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北岳山)
모임장소인 경복궁역 3번 출구는 늘 인파가 붐비는 곳이다.
오늘은 토요일 청와대 관람객들 때문에 더욱 혼잡하다.
인적이 드믄 청와대 정문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남녀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품속으로 파고드는 3월 꽃샘추위에 으스스한 느낌이든 다.
청와대 담장을 끼고 올라가는 등산로는 경사가 꽤 급한 편이다. 우리 일행 말고는 등산객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중간 중간 쉼터에서 땀을 식히며 마시는 커피향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한낮이 되니 화창한 날씨에 봄볕이 따스해지고 추위가 가시는 것 같다.
30여 분 남짓 걸으니 북악정 쉼터가 나온다. 휴게소는 등산객으로 북적인다. 쾌청한 봄 날씨에 펼쳐지는 서울의 도심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발아래 있는 청와대 건물과 경복궁의 널찍한 지붕이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
정면으로 남산타워가 선명하고 왼편 멀리 잠실에 있는 롯데타워가 가물가물하다. 오른 편으로는 관악산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가 오늘은 없는지 광화문 거리의 자동차 행렬이 시원하게 달린다.
북악 정으로부터 올라가는 등산로는 나무로 조성된 길이라 걷기가 수월한 것 같다. 꼬불꼬불 올라가는 등산로 아래로 아슬아슬한 낭떠러지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비행기를 탄 듯 아찔하고 어지럽기도 하다.
청와대 전망대 포토라인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30여 분 가까이 걷다 보니 다시 북악정 휴게소가 나타난다.
청와대 춘추관 방향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평탄하고 걷기 편했다. 옛날에는 군인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허가가 있어야 다니던 등산로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되고 지금은 통행이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다.
북악산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의 신망이 두터웠던
무학 대사에 의해 왕가의 기운을 받은 명산으로 칭송된 곳이다.
산 아래 조선왕조의 궁궐을 짓고 도읍을 정하게 된 것이다.
1394년(태조4년)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축성하였으며, 대한민국에 들어서 대통령 집무실인 경무대도 이곳에 들어섰다. 훗날 경무대는 청와대로 바뀌었다.
북악산은 높이가 342m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에 인왕산, 남쪽의 남산, 동쪽의 낙산과 함께 서울의 4대 산이다. 북악산은 경복궁의 주산으로 풍수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산이다.
북악산은 위엄(威嚴)있는 산봉우리가 청와대와 경복궁의 배경이 되어 장관을 이루는 한편 청와대를 감싸고 있어 산 전체가 요새화 되어 있다.
북악산 근처에 ‘1.21사태 소나무’라는 게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 부대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서울에 침투했다. 무장공비들은 우리 군경과 교전 하다가
북악산과 인왕산 지역으로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소나무 한그루가 15발의 총탄을 맞았다. 이 나무는 총탄의 세례를 받고도 용케 살아남았다.
그 후부터 이 나무는 ‘1.21사태 소나무’로 불리며 북악산을 지키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4월 향토예비군이 창립되었다.
경복궁과 청와대는 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왕궁으로 이 궁궐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지 이다.
경복궁과 인접해 있는 청와대는 대한민국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다.
청와대는 현대 정치의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진 장소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다.
풍수지리 이론은 인간 삶의 터전을 찾고자하는 데 있다. 죽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 음택(陰宅) 이라면 산사람들 집은 양택(陽宅)이다.
임금이나 대통령, 최고 권력자들이 살던 집터가 북악산 아래 있다.
경복궁은 조선조 500년 왕권, 청와대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통치권을 행사하던
권부(權府)가 있던 곳이다.
긴 세월 권부를 지켜보던 북악산은 말이 없다.
인생과 권력은 무상하고 역사는 유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