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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알바트로스
제58차 정기합평회
- 2024. 2. 15 -
순서 | 제목 | 작가 | 합평 담당 |
1 | . 이렇게 산다. | 김아가다 | 안연미 |
2 | . 미망 | 김정래 | 엄옥례 |
3 | . 엄마꽃 | 김 경 | 오수미 |
4 | . 전나무 숲에서 | 김영희 | 옥경자 |
5 | . 신의 한수 | 김정실 | 이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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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산다/ 김 아가다
1) 산방으로 이소한 지 벌써 다섯 달이다.마을에서 사귄 친구 그녀의 이름은 레나이다. 레나는 마음이 너그럽고 인심 좋은 사람이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나를 위해 산책도 동행해준다. 그 뿐 아니라 산에서 채취한 좋은 먹거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이웃 노인 방문할 때도 나를 데려 간다. 이런저런 재미를 보태어 세상살이 살아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 비석골에서 수암골까지는 구룡산8부 중허리에서 반 마장의 거리다. 산 너머 수암골에 혼자 사는 순자 할매가 있다. 할매는 백수를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허리가 꼿꼿하고 옷차림도, 몸가짐도 정갈하다. 그 집 황토 마당은 나뭇잎이나 찌꺼기 하나 없이 말갛다. 정리정돈이 잘 된 순자 할매의 비가림 하우스는 수암골 어르신들의 쉼터다. 근동에 사는 노인들이라고 해도1Km이상 흩어져 있지만 실버폰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전화로 안부를 묻고 세상살이도 나누며 삶의 지혜도 공유한다. 예를 들면 옻을 넣어 만든 된장은 속이 편안하고 맛이 좋다든가, 막장은 고추씨를 갈아 넣어야 칼칼하다는 정보들이다.
3) 쉼터에 모이면 노인들 나름대로 이해한 정치 이야기를 꺼낸다. 갑론을박 아는 만큼 큰소리 내다보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토라져서 몇 달 동안 하우스를 떠나기도 한단다. 노인들이 뭘 안다고?이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저마다 애국자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구동성 동시다발로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좌파,우파.이념의 색깔은 분명하다. 생활보호대상자의 자격과 노인복지 시스템을 어느 당에서 잘하느니, 못 하느니 하다가 토론의 장이 막을 내린다. 언제나 분란은 순자 할매의 저지로 마무리 된다. “고마 하자!”백발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할매의 리더십은 젊은이를 능가한다. 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가 고맙고 소중해서 서로 아껴주어야 한단다.
4) 순자 할매의 놀이터에는 지켜야할 규칙이 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주전부리를 꺼내놓고 해가 질 때까지 놀다 간다. 모여서 놀되 뒷담화하지 않기, 정치 이야기 하지 않기. 노인들이 무슨 정치를 논할까 의문스러웠지만 단박에 눈치 챘다. TV다.요즘은 노인들의 의식수준도 상당하다. 시골노인이라고 함부로 대했다가는 큰코다친다. 귀촌한 지식인이 더러 있어서 A채널 시사프로를 꼭 시청한단다. 이유는,세상일 모르면 대화에 끼일 수도 없고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은 대여섯 명이 모여도 소란스럽게 수다를 떨지 않는다.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날 때 까지 들어준다는 사실이다. 나름대로 지성인이라 자칭하는 내 친구들만 해도 참새방앗간처럼 서로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재재거리며 시끄럽다. 그런데,수암골 어른들의 언행을 보고 들으면서 왜, 어르신이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5) 레나의 소개로 하우스에 처음 들렸을 때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순자 할매가 발이 너무 아파 걷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를 보고 대뜸 왜 그 소리를 먼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양말을 벗어보라고 했다. 발이란 신체 중에서 제일 아래쪽에 있고, 땀 냄새 등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지 않은가. 노인의 발은 뽀얗고 가느다랬다. 발을 보는 순간 외씨버선코가 연상되었다. 중국여인들이 전족으로 발을 조여매고 살았듯이 조선의 여인들도 버선 속에 자신을 묻고 살았다. 형식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했던 순자 할매의 삶이 버선 밖을 뛰쳐나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단다.
6) 신체 아래 있는 발을 천하다고 해야 하나, 귀하다고 해야 할까. 땅 위에 서 있는 수많은 발들이 지구별을 지탱하고 있으니 어찌 귀하지 않으랴. 그 귀한 발을 두 손으로 쥐고 앞뒤로 꺾어가며 주무르기 시작했다. 발바닥에 움푹 들어간 용천을 손톱으로 지그시 눌렀다. 발가락 하나하나 마사지하면서 자극 했더니 질겁하면서 비명을 질렀다.그만둘까요, 물었더니 시원하다면서 계속 하라했다.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정식으로 몸의 혈자리를 배운 적은 없다. 오랫동안 몸이 좋지 않아 한의원에 들락거렸더니 그동안 들었던 풍월이 체화되어 머릿속에 저장되었나보았다.
7) 발바닥에 몸의 우주가 분포되어 있다. 몸이 찌뿌둥하면 원통 대나무로 발바닥을 두드리면 피로감이 사라진다. 그 느낌으로 발을 다독다독 쓰다듬고 혈자리를 꾹꾹 눌러주었더니 노인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레나가 방문한다고 연락을 해서 그런지 순자할매가 고구마와 옥수수를 쪄 놓았다.고구마는 달달하고 옥수수는 고소했다. 할매가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치료비란다. 보건소에 고발 하면 다시 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할매 말씀이 더 웃겼다. “의료법 위반이가?”한바탕 너스레 떨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8) 순자 할매는 말벗이 없고 무료하면“선생님 왕진 좀 오소,발이 또 아프요.”한다.못이기는 척 우리는 또 산을 넘는다. 할매는 내가 가면 공손한 절을 한다.남의 더러운 발을 맨손으로 떡 주무르듯 살갑게 만지는 사람은 처음이란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끝도 없이 자꾸 표현하는 할매가 더 고맙다.
9) 돌팔이의 치료법은 사랑이다. 예수님도 수난 전날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면서 새로운 계명‘서로 사랑하라’하시지 않았던가. 미천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실천하는‘이웃사랑’이다.
미망(未忘) / 김정래
1) 지나간 세월은 늘 아름답게 기억되어 순수를 잃어 가고 있는 오늘에 청량(淸亮)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 시골에서 소꿉장난하면서 정을 나누었던 Y는 사랑을 영글어 보지도 못한 채 가버렸다.
2) 초가 이십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갈뫼라는 산촌에서 나는 Y와 앞뒤 집에 살았다. 봄볕이 살포시 내려앉는 양지쪽 담장 밑에는 소꿉놀이 신혼살림이 깨가 쏟아졌다.소꿉질에는 언제나 나는 신랑이 되고 Y는 신부가 되었다. 마당가에는 모이를 쫓고 있는 어미 닭을 종종걸음으로 따르는 병아리들의 노란 털이 봄 햇살에 뽀송뽀송했다.
3) 마을을 안고 있는 뒷산에 참꽃이 꽃망울을 터뜨려 온 산이 홍조를 띄면 대지가 봄기운에 술렁였다. 나는 Y와 참꽃의 유혹에 끌려 산으로 올라갔다. 빨간 꽃잎을 한입 물고 잘근잘근 씹으면 쌉싸래하고 달짝지근한 꽃물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상큼한 봄맛이었다. 나보다 참꽃을 많이 꺾어서 안고 내려오던 Y가 넘어지면서 발목을 삐었다. 아프다고 울면서 걷지도 못하는 Y를 업고 산에서 내려왔다. 어둠살이 내리는 저물녘에서야 Y의 집에 이르자 아프다고 또 울음을 터뜨리는 Y를 어머니는 괜찮다, 밥 먹으면 낫는다고 안심을 시켰다. Y가 다친 것이 내 탓인 것 같아 괜히 죄를 지은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
4)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미루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모래사장을 지나 강을 건너가서 면 소재지에 있었다. 학교는 나의 마음을 마냥 설레게 하고 새롭고 신기한 것을 가득 안겨 주었다. 학교생활은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내가 입학하던 날 한 살 아래 Y는 나도 학교에 보내 달라고 어머니에게 떼를 쓰다가 혼이 나서 하루 종일 울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Y는 오빠 오늘은 무엇을 배웠어, 재미있었어, 하고 따라다니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5)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개울을 건너 모랫길에 이르니 Y가 쪼그리고 앉아서 가지고 놀던 공깃돌을 던지고 일어나 “ 나, 여기서 오빠 기다렸다 ” 면서 활짝 웃었다. “ 빨리 집에 가자 ” 고 하니까
“ 다리 아파 ” 하면서 Y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도 가야 한다니까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그러고는멍하니 서 있는 내게 “ 나 업어줘 ” 하면서 두 팔을 벌렸다. 나는 Y를 업고 모래가 깔린 길을 걸었다.
6) 지난 초겨울 나목으로 갈아입고 움츠리고 있는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봄볕이 반짝이며 내려앉았다. Y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내 귓가에 입을 대고 “ 오빠, 나 빨리 커서 오빠에게 시집갈래, 그때도 업어 줄 거지 ” 하고 물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에 대답도 못하고 앞을 보고 걷기만 했다. 내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제야 Y가 “ 나 내려줘, 이제 다리 다 나았다.” 면서 모래사장을 폴짝폴짝 앞질러 뛰어갔다.
7) 나는 멀리 객지로 나가 상급학교에 다녀야 했다. Y는 모랫길까지 따라 나와 울먹이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방학이 되면 집으로 왔다. 언제부터인가 Y의 얼굴에 꽃물이 들었다. 내가 건네주는 소월 시집을 수줍게 받아 드는 Y의 모습이 예쁘다고 느껴졌다. 소꿉장난하던 철부지에서 벗어나 성숙한 처녀로 다가와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8) 내가 입영열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오던 날 그녀는 동생과 플랫폼에 나와 “ 오빠 잘 갔다 와 ” 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한 달에 두 번씩 편지를 보내왔다. 내무반 구석에 앉아서 읽어 내려가는 그녀의 사연에는 산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하나 전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 오빠 보고 싶다, 빨리 와 ’ 로 끝을 맺었다.
9) 병영생활은 평상시 겪었던 고통 따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겨운 나날이었다. 그녀의 편지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소식이 끊어졌다. 깜깜한 밤 소총을 메고 보초를 서면서 그녀를 그리며 바라보는 산 넘어 남쪽 하늘은 별빛마저 흐리고 막막하기만 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왜 편지가 오지 않는가? 당장 달려가고픈 충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곤 하였다.
10) 그녀는 부모의 강요로 시집을 가야 했다. 삼대독자 외동아들에게 시집을 간 그녀가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과 아픔을 가라앉히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가정을 꾸렸다. 멈출 줄 모르고 달려가는 세월에 밀려 숨 가쁜 일상이 그녀를 가슴 속 깊이 묻어 두게 했다. 어느덧 내 귓가에는 서리가 내리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살아 온 훈장인 양 그어졌다.
11) 이른 봄날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아련한 기억을 따라 갈뫼를 찾았다.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눈치를 챈 집안 동생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가 층층시하의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이제 허리 펴고 마음 편히 살아보려는데 몹쓸 병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동생이 문병을 갔을 때 오빠를 만나면 내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하고 ‘미안했다’는 말만 전해 달라 하더라고 했다.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허탈한 발걸음으로 갈뫼를 떠나왔다.
12) 미루나무가 늘어선 모래밭 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오빠 나 먼저 간다.” Y가 아지랑이 속으로 나풀나풀 사라지고 있다. 나도 그날의 봄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쫓아.
엄마 꽃/김 경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이 늦은 밤에 어쩌자고 저리도 사나운 울음을 만들어내는가. 바람 소리에 가슴이 따끔한 것은 아무래도 아까 낮에 엄마한테 갖다 둔 꽃 때문일 거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밖을 내다보지만 11월의 바람은 심술궂은 악동처럼 어둠 속을 마구잡이로 휘젓는다.
삼우제를 지내고도 내내 마음이 어수선해서 아까 낮에 언니랑 둘이서 산소엘 갔다. 임종을 지키고, 울고, 장례를 치르고 한 일들이 꿈결인 듯 스쳐 갔다. 산소 가는 길에 먼저 꽃집을 들렀다. 살아생전 고운 것을 그토록 좋아했던 당신을 위해 흰 국화가 아닌 연분홍과 진분홍이 섞인 장미 다발을 골랐다. 엄마와 했던 오래전 약속을 지키는 일은 즐겁기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가족 묘원으로 단장한 산소는 그 옛날에 아버지가 기와집을 다시 지었을 때처럼 넉넉하고 평화로웠다. 장례식 내내 온화한 날씨가 당신의 성정을 닮았다고 한 조문객들의 말은 여전히 유효해서, 결 좋은 햇빛과 푸른 숲과 맑은 하늘이 엄마의 유택을 감싸고 있었다.
“엄마 좋아하는 꽃 사 왔어.”
일부러 명랑하게 말하고도 절을 할 때는 또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니 무섭지는 않겠다고 위안하며 언니와 나는 돗자리를 펴놓고 한참을 엄마 곁에 누워 있었다. 마치 우리가 무시로 뒹굴던 엄마의 방인 듯 편안했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와 부드러운 바람결이 엄마와 나누는 대화인 양 착각도 들었다.
엄마는 사십 후반에 남편을 잃고 억척같은 삶에 내몰린 비운의 여인이었다. 큰언니만 출가한 터여서 주렁주렁 치마 끝에 매달린 자식이 아직 여섯이나 있었다. 아버지가 열심히 장만한 논밭은 당신 병 치료에 야금야금 들어가고 남은 땅은 오롯이 엄마의 노동을 볼모로 잡았다.새벽같이 들에 나간 엄마는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해거름에 온몸에 흙을 묻힌 채 대문을 들어서는 엄마 손에는 언제나 들꽃 한 묶음이 들려있었다.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과 대조되던 노랗거나 붉거나 하얀 꽃들은 시골 아낙에게 사치인 듯 어울리지 않았다.어린 나이에도 그것이 늘 의아했다.
엄마의 꽃병은 이가 빠진 작은 항아리가 유일했다. 마루 한쪽의 커다란 궤짝 위에 놓여 메말라 가던 꽃을 엄마는 좀체 치우지 않았다. 그중에서 가을이면 꺾어오던 갈대가 가장 성가셨다. 마루 닦는 일은 언제나 막내인 내 차지였는데 바싹 마른 채 하얗게 핀 꽃가루들이 풀풀 마루를 어지럽혔다.
언젠가 내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었다.
“엄마는 왜 자꾸 꽃을 꺾어 와?”
“예쁘잖아. 후에 내가 죽거든 제사상에 음식 한 가지 덜 올리고 꽃을 놓아다오.”
“알았어,내가 꽃 당번할게.”
장난처럼 응수해놓고도 그때 처음으로 엄마도 여자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시골 마을은 아파트촌으로 둔갑했다.그 바람에 농사에서 해방된 엄마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온전한 여자의 삶을 지향할 기회를 얻었다.날마다 꽃이 피는 화분을 집안에 들였고,좁은 베란다가 꽉 차면 알록달록한 조화들을 사 들고 와서 식탁 위에,텔레비전 옆에 빈 구석이 없을 만큼 치장하기에 바빴다.그뿐 아니라 뽀얀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고,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스카프를 바꾸어 가며 자신을 드러냈다.어디에 저토록 엄마의 여성성이 도사리고 있었더란 말인가.채워도 채워도 모자라는 허기인 듯 엄마는 아름다움에 집착했다.
구십 넘도록 엄마는 곱게 화장하고,옷을 차려입고 시장으로 꽃집으로 전전했다.무럭무럭 꽃을 피워내는 싱싱한 화분들을 당신의 분신인 양 자랑스러워했다.우리 자매들은 엄마 집에 갈 때마다 한 포기씩 분양해 주는 목베고니아나 산세베리아를 들고 와 화분에 심었다.덕분에 엄마표 화초가 우리 집에도 점점 늘어났다.
날씨는 무슨 변덕에 이 가을밤을 비바람으로 온통 어지럽히나.휑한 아스팔트 거리며 아파트 마당에 마구잡이로 흐트러진 낙엽들이 을씨년스럽다.가로등만이 우뚝 서서 희미한 빛을 걱정스레 뿜어내고 있다.엄마 유택에 놓아둔 꽃이 바들바들 떨고 있겠다.아니 바람을 이기지 못해 이미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른다.엄마는 이 어두운 밤에 잡히지도 않는 꽃을 향해 얼마나 헛손질을 하고 있을까.
돌이켜보니 엄마의 유일한 즐거움은 혼자서 은밀히 키우던 내면의 꽃이었지 싶다. 촌부라서,어른이라서,엄마라서 차마 말할 수 없었을 뿐 스스로 꽃이길 한평생 염원했다.꽃같이 살고 싶었던,내 인생에서 가장 가까웠던 한 여자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밤이 길기만 하다.온갖 화초들과 화려한 조화들이 작은 아파트를 다 차지해서 내 핀잔을 적잖이 들었던 엄마,그래도 서운하다고 말 한 번 못하고 그저 "예쁘잖아."하고 웃던 당신을 이제야 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늦은 것일까.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 구경하는 엄마를,노모차를 끌고 길거리 노점을 기웃거리는 엄마를,짜장면집과 신발가게를 함께 드나들었던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 이렇게나 미안할 줄 몰랐다.세상이 아무리 막아도 한 사람을 지탱하는 자아는 섣불리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는 가르쳐 주고 갔다.백 번이고 천 번이고 나는 당신의 꽃 당번이 된 것이 다행스럽다.
전나무 숲에서/ 김영희
1.월정사 일주문을 지나면 전나무 숲이 펼쳐진다.천년의 숲길이다.황톳길을 사이에 두고 아름드리 전나무가 터널을 이룬다.숲길에 들어서니 세속에 물든 찌꺼기가 한순간에 녹아내리는 듯하였다.울창한 숲의 기운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2.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은2011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았다.우리나라 최대 전나무 숲이다.아름드리 전나무1,700여 그루가 사람이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해발700미터에 자리하고 있다.
3전나무 숲길은 처음이었다.언젠가,잡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대산의 기운을 받으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숲캉스를 즐기기 위해 신발과 마스크를 벗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자연과 하나가 되기로 했다.숲길 옆으로 오대천 계곡이 나란히 흐른다.돌에 부딪히며 흐르는 물소리의 청량함은 망중한의 풍경에 운치를 더했다.
4.주변을 둘러보니 가족,연인,친구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전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한껏 마시기 위해 모두 마스크를 벗었다.코로나로 얼굴 드러내기가 조심스러웠던 일상이 이곳에서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여겨졌다.사람들은 맨발로 발바닥의 감촉을 느끼며 걷다 한쪽에 마련된 족욕을 즐기며 한담을 나누기도 했다.
5.숲이 뿜어내는 기운 탓인지 사람들의 모습은 편안했다.개개인의 표정은 밝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에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스쳐 가는 얼굴들은 이 순간을 오래 만끽하고 싶다는 느긋함이 묻어났다.가족과 함께 온 아이들은 환하게 스며드는 햇살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폴짝거리며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다.
6사람마다 표현되는 분위기가 다르듯,전나무도 생김새가 제각각이다.쭉 뻗은 울창한 나무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손잡고 어울려 살아간다.수피는 잿빛을 띤 암갈색으로 거칠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신비스럽고 멋진 모습이다.전나무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나무다.때가 되면 스스로 가지를 떨쳐 버리고 햇빛을 받으며 위로 자란다.외대로 자라지만 흔들리거나 부러지지 않는다.크고 작은 나무들이 거리를 두고 무리 지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7전나무의 모습과 달리 세상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 것 인양 여기며 살았다.남편과 의견 차이로 목소리를 높였다.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나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타협하지 않겠다고 몰아세웠다.이러한 마음의 산물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부메랑처럼 나에게 되돌아왔다.달리기를 멈추고 일상과 거리두기를 하며,평소 찾아 헤매던 것이 여기에 있음을 깨달았다.
8삶에서 진정한 가치 추구는 무엇일까 되뇌어 보았다.차분한 숲의 분위기에 잡념이 사라지고 단순해질 때 욕구를 넘어선 들뜸이 나를 감쌌다.숲길을 걸으며 내 안의 아집과 잘못된 편견을 내려두고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9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걷고 있는데 쓰러진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전나무 숲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이(약600년)된 나무다.‘할아버지 나무’라는 이름 붙여졌다.생명을 다한 나무는 모든 것을 다 비워내고 속이 텅 비어있다.나무는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숲의 일부가 되어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10길옆의 우거진 숲으로 들어섰다.소임을 다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누워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쓰러진 나무에 초록 이끼가 자리를 잡고,버섯이 피고,벌레와 곤충들이 집을 짓는다.숲에는 멸종위기의 야생 동,식물들이 터전을 잡고 더불어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다.울울한 숲이 그늘을 드리운 자리에 벤치를 설치해 걷다 인간이 자연에서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 준다.
11청량한 바람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숲이 뿜어내는 좋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한 걸음 내딛는 걸음마다 에너지가 실렸다.숲은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었다.바깥은 여름 볕이 담뿍 스민 날씨지만 울창한 숲에서의 산림욕은 오이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숨통이 트였다.키 큰 나무가 즐비한 숲은 푸릇푸릇한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을 위로해 주었다.
12오대산의 바람만 마셔도 세심의 경지를 누린다고 한다.깊은 산에 자리한 전나무 숲길을 걸으니 건강해지고 마음은 더없이 청정해진 듯하다.원시림에 묻힌 듯 안온함이 감도는 이곳은 누구나 걷기 좋아 오래된 숲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준다.
13전나무를 통해 대자연의 순환을 온몸으로 느끼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하나의 줄기로 곧고 바르게 자라는 전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살아갈 때,나무는 더 굵고 강하게 자라는 바탕이 될 것이다.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전나무 숲에서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신神의 한수/ 김정실
1.어떤 생명체든 태어남과 죽음은 반복 되는 순환이다. 이러니 태어남도 축복이며 죽음 또한 축복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태어나고 어느 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은 달라진다.
2.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서울 사대문 안에서 아버지가 변호사인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4명의 아들만 있기에 딸이 있어야 노후가 즐겁다면서 공들여서 낳은 딸, 공주다. 그녀의 돌 사진을 보면 하얀 원피스에 예쁜 래스가 둘러 있는 모자를 쓰고 있다. 핍박 받는 일제 강점기에 서민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옷차림이다.
3.그녀는 자랄수록 아름다웠다. 오빠들은 그녀가 마릴린 먼로를 닮았다고 치켜세웠다. IQ가 높아 하나를 가리켜주면 그 이상을 앞 질려갔다. 모든 것이 갖추어지면 신神이 시샘을 한다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1950년 6.25 일요일 새벽 북한의 남침은 서울을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4.그녀의 나이 겨우12살 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둘째 오빠와 어린 남동생 구석 九錫이를 대리고 긴 피난길에 나섰다.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에 먹을 것이 떨어져 밥 동냥을 했다고 했다. 그 곳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신神이 하늘로 불렸다. 그녀는 멍든 마음을 숨기고 겨우 석 달 만에 대구에 도착해 먼저 내려온 아버지와 오빠들과 새로운 생활의 날개를 폈다. 오빠들은 물론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아끼면서 자랑스러워했다.
5. 초 ․ 중· 고 학교생활에서 성적은 언제나 1등자리를 차지했다. 그녀는 반장으로서 요즘 말하는 리더로서 활동적이었다. 중 ․ 고등 교사로서 생활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녀의 열성적 노력도 있었지만 IQ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을 다시 보여주었다.
6.영문과 교수로서 퇴임을 한 뒤는 봉사 활동 차원에서 베트남의 교환 교수로 자신의 삶을 또 다시 새롭게 마음 것 펼쳐나 갔다. 마음껏 자신을 펼치는 그 순간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듯이 그녀는 서울역 내에 세워둔 간판에 발이 걸려 슬라이딩을 했다. 넘어지면서도 머리를 다칠까봐 팔을 쫙 뻗어 머리를 보호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7.그녀 말대로 머리는 말짱한데 생각지도 않은 척추에 이상이 왔다. 두 차례나 수술을 했으나 지금은 바깥출입이 조금 힘든 상태다. 머리는 옛날과 다름없이 팽팽 잘 돌아가는데 걷는 것에 불편함이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던 신神께서 마지막 한 수를 어디에 어떻게 쓸려고 잡아 두었는지 궁금하다.
8.사람은 생활해 가면서 알게 모르게 죄罪를 짖고 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어서 그 죄 값은 지옥으로 떨어져 치른다고 한다. 하지만 대체로 살아서 보속補贖으로 그 값을 다 값아 내는 사람은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고 했다.
9.바로 이들이 몇 년씩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면 좋지 않은 일로 경찰서나 법원을 들락거리는 것이다. 제일 높은 큰집에 들어가는 것도 법적인 벌을 받는 것이지만, 다른 한 면으로 보면 정신적인 보속으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갖게 된다.
10.그러고 보면 그녀가 12살 때 50세의 어머니는 대단한 노인으로 생각했다. 스스로 나이 들어 생각하니 그 나이는 여인으로서 최고 절정기로 아름다운 수繡를 놓을 시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어머니와 사랑하고 아끼는 막내 동생, 밥을 동냥했다는 그 아픔을 아무도 모르게 마음 한 자락에 품고 살아온 고통이 있었다. 이제 그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잠시 잠간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11.그녀는 이제 새롭게 다시 일어 설수 있는 길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 우수한 두뇌를 더 많이 사회에 봉사하라고 잠시 동안 병마와 싸워 이겨내라는 지혜를 터득하게 한 것 같다.
12. 이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그녀는 12월을 잘 마무리해서 새해에는 제 빛으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옛날 같지는 않겠지만 어린이의 첫 걸음으로 시작이 반이되어 웃음의 날개를 활짝 펼칠 것을 믿는다. 아니 일어 설 것이다. 남겨놓은 神의 한 수를 모두 써야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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