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목숨
종강을 하고 학기말 시험도 끝이 났다. 흔한 비유로, 돌아다보면 바로 어제 같은데 한 학기가 지나갔다.
날짜로 따져보면 3월초부터 6월말에 이르는 넉 달 동안, 120여 일의 제법 긴 기간, 그것은 일 년 열두 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시간의 낭비는 인생의 낭비, 인생의 낭비는 목숨의 낭비, 목숨의 낭비는 사람과 하늘 앞에 큰 죄를 짓는 일’ 입 밖으로 중얼거리면서 한 학기에 이별을 고한다.
비는 주룩주룩 오고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 비가 올여름의 장마로 접어드는 전주곡이라고 말한다. 이번 비는 논농사에 꼭 필요한
약비다.
모심을 때가 되면 적당히 물을 내리고 걷어 들일 때가 되면 또 하늘이 먼저 알아서 쾌청한 가을 날씨를 주는 천혜의 우리나라 날씨. 그러나 이것이 과연 글자 그대로 천혜일까 모르겠다.
불모지 사막에서 자연의 조건을 핑계 대지 않고 스프링클러로 물을 대어 전천후 농사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꿈 같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 혜택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 모르겠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고 했는데 우리는 필요하여도 발명하지 않았다. 필요를 사람보다 먼저 알고 있는 하늘이 척척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을러진 사람들은 비가 올 때는 고마워하지 않다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하늘을 원망한다. 하늘을 원망하고
기우제를 지내고 어쩌고 하다보면 또 영락없이 비가 왔다. 그러다가 비가 필요 이상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다시 하늘을 원망했다. 해마다 이런 일을 반복하였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하였다.
사람들은 어떻게 인력으로 이를 극복해야 하는가를 궁리하는 데에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허비하였다.
가물면 갈라진 논바닥이 신문에 나오고. 장마가 지면 떠내려가는 가축들의 사진이 신문에 났었다. 이웃돕기 성금을 걷고 사랑의
열매라는 것을 사서 가슴에 붙이고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삼았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 과학상을 받지 못한 초등학교 학생이 화장실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걱정없는 사람들이 되었는가?
상 한 번 받지 못했다고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포기할 만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되었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유약한 정신의 무리가 되었는가? 애들이 요구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대령하고 애들이 필요할 것 같으면 부모가 먼저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항력도 의지도 없는 천하의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