며 비추는데 갑돌이는 비추는지 뭐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합시다. 하지만 거울이 있으므로 거울에 내 눈의 빛이 부딧혀 다시 되돌아 내게 온다 합시다.
그런이치를 반조한다, 하는 것이고 회광반조 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함으로 내가 갑돌이를 보고 (빛을 비추어 보고) 다시 거울에 비친 것에는 내 가 보일 것입니다.
갑돌이 거울에는 내가 그 거울안에 있는것이지, 갑돌이가 보이지 않는다 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하나를 행한다라고 하는 빛의 원리인데 하나님의 창조한 빛의 원리가 그렇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갑돌이를 보고 생각을 내는 것은 내가 내 생각을 낸 것이지, 갑돌이는 전혀 생각을 안 한 것입니다.
이를 사람보고 누구를 보던간에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을 생각낸게 아니고 나 스스로를 생각낸 것이므로
갑돌이를 판단하는 요지를 보았다고 하여 그 본 관점으로 생각을 일으켜 갑돌이가 어쩌고 저쩌고 판단하지
말라 하는 것을 빛 운동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내는 생각은 그러므로 갑돌이를 판단하는 그 어떤 생각이나 보는 관점은 다 틀린 것입니다, 타방을 보고 이건 이렇제 저건 저렇다 라는생각은 전부 다 틀리고
보는 자가 그냥 이름붙혀 사물을 판단하는 그르침에 의하여 생각을 내기 때문에 생각으로는
진리를 절대 볼 수도 판단할 수 도 없다라는 것이 생각의 한계점이라 믿어지녀야 합니다.
오로지 인간으로서는 객관적인 이성적인 통찰을 넘어서는 지점을 모색할 줄 알아야 온존하게 판단 할 수 있는것입니다.
어떻게 요한 계시록의 직관하심을 우리들의 생각인 사고방식을 기준하여 판단 할 수 가 있는 것이 요일을 분류하여
적산해 보는 이치를 말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내어 요한계시록이나 성경말씀을 이렇다 저렇다 분별로서 정의 내래는 폐단을 막기위하여
해석하지 말라 하신것이지요. 니케아 정의부분으로 복습해 봅니다.
오로지 이치로서 가늠할 방법은 창세기를 잘 궁리하고 궁구하며 참독하며 이 이치를 밝음의 광명으로 넓혀서
O 률로서 인과율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O 률을 온존함을 보는 것이지 반경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물의 섭리와 섭사에 대하여 O률이라 함은 6 의 절반만 보고 판단하는 땅위의 생명성품들에 대하여
나머지 반을 비추어 주므로서 인과율의 O 의 온존함으로 심판하는 것이 7 이라는 것이며, 원래 믿음이
있는 영성자들은 말입니다 실제로 계율을 지키고 온존하므로(온존함을 보므로) 온존함은 7 의 심판을 하지 않으며 같음으로 사랑으로 함께하며 하나가 되는 이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온존함을 보는 것은 "오경" 이 됩니다.
모세오경입니다, 중요한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6장 9절 우리가 공부할 이 요한계시록 은 O 이 머물러 있는 곳이 되며.
이 날은 일주일 중에 금요일입니다.
사실 지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일겉는 이슬람의 종교인들은 안식일을 대부분 금요일로 잡읍니다.
카톨릭 정교회가 같다는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이치를 헤아리고 성경말씀을 헤아리시는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을 예를 들어 소개 했읍니다.
월화수목금토일 의 칠 부분의 위치인 경도 위도 그리고 황도에 따라 대상에 대하여
전체의 아우라지라는 광명체거 그 작용들의 행한만큼 비추고 있다라는 것을 의미함이 일주일이라는 것입니다.
월요일은 태양이 달에 작용하고 작용받는 지점이니 이 지점을 쉽게 설명한다면 고려시대의 문인 이조년이
최초로 고 시조를 읖은 문장이 있지요. 이화에 월백(梨花에 月白) 하고....
나주에 가 보면 배꽃이 필 무렵은 아주 흰 꽃이 아름답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두견새가 웁니다.
이 광경을 밤 중의 삼경 ( 오전 1시에서 3 시 까지) 에 우는 봄 계절에 읊은 시조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원래 순수하고 흽니다. 이 흰꽃이 달 빛에 투영되어 더욱더 희게 투영되는 것을 본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요한의 직관하는 상태를 들여다 보는데 관점을 두는 것입니다, 요한의 식견으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O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에 요한의 직관에 응해야 합니다.
요한이나 나나 우리들이나 매양 똑 같은 인간 아닙니까?
인간은 원래 신의 범주에 포함하여 있는 두드러진 영물아닙니까?
우리도 그러하다는 것을 의미해야 하나로 통하는성명말씀임을 익히 믿고 따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6장2절
내 앞에 흰말 한마리가 보였고. 활을 든 자가 그 말 위에 앉아 있었읍니다.
면류관을 받아들고는 적을 쓰러 뜨리고 승리를 얻기 위해 달려 나갔읍니다,
월백하니 흰 색이고 첮째 생물은 사자 입니다. 사자는 표효하지요, 번개가 치고 천둥이 일어나는
창조의 첮째날인데 빛이 생김은 불이 있어 水 (월: 달) 과 마주하여 충돌치로 소리가 나므로
사자의 표효인데 그렇다면 수 를 마주하는 반대 불은 주어지게 되어야 부딧혀 소리가 나지요.
태양(離) 火: 섭사는 똑 같읍니다.
달 (坎) 水 로 서로 마주하는 순간을 창조의 첮째날이라 할 수 있읍니다.
태양을 표상하는 짐승은 말입니다, 午 라 하지요, 이화에 월백하였으니 흰말이 되는 것이고
달과 태양 사이에 오성이 있으므로 七 의 빛의 운동이 이 상태에서 개연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 7 단계 아닙니까? 6 에서 턴해서 (다시 돌려서) 다시 역으로 돌아야 O 으로 빛이 휘어지는 운동을 시작함인데 동시에 O 으로 돌아오는 시점이 7 번째 인것입니다.
일단 순백의 영혼이므로 면류관을 하나님께 받기는 받았는데 오(午) 의 불의 기운을 함께 받아 섞이여
빛 운동을 하니, 동척이인이라 욕심줄이고 경쟁줄을 잡고 남을 취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취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 적을 향하여 화살을 쏘는데 그 화살이 다시 자기에게도 돌아오는 O 운동을 하는줄도 모르고
덤비드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을 흰말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사자는 불기운의 해태같이 부글 부글 퍼저나가는 숫사자의 깃털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기운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곱 봉인에서 첫 봉인은 이를 표상합니다.
왜 말을 표현하였는가. 말은 동물중에 유일하게 발굽이 하나입니다.
하나를 행하는 불을 잠복한 생명성품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 장
1절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읍니다.
지구의 대기권이 주어지고 땅과 하늘로 구분되어진 것은 태양과 달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동시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창조의 시작은 월요일입니다.
2절
그런데 그 땅은 지금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니었고, 생물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읍니다. 어둠의 깊은 바다를 덛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서 움직이고 계셨읍니다.
수와 (달) 확(달) 서로 마주하고 작용하므로서 물이 생겨나는 것이고
빛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절"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빛이 생겨라" 그러자 빛이 생겼읍니다)
성경의 공부는 맨 첫 구약성서 창세기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궁리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6장 3 절 두번째 말을 보기로 합니다.
3절
어린 양이 둘째 인을 떼어 내자 , 둘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외쳤읍니다.
둘째 생명은 소입니다, 소는 뿔을 지니고 있으며 역시 발굽이 두개 입니다.
(모든 네생물은 발굽이 두개로 갈라져 있읍니다, 물질계를 대위하여 표상하는 4 생물입니다)
날개가 6개씩이니 24 개 인데 24 는 24 절기를 상상해 보시라 하였읍니다.
12 진법입니다, 사람은 반만 (6) 보므로 나머지 반을 돌려주는 날개로서 바람을 일게 하는 빛 운동을
대위한다 할 수 있읍니다, 어린양의 말씀에 다라 그렇게 행하는 것중의 두번째 생명 소를 의미합니다.
소는 붉은 말입니다, 이유는 이미 말이 붉어져 있으며 첮째 부터 흰말로 운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다음에 역시 붉은 말로 상징하는데 소는 원래 붉은 색입니다. 역시 불을 지니고 있다 하는 거인데.
소는 뿔을 가지고 있는데 초식동물을 상징합니다.
생명의 출현에는 원래 맨 처음부터 초식을 중점으로 생명운동을 하는 금수가 제일 먼저 출현하였읍니다.
소는 절대로 먼저 작용하지 않읍니다, 그렇지요, 단지 누가 건드리면 뿔로 뜹니다.
생명성품들이 반만 보고 자기자율의지로 반을 행함에 대하여 뿔로 뜬다는 것을 의마하는 표상점이
소라는 사실입니다, 소는 왜 붉은가, 소와 마주하는 동물은 양입니다.
12 진법으로 표현해봅니다
말(화)
뱀 양(토)
용 원숭이
토끼 5황 닭
호랑이(사자,해태) 개
소(토) 돼지
쥐(수)
첮째날 을 지나 두번째 날은 소날이고 소와 마주하는 양날이 서로 썩이고 부딧힙니다.
토이므로 중심을 지닌 근원인데 창조된 이후 소의 초식동물이 최초로 생명운동을 하면
출현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양과 소는 뿔을 지닙니다. 뿔은 먼저 공격하는 법이 없읍니다, 만생명중에 뿔을지닌
짐승은 절대 먼저 공격을 안 합니다.
예수를 묘사하신 요한계시록을 보게되면 뿔이 일곱게가 있읍니다.
부처님이 탄신하실때 마야부인이 태묭을 꿈꿀때 하야상아를 지닌 코끼리가 입태했읍니다.
역시 뿔을 지닌것입니다.
양도 뿔을 지니고 사습도 뿔을 지니 무소로 뿔이고 뿔이 있는 동물은 항상 먼저 공격하거나 남에ㅔ 위해를
주지않는 특징이 있고, 또한 공격을 당하면 뿔 없는 초식 동물처럼 도망가지도 않읍니다.
뿔로 똑 같이 뜹니다. 반응을 분명하게 보인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주제자는 절대 미리 생명운동의 빛 운동에 상관하지 않읍니다.
이를 니이체는 말하기를 신은 스스로 인간에게 절대 개입하지 않고 신은 인간일에 상관하지도
않는다고 푸념했읍니다. 맞읍니다, 이것이 철학의 사념과 생각사고방식의 한계점에서 직관하지 못한
인간의 모순만 드러낸 변명일 뿐입니다. 스스로 사고방식이 반만 보고 행하는 것임을 모르고 하기
때문이지요.
인간의 작용점, 만 생명성품이 시비하고 간섭질 하고 작용을 함에 있어서 그와같은 행에대하여
빛 칠로 반연하여 되 돌려줄 뿐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싰읍니다.,
무엇이든지 물어라! 그러면 답 하리라...
석가모니 부처님도 먼저 무슨 말을 한 사실이 없읍니다, 하지도 않지요.
대중이 물으면 그때서야 대 답하였읍니다.
이를 말씀하시기를 열반당시 " 나는 49 년간 단 한마디도 한 사실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내가 대답한
말도 믿지 말고 오로지 법을 믿으라 " 하시고 열반 하셨읍니다.
이 지구의 축은 축미간입니다. 23,5 도로 기울어 모순률을 지니지만 소와 댱이 딱 버티고 지구의 축으로
굴린다 이 말입니다. 죽령의 정상 인 휴계실에 송아지와 양의 조형물이 있는지 아마 기독교 인이 조성한
것 같읍니다만 지극히 바른 생각점을 지니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붉은 말을 탄자는 어차피 평화는 없고 시비하는 생명성품에 대하여 큰 칼로 내려쳐서 심판을
하는 기세로 생명운동을 하는 모습의 두번째 봉인을 떼신 것입니다.
하지만 신의 기미처럼 항상 먼저 시비하고거 간섭질 하지 않는 이가 지구의 생명운동의 중심으로
축을 잡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은 未(미) 라 제일 뜨거운 지절이니 붉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월요일은 첮재봉인이고
화요일 (불의 날) 일은 둘째 봉인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6장 5절을 다시 봅니다.
5절
어린 양이 셋째 인을 떼어내자 셋째 생물이 " 이리 오너라" 하고 외쳤읍니다.
검은 말이 내 눈 앞에 보였고, 손에 저울을 든 자가 말 위에 타고 있었읍니다.
수요일이지요.
수요일은 물이비추는 날입니다, 세째생물은 누구입니까? 바로 사람입니다.
저울로 사량을 달고 사람들끼리 서로 거래를 트고 간을 보고 양을 보는 등 통수가 굴러간다 이 말이고
물은 검습니다, 빛의 광명이 퇴행되어 검은 것입니다. 사늘히 식은 잔인성 음흉한 성질을 적에 두고
행하는 생명이 사람인 것입니다, 밝은 것을 보지 못하므로 역시 온전하지 못함의 유형입니다.
이를 무엇이라 하는가. 여호아 선을 보지 못한다 하는 것과 같읍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근이며 쫄아붙어 머리를 스스로 지뜯고 살아내는고통의 연속점을 지닙니다.
삼위일체를 모르므로 3 분지 일이 죽어나가는 삶을 계속 유지하며 앞으로만 나아가므로 돌이켜 보지를
못하는 상태에 놓인 것입니다.
이를 보여주시는 것이 세째 인 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7절 오늘 하는 본 공부를 해 보기로 합니다.
7절
어린 양이 넷째 봉인을 떼어 내자, 넷째 생물이 "오너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읍니다.
When He opened the fourth seal, I heard the voice of the fourth oiving creature saying, "Come and see"
네째 생물은 독수리 입니다.
냇째 요일은 목요일 입니다, 木 은 바람입니다.
바람은 역경으로 巽(손) 風 입니다. 선거할때 選(가릴 선) 에 巽이 들어갑니다.
연상하시 이해하라고 소개하는 것이니 별 뜻을 헤아리지는 마십시요,
선택 받아야 합니다. 바람의 상징은 독수리 입니다, 아주 빛이 강렬하여 가볍기 때문에 하늘의 상승기류를
조정하고 맘대로 날아다닐 수 있읍니다, 하늘의 공간이 무신 길이 있읍니까 신호등이 있읍니까.
그러면서 눈 밝은 짐승입니다.
바람은 어떠합니까? 예측이 불가능하고 스며들지 않는 것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바람은 운명이라 이름하고
바람에 대하여 많은 서사시를 전각자들이 남겼지요.
부처님께서 한 아주머니가 죽은 아기를 데리고 와서 우리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부처님게서 이렇게 아기를 살릴 묘안을 가르쳐 주셨읍니다.
이 아이를 살릴 수가 있는 방법은 어느집이든지 일곱집을 선택하는데 그 집에서 단 한사람도 죽은 사람이
없는 집안에 쌀 한 바가만 얻어 일곱바가지만 받아오면 이 아이는 살릴 수 가 있느니라.
우리는 일곱집안 일곱집에 대하여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심판입니다.
그 어머니는 그런 집을 단 한집도 찾을 수가 없읍니다. ....-합장-
6장 8절
8절
창백한 말이 한 마리 보이는데 , 그 말을 탄 자의 이름은 죽음이였읍니다.
죽음의 세계가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었읍니다. 이들에게는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짐승으로 세상 사람의 사분의 일을 죽일 수 잇는 권한이 주어져
있었읍니다.
So I look and behold, a pale horse, And the name of him who sat on it was Death ,and Hades followed with him, And power was given to them over a fourth of the earth, to kill with sword, with hunger, with edath, and by the beasts of the earth.
참고) 죽음은 도둑넘 처럼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바람은 예측을 할 수 없으며 불가능합니다, 월요인 地 火요일 火 水요일 水 가 되어 넷째날 목요일은
바람입니다, 이를 지수화풍 4 대 라 이름할 수 있읍니다.
커터제가 빛의 심판으로 운영하는 법칙입니다.
생노병사의 사가 찾아오는 계절이 됩니다. 독수리이지요. 눈 밝은 심승이 날개짓을 하며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면
죽음을 운용하여 반을 돌려주는 것인데 커터제입니다, (QUART) ,
전쟁, 기근, 질병, 짐승 의 4 군제 중 하나로 선택되어져 죽은 것입니다.
6장 9절
9절
어린 야잉 다섯째 인을 떼어 내자 , 몇몇 영혼들이 제단에 놓여져 있는 것이
보였읍니다, 이 용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고 진실된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영혼들이었읍니다
When He opened the fifth seal, I saw under the altar the souls of those who had been slain for the word of God and for the testimonywhich they held.
참고) 금요일입니다, 金 은 무엇인가. 영원하게 변질하지 않는 O 의 영생자로서 선택받은 자 들입니다.
다섯째라 모세오경을 지킨 자 들로 진리를 위해 순교하여 희생되고 사람을 실천한 선택된 자 들을
말 합니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코란경에서는 금요일을 안식일로 정합니다, 때로는 토요일도 함게 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금요일입니다.
그러므로 금요일은 속간에서 항상 심판의 날이라고 지정하곤 하지요.
만물의 영장이 우리 인간이 비춤을 받는 날이지 비추는 날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빛의 온전한 7 을 행하는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금성을 바라보고 (빛 7) 성불하셨읍니다.
희생과 사랑 그리고 온전한 O 을 믿음으로서 행함 모든 자들인데 순교를 당하였으므로 , 상대세계에
속한 인간으로서는 이러한 폐해나 희생은 당연한 코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과율로서 예수께서는 이를 포용하시고 천국의 보좌 옆에 앉히시게 됩니다.
10절
이 영혼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읍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주님, 저희들을
죽인 자들을 어느 때에야 심판하시고 벌하실 것입니까?
And they cried with a loud voice , saying , "How long , o Loud,holy and true, until , you judge and avenge our blood on those who dwell on the earth?
참고) 신에게는 피조물인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먼저 바치고 요구해야 들어주십니다.
신은 반응을 보이시지 먼저 작용하시지 않는 까닭입니다.
이 기본적인 원리도 잘 모르고 있으므로 노바닥 신들이나 부처님께 자기 집안과 식구 일신만 먼저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유형의 기복신앙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식구라도 자기 자신 생명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을 빌어주는 것과 같으므로
틀리지는 않다 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항상 자타가 유리한 쪽으로 행해야 합니다.
또한 신앞에 빌때에는 무엇인가 먼저 바쳐야 합니다.
사랑과 헌신, 그리고 진리를 위하여 생명까지 순교당한 자 들은 당당히 이렇게 받쳤으니 신께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원짜리 달랑 한장 복전함에 넣어놓고 수억원 벌게 해 달라는 가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됩니다.
이러할때에는 그냥 말 없이 정성을 삼아 복전에 보시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믿읍니다.,
하나님의 성정의 성경말씀을 굳게 믿읍니다 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십부주를 하던지 하는 것이 좋읍니다.
11절
그러자 그들에게 흰 옷을 한 벌이 각각 주어졌읍니다.
그리고는 아직도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할 형제들이 조금 더 있으니,
그때까지 잠시 동안 쉬라는 말씀이 들여왔읍니다.
Then a white robe was given to each of them: that they should rest a little
while longer until both the rumber of their fellow servants and their brehtren, who would be killed as they were, was completed.
참고) 상대세계에서 진리를 구축하고 사랑과 희생을 실천한다는 것은 시간의 경과로서 마치 인과율을
행하더라도 시간상 차이를 지니게 됩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지니면서 주변을 돌아다 볼때 헌신적인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 어떠한 의미의 영광을 돌려 받지 않는것도 목격할 수 있는 실제의 예를 말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인과율로 그와 같음이 반연하여 돌아오게 되어있음이니.
이를 위하여 흰 옷을 (영혼의 순수한 자라는표식) 인정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함의 O 께서 O 을 징표로 주신다 할 수 있는 대목이며 이를 다섯번째 금요일의 O 의 온전함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며 심판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네 생물이없읍니다.
* 흰옷이라, 청정함을 의미합니다, 인과율을 약속하여 희생함의 , 진리으 계율을수호하는 댓가로
피해하 희생을 당한 인과율을 이미 예약해서 O 임을 보장한다는 표식이 흰옷을 주심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피해와 희생의 순교를 행함- "그만한 댓가를 인과율로 받음 = 청정함, O 이 되는
이치입니다. 잘 궁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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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하여 요한계시록 6장 12절 부터 소개하겠읍니다. 복습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못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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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 더 많이 연구 하고
알고 하는데 믿음도생기길 바래 ~^^~
고마워., 마음새길께... 금영이가 친구라서 고맙다. 건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