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석 시집/ 바람 불어 더 좋은 날/ 도서출판 마을/ 2017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가 안 읽힌다는 말도 되겠고 게나 고동이나 시를 쓴다는 말도 되겠다. 항간에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인사동 길에서 '사장님' 하고 부르면 절반이 뒤를 돌아보는데 '시인님' 하니까 전부 뒤를 돌아보더라나? 내가 좋아하는 시인 쉼보르스카는 어느 글에선가 이런 문장을 남겼다.
자신의 시는 천 명 중에 두 명이 읽는다고,, 자신을 포함해서 두 명인지는 모르겠다. 그래 봤자 한 명 차이다. 위대한 시인의 이 은유적 표현은 시를 그만큼 안 읽는다는 뜻이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책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시집은 모두 읽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시집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오기에 모두 읽기는 불가능한 욕심이다.
오늘은 김난석 시집 이야기다. 카페에 가입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석촌님을 여태 만나지 못했다. 일면식도 없는 이분을 시집으로 만난 것도 인연이기에 이 글을 쓴다.
나는 모든 일상은 아니나 대부분의 일상을 책과 연결 시킨다. 그래서 누구든 내가 쳐 놓은 책 그물망에 걸리면 빠져 나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누가 시켜서 억지로 읽거나 쓰는 것은 싫다.
또 시를 교과서처럼 모범적으로 읽고 해설하려 들면 모든 것이 꽉 막힌다. 사지선다형 문제처럼 시를 무슨 고시 공부하듯 읽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런 해설을 할 능력도 없다.
나는 아무리 유명한 시인의 시도 내 방식으로 소비하고 해석한다. 내가 아무한테도 글쓰기를 배운 적 없기에 더 그럴 것이다. 내 방식 대로 읽고 해석하는데 누가 시비를 하는가.
분별(分別) - 김난석
안팎 구분하면 담이 된다
둘러치면 성(城)이 되느니
담도 성도 잡아두는 괴물이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랴
담이나 성이 무슨 소용이랴
삶은 추켜세움이니
있는 듯 없어야하는 건 규범이요
오가는 게 없으면 죽음뿐이니
없는 듯 있어야 하는 건 구분이다
신의 저주가 없는 거라면
흐트러지는 심신을 달랠 수 있을까
신의 은총이 없는 거라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을까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건
마음속에 품어보는 분별이다.
시집에서 나는 이 시를 대표작으로 꼽는다. 영화 한 편 봤을 때 인상 깊은 장면이나 대사 하나 건지면 시간이 아깝지 않듯이 시집 속에서 가슴에 안기는 시 한 편을 만난다면 기쁜 일이다.
이 시가 그랬다. 김난석 시인의 품성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시이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의 <분별>은 사람이든 과일이든 서로 다른 것끼리 골라서 구분짓는 일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분별은 세상의 물정이나 돌아가는 형편을 사리에 맞도록 헤아려 판단하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배려하여 마련함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분별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흐릿한 분별은 아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시집 감상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절로 생긴 마음이다.
모나지 않은 품성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교육과 주변에서 받은 영향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막걸리보다 와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시로 한정해도 뽕짝보다 재즈 쪽이다.
그의 고급진 취향을 나같은 마당쇠가 어찌 따라갈 수 있으랴. 가방끈 짧은 나의 컴플렉스는 시집 날개에 붙은 그의 이력에서 바로 꼬랑지를 내린다.
그럼에도 대책 없는 활자 중독자인 나는 김난석을 순명(順命)의 시인으로 부르고 싶다. 그의 시를 전부 읽고 생각해낸 단어다. 같은 시집에 실린 시 하나가 오래 내 가슴에 남는다.
산수유꽃 필 무렵 - 김난석
물 길어 올리는 손
버짐 핀 얼굴 문질러보고
터진 손등 포개어 연신 비벼대던 누이
큰맘 먹었는지
선 밥상 차려놓고
사립문을 나섰으니
노랑저고리 마름하던 기다림
아른아른 산화(散華)하고 말아
밥상보 걷어내고 홀로 꽃밥 먹네.
딱 내 누이 이야기여서 눈으로 읽는데 목이 메이는 시다. 주변에 봉숭아 핀 장독대에 올라가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동백 아가씨를 부르던 내 누이가 산수유 향기처럼 다가온다.
나는 그가 괜찮은 시인임을 인정한다. 김난석 시인이시여! 행여 인사동에서 내가 시인님! 하고 부르거든 뒤돌아 보시라. 그대는 시인 소리 들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니까.
# 이 시집을 작년 가을에 읽고 바로 쓰려고 했는데 내가 오르막 길에서 갑자기 신발이 벗겨지는 바람에 잠시 이탈을 했다.
그때 느꼈던 감성이 약간 변하기는 했어도 후기 쓸 온도는 그대로다. 이래서 글을 쓰는 타이밍도 인연이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모쪼록 석촌님의 건필을 빈다.
첫댓글 참 좋으네요
두 분 다
멋진 사람 입니다^^~
저는 빼 주세요.^^
석촌님이 멋진 분인 건 확실합니다.
이따금 석우님 글 읽을 때면
야무진 매무새에서 단단한 내공을 느낄 수 있다는,,ㅎ
시를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써지나 봅니다.
시에 대한 평이 아닌 진솔하게 느낀 감상문 같이 보여 더 정겨움을 느낍니다.
두분 만나시걸랑~
깊은 맛의 와인으로 축배 나누시길 요.
시를 많이 읽어서인 줄은 잘 모르겠으나
시를 읽고 나면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은 맞네요.
잘 쓸려구 하기보다 생각 나는 대로 쓰니
막힘 없이 술술 나오더라구요.ㅎ
이세상 시는 다읽어 보고 싶다는 말에 감동을 ㅎㅎ
다 읽겠다는 것은 뻥이구요.^^
누가 그러데요.
공자님이 不學詩 無以言이라 했다고,,
재능이 딸려 시 쓰기는 못하더라도
읽기라도 부지런히 하려구요.ㅎ
유현덕 님을 통해
석촌님의 향기를 보니
인사동에 베레모 쓰고 깔끔히 차려입은 정갈한 어른은
석촌님이요
흰색머리 섞여 적당히 흐트러져
여유롭고 편안한 잠바 하나 걸치고
시인님 하고 부르는 유현덕님이 그려집니다
석촌님글은 꽃의 향기 라면
유현덕님 글은 풀 냄새가 납니다
이젤님의 댓글만 봐도
석촌님의 취향이 그려집니다.
저도 그 냥반 글 읽을 때마다
예술지상주의자임을 알 수 있었네요.
그분 만의 文香이라 해야 하나?
시인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느낌,,ㅎ
김난석 시인의 시가 궁굼해 지는 소개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네, 홍실님
공감 가는 시가 많았습니다.
제 글은 그저 아마추어 독자의 후기라 생각해 주세요.ㅎ
익히 잘 알고 있어요
시,풍자글 꽁트 미술 음악 고전 등 문학과 예술계
총망라 글쓰기 대장님 이시죠
학창시절 자작 시 복도에
다른 친구 작품들이랑 걸려 있었어요
애들 초딩때 부모 백일장에서
수자원공사 주최인지? 암튼 장원도 하고
한턱 쏘기도 하고 호호
새는 뒤돌아 보지 않고 날아 간다
딱 내 스타일 맞아요
이해 하시려나요? 크크
유쾌한 글쓰기 읽는 재미 있네요
또 사실 기분에 좌우 되기도 하죠
드라마 여성 작가들 괴팍한 사람도 있고
깊은밤에 커피 마셔야 글이 나오고
줄 담배 피워야 글에 영감을 받고
암튼 기성 작가들 머리 뽀사지는것도 팔자이니 내비두고 편하게 민폐 없이
자연스런 글쓰기 하면 좋겠지요🤗
앗 뭔 글 하나 쓰렸더니
까 먹었어요
공작새 님이 석촌님을 잘 아시네요.
학창 시절에 작품이 걸릴 정도면
어렸을 때부터 글 재능이 있었던가 봅니다.
저는 이름이 걸린 것이라곤
떠들었거나 육성회비 안 냈다고 칠판에 이름 적힌 일밖에는,,^^
공작새 님 말씀처럼 유쾌한 글쓰기 맞습니다.
제가 즐겁기 위해 나오는 대로 편하게 씁니다.
저도 뭔 말 하려했는데 딴 데로 흘렀군요.ㅎ
석촌님께서 이번 토요일 걷기방에서 주최하는
호반길 걷기 하자고
번개를 수필방에 올렸네요
그냥 알려드리는 거예요 ㅎ
유현덕님 글 잘읽었어요 ^^
아! 그러시구나.
저는 이번 토요일에 동해 바다로 고래 잡으러 갑니다.
저도 그냥 알려드리는 거예요.^^
석촌님 만나시거든 안부 전해주세요.ㅎ
아주 좋은 평 아름다운 시 평을 써 주셨습니다 현덕님 또한 비범하십니다 문학적인 정서면에서 아주 감명 받았습니다.
시집 비평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마추어적인
그저 막 쓴 근본 없는 글인걸요.
운선님 말씀처럼 제가 비범한 것은 맞습니다.
제가 범띠걸랑요.^^
반갑습니다.
'쉼보르스카'를 좋아하는 취향이 같아서... ㅎ
앗! 쉼보르스카를 좋아하시군요.
이 시인이 한국에는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저도 반가워요.ㅎ
아 좋은 글 입니다.
아이구우 고맙습니다.
내놓고 보니 마뜩찮은 게 많았는데 용기를 주셨네요..ㅎ
고마워요.
이곳에 화답하는 글 하나 올렸네요.