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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 솔로
신외숙
얼마 전까지만 해도 3포 시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요즘은 5포 시대다.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대인관계 포기. 내 집 마련 포기.
올해 45세인 민중기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모태 솔로다.
세상에는 수많은 솔로가 존재한다. 개중에는 작정하고 솔로가 된 경우도 있고 결혼 시기를 놓쳐 어쩔 수 없이 솔로 반열에 든 사람도 있다.
인터넷을 뒤져 모태 솔로 대해 알아보았다. 대체로 모태솔로란 연애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을 지칭한 말인데 태어날 때부터 연애가 불가능하여 솔로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솔로들에겐 각기 특징이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귀차니즘.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보신주의 등.
그들은 세상에 믿을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 이외에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 공동체 의식도 희박하고 가능한 주변사람들에게 신경을 끄고 산다. 가끔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초긴장 경제대책으로 대비한다. 가족에 대한 부양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돈 쓸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 세상이 일인가구가 늘어가고 독신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솔로는 더이상 이상한 일이 아닌 평범한 걸로 변해 버렸다. 모태솔로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돌싱이 되느니 차라리 솔로가 낫다. 썸을 탈지언정 위험한 더블을 선택하지 않겠다. 사랑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와도 같다.
어쨌든 세상은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 솔로가 대세인 느낌마저 든다. 컴퓨터의 지능화와 인터넷의 발달은 많은 젊은이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 기계 문명의 발달은 생활의 편리성과 함께 가치관의 타락까지 부추겼다. 평생 직장이란 의미가 사라지고 황퇴 명퇴 이태백 사오정이란 신조어가 나타나더니 3포 5포란 말까지 생겨났다.
중기도 어쩌면 그들 중의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늘 자신감의 결여에 시달렸다. 책임감도 부족했고 그 외에도 그에겐 결함이 많았다. 우선 외모에서 호감도가 떨어졌고 학력과 경제능력이 그러했고 우유부단한 성격도 한몫했다. 그에게 일자리는 늘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한정된 것이었고 급료도 형편 없었다.
가장 큰 맹점은 대인관계에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친밀감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인관계에서 끝났다. 그나마 상처주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 사랑이니 배려니 하는 단어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저 제 한입 건사하기에도 바쁘고 힘들었으니까. 더구나 가족은 그에게 벗어날 수 없는 짐덩어리였다.
그가 처음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주변사람들은 말했다. 네 가정형편에 어떤 여자가 결혼을 결심하겠는가. 알코올 중독자인 부친과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어머니와 일찌감치 집을 나가 객지를 떠돌며 사는 동생들. 어느 누구에게도 집안 이야기는 꺼내기 싫었다. 당장 수치심과 모욕감이 달려들 테니까.
그는 물론 동생들도 어릴 때부터 소원은 딱 한가지였다. 집을 멀리 멀리 떠나 혼자 지내는 것이었다. 집을 떠난다는 건 수치심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슬픔의 족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 또 평안이라는 간절한 바람의 시초였다.
부친의 술주정은 시골동리에서도 유명했다. 일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그에게 가족은 철천지 원수 덩어리였다. 간신히 밥 한덩이 던져 주고는 술에 곯아떨어지거나 정신이 멀쩡할 때는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다. 어머니는 신경쇠약 증세가 심화돼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했지만 돈이 없어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중기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고향을 떠나왔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 동생들은 동네사람들한테 구걸하다시피 먹고 살았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와 간신히 직장을 잡은 중기는 동생들을 중학교까지 보냈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박봉에다 과로 탓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동생들은 고향에 내려갔다가 무엇을 보고 놀랐는지 그대로 줄행랑치고 말았다. 먼 남쪽 바다로 간다는 말 한마디 남긴 채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
아마도 바닷가 근처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공장에 취직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도 아니면 어린 나이에 어떤 수모를 겪으며 살지 생각할 때마다 통곡이 터져 나왔다.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그는 다시 직장을 구해 나갔다. 박봉이어도 혼자 지내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어머니가 불쌍했지만 고향에는 한푼도 송금하지 않았다.
돈이 생기면 곧바로 술청으로 달려가 미친 술주정을 해댈 테니까. 생활의 여유가 생기자 그는 충무로에 가 페르시얀 고양이 한 마리를 사 왔다. 온몸에 털이 북실북실한 고양이는 귀족처럼 굴었다. 먹이는 동물병원에서 사온 사료와 통조림을 먹였는데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그래도 하는 짓이 어찌나 귀여운지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다. 이름이 하양이인 고양이는 몸을 둥그렇게 하고는 하루종일 낮잠을 잤다. 점프 대신 그루밍을 했고 하악질도 잘 했다. 귀여워 궁디팡팡을 날려주면 바닥에 배를 들어놓고 발랑 누웠다. 가끔씩 인터넷 동물사랑방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고 달린 댓글을 보고 기뻐했다.
세월이 지나 생활의 여력이 생기자 마음에도 빈 공간이 찾아왔다. 여자가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동료의 소개로 몇 번 소개팅을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빈티가 줄줄 흐르는 인상에 150 센티를 간신히 넘는 단신은 단연 비호감이었다.
상대 여자들은 그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군대나 갔다 왔나요?”
사실 그는 신체조건 미달로 군대도 면제 받은 처지였다. 어릴 때 받은 상처 위로 분노가 덧 씌워 갔다. 여자들은 사람을 어떻게 보고 저런 사람을 내보냈느냐며 한마디로 재수 없다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소개해 준 사람에게 달려가 분풀이를 했다. 그런데 우스운 건 그는 자기의 처지는 생각지도 않은 채 한사코 미인만을 원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그 소개팅마저 끊어지고 말았다.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간파한 그는 스스로 고립에 처했다. 그는 일만 끝나면 고양이 사료를 잔뜩 사 들고 와 고양이 하고 놀았다. 봄이 오면 고양이 하고 꽃구경을 갔고 여름이면 둘이서 바닷가로 휴가를 떠났다.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했고 겨울이면 눈 내린 산야를 보기 위해 기차여행을 했다.
만사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처자식이 없으니 잔소리를 해대거나 돈 들어갈 일도 별로 없었다. 다만 몸이 아플 때는 서러움에 혼자 꺽꺽 대고 울었다. 세상은 명퇴니 황퇴니 하면서 감원열풍이 불고 취업포기라는 말이 나돌아도 그와는 아무 상관없었다. 그가 일하는 직장은 3D 업종이라 오히려 인력난에 시달렸다.
어느새 그가 근무하는 직장에도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도 서툰 우리 말을 하면서 열린 빗장문 사이로 들어왔다. 문화와 습관이 다른 그들과 어울린다는 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가끔씩 폭력 사건도 발생했다. 먼 타국에 와 일하는 그들에게 동질의식은 없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돈벌레였다. 날 세운 눈빛으로 열심히 일해 돈을 고국으로 송금하고 나서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끼리끼리 모여 쑥덕공론을 했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기죽은 모습으로 일하다가도 어느샌가 배짱을 부리며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그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인권이었다.
우스운 건 그들의 엄청난 이기심이었다. 동남아에서 온 폴이라는 중년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이가 만 50세였는데 어느날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리는 안전사고를 당했다. 그는 사고를 당하자 병원에 입원해 각종 보험혜택과 보상금을 받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에게는 3000만원이라는 거금이 들려져 있었다.
그가 고향으로 가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두 번째 부인을 얻는 것이었다. 그가 믿는 종교 율법에는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는데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에게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15살 된 어린 여자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공장을 차렸다.
인부를 고용한 그는 가장 악랄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임금을 착취했고 곧이어 세 번째 부인을 맞이했다. 이번에는 14살짜리 어린 신부였다. 손가락 하나 없어진 게 그에겐 화근이 아닌 악의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하는 동료는 탐욕 어린 눈빛으로 시시때때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자기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교활한 눈빛을 흘리며. 그러던 어느날 그는 일부러 사고를 자처했다.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는 기계에 일부러 팔을 슬쩍 갖다 댄 것이다. 순간 그의 팔뚝은 잘려져 나갔고 엄청난 출혈과 함께 쓰러졌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cctv에 찍혔고 자해사건으로 종결 나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
팔이 잘려져 나간 그는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그는 이전에도 여러번 전력이 있어 오히려 나쁜 선례를 남긴 채 추방당하고 말았다. 나이 40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한 어떤 동료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다가가 교향 처녀를 중매해 달라고 조르다가 사기 사건에 휘말렸다.
여자가 맞선 보라 온다며 경비를 요구하는 바람에 돈을 건네주었다가 결국 돈만 떼이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중매를 자처한 남자는 끝내 오리발을 내밀고 말았다. 같은 동족도 못 믿는 마당에 혈통과 문화가 다른 외국여자를 아내로 맞겠다는 허무한 발상은 상처와 모욕이 되어 돌아왔다.
그 소문은 발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솔로들의 가슴에 커다란 오점처럼 되고 말았다. 세상은 다문화 시대라고 말하지만 그 내면엔 문화충격과 슬픔과 열등감이 소리 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 동포와 결혼한 어느 동료는 아내가 주민증이 나오자마자 사라져 버려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동료는 이미 동포와 결혼했다가 사기당한 전력이 있는 터였다. 그래서 5대 독자 아들이 태어난 뒤 뒤늦게 혼인신고를 마친 거였다. 그런데 아내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이를 놔두고 줄행랑치고 만 것이다. 나중에 이혼하기 위해 나타난 아내는 본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미 자신에겐 장래를 약속한 애인이 있었다며 그를 또한번 기함시켰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물었다.
“그럼 이 아이는 진짜 내 아이 맞냐?”
그러자 아내는 말했다.
“사실은 그 문제 때문에 왔다. 그 아이는 내 남편의 아이다. 당신 아이 아니다.”
그는 처음에 내 남편이라는 말에 잠시 혼동을 일으켰다. 그럼 내 아이? 했다가 다음 순간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음 말이 더 기가 막혔다.
“내 아이를 찾으러 왔다 남편이 원하는 일이다.”
가문에 5대 독자가 태어났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일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실망할 어머니 얼굴을 생각하니 그는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는 이제 막 돌을 넘기고 있었다. 그는 악이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나라엔 유책자에겐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건 알고 있겠지?”
“위자료는 요구하지 않겠어요, 이혼 도장만 찍어 주세요.”
“위자료?”
그는 기가 막혀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한국에선 이혼할 때 재산을 반반씩 나눈다고 하던데요?”
“어떤 미친년이 그딴 소릴해? 나는 죽어도 이혼 못해준다. 정 이혼하고 싶으면 위자료 오천만원 내라.” “오천만원이라뇨?”
이번엔 그녀가 놀라 뒤로 넘어지려 했다. 동료는 분한 마음에 화병까지 발생할 지경이었다. 나중에 아내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오천만원을 구해와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아이도 돌려주었다. 두 번이나 사기 결혼 당하고 상처까지 입은 동료는 돌싱이 되느니 아예 모태 솔로가 낫다고 했다. 그리고 국제결혼만큼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 했다.
중기에게는 그런 기회마저 오지 않았다. 150센티를 간신히 넘는 단신에다 인상마저 푸르죽죽해 여자들이 보자마자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갈수록 독신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갔고 뭣보다 그는 안 되는 일에 포기가 빨랐다. 하긴 그는 어릴 때부터 포기를 밥먹듯 했다.
끼니도 잇기 힘들만큼 궁핍한 집안살림은 무엇 하나 요구해 봤자 되는 게 없었다. 공연히 고집 부려 봤자 돌아오는 건 욕설과 주먹질이었다. 어린 마음에 분노만 산처럼 쌓여갈 뿐이었다. 극심한 영양부족으로 키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늘 병을 달고 살다시피 했다. 마음은 옹졸하고 소심했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와 한동안 삼양동 달동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극빈층인 주민들은 허구헌날 죽기살기로 싸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제에 웬 자존심은 센지 핏발 선 눈빛으로 피 터지게 싸움질을 해댔다. 가난은 마음마저 살벌하고 험악하게 만들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막노동을 하거나 탄광 노동자가 되기 위해 강원도로 떠났다. 못사는 동네에 웬 아이들은 그리도 태어나는지 밤이 되면 아이들 울음소리로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졌다.
가족사랑이니 이웃사랑이니 애국심이란 말은 먼 꿈나라 이야기였다. 가난에 철천지 한이 맺힌 남자들은 가족을 상대로 매일 주먹을 휘둘렀고 가끔씩 칼부림도 났다. 아이들에 대한 배려나 교육열은 전혀 없었다. 여자 아이들은 간신히 초등학교만 마친 채 공장이나 식모살이 하기 위해 집을 떠나갔다. 그것으로 자유가 주어진 건 아니었다.
월급을 몽땅 아버지에게 차압당하고 자신은 빈털터리로 살았다. 그 돈은 생활비로 쓰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술값으로 나갔다. 가난과 착취, 고함과 싸움질은 그들의 일상사였고 가장 불쌍한 건 어린아이들이었다. 딸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도 안 보내고 미국으로 입양을 가는 일도 있었고 아들은 아들대로 어린 나이에 노동자로 팔려갔다.
어느날 중기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을 구입해 살고 있는데 재개발주택지구로 선정된 것이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피켓을 들고 데모 했지만 소용없었다. 대표적인 달동네에 닥친 개발붐은 그에게 많은 보상금이 주어지는 행운이 되었다. 임대주택을 공급 받은 그는 난생 처음 부요함의 기쁨을 누렸다.
월급을 받아도 뼈저린 가난 의식 때문에 제대로 된 옷 한 벌 해 입지 못하고 살았었다. 단신에 어울리는 옷도 많지 않았지만 고향에서의 가난과 수치는 그의 마음을 한번도 비켜가지 못했다. 술주정과 폭력으로 가족을 괴롭히는 아버지와 간신히 생명줄을 이어가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는 결심했었다.
죽어도 결혼만큼은 하지 않으리라. 저런 꼴을 하고 사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다. 어릴 때 아버지는 부모로부터 전혀 사랑받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리며 피눈물 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가 그 역시 처자식을 먹이거나 사랑하는데 익숙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가 당한 설움을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떠넘겼다.
씨를 말려버릴 집구석이구먼.
그는 생각날 때마다 혀를 찼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판에 처자식 거느릴 능력이 되겠는가. 아녀, 몹쓸 놈의 집구석 피는 더 이상 이어지면 안 되지. 그는 스스로 저주의식에 갇혔다. 동생들은 객지를 떠돌며 사는데 술 중독에다 거친 삶으로 거의 폐인처럼 변해 있었다. 아마 결혼했다면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닮지 싶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동생들도 모두 솔로였다. 그들 역시 중기처럼 입만 열면 말했다.
내 한입 건사하기도 힘들구먼. 또 처자식 거느릴 주제가 되기나 하나. 차라리 혼자 몸이 편하구먼. 중독은 70% 이상이 유전이라던가. 동생들은 힘든 막노동을 하면서도 입에서 술을 떼지 않았다. 술 이외에 인생 낙이 없다 했다. 생목숨 끊을 수 없어 간신히 연명하면서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물론 그들에게도 연애경험은 없었다.
때때로 정이 그립고 사랑받기를 갈구했지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중기는 술에 취하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느님 당시는 정말 공평하신 분인가요? 아니 살아 있긴 한 건가요?
어느날 그가 일하는 직장에 작은 인사인동이 있었다. 새로 부사장이 들어 왔는데 그는 사장의 외아들로 40대 중반의 독신이었다. 사장이 급성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부사장 김경출은 원래 모 기업체 간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유학까지 갖다 온 유학파였다.
사장은 일찌감치 아들에게 사업체를 물려주고 노후를 즐길 계획이었지만 아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전공과 무관하다며 또 거친 노동자들 상대하는 게 싫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속내는 따로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회사에 미모의 여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미모 외에 회사 대표의 조카라는 백그라운드까지 가지고 있었다.
모 여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에다 마음이 맑고 순수했다. 자랑 따위는 한번도 입에 올리지 않을 만큼 겸손하고 특히 배려심이 많았다. 누가 봐도 그녀는 일등 신붓감이었다. 그는 그녀로부터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싶었다. 그는 당당하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물론 자신에 대한 이력서는 밝혀둔 채로. 그런데 이상한 반응이 나왔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그녀가 단번에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래도 한두번쯤 대시를 받아줄 줄 알았는데 단칼에 거절 하다니, 그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뭐가 어때서? 그는 태어나서 못 났다는 소리는 한번도 듣지 않을 만큼 외모에도 자신감이 있었고 더구나 그는 유학파에다 집안 또한 좋은 편이지 않은가.
그런데 충격은 그만 받은 게 아니라는 소문이었다. 벌써 여러 명이 그녀에게 퇴짜를 맞고 고민 중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이미 정해진 정혼자가 있으리라. 그것도 소문뿐이었다. 그녀는 비밀에 쌓인 인물이었다. 친절함과 미모 속에 감추인 비밀 같은 요새가 있는……….
그는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길 원했지만 아버지에게서 급 호출을 받았다. 직함은 부사장이었지만 회사를 떠맡아야 할 운명이었다. 한꺼번에 회사 전체 업무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았다. 여러번 난관에 부딪쳤고 위기도 겪었다.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을 때 그는 가족의 거센 요구에 떠밀리고 있었다.
재계에 꽤 알려진 집안과 혼담이 오고 간 것이다. 그건 그가 알지 못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집안과의 혼사는 사업체에 큰 이익을 주는 중차대한 것으로서 가족들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른 바 정략결혼인 셈이었다. 어디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이었다.
그는 집안의 거센 요구로 몇 번 만남을 가져 보았지만 매번 거부감이 일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거래 회사와의 리셉션장에서였다. 많은 사람들과 한담이 오가는데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만지는데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이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시네요.”
단아하고 청아한 여자가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정감이 흘러내리는 미소는 평화와 잔잔한 기쁨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녀였다.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남자들이 우상처럼 여겨지던 여신과 같았던 그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환상을 보는 듯 가슴이 떨려왔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녀 옆에 나타난 남자가 있었다.
연미복을 입은 잘 생긴 미남자였다. 영화에서 나오는 왕자님 아니 영화배우 같았다. 그가 여신을 향해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랑스러운 내 여자다 어떠냐? 하는 표정이 자신감과 함께 표출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의 약혼을 축하드립니다.”
그제야 그는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특히 남자들에게 했던 그 친절의 의미를. 울음이 의미도 알 수 없는 울음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헛물만 켜고 만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여신의 어깨를 감싸 안은 왕자는 주변을 서서히 돌며 약혼자를 소개하기에 바빴다.
왕자님은 모 재벌 그룹의 막내아들로 미국의 MIT 공대를 나온 수재라고 했다. 모교의 교수로 갈까 아버지의 사업체를 물려받을까 고민하다가 약혼자의 권유로 입사를 결정했다고 했다. 여신과의 만남은 전문적인 중매로 이루어졌는데 남자가 첫눈에 반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녀는 미모 외에 완벽한 매너로 남심(男心)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 흔한 스캔들 한번 없이 자기 관리를 완벽히 해낸 그녀는 의지 또한 대단하다는 소문이었다. 한번 마음먹은 건 끝까지 관철하고야 마는 철두철미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말 실수 한번 없이 완벽한 매너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고 나서는 일을 성사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언변에 대한 스킬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김경출은 그녀에 대한 면모를 알고 났을 때 가슴 한구석이 무너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매사에 불신의 벽에 휩싸였다. 동시에 사사건건 대인관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급기야 그는 집안에서 오가던 혼담에 대해서도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회사 업무에 올인하고자 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서서히 그는 붕괴 되는 것 같았다.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하고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허약한 자신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깟 여자 하나로 이렇게 허물어지다니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업체는 나날이 기울어져 갔다. 방황이 이어지던 어느날 여동생이 다가와 말했다.
“오빠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 누굴 것 같아?”
“아무도 못 믿지, 특히 여자는 더 못 믿을 존재지.”
“여자뿐이겠어? 사람은 절대로 믿어선 안돼.”
그는 잠시 뜨악한 표정으로 여동생을 바라봤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꾸만 변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가장 못 믿을 건 나 자신이야, 변덕이 죽 끓듯 하잖아.”
“난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오빠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봐 생각이 달라질 걸, 세월이 약이라잖아.”
“정말 그럴까?” “그보다 오빠 세상에 변하지 않는 분이 계셔.”
“그게 누군데?”
“우리 인생을 창조하신 전능주 하느님이야.”
여동생은 얼마 전 카톨릭에 입문해 교리 공부 중이었다.
“하느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신실하신 분이셔, 그분만 믿어야지 사람을 믿었다간 낭패를 본다는 거야.”
그는 멍청한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봤다. 평소에 여동생은 이타심이 강해 천사라는 별명이 따라 붙었었다. 약한 불쌍한 사람만 보면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부렸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사기도 많이 당했고 피해도 많이 보았다. 때문에 한동안 피해의식으로 두문불출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부터 안정을 찾기 시작하더니 본래의 모습대로 활기를 띄어 갔다.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어, 너는 친한 친구도 믿지 말라 그가 돌아다니며 네 험담을 한다. 또 네 품에 누운 아내도 믿지 말라.”
“그럼 도대체 누굴 믿고 살라는 건데?”
“그러니까 사람은 믿으면 안 되고 하느님만 믿어야지. 그럼 배반당하거나 낭패 볼 일도 없을 테니까.”
“아이고 어려워라,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네, 너나 실컷 믿어라.”
그는 부정하고 돌아 섰지만 왠지 마음은 찜찜했다. 돌아서는데 마음속에 붉은 십자가가 떠올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 패션의류 기업에서 디자인 실장으로 일하다 퇴직한 민정혜는 40대 중반의 싱글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싱글이라면 대뜸 돌싱? 하고 반문했다. 30대로 보일만큼 동안에다 몸매 또한 웬만한 모델 못지 않은 능력짱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출시하는 제품마다 히트칠 만큼 재능도 뛰어났다.
미모와 재능 외에 그녀는 독립의지도 강했다. 일찌감치 집에서 독립한 그녀는 원룸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는 전력을 이용해 새로운 사업을 창업했는데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있었다. 업무 외의 개인사에 관한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아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크레물린궁이라고 불렀다. 출신 대학과 전공과목까지는 알겠는데 집안이나 이성관계 등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녀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도 없을 거였다. 공식석상은 물론 사석에서도 눈물 한번 보인 일 없는 걸로 보아 강인해 보였지만 그 역시 겉모습일 뿐이었다. 일이 끝나면 헬스클럽에 가 운동을 했고 취미생활도 열심히 했다.
가끔씩 남자들이 다가가 “이런 미인께서 여적 싱글이신가?” 물으면 간단히 대답했다. 요즘은 싱글이 대세 아닌가요? 별 희한한 대세도 다 있군. 사람들은 멋쩍어 하며 돌아 섰다. 독립한 사업체는 한동안 승승장구 하는 듯 보였다. 그녀에 대한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곧잘 오더가 떨어졌으니까.
그녀의 능력은 이미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일에 관한 한 철두철미 하여 항상 성공만 있을 줄 알았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매사에 준비성이 철저했고 끝마무리 또한 깔끔한 게 그녀였다.
철벽녀.
그녀의 또다른 별호였다. 그건 곧 인간미가 별로 없다는 뜻과도 상통했다. 사업 외에 그녀에게 또다른 구상(構想)이 있다면 그건 과연 뭘까. 그녀가 평상시에 하는 말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 외에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믿음의 대상은 돈? 아님 능력? 명예?
그녀는 사생활에 대해 간섭 받는 것을 극히 싫어했고 항상 광야에서 혼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여자도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홀로 설 수 있다며 정신적 경제적 독립의지를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공주병 기질도 다양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그녀는 배려심이 부족해 난감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녀는 대외업무에만 충실할 뿐 손에 물 한방울 안 튀기는 스타일이었다. 책상 위의 먼지도 자기가 마신 물컵도 심지어 창문의 커튼도 제 손으로 하지 않았다. 바쁘게 일하는 직원을 불러 꼭 하명했고 구두나 가방이 고장 나면 꼭 직원을 시켜 고쳐 오게 했다. 어떨 땐 자기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 내부 청소까지 시킨 일이 있었다.
자기에게 말 대꾸를 하거나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퇴사 운운했다. 그러나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하고 저자세로 나오면 그렇게 호의적일 수가 없었다. 외모나 능력만 보고 남자가 썸을 걸어오면 단칼에 거절했다.
“흥, 누가 니 속을 모를 줄 알고? 나를 이용해서 니 뱃속 불리려는 수작 아냐? 사람 잘못 봤지?”
“누가 또 속을 줄 알고? 한번 속지 두 번 속냐?”
심리학을 전공한 어느 직원은 민정혜를 두고 피해망상증이라고 말했다. 저만큼 확실한 모태솔로는 없다며 불쌍하다고 했다. 자기가 조금만 양보하면 얼마든지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도 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민정혜의 생각 끝에는 이기심과 독선이 뿌리내려 있었다.
얼음처럼 냉정하고 손해 볼까 두려워 항상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모든 기회를 잃어 버리고마는 까탈녀였다. 그것은 그녀의 내면 세계일 뿐, 민정혜는 일과 자유를 즐기는 능력짱이었다. 외로움 따위는 사치라며 자신과 전혀 무관하다고 했다. 그녀는 늘상 미래에 대한 안전대책을 강조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노후대책이었다.
그녀가 든 보험만 해도 열가지는 넘었다. 연금보험으로 시작해서 실비보험 암보험 저축성 보험 자동차 보험 등등. 미래의 불안을 노린 것이 보험이라더니 꼭 그녀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녀에게 보험은 그야말로 안정빵이었다. 또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철저한 건강관리였다. 퇴근하면 그녀가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 헬스클럽이었다.
몸짱 만들기.
그녀의 탄탄한 몸매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끊임없는 운동과 적당한 식이요법도 병행하고 있었다. 운동에는 격투기 운동도 포함돼 있었다. 태권도 합기도를 열심히 해 벌써 유단자가 되어 있었다. 주말이면 여행을 떠나는데 반드시 맛집도 포함돼 있었다.
자연풍광과 토속적인 음식을 즐기면서 그녀는 마음껏 솔로의 편리함을 누렸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시간도 자유자재로 누리면서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 그녀는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각종 기업인 모임에도 참석하고 있었다. 정보도 교환할 겸 친분도 쌓으면서 가끔 인터뷰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동창회 모임에는 전혀 안 가는 눈치였다.
“여편네들이란 게 입만 열면 남편 흉보기 바쁘고 자식자랑은 어찌나 해대는지, 어유 듣기 싫어 그것들이 꼭 나를 약 올리는 것 같단 말야.”
질투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말을 하고는 꼭 씩씩거리는 것이다. 아무튼 그녀의 양면성은 알다 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가는 유일한 봉사단체가 있다면 보육원이다. 어디서 그런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그녀는 많은 돈을 보육원에 희사하고 있었다. 각종 정보 채널을 동원해서 보육원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고는 기꺼이 투자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거나 원장의 인격에 하자가 발생하면 당장 지원을 끊었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무튼 그녀의 양면성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언젠가 지인이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다.
“내가 뭐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 하다 죽으면 천국에는 가겠지. 설마 나더러 지옥으로 가라고 하겠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경영지원팀장인 명주희가 나섰다.
그녀는 달관된 말솜씨로 당장 천국복음을 전했다. 요지는 예수 구원 천국 영생이었다. 신학교를 중퇴했다는 그녀는 사장과 마찬가지로 40대 중반의 솔로였다. 그녀는 퇴근 후면 곧바로 교회로 달려가 선교훈련을 받는 예비 선교사였다. 그녀의 전도방법은 특이했다. 성격이 강퍅하고 모난 사람들에게만 다가가 전도하는데 효과는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너무도 당당하고 씩씩하게 전하는 바람에 주눅이 들거나 거부하지 못하고 결단한 경우도 있었다. 말 할 때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보다 더 드센 사람도 있구나 싶어 호기심에 이끌려 교회 문턱을 밟았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 여러 방식으로 명주희에게 포섭 당한 직원이 다섯 명이나 되었다.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명주희는 명년 쯤 퇴사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파송될 예정이라 했다. 우스운 사실은 그런 명주희 역시 연애경험이 전혀 없는 모태 솔로라는 것이었다.
유망한 중소기업 과장으로 근무하는 김철주는 50대 초반의 솔로였다. 그는 머리가 반쯤 벗어진 대머리에다 작달만한 키에 배는 남산만큼 나온 못생긴 추남이었다. 성격은 원만한 듯 보여도 가끔씩 욱하는 성질이 있어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사회 생활하는 걸로 보아 성격이상자나 무능력자는 아니었다.
그는 만년과장이 서러워 몇 번인가 퇴사를 결심한 적이 있었지만 주변의 만류로 주저앉곤 했다. 평소에도 술을 즐기는 그는 금요일만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애주가였다. 불금을 기다리는 것은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나이트 클럽에 갔지만 중년의 지금은 콜라택이나 중년나이트 즉 카바레에 자주 간다.
오십 평생 직장생활을 했지만 모아 놓은 돈은 없고 살고 있는 집도 전세에 불과하다. 식사는 주로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고 나이가 나이니만큼 지병도 갖고 있다.
알코올 과다 섭취로 인한 당뇨와 고혈압 증세이다. 약을 열심히 복용한들 차도는 별로 없었다. 전혀 식이요법이 따라주지 않는 상태에서 약물요법은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현재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술 대신 마약이 있었다면 그걸 먼저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의지가 약하고 심성이 여려 그는 옆에서 봐도 불안 불안했다. 해마다 감원열풍이 불 때마다 그는 항상 일 순위였다. 실적이 저조하고 성실도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립 때부터 근무한 유일한 직원이었고 누구보다도 회사 사정에 밝았기에 매번 사정의 칼날을 비켜갔다. 그나마 천우신조였다.
김철주는 오십의 나이에도 결혼에 대한 꿈은 결코 버리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환상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되고 있었다. 많은 남자가 그렇듯이 어머니는 그에게 따듯한 고향의 품과 같았다. 떼쓰고 억지 부려도 사랑으로 품고 다독이며 끝없이 위로해 주었다. 남들은 그를 보고 속 좁고 못났다고 핀잔하고 비웃어도 어머니는 내 아들 잘 났다며 옹호해 주었다.
그에게는 여동생이 둘이나 있었지만 어머니의 관심은 유독 그에게만 쏠려 있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유달리 강해 여동생들에게 원성을 살 정도였다.
“엄마는 우리 철주 때문에 산다. 우리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 나고 착하지, 또 우리 아들만큼 똑똑하고 잘난 남자는 아무 데도 없을 걸.”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도 헌신적이었다. 술주정으로 밥상 때려 부수고 주먹질과 욕설을 해도 한번도 대항하지 않고 고스란히 참았다. 실컷 두들겨 맞고도 다음 날이면 밥상을 떡 벌어지게 차려냈다. 생활비가 모자라면 품을 팔아 충당했고 하나뿐인 아들을 왕자처럼 떠받들었다. 두 여동생은 중학교만 마친 채 도시로 공장살이 보냈지만 그에게는 재수까지 시켜가며 대학을 보냈다.
그동안의 피눈물 나는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자상한 엄마였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아들에게는 따듯한 밥과 좋은 옷을 입혔고 왕자처럼 대우하며 키웠다. 그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못된 행동을 해도 나무라지 않고 다 받아 주었다. 그런 어머니였는데 그가 대학 졸업하던 이듬해에 눈을 감은 것이다.
취직이 되지 않아 여전히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던 때였다. 시장 난전에서 장사하면서 오로지 아들 하나만 바라보면서 살던 어머니였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다. 아버지는 최소의 비용으로 장례를 치르고는 부조금을 몽땅 가로챘다. 그리고 얼굴에 화냥기 흐르는 여자를 새아내로 맞이했다.
그녀에게 얼마 안 되는 논 문서를 쥐어주고는 죄인처럼 절절 매고 살았다. 본처에게는 온갖 학대로 일관하면서 고생을 바가지로 씌우더니 후처에게는 오히려 푸대접 받으며 살았다. 어느날 후처는 남은 전답 문서와 집 문서까지 요구했다. 아니면 이혼하겠다고 협박했다. 가족들이 그렇게 반대하는 데도 아버지는 선선히 문서를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정해진 순서대로 알몸이 되어 쫓겨났다. 후처는 도장을 훔쳐내 이혼서류에 찍고는 멀리 날아버렸다. 아버지는 평소에 그렇게 구박하던 딸네 집에 얹혀 살면서 날마다 술타령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는 아들과 살기 원했지만 김철주는 질색팔색을 했다. 어머니를 잃은 김철주는 날마다 술독에 빠지고 사창가를 전전했다.
못나고 추레한 외모를 가진 김철주는 취직하자마자 결혼을 서둘렀다. 그는 아내에 대한 거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너그럽고 헌신적인 생활력 강한 여자를 원했다. 물론 미모는 필수였다. 자기가 키가 작기 때문에 여자는 반드시 168센티 이상의 키에 S라인의 몸매에 얼굴도 예뻐야 했다.
거기에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평생을 맞벌이 조건을 내세웠다. 그가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맞선을 본 여자는 칠십 명은 넘을 것이다. 그는 여자들에게 매번 거절당하면서도 꼭 제가 퇴짜 놓은 것처럼 말했다. 자신은 퇴짜 맞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어떨 땐 쌍방이 서로 거절했다. 그가 맞선녀를 퇴짜 놓는 이유는 다양했다.
미인이 아니라는 이유가 첫 번째로 많았고 키가 작거나 여자가 너무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적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여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형편없는 외모에 까탈스럽게 조건을 따지며 옹졸하고 이기심만 많다고 했다. 그는 맞선자리에서도 더치페이를 요구할만큼 옹졸하고 인색했다. 배려심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어쩌다 예쁜 여자가 나오면 맞벌이 문제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채이기도 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면서 되지도 않는 생떼를 쓰는 것이다. 마치 자기 어머니에게 하듯이. 그는 자신의 조건은 생각도 않은 채 상대 여자의 흠집 찾기에만 바빴다. 그는 여자가 이상형을 물으면 대뜸 대답했다.
“우리 어머니처럼 순종적이고 희생적이며 생활력도 강한, 그리고 저 하나만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그런 미인형을 원합니다.”
그는 너무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여자들은 너무 기가 막혀 할 말을 잊었는데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나 한 사람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여성을 원합니다. 요즘은 그런 능력 있는 여성이 대세 아닙니까?”
그는 또다시 힘주어 말했다.
못난 놈이 갖은 꼴값은 다 하고 있네. 여자들은 돌아서서 욕을 하다 중매쟁이에게 다가가 화풀이를 했다. 나이 40대 중반을 넘어서자 그나마 소개팅 자리마저 나서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어린여자 능력 있는 여자를 원했다. 그러다 쏟아지는 외로움을 주체할 수 없어 밤마다 술과 여자를 찾아 부나비처럼 쏘다녔다.
외로울수록 여자가 간절히 그리웠다. 모성애를 지닌 마음이 따듯하고 이해심이 많은 여자가 다가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왕자처럼 떠받들어 주길 원했다. 진심으로 사랑해 주면서 투정을 부려도 거칠게 대해도 변함없이 자기 한 사람만 사랑해 줄 지고지순한 여자를 원했다.
남자라면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청순한 여자. 생활력도 강해 열심히 맞벌이 해 남편과 아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헌신적인 여자. 얼마든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다가도 키가 작거나 못생긴 여자가 나타나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세상이 무너져도 특출 난 미인이어야 했다. 연애경험이 전혀 없는 것이 그를 더 이상론자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무조건 어머니 같은 아내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나이 오십이 되자 그의 생각에도 지각변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자 그는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퇴근 후면 술집과 카바레 노래방을 전전하며 지냈는데 그마저 오래 가지 못했다. 당뇨에다 고혈압이 발생하더니 또다른 합병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장병과 관절염에다 백내장 증세까지 겹친 것이다. 죽음이라는 적신호가 눈앞에서 점등되고 있었다. 직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곧 감원 태풍이 돌 거라는 소문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회사는 중소기업이긴 해도 재무구조가 튼튼한 편이었다. 그동안 IMF도 잘 견디고 불황도 이겨냈는데 잇단 중국산의 유입으로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래처가 끊기면서 초긴축 상태에 들어갔는데 첫 번째가 인원감축이었다.
그는 동료들에 비해 고임금에 실적도 저조하고 술로 인해 성실도에 치명상을 입고 있었다. 그는 쫒겨나지 않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강구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럴지라도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명퇴했다. 운이 좋은 셈이었다. 그는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기분이었지만 마음을 다져 먹었다.
“이 참에 쉬면서 술도 끊고 건강 회복에 힘쓰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장은 속시원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김철주는 평상시에 술만 마셨다 하면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셔댔다. 담배도 앉은 자리에서 10대 이상 피웠다. 혈당이 400 수치까지 올라가면서 급작스럽게 식이요법을 하다가 저혈당 혼수를 겪은 적도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내 인생 끝장나지 겁을 집어 먹고 있는데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기관에서 실시하는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는 여동생과 함께 교회에 등록해 신앙생활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믿기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는 아들이 자기를 닮아 고생한다며 대신 눈물로 회개 기도했다. 김철주 자신도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알 수 없는 회한(悔恨)에 찬 눈물을 흘렸다.
김철주는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에 참여 하면서 절제의 능력을 체험했고 잘못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에 대해 눈물로 회개했다. 어버지처럼. 자신의 허황한 잘못된 생각과 오류에 대해서도 깊이 뉘우쳤다. 회개가 깊어질수록 마음속으로 잔잔한 평화와 기쁨이 찾아왔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보는 알 수 없는 평강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술과 담배의 유혹도 사라져 갔다. 그리고 어느날인가부터 입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평생 가족을 괴롭혔던 아버지의 입에서도 감사의 말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새카맣게 타들어가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정혜가 명주희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지도 육 개월째 접어들고 있었다. 민정혜가 교회에 나가는 것은 결코 신심(信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우선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알고 싶었고 전능성에 대한 의문도 풀고 싶었다.
그런데 신앙에는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목사가 하는 설교에는 사랑과 희생이 들어가지 않는 적이 없었다. 수많은 기적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과 죄를 용서 받는 것과 사랑에도 엄청난 대가가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도 교인들의 말과 행동에는 전혀 그것과 무관해 보였다.
말로만 사랑을 강조할 뿐 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경우도 많았다. 민정혜는 명주희 옆에 앉아 설교를 듣다가 사랑 희생이란 단어만 나오면 코웃음을 치며 웃었다. 그건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였다. 도대체 사랑과 희생의 대가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개그맨이 한 말이 생각났다.
헌신하면 헌신짝 되어 버림받는다.
남편은 자기만 바라보는 아내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희생적인 아내를 끝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엄마만 해도 그랬다. 일평생 가족을 위해 온갖 고생을 했는데 정작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함께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다. 어머니가 일평생 궂은 일을 해 모은 재산을 첩년에게 몽땅 물려주고 만 것이다. 본처와는 전혀 상관없이 재산권 행사를 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져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본처의 자식들에겐 학비 이외엔 한푼도 내놓지 않고 있다가 첩이 데려온 의붓 자식에게는 유학 비용까지 대주었다. 그리고 첩이 암으로 죽자 대성통곡을 하며 묘살이까지 했다. 열부가 따로 없었다. 민정혜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은 절대 엄마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매사에 손해와 이익을 따졌고 남자는 이용 가치 대상 이외로는 생각지 않았다. 전혀 사랑해 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철벽녀의 소리를 들어가며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 것도 어쩌면 다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느날 목사는 설교 중에 말했다. 가정도 능력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바로 사랑과 용서의 능력이었다.
그때 민정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나의 독신은 축복인 게야. 내게는 전혀 그런 능력이 없으니까. 결혼 안 한 게 천만 다행이지 뭐야. 그리고 그 다음 주부터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명주희는 안타까워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어떤 말도 민정혜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진 못했다.
사랑이나 행복감 보다는 상처 받는 게 더 두려웠고 그러기 위해선 마음을 철벽처럼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민정혜는 어느날 직원들에게 야유회를 가자고 제안했다. 처음 있는 일이어서 직원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장소와 날짜는 추후에 정하기로 했다. 모두 각자 일정이 바쁜 터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서울에서 전철로 1시간 거리인 양수리로 가기로 했다. 간단한 옷차림에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차량은 용산에서 출발하는 전동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상쾌한 토요일 아침 전동차는 용산을 출발해 한남동 옥수동 청량리를 지났고 팔당을 지나 드디어 양수리에 닿았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차창 밖으로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이 넘실거리는 강물과 함께 교대로 지나갔다. 강에는 물오리가 자맥질을 하며 유영하고 있었다.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자 모두 마음이 부요해졌다.
서로 커피를 사겠다고 했고 점심과 후식은 자기가 내겠다는 했다. 양수리 역을 나오자 호수를 끼고 산책로가 형성돼 있었다. 흙길을 밟으니 발걸음도 가볍고 맑은 공기를 마시니 갑자기 천사라도 된 기분이었다. 교각을 지나 양수리 물가에 닿았을 때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강가를 둘러싸고 진분홍 샛노랑 새하양 꽃들이 푸른 잎사귀와 함께 한 폭의 정물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물오리는 소리를 꽥꽥 지르며 유영하다 물속에 처박혔다. 중간 중간 간이 커피숖과 노상음식점도 있었다. 언제 들어섰는지 연꽃밭이 있어 이제 여름이면 찬란한 색채의 꽃잎을 피울 예정이었다.
모두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입을 열 때마다 평화롭다 멋있다 소리가 터져 나왔다. 느티나무 앞에서는 연인들이 셀카를 찍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소원을 적은 돌무더기 옆에서 거리 화가들이 캐리커쳐를 그려주고 있었다. 언제 등장했는지 선글라스에 벙거지를 쓴 남자가 기타를 치며 7080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민정혜는 직원들과 모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몹시 즐거운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처럼 환호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한편 민중기는 사기 결혼 당해 거의 폐인 직전까지 간 동료와 함께 전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들은 행선지를 정해 놓지 않았는데 그만큼 마음이 침체돼 있었다. 전동차는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중간 중간 봄을 알리는 봄꽃이 화려한 색상으로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민중기는 문득 어릴 적 고향 생각이 났다. 강가에서 친구들과 헤엄치고 송사리 잡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향은 경치가 빼어나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관광 명소였다. 그는 동료에게 여의도로 가 벚꽃 구경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동료는 고개를 흔들며 싫다고 했다. 차라리 전철을 타고 양수리로 가자고 했다.
서울만 벗어나도 해방감이 느껴질 것 같다며 잠시라도 이탈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전동차를 신길동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는 용산에서 내려 다시 중앙선 잔동차로 갈아탔다. 그날 김철주는 입사 원서 낸 회사에 면접 보러 갔다가 나오는 중이었다. 낙심한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데 샛노랑의 개나리와 진달래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운 야산에 벚꽃과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자동차가 지나는 길가에도 개나리와 진달래가 덮고 있었다. 사람들은 다가가 꽃을 만지거나 냄새를 맡아 보았다. 꽃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전철역으로 다가가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중간에 동료에게 전화를 넣어 합류했다. 전동차는 압구정을 지나더니 청량리를 향해 질주했다. 그들은 청량리에 내려 중앙선 전동차로 갈아탔고 차창 밖의 풍경에 넋을 빼앗긴 채 마음속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부요가 그들을 한껏 들뜨게 하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은 마음속에 평화를 선물로 안겨주고 있었다. 전동차가 강물을 지나고 교각을 지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많은 사람들이 전동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고 카드를 찍고는 밖으로 나왔다. 역사 옆 작은 커피숖 앞에서 고양이들이 모여 놀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신축건물에 고급 음식점과 커피숖이 행락객들의 시선을 당기고 있었다.
사방에서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눈길을 돌릴 때마다 진분홍과 샛노랑 새하양 색상이 들어왔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가니 호수가 펼쳐지면서 산책로가 형성돼 있었다. 봄바람을 타고 하늘에는 새떼가 까맣게 날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두물머리 느티나무가 보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발걸음 내딛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마음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여유로워졌다. 그는 비싸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노상에서 파는 원두커피를 사서 마셨다. 기분이다 싶어 거리 화가에게 초상화도 그렸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가수에게 지폐도 한 장 넣어 주었고 스마트폰을 꺼내 풍경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물어 셀카 찍는 법도 배웠다. 강가로 가니 물이 맑고 물오리가 떼를 지어 유영하는 모습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한쪽에서는 회사에서 단체 야유회를 왔는지 왁자하게 떠들며 셀카를 찍느라 야단이었다. 그런가 하면 솔로들의 모습도 간혹 띄었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붉은 해가 강물을 물들이며 두물머리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갈대숲 건너편 밤섬 뒤로 산등성이가 세겹 네겹으로 형성돼 있었다. 맨 뒤에 있는 산등성이에서 새빨간 해가 모습을 점차 감추며 사라지고 있었다. 강물도 점차 검게 변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장작 태우는 냄새가 났다.
연꽃밭을 지나고 세미원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김철주와 민정혜와 그 일행이 앞서 걷고 있었다. 뒤에는 민중기가 동료와 함께 담배를 피우며 걸어갔다. 해가 기울며 기분도 많이 가라앉고 있었다. 모두 말없이 걷기만 하는데 그들 앞으로 자전거를 탄 여자가 따르릉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여자는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페달을 돌리고 있었다. 자전거 앞 뒤에는 작은 바구니가 있었는데 아이가 타고 있었다. 앞에는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깔깔 웃고 있었고 뒤에는 쌍둥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여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페달을 밟았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 소리가 두물머리 강가를 타고 건너편까지 날아갔다. 그 뒤를 따라 걷던 민정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주희에게 말했다.
“조금 손해보고 상처 받는 일이 있더라도 용서하며 함께 사는 게 어쩌면 진정한 행복인지도 모르겠어요. 단점이 있더라도 참아주고 서로 보완해 주고 협력하면서 살아가는 게 그게 진짜 인생 아닐까 생각 되네요,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건지.”
“그러게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을 때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 갈비뼈를 빼내 하와를 만드셨잖아요 아마.”
그렇게 말하는데 교각 넘어 전동차가 굉음을 지르며 달려가는 게 보였다. 그들은 모두 발걸음을 재촉하며 역사(驛舍)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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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을 글..감사합니다..
참 잘 쓰셨네요
많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