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부모도 참여했다 다들 15분이 참석하셨는데 아버지로 추측되는. 남자2분이 참석하셨다
금년들어 대구교구에는 6분의 새사제가 탄생했다
오래전에는 신부님이 복사를 남자어린애만 선호를 하였는데 이는 그들가운데에 분명 사제성소자가 나올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 아이들이. 사제가 되었든지 수도자가 되었든지 성소자가 되기위해. 중요한것은 부모의 신심이 중요하게 되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중장년층인 30-40대를 본당에서 만나기가 어렵기에. 그들 가운데 성소자가 나오는데 난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일학교과정을. 마치는데도 난관이 있는데, 그들이 학업으로인해 어려운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내어야하는 피곤함이 이를. 쉽지않는다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볼때에. 청장년층 특히 남성의 역할을 재조명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본당운영에 있어서. 청년의 역할을 새롭게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본당에서 청장년층을 만나기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을것이다.
30-40대의 신도수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첫영성체교리를 받을 아이들을 기대하기도 어렵거니와 결국 성소자나. 주일학교 교사를 만나기가 어려워 악순환의 고리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2004-2017년사이에 경기도의 70만중소도시 안산에 살았다 과거 박정희정부때 중소기업들의 공단이 조성된 도시로 외국근로자들이 몰려들어서 천주교인들이 많은 필리핀근로자 들도. 주변에 모여 살았다
제가 다니는 성당도 그 공단에 멀지 않는 곳에 있어서 저의 성당을 빌어서 외국인신부가 오셔서 필리핀신자들을 위해 따로 미사를 드렸다 간혹 영어를 할줄 아는 교우들과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렇지못한 이들과는 눈인사로 대신했다
그때에는 아이들도 많았고해서 늘 주일학교미사는 시끄러웠다. 우리구역내에는 초등학교를 비롯. 여러학교가 있었고 대단지 고층아파트도 있었지만 연립이나 다가구주택들도 있었다
안산은 아주 특이한 지역이다 서울서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내려와 살다가 기반을 닦고 재기를 성공하게되면 서울로 이사가는 이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대략 40여km떨어진곳이지만 대략 십여분만 걸어가면 전철역을 만날수 있고 큰길가에는 서울 강남으로 가는 버스, 인근도시 수원 안양 광명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전철이 끊어진 시각이 되면 부녀자들을 집으로 모셔가기위한 경찰차가 대기하기도 한다
저의가정도 제가 직장을 잃어 집안재정이 나빠서 서울에서 살다가 안산변두리로 내려온것이다 등록신자가 3천여명 그리고 주일미사참석수가 그수의 30%인 천여명이 채되지 않지만 주변 다른 본당보다 나은편이라했다
그곳에 간지 1년이 지나 시청에서 낮은급여를 받아도 10여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청천주교교우모임에 참여 할수가 있었고 그때는 시청안에 어린이집이 있을 정도로 어린이들이 많은 동네였다.
그이후 안산을 떠나기 몇년동안 정년퇴직하고 아내가 어렵게 돈을 벌기에 골목안의 연립에서 몇년살았다. 그런데 연립이 성당담과 붙어있어서 미사음악소리나 성당마당에서 하는 교우들의 대화소리는 제방에서 누워서 들을수가 있었지만 자주 성당을 갈수가 있어서 행복할때였다
그작은성당이 있고 가난한동네 이지만 사제성소자는 꾸준히 나왔고 어떤해는 몇분의 새사제도 만날수가 있었다 아이들과 청년들로 인해 성당은 활기가 차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